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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손을 말하다? - buhl collection, 아름다운, 혹은 저속한 전시


서론

 에 대한 전시란다. 발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얼굴도 아니며, 이란다 - 내가 이 전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 당혹감은 다른 어떤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찍고 있었던 4,5년동안의 작업들이 그 순간 백지화되는 것 같은 느낌에서 오는 것이었다. 물론 해 아래 새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과학계에서도 계속해서 연구한게 먼저 다른 사람이 그 연구를 발표하는 탓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있는 판에,

 그렇다. 나는 그동안 에 대해서 사진을 찍어왔다. 꾸준히 사람들의 얼굴이 없는 을 찍어왔다. 처음 동기는 서울로 향하는 어느 열차 안이었다. 그 당시 동아리의 누나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에 어쩌다 을 찍게 되었고, 그 사진이 첫 동기가 되어 4년동안 을 찍어 왔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도 이어져서, 지금도 갠촬을 나가거나,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으레 을 찍고는 한다. 그렇게 준비해오던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콰당!

 하지만 다녀와보고 나서의 느낌은 생각보다는 다른 것이었다. 내가 기획했던 작업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밀었을 때 최소한 방해는 되지 않겠구나는 안도감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저렇게 에 대하여 접근한 작품들이 많구나는 새로운 깨달음도 얻었다. 그럼 지금부터 어떻게 전시를 다녀왔는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자.

본론

 이 전시의 정식 이름은 'Speaking with hands : the buhl collection'이다. 이 말이 의미하듯이 이 전시는 Henry buhl씨[각주:1]과 관련된 전시물만을 모아 만든 자신의 콜렉션 중 일부를 전시하는 것인데, 그동안 구겐하임이나 모스크바에만 찔끔찔끔 보여주다가 아시아쪽에도 전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중 우리나라 전시는 아시아 쪽 전시중 최초의 전시다 - 라는게 이 전시를 가장 객관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인듯 싶다. 

 하여튼 이 전시는 지난 3월부터 5월 24일까지 계속해서 경복궁역에 있는 대림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전시를 <공연예술문화연구> 수업의 일환으로 수업을 듣는 다른 분들과 함께 참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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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가 이루어지는 대림전시관을 처음 보고 느낀 점은 '작다'였다. 보통 다른 전시관이 많은 크기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대림전시관은 3층의 비교적 작아보이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전시관 창문이 아름답다'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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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뒤쪽으로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일본식 정원도, 그렇다고 해서 한국식도, 서양식도 아닌 어색한 정원에는 벚나무 한 그루와 돌로된 어항 하나 안에 십여마리의 금붕어가 자라고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이 정원은 분명히 건폐율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겠지 - 라면서도, 누구나 들어와서 쉴 수 있게 배려한 이 정원에는 박수를 쳐줘야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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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입구에는 전시물 중 유일하게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품이 있었다. 장 후안(Zhang huan)의 '부처의 가락 #10'이란다. 보통 이런 전시물은 로비에 걸어두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는 하나, 기꺼이 내어준 대림미술관의 호의에 감사하면서, 한 컷을 찍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알게 된 사실. 이 전시는 한 사람의 작품전이 아니구나. 나는 내 작품 프로젝트 같이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일정한 방법을 가지고 만든 작품 전시인줄 알았다. 하지만 이 전시는 엄연히 여러 작가와 작품을 모아 전시한 Collection 전시였던 것이다 -_-;

 전시장 Information에는 아직도 판매하고 있는 도록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가 탐이 나기는 했지만, 다음 방문에 (어짜피 한번 더 방문해야 할 것 같았다) 구매하기로 하고 포기했다. 전시 입장료는 단돈 4천원. 나는 반이 깎이니 2000원에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어쨌든 표를 끊고 올라가는 2층부터 전시가 시작되었다(놀랍게도 검표원 따위는 한명도 없었다. 인포메이션에서 감시가 가능하지만;). 대충 구성을 표시하자면, 2층 오른쪽의 홀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반의 작품을 담고 있었고(그것도 원본으로!), 그리고 중간에는 핸리 불의 구겐하임 전시에 대한 두개의 영상작품이 상영되었고(라지만 한국어 자막이 없었다. 대개 불친절하다), 안쪽 홀에는 주로 유명인사들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홀에는 한 작품이 여러개의 액자로 나뉘어 실려 있다. 전시홀을 나오면 2층 왼쪽에 조각작품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현대적 작품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 층의 전시 구성에는 별다른 기준이 없다. 티나 바니(Tina Barney)와 낸 골딘(Nan Goldin)의 작품 처럼 전시자가 의도한 일부 내용을 제외하고는, '어떤 기준으로 이 작품을 여기다 놓은거지?'라는 질문을 하고 싶을 수준이다. 여러분도 한번 가셔서 이 Chaos적인 전시를 구경하시길.

