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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컬처/코스

<코스어부터의 기도> 프로젝트가 씁쓸해지는 이유


 1. "코스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을 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정의도 내릴 수 있고(나도 이미 내린 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며, 또한 여기에 대한 글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 '코스가 정확하게 이것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코스도 지금 어느 순간에도 계속해서 확장되거나 변용, 또는 외부 영향에 의하여 변질, 축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스가 무엇인지, 그 구성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 자체도 사실은 완벽히 불가능한 일이다.

  2.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WCF를 통해 접한 [ <코스어부터의 기도> ] (Prayers from cosplayers  : 이후 PFC로 표기)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상당한 아쉬움과 함께 씁쓸함을 금치 못한다. 이 프로젝트는 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인들이 코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가지 큰 편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9일 현재 <코스어부터의 기도> 메인페이지. 초상권 보호를 위해 코스어의 얼굴은 삭제 처리했다.
 
   3. 그 중 첫번째 인식의 편견은 코스 문화의 유일한 향유자가 코스어뿐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코스를 하는 사람이 코스의 향유자'라고 여겨지는 세계 보편적인 상황[각주:1](?)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코스는 코스어뿐만이 아니라 일련의 사진사들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물론 사진사들의 일부는 실제로 돈을 받고 코스어들에게 사진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 일련의 사진사들은 코스어들을 일종의 모델뿐으로 볼 뿐이지, 코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나, 그래서 코스 문화에 끼어들고 싶다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코스 문화와 동떨어져 있으므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을 뿐이지 코스인[각주:2]이라는 하나의 내부 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는 절대적 근거가 있는가?  또한 그들이 코스어들과 같이 동화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결과를 지지하는 근거가 존재하는가?

