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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Characters

제20회 PFJ 전국대회 참관기 : "무엇으로 살아 나갈꼬?"


이 글에서 '올해'의 기준은 2014년입니다. 이 글은 2015년도에 완성됐습니다만, 해당 행사가 2014년도 행사였고, 글을 쓰기 시작한 날짜도 2014년인 점을 감안해 글 내의 시점을 이렇게 잡게 됐습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이니셜을 적극 사용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올해' 두번째 일본 여행을 다녀오게 됐다. 물론 돈이 많아서 다녀온 건 아니다. 박사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9월부터 제안을 받고 점차적으로 일본에 갈 준비를 해왔었지만, 중간에 PFJ 대회 등록 및 숙소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갈리게 되어 가는 것을 거의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결국 부모님과 박사님과 이야기가 잘 돼 나는 제주항공과 제트스타를 사용해 오사카를 경유해 오키나와로 향했다.

2.  PFJ 전국대회는 일본에서 손잡은 IJ와 함께 지적인을 포함한 발달인들이 모이는 2대 행사로 꼽힌다. 다만 손잡은 IJ 전국대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손잡은 IJ 전국대회는 부모들이 발달인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 부모들은 부모들 나름대로(부모회), 발달인들은 발달인 나름대로(본인회) 행사를 진행하고, 본인회의 내용의 상당수가 생산적인 내용과 연관이 높다면, PFJ는 부모의 참가는 인정하되 발언권 및 행사 진행은 반드시 발달인 당사자들에게만 한정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PFJ의 참가자 중에는 해당 발달인들의 친족이 아닌 지원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PFJ는 따라서 행사 지원에 있어서 필요한 자원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발달인들과 지역사회의 후원 덕분에 '올해'도 행사가 다행스럽게 진행되었다. 실제로 안내책자의 약 45%가 후원자들의 광고로만 채워졌을 정도다. 이러한 점은 아직 발달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우리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진 시민의식의 발로라는 생각을 해 본다.