 하지만 내용상으로 볼 때, 작품들은 몇가지 부류로 정리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 부류와 예제 사진이다.

   1) 만을 다룬 작품

 정말 에 집중해서 찍은 사진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사진이 도록 겉표지에 있는 리처드 아베든, 권투선수 조 루이스...(Richard Avedon, Joe Louis, Prize Fighter..), 1963이다. 이외에도 만을 다룬 작품으로는 멜 보히너, 실제 크기()(Mel Bochner, Actual Size(Hand)), 1968 등이 있다.

   2) 이 하고 있는 행동을 다룬 작품

 이번 전시 유형에서는 가장 많이 전시된 작품인듯 싶다. 이번 전시에서 많이 선전된 작품 중 하나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골무를 낀 (Alfred Stieglitz, hands with Thimble), 1920 이 그 예다. 그 외에도 레베츠비로, 곤도스, 폰도스(Revesz-Biro, Gondos, Fondos), 1930 등의 많은 작품이 많다. 더 많은 작품을 들고 싶지만 그러다간 계속해서 쳐야할 내용이 많아질테니 이제 그만. 참고로 <골무를 낀 >의 경우 생각했던 것보다 사진 크기가 작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3) 사람들의 얼굴과 을 같이 다룬 작품


좌. 로레타 룩스, 빨간 공 1(Loretta Lux, The Red Ball 1), 2000
우. 낸 골딘, 내 거울 속의 조이, 베를린(Nan Goldin, Joey in my Mirror, Berlin), 1992)

 왼쪽 작품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의 사진이고, 오른쪽 작품은 두번째로 전시회에서 가장 끌렸던 사진이다. (첫번째 사진은 맨 마지막에 공개 -) 로레타 룩스의 사진은 해석에 의하면, 행동의 모호성을 통해(어린 아이가 을 펼쳐서 공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을 놓고 공을 떨어뜨리는 것인지), 친근하면서도 어색한 텍스트를 생성해내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고, 낸 골딘의 작품은 솔직히 내가 코스를 좋아해서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는 왜인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전시회에 있는 다른 이 유형의 작품으로는, 낸 골딘 작품옆에 있는 티나 바니, 시계(Tina barney, The Watch), 1985다이안 아버스, 장난감 수류탄을 든 아이(Diane Arbus, Child with a Toy Grenade), 1962, 그리고 대부분의 유명인 사진 등이 있다.

   4) 의 움직임을 나누어 다룬 작품

아네트 르미유, 발산하는 소리(Annette Lemieux, Transmitting Sound), 1984[각주:2]

 의 모습을 각 플레이트당 35개씩 담은 모습이다. 연속적이지는 않지만, 기본 포즈는 일관되되, 세부 포즈는 모두 다른, 다양한 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다. 전시회에 실려져 있는 이러한 형태의 작품으로는, 루이스 이고트, 의 모습, c.1880이드위어드 머이브릿지, 원을 그리는 의 움직임, <동물의 운동> 도판 532번, 1887 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 이외의 이 부류 전시 나머지는 모두가 사진역사 초기의 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사진 작품중에 이런 작품이 지속된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5) 의 이미지를 합성해 다룬 작품


좌. 라즐로 모홀리-나기, 포토그램 (La'szlo' Moholy-Nagy, Photogram), 1925
우. 라즐로 모홀리-나기, 포토그램 (La'szlo' Moholy-Nagy, Photogram), ?

 참고로 오른쪽의 사진은 이번 사진 전시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착오 없기 바란다. 그런 고로, 왼쪽의 사진이 가장 내가 좋아했던 사진이다. 여러가지의 사진 촬영을 합성한 방법이라고 들었는데, 처음 봤을 때,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지?" 하는 경외심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말 대단한 사진이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이 한둘이 아닌 것을 검색을 통해 이제야 알게 되었다. 우의 사진이 바로 그러한 예중 하나다.

 이 외에도 안드레아 구르스키, 메이데이 Ⅱ(Andreas Gursky, May day Ⅱ), 1998, 마크 오스터만, 팁돌리기(Mart Osterman, Turning the tip), 2004 가 이러한 형태의 것들이다. 특히 엘 리시츠키, 오늘날은 가동되고 있다(El Lissitzky, The Current is Switched On), 1932사라 찰스워스, 불의 실험(Sarah Charlesworth, Trial by Fire), 1984[각주:3] 는 강추!

 6) 기타
 

 작품 소개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그 다음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로 하자.