   물론 이런 질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반론이 날라온다. 사진사도 곧바로 코스를 할 수 있지 않느냐. 곧 사진사도 코스를 하면 코스어이므로 코스인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올바르지 못한 반론이다. 사진사가 코스어를 찍는 행위 또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요소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진사가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 주니까 코스프레에 대해서 그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의 사정은 또 다르다. 한국에서의 사진사들은 코스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난 다음에 이를 자체적으로 보정하여 코스어에게 제공하는 작업을 맡는다. 한가지 더 주의할 점은 이러한 행동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부분 무보수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코스 문화에 기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사진사들이 코스인이라는 하나의 서클 안의 멤버로 여겨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의 코스 문화의 특수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코스문화에서 코스어의 외모가 중시되고, 또한 Output을 통한 평가가 몇몇 기제를 통해 강조되면서 (물론 이를 통한 한국 코스문화의 왜곡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코스어들의 진입과, 또한 장기적인 코스판 내에서의 정착이 어려운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따라서 '평범한' 코스를 하는 코스어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코스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빠른 시일 내로 모두 코스를 하라는 암시적인 주장 내지 강요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요즘 코스옷이 10만원, 20만원 한다는 것과 사이즈가 큰 코스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같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Deviantart의 외국 사례를 살펴봐도 조금씩 사진사 개념이 생기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서서히 한국의 코스판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사진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물론 한국 같은 '전문성'은 없지만 말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실 분이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당신이 사진사이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삐뽀. 어느 면에 있어서는 정답이다. 하지만 과연 사진사가 코스인이 될 수 있는가의 질문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질문이다는 점과, 나같은 경우 코스어들과 맨날 채팅을 하면서 하도 코스어들과 친해지고 코스어의 내부 문화에 어느 정도 동화되었을 때 일반적인 '사진사'들 간의 거리가 분명히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도 내가 사진사 커뮤니티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그 반론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사진사는 코스인이 아니'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면 아무런 말도 안 통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다시 정리하자면, 코스어가 코스프레 문화를 구성하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코스어는 아니지만 '민간인', 또한 '사진사'들로서 코스프레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 즉 그 커뮤니티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도 코스 커뮤니티 내에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에 대한 코스어들의 인식인데, PFC를 기획한 사람들은 어쨌든 '전통적인(?)' 입장에서 코스어들만을 참가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참가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4. 둘째로 발생하는 편견은 코스가 만화-애니메이션만을 소재로 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왠지 맞는것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들어있다. 첫째로, 이를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 안에서 한정하여 다시 고찰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각주:3] 즉, PFC 첫 페이지에 게제된 '재해를 입은 사람들 중에는 많은 애니메이션·만화·게임 팬등이 있습니다'라는 발화를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이라는 맥락과 결합한다면, 망가まんが와 아니메アニメ로 대표되는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무래도 '일본 게임'을 좋아하는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을'같은 취미를 지닌 동료同じ趣味の仲間'라는 발화가 정박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냐고? 즉 코스어를 같은 취미를 지닌 동료로 호명하면서, 그 취미의 대상을 '일본 아니메, 망가, 게임 팬', 또는 그것을 따라하고 있는 '[세계의] 코스어'로 한정한다는 소리다. 즉 이 이야기를 과격하게 재정리하자면(물론 그러한 의도가 없었으리라고 믿는다), 일본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코스를 하고 있는 사람만 코스어라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서의 사정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지만, 예를 들어서 <언더프린> 같은 웹툰을 바탕으로 한 코스라던가 한국 게임을 바탕으로 한 코스가 상당량 존재하고 있고, 한국이나 기타 로컬 지역에서의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코스가(<고스트 메신저> 같은 경우가) 앞으로 계속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유래한 코스는 코스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다른 코스어들에게 한다면, 모두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둘째로, 코스의 대상이 문화콘텐츠 안으로 제한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지금의 코스계에서 같은 흐름 안에 속하는 코스가 두개나 된다. 그 중 하나인 1990년대 말부터 유행했던 팬코스를 고찰해 보자. 그들도 코스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코스를 했던 대상은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 스타-아이돌들이었다. 그래서 '애니 코스'어들은 이들을 자신들과 다른 대상으로 보고 코스인으로, 또는 코스판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지금의 팬코스는 소수의 존재가 되었다. 물론 2000년대 중반에는 베리즈공방Berryz工房이나 모닝구무스메モーニング娘。등의 일본 팬코가 유명했고, 최근에는 소녀시대의 코스가 코스어들 사이에서 다시 등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코스는 코스가 아닌가? 예를 들어서 해외에서는 한국 가수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코스어라고 부를 수 없는가? 

   나머지 하나인 밀리터리 코스도 그렇다. 물론 팬코스에 비하면 밀리터리 코스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은 떨어진다.하지만 밀리터리 코스는 코믹월드등의 행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며 이미 한국 코스계에서 친밀한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코스어가 아닌 것일까?

   5. 상기의 문제와 연관하여 PFC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크면서. 논쟁점이 많은 편견은 코스가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고 발전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일본과,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코스 문화가 이만침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일본에서 시작된 것인가? 라는 것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코스는 카이와Caillois 가 분류한 놀이의 4가지 형태 중 모방, 즉 미미크리mimicry 에 해당한다. 그리고 모방 자체는 수천년 전부터 밀교의 비밀 형식(예를 들어 오시리스 의식이나 테메테르 입교 의식 같은)이나 죽은 사람의 데드마스크를 쓴다는 등의 행동에서 이미 존재해 왔다. 현대에도 지속되는 (리오) 카니발이나 할로윈 데이 같은 행사도 특정 기간과 공간 이내로 코스 행동이 제한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코스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또한 현대의 코스 움직임 또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1939년에 있었던 제 1회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World Science Fiction Convention 에서 지금은 작고한 포레스트 J. 애커맨Forrest J Ackerman 이 Mrttle R. Douglas이 디자인하고 만든 미래인의상Futuristicostume 을 코스한 것을 직접적인 현대 코스의 시초라고 볼수 있으며, 그 이후 이러한 코스 형태는 남북전쟁재현, 또는 스타트랙, 스타워즈 코스 등의 모방놀이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최초 코스인 1978년 제 17회 일본 SF 대회에서 판타지 서클 ‘로레리어스’에 의해 이루어진 에드거 라이스 바로즈의 <화성의 비밀 병기>의 표지 일러스트 코스 또한 SF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즉, 1960~70년대에 데츠코 오사무, 토에이 등의 많은 만화 제작자들에 의한 일본의 만화-애니 부흥기에 코스는존재하지 않았다. 코스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정착된 것은 맞지만,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짧은 시간 이내 이루어진 것이다.[각주:4] 심지어 '코스프레'라는 단어 조차 1984년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애커맨 선생이 처음 코스를 하신 그 모임) 의 코스 모습을 보고 일본 SF 작가인 타카하시 노부高橋のぶ[각주:5] 가 명명한게 굳어진거다.

