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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책들

<원주발 파리행 페이퍼로드> - 반항이 힘이다?


원주발 파리행 페이퍼 로드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김진희 (이매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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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의견 내용을 제외하고는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인용하여 다시 썼습니다.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



 1. 2005년 3월. 파리의 시가지에 갑자기 한지를 홍보하는 축제가 벌어졌다. 패션쇼를 필두로 한지 공예전시, 한지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졌다. TF1, <르 몽드>등의 언론 보도가 가세되었고, 파리 시민들은 한국 전통의 행사에 빠져들었다. 2006년에 있었던 한프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에도 이 팀이 다시 가세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상상할 수 없었던 이 행사의 시작은, 그러나 한지와 관련없어 보이는듯한 원주의, 시민단체들이 이루어낸 일이었다.

 2. 많은 사람들이 한지하면 전주지역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한지의 많은 생산은 닥나무의 질이 높았던 원주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농사를 하고 남은 것이 없는 소작농들이 마을에서 한지 생산으로 그나마 돈을 벌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일제 36년 기간 동안에 한지 생산은 통제되었고, 결국 50년대 한지 생산 이후 양지로 종이 생산이 변경되면서, 한지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각주:1]

3. 그런데 이러한 원주의 한지 문화를 재발견하고 현재까지 성공적인 축제로 이끌어 낸 원주한지문화제는 이러한 한지를 되살려야겠다는 어떠한 전문가의 노력 등에 의해 생겨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엉뚱했다. 1995년도부터 원주시의 예산 상황을 감시해오던 단체들이 1997년에는 아예 전체 예산서를 감시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그 시점에서 1996년에 '치악산찰옥수수축제'가 열린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생뚱맞은 축제였다. 원주의 옥수수 재배농가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원주 시민들이 옥수수를 자주 먹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지방지 기사에 원주와 가까운 홍천, 횡성, 평창에서 옥수수축제가 있어서 만든것 뿐이었다. 결국 시민단체는 폐지를 요구했고, 축제는 폐지됐다. 1997년에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 복원을 반대하기도 했다. 1998년에는 매년 방사하던 꿩 때문에 인근지역에 피해가 발생한 사실을 파헤쳐, 꿩의 생태계에 맞지 않는 현실을 발견하고 시정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시정하다보니, 원주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는 축제 콘텐츠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원주시의 마을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에서 한지라는 콘텐츠를 찾았다.

4. 그리고 1999년부터 곧바로 이름, 행사 시기 등의 여러가지 체크를 한 후 이들은 '원주한지문화제'를 개막한다. 위원장을 한 분 모시고 처음부터 지자체와 연관을 맺지 않고 문광부, 기업들을 쫓아다니며 행사를 요청했다. 그리고 첫해 행사는 성공이었다. 한지 패션쇼를 위해 모델 회사에 무작정 찾아갔고, 1995년부터 원주인권영화제를 개최한 인연으로 스타들을 모아 홍보에 나섰다. 다음 회에는 영부인을 모시기 위해 두 달 동안 정성을 들인 끝에 실제로 이희호 여사를 모셨다. 한지와 다른 종이들을 확인하고, 한지의 장점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나라에 돈 들여서 정성을 들여 찾아가 보았다. 정권 교체나 위기들도 심했고, 빚도 늘어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2005년, 2006년 연속 파리에서의 축제 행사도 개최했고, 스트라스부르에서 행사를 개최했으며, 2009년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도 콜이 들어왔다. 결국 2009년에는 올해 IAPMA(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and Papermakers and Paper Artists: 국제 수제 종이제작자 및 종이예술가 총회) 국제총회를 개최하는데 성공했다. 원주한지테마파크를 만들었고, 원주 한지를 프랑스에 판매하도록 길까지 터주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 협력이 안돼 상급 단체를 왔다갔다하며 난리친 원주시와도 이제 조금씩 협력해 나가는 단계다. 원래 완산본으로 유명했던 전주가 원주의 이 축제 사례를 배우지 못해 난리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09년 5월에 출간된 책에 잘 실려져 있다.

5. 원주한지문화제 사례는 행정부에 대한 긍정만이 아닌 반항이 한국을 홍보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이색적인 결과를 도출해 낸다. 특히 정치적인 취향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홀대받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각주:2], 그동안 한류와 한스타일 창출에 기여한 뛰어난 문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단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닌, 대안을 찾아 모색하고, 아니오를 외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대안을 찾을 수 있고, 그 비전을 따라 느헤미야와 같이 도전하며 나아갈 때 지역을 바꾸고, 한국을 알릴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아니오 할 때 아니오를 외처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문화가 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하기 바란다. 아니오라고 이야기 해야 할 때 아니오를 외치지 못한다면, 결국 닥치는 것은 쇠퇴와 퇴보밖에 없다[각주:3]는 것을.

  1. 실제로 1969년도 기준 원주의 한지 제조업소가 896호였는데, 1982년 기준 150호로 줄어들었다. [본문으로]
  2. 2008년 문화관광축제까지는 예비 지원을 받았으나, 2009년부터는 한 푼의 국가 지원을 받고 있지 못하다. [본문으로]
  3. 이미 인천 남구와 부천에서 그러한 사례가 발생했고, 부산에서도 발생하려고 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