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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about/시사

'긍정적인 생각'과 고통받는 어린 양떼

#1.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창 1), 토요일이 되고 주일이 되었다.

 라고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40년 넘게 교회 목사로 섬기시던 감독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일일부흥회를 리드하시고 그 다음날 은퇴하셨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목사님이 방금전에(?) 취임하셨다.

 사실 그것뿐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기대했던 교회 개선의 첫 발자욱을 떼는 것이니만큼, 이건 내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딱딱하고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멀어져 있었던 교회가 가까워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마지막 일일부흥회 설교는 나에게 또다시 어려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일단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주제로 예수님께서 감람나무를 저주하신 텍스트를 소재로 해서 하신 말씀인데, 감독님은 설교중에 대략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다. (정확한 Fact는 아니니 과장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명박 장로 대통령으로 세워 주셔서 감사하다. 지금 미국 쇠고기 논쟁하고 대운하 반대하는데, 실제로 미국 가서 미국 쇠고기 먹어보니까 맛있기만 하더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청계천도 그랬지 않았는가. 시간 지나면 모두가 이명박 대통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2.

 그리고 그 부흥회가 끝나고 난 몇 시간 후, 나는 오마이뉴스를 보았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실시간 시위 중계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한시인데도 시위 참가자들이 흩어지지 않는 모습을,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정상적인 접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끊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연속이었다. 결국엔 나중에는 접속을 포기해 버렸다. 오마이뉴스가 탭체계를 거부하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파폭은 확인 못해서 모르겠다)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6년 만에, 사람들이 청계천을 벗어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의해 청계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 다를까. 우리의 '도우미' 경찰은 '보호'를 명목한 '시위 진압'에 나섰고, 시민들은 그에 반대하면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결국에는 터지는구나.

#3.

 그리고 두시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토익을 보고 한시에 교회에 들어갔다.
 컴퓨터로 체크해보니 37명이나 잡혔다고 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했다.
 하지만 교회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일에 신경틀새도 없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저녁에 이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4.

 오늘 밤은 더 처참하다. 이젠 아예 세자리 숫자까지 그 숫자가 올라갈 기세다. 젊음의 지성이라 불리는 연세대 앞에서 시위가 마구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경찰청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말도 안되는 공권력으로,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수 같지 않은 소수들이 다수 같지 않은 다수들에 의해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특히 '귀족 노조'의 시위 때나 나오는 심각한 때려잡기가 '선량한 시민'들 앞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이정도면 뭐라고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빼고는 아무런 말도 없다. 계속된 집시법의 폐혜는 결국 조직없는 무리들에게까지 이르렀고, 그 피 삯은 예수님처럼 아무 죄 없는 시민들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살아가고 있는 의미 자체가 옅어지게 만든 이 대한민국이라는 존재. 사실 이명박이 당선되기도 전에, 선거날 18시에, 일은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한 사이트에 모여서 대한민국이 망했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 생각들 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이명박 취임 이후 계속해서 휘청대기 시작했다. 어린이와 젊은이의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역시 부자들보다 더 듣기 좋아하시나 보다. 하지만 그 피삯은, 절규하고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에게도 베풀어지고 있다.

#5.

  아무리 하나님의 어린양을 찾고 부르고, 주님,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래서 주님은 거룩하시다고 계속해서 찬양해도, 아마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모두에게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그것은, Again 1907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1-2년 뒤로 시점을 늦추심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Remodeling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다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으로 넘어가서 생각해 보자. 그럼 교회의 '긍정적인 생각'은 현재의 고통받는 어린 양떼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럼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 자체는 좋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것만은 좋지 않다고. 그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지 오웬의 동물농장이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가장 정확한 우화인 동물농장이, 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공감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구조에 있다.

#6.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CEO,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더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왜 이명박에게 있어서는, '어린 양떼'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이명박이 스데반을 핍박하고, 예수를 핍박한 바리새인들 같이, 그 피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 쓸지도 모르겠다.

 저번에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진성고등학교. 결국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에 대해서 더 글을 쓰신 분에 대해서 진성고등학교는 그 분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이 진성고등학교에 보응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사회 구조를 인정하고 오히려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가?

 10대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는건 다 이명박 때문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선진국에는 존재할 수 없는 두발 규제, 핸드폰 검사, 복장 규정, 소지품 검사 및 압수까지는 괜찮았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결국 '죽음의 트라이앵글'만 확인 시키고 끝난 89년생들까지도 아이들은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게 변한것이, 아시다시피 유명한 429 교육자율화 조치다. 결국 아이들을 때리고 굶주리게 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 '종합선물세트', 거기다가 쇠고기에 학교급식이 연계되자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명박은 여기에 대해서 "놀 공간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다"라면서 농담식으로 애들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몇주간 참혹하게 커져 나갔다.

 결국 이리들에 의해. 약한 이삭들에 의해 어린 양들은 잡아 먹히려고 한다. 그래도 이 어린 양이 어느정도 능력은 있어서 대응이라도 가능한것 같다. 하지만 이리는 생각한다. 언제는 잡아먹히겠지.. 그럴까?

#7.