3. PFJ 전국대회의 첫날 개회식은 오후 1시였지만,  도착한 11시 30분쯤에 이미 회장에는 사람들이 약 40% 이상 차 있었다. 일단 신청한 점심 도시락과 함께 해당 행사의 참가비용을 내고 나서(총 10500엔이었다. 비싸 ㄷㄷ) 점심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 내용은 천 엔을 낸 것만큼의 가치는 있어 보였다. 그리고 한시간동안 그냥 바깥에 부스도 지켜보면서 기다리기만 했다. 나와 선생님들이 앉은 왼쪽으로는 '대구파' 20여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분들은 아예 일본어 동시 통역이 가능한 분들을 모시고 와서 동시통역기까지 사용해서 실시간 통역과 함께 해당 행사의 발언 내용을 전사할 준비까지 하고 계셨다. 
   1시가 되어 PFJ를 시작할 떄가 되었을 때, 대구쪽에서 나도 한국의 대표로서 앞의 단상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권유가 들어왔다. 일단은 따라가기로 했는데, 나중에 해당 행사에 참여한 다른 현 쪽에서는 한명씩만 피켓을 들고 입장하는 것에 비해, 한국에서만 당사자들이 모두 나서서 입장하는 것에 놀라서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빠지고 나머지 대구쪽 세 명은 모두가 함께 입장해서 들어갔다. '올해'는 그냥 넘어갔다고 하지만, 내년에는 한국 내에서도 대표자를 제대로 정해서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리고 전체 행사 참가자수가 발표되었다. 한국에서는 25명, 전체 참가자는 500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당히 적은 편이라는 반응이었다. 실제로 '작년' 오사카 PFJ 대회에는 약 1100명이 모였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줄어든 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실제로 참가 지자체수가 16개 도도부현에 1국이었으니 할 말 다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그래도 큰 행사라고 현의회 회장이 나와서 축사를 하셨다는 점이다. 인사말 하고 두루마리로 된 인사말 읽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한편 당시 오키나와 현지사는 안나오셨는데, 이건 오나가 당시 후보(현 지사)에 나카이로 당시 지사가 선거전으로 후달리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일듯 하다.
   주요 행사 모든 진행중에는 발언 내용이 PPT로 나왔고, 해당 PPT에는 여지없이 후리가나가 달렸다. 지적인의 특성상 이해를 돕기 위한 방책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PPT 한 장 한 장 마다 빠지지 않고 후리가나가 달린 모습을 보니 철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행사를 진행하는 분은 휠체어를 타고 계신 분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장을 입고 또박또박하게 행사를 진행해 나가는 모습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4. 다음으로 주요 발표가 진행되었다. 일단 치바의 학대사망사건보고, 입소시험 체험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건 사정이 있어 숙소에 다녀와야 해서 못 봤고, 본격적으로 테마 발표내용을 보기 시작한 건 동북대지진 3년간의 생활현황이었다. 후쿠시마 PF 소속인 세 명이 미리 PPT에 있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자신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다소 덤덤히 읽어내려 갔는데, 다행히 이들은 내륙에 살고 있어 큰 피해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입었던 피해를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담담히 서술해갔다. 하지만 3년전 이야기를 지금도 하고 있다는 건 세월호 생존자가 3년전 기억을 떠올리는 발표를 한다는 것과 동일한 정도였을 테니, 그만큼 동북대지진이 일본인들에게 끼친 영향은 아직도 큰 듯 싶었다.
   테마 발표가 하나씩 끝날 때마다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쉬는 시간 사이에는 어김없이 부스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PF홋카이도 쪽의 북방파오분악단北方派五分楽団은 쉬는시간 내내 다양한 곡들을 연주했다. 각자가 만든 아트워크를 파는 분 그룹도 몇 그룹이나 되었고, '카페 타카오'에서는 계속해서 무료로 맛있는 커피를 제공해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Cafe Takao측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으로 발표한 분은 오카지마 미노루岡島実 변호사.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강연한 분이기도 했다. 이분은 오키나와 공생사회조례가 어떤 내용인지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길게 왜 이러한 사회조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오카지마 변호사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물리적 장벽, 제도적 장벽, 마음의 장벽으로 나뉜다고 하면서, 물리적 장벽, '보조자 없는 업무가 가능한 사람만 뽑는' 등의 제도적 장벽은 그나마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정신인 대량 입주 절대 반대' 등으로 일반인 사이에서 깊게 구축된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 내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오카지마 변호사는 포함적(Inclusive) 사회를 위해서 장애를 가진 사람 역시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고, '장애'가 개인의 책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장벽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사회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질문 답변 시간이 있었는데, 발달인들에게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단시간 내에 진행했던 탓인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지원자측의 질문이 주가 되었다. '내년' 주제 발제는 발달인들이 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강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어쨌든 세 개의 행사가 끝나고 교류회를 위해 한 시간 정도 정회. 다시 한번 숙소에 다녀와야 할 필요가 있어서 다녀오니 역시나 이미 교류회가 시작되어 있었다. 일단 6천엔을 내고 들어왔으니 밥부터 먹어야 했다. 역시나 몇개의 적은 메뉴를 반복해서 배치하는 일본식 부페 시스템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음식 질이 높아 만족스러웠고, 각 테이블별로 초밥이 하나 더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점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번에도 테이블 하나에 모였다.
   건배를 하고 먹기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최측에서 미리 준비한 듯한 공연이 시작됐다. 우선 오키나와 민속 음악 공연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조용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공연이 몇 곡 동안 이어졌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사미센과 다양한 악기가 동원돼 점차 흥을 돋구는 노래와 춤이 이어졌다. PFJ 회원들도 처음에는 조용히 음악을 듣다가 시간이 지나갈 수록 음악에 맞추어서 춤을 추는 등 더 높은 호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분들은 자발적인 앵콜요청을 받고 한 곡 더 부르고 나서야 공연을 마치실 수 있었다.
   다음 공연은 곧바로 북방파오분악단이 맡았다. 처음에는 신경쓰지 않았는데 중간에 일본의 유명 곡 '날개를 주세요翼を下さい'가 울려퍼지기 시작해서 양해를 구하고 공연장으로 가니 이미 공연장에는 악단 소속 사람들 이외에도 합쳐서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인파를 비집고 맨 앞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곡이 PF의 노래였다. 나중에 끝나고 나서 참여했던 뒷풀이에서 '한국 PF의 주제가를 이 곡을 번역해서 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상당히 간단하지만 힘찬 곡이다(하지만 번역해 보니 한국 PF의 곡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까지 변명하지는 말자 / 하고 싶던 말 지금 전하고 싶어
마음으로부터 너와 나를 / 동료와 친구로 부를 수 있니?

