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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about/시사

한글의 새표기 방식, 최근 논쟁에 대하여


 나는 원래 조선일보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미 동조중에서는 내 아이디를 지워버렸고, 집에 신문 구독도 (한겨례나 경향을 구독할 수 없으므로) 완전히 끊어버린 상태다. 그러다 오랜만에 들러버린 조선닷컴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한글의 외국어표기를 위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서 공인하자는 제안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러다 양쪽 주장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동일한 문자에 대해 어느새 이렇게나 많은 제안이 들어왔다. 장난 아니다.()


 먼저 고려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제안이나 논쟁이 갑자기 한 교수의 말에 의해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라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3년 전에 동아일보에서 발표된, 고등과학원의 최재경 교수가 제안한 [ 새로운 문자들 ]이 있다.

2010년 차원의 새로운 제안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이런 문자가 보도되었다 ()


 여기에 한 술 떠 그 기사가 발표된 다음 주에는 서울대 이응백 명예교수가 이 다섯개 자음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보다는 한글의 기존 사용되지 않은 글자를 부활하면 되지 않겠냐는 투고를 보내왔다. 내용을 cp949의 천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인용하기 어려워 인쇄된 기사 부분을 가져오고자 한다.



 그리고 이 외에도 외국어 표기에 다른 글자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런 곳만이 아닌 여러곳에서 제기되어 왔다. 가령 이미 l의 대안인 나, 위에 언급된 f의 대안 중 하나인 는 1920년대 연구부터 우려져나왔던 것이다.[각주:1] 또한 일본어 つ의 경우, 쌍지읒에 ㅊ의 -를 올려쓰는 대안이 이미 제시된 바가 있다.[각주:2], 또한 이미 한글을 수입한 찌아찌아어의 경우, v에 대응하는 말로 를 사용하고 있다.[각주:3] 그렇다면 이러한 논의가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일어난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글을 외국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도 기존에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예를들어서 1981년에 발표된 한글음성문자, 1990년대 말 이어령 교수와 김석연 교수를 주축으로 구축되어 지금은 UN에 한글을 소수민족용 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는 누리글[각주:4], 그리고 다소 동떨어진 시도이기는 하지만 '김곧글'씨가 작업하고 있는 [ 곧글 문자들 ] 등이 있다. 이러한 시스템 모두가 기존의 한글을 확장해 새로운 언어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안이 받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1920년대부터 시작된 표음주의와 문법주의 사이의 오래된 전쟁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러한 새로운 문자들을 사용하자고 제안한 사람들은 표음주의쪽 사람들이었고, 결국 현재의 한국어 문법 등이 관치를 통해 결정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된 것이다.[각주:5]

결국 한국어 문법이나 어법 자체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난 한국어 어법에 약간의 이의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형태주의를 존중한다. 그것은 한글학회가 제정하고 국립국어원이 개정한 체계 하에 잡혀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교육되어 통용되기 때문에 앞으로 50년 이후로도 개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사회의 변화는 있겠지만 이제 한국어는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으며,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분명히 훈민정음의 한글은 우리가 생각하는 14+10 체계를 넘어서 초기에 아래아, 반시옷등의 별도의 표기가 있었고, 이를 재활용할 수 있는 근거도 위에 보았듯이 존재한다. 언중들을 대표하는 사회의 심의를 거쳐 이러한 표기안들이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려는 것은 섵부른 판단일 뿐이다.

 특히 조선닷컴에 올라온 댓글들이나, 언어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언어의 표기수단을 동일시하는 오류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 한국어의 한글 체계에 한국어 몇 자를 추가하겠다면 그것은 당연히 말이 안되고, 비정상적인 시도이다. 그러나 한국어와 별개의 '한글 체계'에 몇 자를 추가하고, 이를 공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한국어와 연동시켜 비판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여러가지 한국어 이외의 발음에 대한 표기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이러한 표기에 대해 벌써부터 동일한 표기에 대한 4,5가지씩의 대안이 나와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표기들이 계속 양산되었을 경우 현재와 같이 난립하는 표기의 표기법도 통일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앞으로 상당한 혼란과 혼선이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각 표기를 표기할 방법이 없어 입력과 출력 모두 힘들 것이다. 당장 우리 한글을 쓰고 싶어하는 찌아찌아족도 ㅸㅏ, ㅸㅣㄴ등의 표기를 두벌식 자판 자체에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또한, 추가적으로 다른 민족이 한글을 도입할 때 새로운 문자를 필요로 한다면 그 손해는 얼마나 더 커지겠는가?

 차라리 지금 단기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그러한 표기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면 앞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표기의 대중화 문제는 모바일 기기에서까지 필요하지 않으니 컴퓨터의 한글 입력체계를 이 참에 현재의 협소한 cp949 체계에서 조합식으로 전환하거나, 또는 유니코드에 추가 위치를 받아 전환하면 될 문제이다. 또한 입력과 출판의 경우도 MS나 애플, 리눅스 커뮤니티, 폰트 회사의 도움을 받아 단기간 내에 지원가능한 폰트를 만들면 된다. 이정도의 작업을 하는데 총 30억 정도, 많이 늘려 잡아도 50억 이상의 자금이 소모되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이번 토론을 조선일보나 정부, 사회에서 썩히지 말고 공론화 해 다양한 한글 자모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한글을 사용하고 싶은 소수민족들에게 기쁜 소식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내가 가지고 있는 최신의 자료는 <글자의 혁명>, 최현배, 1955를 재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1930년대부터 나온 것의 정리이지, 새로운 글자가 갑자기 튀어 나온것이 아님은 ᄙ가 유니코드에 포함되어 있음을 통해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안상수 외, <한글 디자인 교과서>, 2009, 안그라픽스. p. 269. 참고로 난 이걸 그대로 생각하고 있다가 동일한 상상을 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본문으로]
  3. 한국어 위키백과 [ 찌아찌아어 항목 ]. [본문으로]
  4. 누리글 홈페이지는 http://nurigeul.org 이며, 2001년도 중앙일보 보도분은 [ 여기 ] 를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
  5. 이러한 상황을 당시 동아일보의 토론 속기록을 가지고 잘 묘사해준 책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책인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면 나오겠지, 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