 2시에 맞춰서 전시를 관람한 이유중의 하나는, 3시에 있었던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평일 미술관은 한산했고,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었다. 대충 2층부터 3층까지 이야기를 해주시며 설명해주시는 이야기는 잘 들었으나, 아직 미술 설명 경력이 많지 않았는지, 사진 자체보다는 사진의 배경(사진의 역사, 사진 촬영 배경)에 집중된 편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중 <메이데이 2>가 여기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사진의 가치보다는 사진의 크기 때문에 매겨진 가격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이 끝나고 나서 우리 수업의 목적이 전시 자체보다는 전시 기획 등에 있어서 그에 관해 질문을 했지만, 도슨트는 자기 선의 일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니까 윗선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전시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 따위는 듣지도 못한채, 잠시 더 전시를 둘러보고 전시장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그 사이에 나는 도면을 그렸으며, 집계 결과 전체 작품수는 145개, 세부 작품까지 합치면 158개였다. 안 믿기면 세어보시길 -_-;

결론

 이제 지금까지 이야기한 <Speaking With Hands> 전시에 대하여 몇가지의 결론을 도출해 보자.

 1. 모든 작품이 도록에 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전체 전시 145개중 도록에 수록된 전시는 단지 82개였다.
 2. 모든 전시가 감시에 철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말에 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르네 마그리트 전이나 로버트 카파전 때보다는 감시가 확실히 덜했다. 물론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같이 감시가 거의 없다시피 한 전시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3. 내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내 사진들은 위의 부류중 2)번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내가 찍어온 사진과 앞으로 찍을 사진은 그 사진들과 다르다. 그렇다면 내 프로젝트가 존재할 이유는 분명한 셈이다.
 4. 이 전시회는 두번, 세번 가고 싶은 전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홍보 및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이 전시는 돈을 그리 받지 않고 하는 전시라,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전시측에서는 전시 기간중에 몇가지 이벤트를 추가해 두었다. 첫째는 교육프로그램이라는 제목의 행사들이다. 5월에 있는 수상학 관련 강좌는 내두더라도, '의 초상과 사진', '사람은 자신의 친밀함을 어떻게 전달하는가?'등의 흥미있는 제목으로 사람들을 충분히 끌어당기고 있다. 또한 일반인의 관람이 뜸한 오전 시간에 사전예약을 통한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즈콘서트라는 빅이벤트가 있다. 전시회장 위층에 재즈 콘서트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재즈콘서트를 듣기 위해 일부러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몇가지 점에서는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1. 적극적인 인터넷 마케팅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UCC 공모전의 형태가 어울리지는 않다고 해도, 최근 태터앤미디어나 위드블로그쪽으로 블로그마케팅 수요와 채널이 있는 만큼, 그쪽으로 무료권을 여러장 뿌려서 적은 비용으로 블로그-버즈마케팅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2. Henry Buhl씨에 대해서 PR/보도자료 형태의 홍보를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신문기사로 해서 이분의 스토리가 나온다면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문화란쪽에 기사 쓰려면 돈이 든다면 어쩔 수 없고.

 어쨌든 이로서 말 많은 리뷰를 마친다.


아,

 p.s 두가지 작품을 언급하는 것을 빼먹을 뻔 했다. 사진이 없어 표기를 포기했었던 톰 오터니스, 세명의 악마(Tom Otterness, Three evils), 2002 랑(세번째로 좋아했던 녀석이다), 국내 유일로 이 컬렉션에 포함된 서도호, 바닥(Floor), 1997-2000[각주:4].

 p.s.2 이 아티클의 제목은 다음 글을 참고하며 만들어졌다.

   오하마 : 고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장난처럼 낙서하는 기분으로요. 지금도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 낙서도 자주 하나요?
   오하마 : 글쌔요. 나는 고상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고상하냐 저속하냐 하는 문제에서 항상 저속한 쪽이 많다면 그건 단지 수의 다소를 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하마 선배의 머릿속에서는 '고상'하다는 키워드가 하나의 키워드였던 거야. 인터뷰에서 특별히 고상하다는 말을 다룬 것도 아닌데 부기 좋게 그 말을 깔아뭉갠단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도 오하마 선배 머릿속에 있는 고상하다는 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요네자와 호노부, 봄철 딸기타르트 사건, 노블마인, 2007. pp. 86, 105.)


  1. buhl 하니까 부흘[buc,?]로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나지만, 도록에 의하면 한국어 발음은 불[bul]이다. 그럼 파이아~ 이런건가? [본문으로]
  2. 이 사진에는 1번과 2번 플레이트가 수평으로 전시되어 있지만, 이 전시에서와 도록에서는, 2번이 위에, 1번이 아래에 놓여 전시되고 있다. [본문으로]
  3.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Trial이 Ordeal(시죄)이라는 의미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본문으로]
  4. Floor에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인데, 컬렉션에 추가되고 나서는 누구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좋아진건지, 안타까운건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