PF PF PF PF / 아아 1, 2, 3 다! 시작해 보자
PF PF PF PF / 힘을 모아서 아아 1,2, 3 다! 시작해 보자

빼앗긴 권리 누구의 것일까 / 고르고 정해서 살아 나가자
있는 대로의 용기를 내어서 / 나를 위한 자유를 얻자 (노래 전문, 필자 번역)

   자신의 권리를 다시 찾아나가고 싶다는 그들의 주장은 PF의 노래를 통해 재생산되었다.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한국의 공동체 중에 어떤 사람들이 저렇게 아무나 무대애 난입해서 노래를 부르고 난장판을 펼쳐도 용납해주는 공동체가 있었던가? 저런 주장을 노래로 부르는 공동체가 있던가? 난 나갈 자신도 용기도 없었지만, 다음번에는 함께 참여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PFJ의 노래를 언젠간 원어로 외워야겠지.

   5b. 교류회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세가지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하나는 교류회에서 유일하게 밐… 아니 미쿠 코스를 하고 있던 남자분의 이야기다. 이런 동네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계셨다는 게 신기했다. 사진을 찍었더니 허락해주시고, 다른 포즈도 요청했더니 받아주시는 등 이미 옷놀이 활동을 한 흔적이 보였다. 2015년도 일본 피플퍼스트대회에 참가하게 되고, 동호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역시 일본인이 할 일이지 나같은 사람이 할 일은 아닌듯 하다.
   나머지 이야기는 PFJ측 사무국을 맡고 있는 [ 와타나베 ] 선생님을 그 자리에서 마침내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선생님은 나라에 소재한 PFJ 사단법인의 운영지원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돌아와서 찾으면서 알고 보니 이미 나라에 있는 한 시설의 시설장도 맡고 계시는 등 오랫동안 지적인들을 위해 일해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예순 살이 한참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젊게, 정정히 활동하고 계셨다. 어쨌든 같이 모시고 온 박사님과 선생님을 소개하니 곧바로 영어로 대화의 꽃이 피었다. 소개시켜 드리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투명하다고 다 마실 거리가 아니다. 회장 한 쪽에 투명한 음료잔이 늘어서 있어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물인가 하고 들이켰는데 술이어서 곧바로 뱉어내고 행궈내는 일이 있었다.

