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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려라! 유포니엄' 극장판 - 유포늄은 나를 위해 운다



1.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역시나 언어 관련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목인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주인공이 연주하는 악기의 이름인 Euphonium 말인데, 역시나 이 단어의 표기가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내악기에서 쓰이는 통용표기는 유포늄인 반면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유포니움, 그리고 공식 수입사인 애니플러스에서 공식적으로 들고나온 단어인 '유포니엄'까지… 개인적으로는 통용표기를 취해서 '유포늄' 쪽을 선호하지만,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이 글에 한해서 공식 제목에 들어가는 Euphonium의 표기로는 '유포니엄'을 선택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번역으로 <울려라! 유포늄>을 선택한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2. 만화나 애니를 원전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에는 두가지 테크가 있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정리해서 다시 극장용으로 엮어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쪽, 나머지 하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드는 쪽이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정리해서 하나의 극장판으로 만드는 쪽은 아무래도 원화나 작화를 다시 하지 않아도 되고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편집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제작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장점이다, 애니메이션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내용을 다시 보는게 어떤 의미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를 접게 만드는 고역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개봉한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1차 극장판은 맨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애니메이션 팬들이 모두 본 내용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케이온!〉이나 〈러브라이브!〉 극장판은 애니메이션과 독립된,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제시해 결과적으로는 팬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노선의 경우 많은 팬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므로 재구매를 하지 않는 이상 애니메이션의 제작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역시나 제작인력이 충분한 경우에나 가능한 이야기라 여러 의미로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3. 이런 시점에서 〈울려라! 유포니엄〉은 의외로 전자를 선택했다. ‘의외’로 느껴지지만, 제작에 이르게 된 콘텍스트까지 같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우선 극장판 제작을 고려할 시, TVA 2기의 제작이 결정됐다. 이 상태에서 극장판을 위한 신을 크게 추가하거나, 인력을 크게 확충할 여력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거나, 이야기를 빠르게 편집할 경우에는 역시나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극장판은 1기 사이와 2기 사이에 들어가 애니메이션 팬덤들의 관심을 자극해 2기에서도 팬들의 높은 시청이나 구매를 자극하기 위한 예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없었다. 또한 〈케이온!〉이나 〈러브라이브!〉같이 TVA 제작이 끝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끌기 위한 작품도 아니다. 이러한 맥락들이 〈울려라! 유포니엄〉이 이러한 형태로 제작되게 된 이유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4.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이 팬덤들이나, 아직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지에 대한 평가인데, TVA를 전혀 보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 평가해보면, 재미있었다. 무엇이 재미있었냐면,

1) 편집 리듬감. 기존의 TVA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다. '총집편 형태의 TVA'는 분명히 이야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이라고 해야 하나, 문제라고 해야 하나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특히 기존 팬덤에게는 재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2) 그래서 TVA에서만 제공가능한 콘텐츠를 분명히 제공해 차별성을 두었다. 극중 등장한 '라이딘' 신은 애니메이션에서와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의 러닝타임을 배분했다. 마찬가지로 예선에서 연주하는 곡이 된 〈초승달의 춤〉이나 〈프로방스의 바람〉 또한 TVA보다 연주 시간을 길게 했다. TV에서 체험할 수 없는 내용을 극장판에서 새롭게 접할 수 있다는 감각이 주어진 것이 결국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3) 클래식이라는 소재. 특히 유포늄이라는 낯설지만, 중이병이니 양판소 세계급의 거리를 둔 장르와 다른 정상적인 현실 속 정상적인 악기를 가지고 온 것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직까지도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만, 클래식 악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문화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모에요소’에 의해 과장된 캐릭터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일반 스포츠 만화에도 존재하는 주인공의 장기나 특기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애니메이션 장르에 낯선 이에게는 쉽게 접근하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5. 마지막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자기이입에 대한 측면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3자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현상이나, 주인공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머문다. 이와 달리, 〈울려라! 유포니엄〉은 주인공 쿠미코의 내면 서술에 집중하고 있다. 북우지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왜 굳이 취주악부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지, 더군다나 저음악기를 왜 불고 싶지 않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포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타키 선생을 만나면서 유포늄을 ‘잘하게 되고 싶ㅇ’ㅓ졌는지, 왜 레이나를 다시 만나게 됐는지… 이 모든 것들을 납득시키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애니메이션. 이것이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만든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일본 내 취주악부 내에서 유포늄에 대한 평가가 급변해, ‘울면서 맡아야 할 정도’로 피하던 악기가 ‘동경하는 악기’로 바뀌었다는 보도가 나온 바가 있다(쿄토신문, 2017. 8. 18). 또한 이후 유포니엄을 주제로 한 콘서트가 팬덤에 의해서 이어지는 등의 사례도 보고돼,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성지순례 사례와 다른 매커니즘을 통해 개인의 감성에 다가가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쿠미코가 울리는 유포늄은 타키 선생이나 레이나, 쿠미코, 취주악부만을 위해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위해 우는 것이다. (160901 작성 시작, 171115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