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론 강의록〉, 서브컬처와 일본을 보는 또 다른 렌즈


1.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이하 강의록〉)을 알게 된 계기는 K교수님의 트위터에서였다. 내가 웹컬처라고 부르는 서브컬처에 대해서 알다시피 강의라는 형태로 아직까지 자리잡은 문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제로년대의 상상력〉으로 유명한 우노 츠네히로씨가 직접 강의록을 발표했다는 것도, 출판사가 아사히신문이라는 점도 신선해서 곧바로 4월에 일본어 원본을 구매해서 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본어 세로읽기가 나에게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다른 책들에 비해서 읽는 속도가 상당히 느려졌었고, 그래서 전체 페이지가 380p가 넘는 상태에서 200p 정도 반선을 겨우 넘어서 10장 정도를 어째어째 보고 있다… 싶었을 때 갑자기 12월에 한국어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버렸다. 그것도 워크라이프에 의해서.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빠르게 움직여주신 워크라이프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읽히지 않던 책이 갑자기 읽어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덕분에 '이 책을 전부 읽고 나서 책평을 올리자'는 생각을 이룰 수 있었다. (웃음)

2.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자. 강의록은  쿄토세이카대학(京都精華大学)에서 우노 츠네히로 강사가 강의한 내용을 하나의 글로 정리한 것으로, 만가-아니메의 변천을 중심으로 일본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다시 말해, 일본사회의 변화상을 만가-아니메 창작자들이 어떻게 담아냈는지를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맨 마지막의 아이돌의 변천사까지 하나의 '서브컬처'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나가는 내용으로 2016년 강의를 한 것을 전사로 정리해서 2018년에 출간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어쨌던간에 강의록〉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접근하는 것처럼 다소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있기는 한데, 가볍고, 읽기 쉽다. 물론 책에 빠져 있는 작품의 실제 동영상이나 사진을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유튜브 등의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보면 되는 일이다. 마침  [ 워크라이프에서도 책과 병행해 볼 수 있는 보충자료를 인터넷으로 올렸다 ].  일관적으로 만가-아니메의 발전상을 담어왔기 때문에, 머리 속에 일관된 서브컬처에 대한 관점을 세우기에도 좋은 책이다.

3.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그 '관점', 다시 말해강의록〉의 기본 논제다. 우선 '서브컬처의 변천'이 일본 사회의 변천과 함께 해 왔다는 주장은, 대우 원칙에 따라 일본사회가 아니었다면 서브컬처가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을 당연히 승인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옳은가? 한국사회는 서브컬처를 통해 사회의 큰 영향력을 받았다. 1990년대의 공영방송 TV들을 통한 아니메 세레는 그 시대 한국사회의 사고방식을 바꿔놓았다. 서브컬처의 활성화는 한국 사회의 근간을 바꾸었다. '키덜트 문화'가 서브컬처와 대중문화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인싸의 공간이었던 홍대에 서브컬처 공간이 늘어나고 있고(이글을 쓰고 있던 차에 마침 애니메이트가 홍대점 진출을 발표했다), 동인음악이 인디음악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의 오락실을 지탱해 주는 것도 일본에서 수입된 리듬게임이다. 아예 요즘에는 아이돌 문화가 서브컬처를 따라하면서 생명력을 유지할 정도로(단적으로 러브라이브!가 없었다면 현재의 아이돌 지하철 광고 붐도 없었다), 서브컬처는 한국사회에서 때로는 지속적으로 비판받으면서도 가장 국민들 가운데 잠재된 문화자본이 되었다. 

   한국만일까? 미국도 만가-아니메 문화가 너무 많이 퍼져서 그게 미국 만화-SF 흐름와 함께 하나의 대중문화가 되고 있다. 그 정도가 심해서 〈일본미국〉(Kelts, 2006)이라는 책이 나왔을 정도다. 더 나아가 대만은? 중국은? 필리핀은? 태국은? … 넓은 관점에서 보면 그들 모두가 일본 '서브컬처'의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 서브컬처의 변화는 일본이라는 사회만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것일까? 세계화(Globalization) 시대의 전지구를 설명할 수 있는 도구로 자리잡지 않을까? 그렇다면 적군파 사건이니 우경화니 하는 일본의 과거 역사가 사실은 일본발 서브컬처니 팝컬처니 하는 것을 전부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도구가 아니냐는 것이다. 안지원(Ahn, 2002)의 주장대로,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세계적 상황이 [만들어 낸] 문화적 생성물로 여겨질 필요가 있다"(Japanese animation needs to be considered as a cultural product of global conditions, :11).

   그렇기 때문에, 강의록〉이 다루고 있는 기본적인 전제 자체가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 자체를 분리해 놓고 생각하면, 책이 다루고 있는 기본적인 구조와 논리, 그리고 그 논리를 들기 위해 설명하고 있는 사례들은 바람직하고,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살펴보면 일본 '서브컬처'의 흐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 자체가 '서브컬처'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4.  다만 기본적으로 후반부의 내용에는 아쉬움이 든다. 특히 일상계를 에바에서 시작된, 일련의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에 대한 개입, 또는 비판을 시도하는 새로운 일상계 흐름이 있다는 것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여기에 대해서는 [ 〈너의 이름은.〉리뷰 ] 또한 도움이 될 것이다) . 또한 이 책은 일본 아이돌을 '서브컬처'의 영역에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올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아이돌들의 경우에는 우노님도 책에서 단언했듯이 서브컬처의 영역 속에서 다루기는 힘들다고 지적하고 있고, 나로서도 분명하게 서브컬처와 분리되어 있는 대중문화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독자가 명시된 근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과정을 통해, 웹컬처 속에 아이돌 문화를 포함하는 것이 옳다는 오해독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분명하게 일본의 '서브컬처'를 바탕으로 일본 국민들이 일본이라는 국가를 읽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내용을 담은 강의와 책이라는 점은 주지해야 할 것이다.

5. 나는 키안님이  [ 강의록〉을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대체제로 사용하자 ]는 주장에도 동의하고 동감한다. 아즈마의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의 글이나 논문을 통해서도 이미 밝혔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그의 주장 속에 비민주, 비인격적 엘리트주의가 담겨있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아즈마가 〈일반의지 2.0〉에서  동물성을 갖춘채 국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육당하는 사람을 '축제'적 '미래'로 제시한 것은(아즈마 히로키, 2012:254-256) 인류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파괴된 꿈'이라고 말하는 것에도 불쾌감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강의록〉이 그 대체제로 활용되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나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만간 기회가 주어진다면, 웹컬처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내용을 가지고 내가 생각하는 웹컬처론은 무엇인가… 를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책의 논의가 멈추지 않고, 새로운 논의의 시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런 계기를 주신, 대체제를 주신 우노 츠네히로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우노 츠네히로의 작품을 계속 번역해 나가고 있는 워크라이프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참고문헌
아즈마 히로키(2012), 일반의지 2.0, 현실문화.
Ahn, Jiwon(2002), Animated Subjects: On the circulation of Japanese Animation as Global Cultural Products, Spectator, 22(1), pp. 10-22.
Kelts, Roland(2006), Japanamerica, Palgrave Macmillan.


젊은 독자를 위한 서브컬처론 강의록 - 10점
우노 츠네히로 지음, 주재명 외 옮김/워크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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