   6. 교류회가 끝나고 다음 날은 주일. 보통 일본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아침 7시에 기적적으로 감사성찬례를 드린 후(..) 분과회로 향했다. 이번 분과회 세션은 미리 선택한 내용에 따라 해당 분과회의 발표내용을 듣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미리 신청한 PF나라의 '시설을 없애자' 세션으로 갔다. 세션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진행방식은 매우 간단해서, 이미 내가 들어갔을 때는 준비했던 PPT가 거의 끝나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내용은 무엇인가 했더니 시설 재소자와 관리자를 찾아가서 인터뷰 한 결과 '시설의 필요성이 의심된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쪽에서 애초에 배부한 유인물 수가 적어서 취득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결국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 진행된 토론도 발표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였지만, 발달인들은 그 지점에서 계속해서 묻고 답을 듣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더 내용을 듣기가 뭐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분과회로 이동했다. 각각의 분과회마다 특색있는 내용을 갖추고 있었고, 각 분과회의 내용도 제각각이었다. '시설을 없애자' 분과가 약간 열려있는 포럼 분위기였다면, 반대편의 '그룹홈'세션은 그룹홈에 들어가면 발생하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네 개의 소그룹으로 나눠 이야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보드에 기록하고 있었다. 반면 '말과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발달인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실연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2층에서 이루어진 '자신의 역사 기록하기' 분괴회는 체험활동 시간을 진행하고 아예 체험 완수 증명서까지 주기도 했다.
   기본 세션이 주최측이 반드시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소라면, 분과회는 각자의 이야기를 보다 더 조직된 형태로 조직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PF의 진행에 있어서 고려해 볼만하지만, 한국은 주일 문제가 강하니만큼 앞으로 행사를 실제 진행하는데 있어서 도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7.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있어야 할 때다. 마침내 각 분과회를 마치고 사람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재미있게도 이번 폐회식에는 오른쪽 스크린에 속기록 형태로 기록을 해주어 이해가 한결 편했다. 우선 대회의 감상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다양한 감상들이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없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적게 배정해서 몇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는 이번 대회의 슬로건을 제창했다. "자기결정을 지키자!" "학대, 인권침해를 용치 말자!" 등의 슬로건이 제창자에 의해 외쳐질 때마다 사람들은 "지키자! 지키자!" "용서치 말자! 용서치 말자!"로 화답했다.
   다음으로 실행위원장의 기념사, 그리고 '내년도' 행사지 발표가 있었다. 효고현 코베시다. 아무래도 '작년' 오사카 대회에서 사람들이 많이 왔던 것을 감안해서 다시 그쪽 지역 사람들을 많이 끌어오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코베시의 인원들이 행사를 준비하는 것 자체가 큰 난관이겠지만, '내년'에도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실행위원들의 인사로 PFJ 오키나와대회는 마무리됐다. 끝나고 나서는 PFJ-한국참가단의 간담회가 약 두시간 가량, 모니터에 3층이라고 예고되었던 것과는 달리 2층 로비에서 있었고, 재미있는 대화들이 오고 갔다. 저녁에는 한국참가단측 저녁 식사 및 국제거리 유람(?) - 2차 모임을 마지막으로 필자의 PFJ 오키나와 대회 참가는 마무리됐다.

    8. PFJ 오키나와 대회를 보면서 가졌던 몇가지 생각들을 이제 담아볼까 한다.
   첫째로 대부분의 한국인 자폐범주인에게는 여전히 이 행사가 왜 개최되는지 납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적인의 경우 시설이나 그룹홈, 또는 자립생활센터라는 일종의 근거지를 바탕으로 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IJ가 구성되었고, 따라서 시설 조직을 통한 PF 조직화가 용이했으며, 그 결과 현재와 같은 하위문화가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자폐범주인들은 대부분 시설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비교적 부모에 의존하거나 자립된 생활을 요구받고 있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러한 행동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국 발달인법 시행으로 자폐성과 지적이 하나로 묶여 지원을 받는 상황에서, 향후의 차이에 대한 상호 대화가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그 요인 또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PFJ 대회는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바에 대해서 통제하지 않는 모임이었다. 일반 모임에서도 그렇겠다만, 특히 발달인들의 경우 자신들이 지금 당장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게 될 때, 금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행사 진행에 장애가 되지 않을 때, 쉬는 시간에 발달인들이 올라와서 공연을 한다던가 해도 사람들은 그냥 이를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가 아니라 '저래도 된다'는 생각이 국내 발달인 판에서 정착될 수 있을까?
    PFJ대회를 통해, 필자는 한국 발달이라는 복잡한 지형의 땅에 뛰어들어야 하는 역할을 맡을 것을 요청받은 느낌이었다. 이 판은 두개의 이질적인 부족 사이가 있고 언어도 달라서 서로 대화를 해본적도 없다. 우리 부족 사람들은 서로 정신없이 바빠서, 몇몇은 포로로 잡혀 대화할 새도 없다. 그런데 다른 부족쪽에서는 시간 내서 저쪽 부족 행사에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어버린 셈이 되었다. 저쪽은 우리가 그 부족행사에 다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판에서, 무엇으로 살아나갈꼬?


참고문헌

류큐신보(2014), '장애인의 권리 배우는 ~', 2014년 11월 2일. 2015년 1월 31일 확인. http://ryukyushimpo.jp/news/storyid-234013-storytopic-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