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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about/시사

랑그와 빠롤, 좌파와 루저


아마 이 글은 다름과 틀림 연속 시리즈에 속할 것입니다. 참고로 처음에 쓰기 시작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 다시 썼음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관련글 : [
왜 안티 김연아는 안되는가? ]


문제제기 : 또다시, 두 사건

 작년에 있었던 루저 발언은 참으로 나라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다. 미수다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미수다를 곧바로 알게 되었다. 홍대 정문에는 180cm짜리 선이 그어졌고, 인터넷에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정리해서 사람들의 반응을 얻어내 자신의 블로그를 키운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사실도 알지 못했는데, 인터넷을 접속하다 보니 계속되는 정보 유입에 의해 루저 발언을 통한 2차 확산이 일어났고, 결국 해당 발언을 한 여학생은 완전히 자신의 인생이 털려서 잠적을 타고, 그 녹화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반성문을 인터넷에 올렸으며, 관련 미수다를 촬영한 PD가 징계를 받는 등 한번 걷잡은 사태는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물론 이제 인터넷 트렌드는 로버트 할리 씨의 쌀국수 뚝배기로 넘어왔지만, 하나의 발언이 이렇게까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례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이에 대해 남자들의 관음증에 비추어 주시하는 자가 느끼는 권력이 여자에 의해 주시당하는 자로 전환되면서 발생되는 충격에 의한 것이라는 관찰을 가진 [ 180cm, C컵, 그리고 루저의 난 ] 라는 좋은 글이 '당대와비평'에 올라왔으니 한번 살펴보시기 바란다. 그러나 오늘 글은 루저 논란을 이 각도에서 다룰 생각이 없다.

 저번에 글을 썼을 때도 그랫듯이, 오늘도 비슷한 사태를 조명하는 데에서 이 사건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 사건은 '좌파'라는 발언 하나 만으로 사람들에게서 비슷한 비난을 받은 전 GOD 멤버 윤계상씨의 발언이다. 2009년 10월, 윤계상씨는 GQ를 통해 인터뷰를 하던 도중 '한국 영화계의 본바탕이 좌파라 굉장히 우호적이지 않다. 때문에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서 여덟 작품을 출연했는데 단 한 번도 그 의심을 안 받은 적이 없어 너무 억울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 단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제기했고 (주로 '좌파'쪽에서의 제기였다), 결국 윤계상씨는 사과문을 올리고... 똑같이 잠적했다[각주:1].

 이 비슷한 사건들을 통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가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사용한 '루저'나 '좌파'라는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고, 사과하게 하고, 힘들게 할만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두번쨰로, 이들이 이해한 '루저', '좌파'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의미는 세상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그 단어의 의미와 일치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가지 기호학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랑그'와 '빠롤'에 대한 것이다.


포인트 : 랑그와 빠롤

 현대 언어학과 철학, 기호학사에 있어서 결코 잊혀지지 못하는 이름이 하나 있다. 그가 바로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are)이다. 소쉬르는 1857년에 태어나 1913년에 죽은 19세기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업적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것은, 그가 남긴 강의를 사후에 정의한 <일반 언어학강의>가 1916년에 출판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발표된 두가지 중요한 이론이 있다. 이 단어들은 심지어 프랑스어로 그대로 음차되어 한국인들에게 읽혀지기도 하는데, 그 단어들은 바로 랑그(Langue)와 빠롤(Parole)[각주:2], 시니피앙(Singifiant:기표)과 시니피에(Signifie`:기의)다. 여기에서 기표와 기의는 나중에 기호학을 이루는 핵심 구성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일단 여기에서는 제쳐두기로 하자.

 이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랑그와 빠롤이다. 그에 의하면, 언어(Language:랑가주 - 생각을 표현하는 신호 체계)는 랑그와 빠롤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랑그는 '주어진 사회에서 내재화된 언어체계'를, 빠롤은 그와 달리 그 랑그 안의 개인이 말하는 발화 행위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언어 관습의 총체를 의미한다. 이게 뭔 소리냐면 우리가 '사람'이라고 발화할 때, [saram]이라는 소리 자체가 빠롤이고, 이를 [ssaram] 이든 [salam]이든 [~sa~ram]이든 간에 비슷한 체계로 인식해 '사람'이라는 기표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랑그다. 그리고 이 랑그와 빠롤이 하나가 되었을 때 현시적이고 공시적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랑그와 빠롤이 아까 제시된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포인트이다.

 내 기억으로 소쉬르가 랑그와 빠롤의 종속관계를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지만, 나는 여기에서 랑그와 빠롤 사이에 명시되지는 않지만, 내부적인 종속관계가 강요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7차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는 페터 빅셀의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를 생각해 보자. 자신이 언어의 약속을 바꾸고 싶어서 '책상'을 '탁자'로, '탁자'를 '집'으로, '집'을 '절'로 바꾸어 불렀다고 했을 때, 결국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불가능해 어떠한 말도 나눌 수 없었던 사람의 예와 같이, 언어는 자신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이 따를 것을 내재적(즉 자발적인 형성과 변형)이든, 외재적 (언어 최고 결정기관 - 국립국어원 등의 기관) 이든 간에 요구하고 결정한다. 그리고 맞지 않으면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이것이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무서운 종속 관계이자, 가장 큰 한계이다.


결론 : 단어의 의미를 안다고 말하는 것

 따라서 단어의 의미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그 '알고 있음'이 상대방이 말하는 다른 뜻을 가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루저 발언을 한 그 자매에게 '루저'는 '멋지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윤계상씨에게 있어 '좌파'라는 단어는 '떼거지로 몰려 들어 정상적인 소통을 방해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단어는 그렇게 읽혀지지 않는다. 루저라는 단어는 '진 자', 그러니까 사회에서 퇴출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히고, 좌파는 우파와 반대되는 말로서, 민주반일세력을 모함하는 말처럼 들리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발언을 한 화자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루저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 또한 좌파라는 말이 (특히 보수단체의 용례 때문에) 불쾌감을 일으키고 있는데에도 동감한다. 하지만 그 말을 썼다고 해서 사회의 잣대로, 사회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은, 사회만이 옳고 개인의 잣대는 항상 틀리다는 집단주의적 시각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정말 문제가 될 발언이 생겼을 때에, 한번 쯤은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어떤 의미에서 이런 말을 했니?" 또는, "지금 네가 한 이 단어가 무슨 뜻이야?" 라고 말이다. 의사소통을 하고 나면 내가 생각했던 의미와 그가 생각했던 의미가 차이가 있었음을,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의미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판단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한 사람보다 그런 판단을 한 사람이 더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판단이 정말 옳은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고 용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몇몇의 경우'의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인지가 가장 큰 문제지만 말이다.) 내가 비난하는 부분을 언젠가 내가 따라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참고문헌

한국어 위키백과, [ 페르디낭 드 소쉬르 ] 항목
영어 위키백과, [ Ferdianad de Daussare ], [ Course in General Linguistics ] 항목
한국일보, [ 고종석의 말들의 모험 ] 연재 (2009. 9. 27 ~11. 15.)


  1. 기사 출처 : http://www.frontiertimes.co.kr/news/news/2009/11/01/43359.html [본문으로]
  2. 랑그와 빠롤만은 번역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빠롤에 대해서는 '입말'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지만, 랑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서는 '답이 없기' 떄문이다. '마음말'이라는 대안이 있는듯 하나, 그 단어가 랑그라는 말 전체를 표상하지 않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