   그리고 현재의 무대행사 퍼포먼스도 일본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여부가 불명확하며, 오히려 이러한 무대행사는 한국이 좀 더 발전한 분야중 하나였다. 물론 2000년대 초의 한국 '팀플'의 전성기에 비하면 현재의 '무대'는 많이임펙트나 그 내용의 밀도가 옅어진 것은 사실이나, WCS[각주:6]에서 다른 참가팀에 비해 뛰어난 퍼포먼스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등 한국의 무대는 지원에 따른 발전 가능성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일본이 코스프레라는 개념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코스라는 이름을 명명하고, 제시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코스프레가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고 발전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간에 일본 국기를 그리도록 한 것 또한 우려를 표시할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6.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즉, 코스는 일본에서 시작한 문화가 아니며, 그 개념 또한 미국 SF 문화의 전적인 수입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코스는 단순히 코스어로 구성되는 것만이 아닌 사진사, 일반인을 포함한 하나의 큰 문화적 공간이자 판이다. 이러한 사실을 제외하고 단순히 '코스어들의 일본인을 향한 응원'을 수집한다는 것은, 코스에 대한 깊은 사고와 고찰이 없는 단순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PFC 프로젝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를 경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코스인들이 일본의 코스인들 - 아울러 애니/만화 팬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전하는 것 또한 중요하고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퍼포먼스 자체에 대해서는 지지함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하지만 코스는 단순한 만화, 애니, 게임 등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모방하는 행위 자체를 통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코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함께, 함의 도출을 위해 앞으로 중립적인 관점을 위해, 본 논고가, 코스의 일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만한 시도가 되기를 바란다.

110319-23. earpile de arsle.

 
  1. 가령 cute의 경우 사진사 개념을 배제하면서 코스어의 등록만 인정한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사이트인 cosplaylab도 마찬가지. [본문으로]
  2. '코스인'이라는 개념과 코스판 - 또는 코스 공간 - 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써야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여기서의 코스인은 코스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사진사나 '민간인'도 코스인이다. [본문으로]
  3. 여기서부터 기호학 방법론을 이용한 내용 분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간다면 복잡한 기호학 이론을 설명하고 더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표를 그려야 할 필요까지 있어서 더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 [본문으로]
  4. 1970년대의 SF 내지 판타지계 흐름에 대해서는 히카와 레이코, 도쿄에서 판타지를 읽다, 청어람미디어, 2004 (ひかわ玲子のファンタジー私説, 東京書籍, 1997)을 참조. 여기에서 SF-코스에 대한 내용 서술은 제한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일본어 위키백과 - [ 다카하시 노부 항목 ] 참조 [본문으로]
  6. World cosplay summit라고 일본 문부성과 아이치현이 매년마다 다양한 나라에서 2명씩을 국가대표로 불러와서 치루는 무대행사 콘테스트. 이 WCS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나중에 글로 써야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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