 혹시 이런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아니냐며 말하시려는 기독교인 분들. 이게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이다. 왜 진리를 위한 '부정적인 생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을 알리는> 사 60장의 말씀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서 이게 내가 가장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불우 이웃은 도울줄 알면서도,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에 대해서는 "좋은 대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라는 명목으로 밀어 붙인다. 이것이 이중적 생각이 아닌가? 아이들이야 말로 억우하고, 빛이 없는 자들이다. 더군다나 용돈도 없으니 가난한 자겠고. 그런데 그들을 삶아 먹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면, 하나님의 존재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언젠가 어디서 봤던 신명기의 <어미 젖으로 아기를 끓이지 말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 북한에 대해서라면 곧바로 정의를 드러내며 북한 애들을 돕던가, 북한을 선교해서 자유국을 이뤄야 한다는 두 파로 나뉜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 뭐 양쪽다 일리가 있으시고 모두가 그리스도의 계획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임을 인정한다. 노인복지도 또한 열심이다. 하지만 청소년 선교는? 그냥 집회 해서 애들 '회개'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채워지면 다 똑같이 변화되어서 '새 사람' 될줄 안다. 물론 대학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할 사람이 지금도 너무나 부족하고 필요하다 (내가 그 필요를 안다).  하. 지. 만.  오직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새 촛불을 들면 안되, 아니 촛불집회와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로 규정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세상에 부르심 받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부르심이 있다면 당당히 비느하스처럼 분을 품어 싸울 떄가 필요하다. 교회는 그런 인간 대신, 즉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그토록 기독교가 가톨릭에 대해 싫어하는 '교회를 통한 구원'을 강요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즉, 우리는 가톨릭의 교회를 통한 구원 (미사통상문의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로 대표되는)을 올바르게 바로 잡아 거부했지만, 정작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의해 자신의 믿음이 결정되는 삶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필요하고 교회에 헌신이 필요하고 교회 사업을 통해서. 심지어 건물 짓기 경쟁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 줄 모른다. 내가 이상한건가 라는 생각마저 할 뿐이다.

#8.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긴데, 왜 중고등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하는데 대학생이 참여 안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살펴봐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점은 중고등학생은 옹호하고 대학생은 관심을 잃었다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88만원세대가 이것 밖에 안돼냐고. (그래서) 이데올로기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발 깨달아주길. 대학생들은 못 나갈 뿐이다.

 그 실례가 우리 학교다. 우리 인하대학교에서는 지난주에 운동장에서 수천명이 모여서 등록금 및 광우병 반대 집회를 열었다. 나중에 오고 보니 30%가 인하대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고, 역시 주목적은 등록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하대 학우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정석 옆에는 총학에 의해 이런 프랭카드가 붙었다 : "광우병 반대 인하대생이 시작하자!" (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도 매일 저런식으로 시위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대학생들도 생각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넷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대학생들은 참여하지 않는 것일까. 당장 내 사정만 들려주면 이해가 간다.

 나는 지금 밀려있는 숙제가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마구 돌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의 대가로 나중에 처리해야 하는 과제들을 이야기해 보자.
 
 일단 내일 저녁에 팀 미팅에서 두세개의 이미지 시안을 더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기사 쓰는게 화요일까지. 그리고 내용은 수요일날 팀미팅에서 검토돼 목요일날 발표후 금요일날 최종 제출을 통해 그다음주 월요일 인하대학신문에 발표될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한 개론 과제에서는 IPTV 광고를 통한 영향력이 어떻게 되겠는지에 대한 논문을 이번주 금요일 밤까지 써서 제출해야 한다. 나는 전혀 여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참고자료들만을 우선 찾기 위해서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지금 논문 준비를 위해 논문들을 번역하고 있다. 이 논문들에는 일반 영어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수두룩하며, 번역도 잘 되지 않는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별도로 이 논문에 대한 확장 내용을 지난주까지 제출해야 했는데 진행이 안돼고 있어서 결국은 포기. 교수님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것도 수업진행은 없지만 학점이 부여되는 정식 수업이다. ㅠ.ㅠ;)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학교에서는 졸업 자격으로 <논문과 작품>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작품도 만들어야 한다. 이건 좀 Delay가 가능하지만, 이와 연계된 인터뷰를 수업의 일환으로 촬영, 제작해야 한다. 당장 녹화 대상이나 날짜, 그리고 장비 자체가 규정되지 않았는데, 몇주 안으로 끝나야 한다.

 그나마 지난주 안에 끝난 것들도 있지만, 거기에 기말고사까지 생각해 보라. 이정도라면 나는 이런 글도 안쓰고 지금 계속해서 학교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안하고 있는 이유는, 글 쓰는게 막혀서다. 그냥 풀리까 해서 쓴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디 미쳤다고 나가겠는가? (참고로 이정도는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로 힘든 것이지만,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토익까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면, 대학생은 '표면적인' 행동의 제약은 없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학점', '취업' 이라는 이유의 가장 큰, 그리고 필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못나갈 뿐이다. 제발 여러분들이 대학생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몇주간동안 지쳐 있고 힘들다. 이젠 좀 풀리려나.

#9.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 구조를 따지려면 내가 그걸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나도 더이상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와 설명을 이제 마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체계의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제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이민나가는 사람들이 급증할 지도 모르겠고, 대불공단에서는 겨우 두개 뽑힌 전봇대 가지고 아직도 어려움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학교와 부모, 그리고 아이들 자신들에 지쳐서 아무리 "숏기! 패기!"를 외치는 "힘내라 청춘아" 광고를 봐도 실망하고, 성적 폭력을 행하고, 음란물을 좋아하며, 험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개선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제시한 것들은, 결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쁘게 살고 싶지만, 결국은 이명박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오는 꼴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명박이 잘한게 있다면 공무원 개혁과 의무보조금 폐지만일 정도로 (ㅇㅅㅇ)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교회나 수도원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말고 예배만 드리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라면?


#10.

 결국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하지만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우리는 진리를. 참을 선택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이 닥처도 말이다.



- 2008, earp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