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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물었다가는 큰일나려나 - 고 옥한흠 목사님의 소천에 즈음하여



 1. 옥한흠 목사님이 오늘 아침 많은 성도들의 중보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는 제자훈련이라는 한국 교회의 성장동력 하나를 만들어 놓으시고 사랑의 교회를 큰 교회로 만들었던 하나님의 종(Servus Dei)이셨다. 그리고 좋은 목사님들을 양성하셨고 성도들도 양성하셨다. 옥한흠 목사님이 그의 후임인 오정현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오신 하나의 축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그런데 나는 왜 옥한흠 목사님을 왜 지금 불러가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문득 비슷한 나이대이신 하용조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옥한흠목사님보다도 더 건강하지 못하시고,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계시다. 그리고 다른 목사님들은 더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그런데 왜 지금이어야 했을까.

 이 시점에서 내 머리에 잡히는 생각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사랑의교회 재건축이다.

3. 사랑의 교회 재건축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왜 강남에 있는 교회가, 그것보다 더 비싼 검찰 근처의 장소에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를 불러왔고, 사람들은 한 교회 예산의 수십 배, 수백 배를 호가하는 2100억이라는 건축비에 놀랐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그 주위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되어서 움직였다. 그것도 불신자가 아닌 믿는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자들에 의한 반대다. 이 반대에 대해서 사랑의 교회가 보여준 움직임은 달랐다. 입을 막기에 바빴다. 오히려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성도들의 감정을 이용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교회 안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회 직임을 박탈했다. 교회 건축에 대한 반대 의견에 대해 사랑을 보여주기보다는 무정함으로 대응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 : 1~5,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혹시 그 죄에 대해서 값을 물으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옥한흠 목사님을 통해 지금 자신들이 짓기 원하는 건물을 짓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를 원하신다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의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교 교회에 말씀하시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하신 그를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내가 너무 이상한건가?

4. 어쨌든 하나님의 계획을 판단할 수 없다. 다른 이유로 부르셨을 가능성이 90% 이상이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곧바로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라, 그리고 [순종이라는 이유로] 너무 일직선적인 지시와 명령이 이상하게도 환영받는 상황인지라, 더 이상 더 많은 말을 했다가는 나도 그 바람에 휩쓸려 쓸려갈지도 모르니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5. 어쨌든 한번도 옥한흠 목사님을 볼 기회가 없었고, 어떠한 분인지 모르고, 사귀어 본 적도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목사님의 죽음을 마음으로 애도하고 싶다. 그리고 교계를 이끌어오신 하나의 큰 별이 떨어졌다는 것에 대해, 사랑의 교회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모쪼록 하나님의 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인사드릴 기회가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때 즐거운 이야기들을 아주 실컷, 나누기를 원한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물어보려고 하지는 말자. 물었다가는 큰 코 다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