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콘텐츠

예리밴드, 잘 터졌다


   애초부터 슈스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집이 애초부터 가정 분위기상 공중파만 수신하고 있었던지라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었고, 관심사에 없는 내용을 굳이 다른 곳에서 찾아서까지 다운받아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K1이 나왔을 적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주위 사회에서 시청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시청하지 않으면 안될 분위기가 형성되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 모른척 하고 지나가니 신경 안쓰게 되었다. 그리고 허각씨를 낳게 한 K2가 지나갔고,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기저기를 지나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K3도 그냥 지나가나 싶던데, 트위터를 통해 놀라운 소식을 하나 접하게 되었다. 그게 앞으로 '예리밴드 사건'으로 길이 역사에 남게 될[각주:1], 아래의 글이다. 전문은 [ 공식으로 배포된 링크 ]를 참조하자.

탑10의 합숙은 스포방지를 이유로 방송전까지 철저히 비밀스런 장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며 TV시청은 물론(슈스케 포함) 각자의 핸드폰, 노트북, 와이파이가 되는 모든 통신기기는 사용이 엄격히 금지 됩니다...

슈스케 방송내용 포함 세상밖의 모든 소식과 단절된 상태에서 저희는10일차 모CF촬영을 밤새 끝내고 장소를 이동하여 새벽 5경부터 아침 9시까지는 강남의 모 스튜디오에서 해당 CF의 음원 녹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녹음실에서 인터넷으로 저희 소식을 검색해 보다가 저와 멤버들은 경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노력한 만큼 멋지게 방송이 나가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곧 처참한 실망과 좌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40세의 늙은 나이로 다른 경연자들을 윽박지르며 그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인간 말종이 되어있었고 저희 밴드는 울랄라 세션에 붙어 기생하는 거지같은 팀이 되어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다른 사람에 의해 철저히 난도질 당해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상처를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연히, 인터넷으로 자신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더 이상 자신들이 그 피해를 당하지 않겠다고 나선 거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상적인 행동이다. 왜?


   트루먼 쇼Truman show를 생각해보자. 그는 애초부터 태어나서 자라날 때까지 자신이 연기되어 있는 그 세상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의 부모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연기자들이었고, 그는 그의 이미지는 노출되기 위해 존재했다. 그리고 투르먼은 그가 어떻게 보여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러한 사실을 알려지지 않게 되는 것이 그의 삶에 있어서 바깥의 사람들이 설정한 가장 큰 목표였고, 그는 그것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한 지독한 삶을 극복하고 드디어 트루먼 쇼가 그의 탈출에 의해 끝나게 되는 엔딩의 상황에 그 중요성이 있다.

   즉 이미지의 홍수 시대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다루어보려고 노력해보려고, 자신의 이미지가 왜곡된 상황에서 그렇게 되기는 것을 받아들이는(*Accepting-to-be) 정념 상태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앞으로 그가 그 판을 탈출함으로서 발생할 상황을 감수하고서라도 방송사에 의해 주어진 스튜디오 상황을 벗어나기로 했단 것이다. 그리고 예리밴드에게 그 상황이 지금 벌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그들이 맞이한 당연한 귀결이다.

24년간의 제 음악인생이 한 순간에 재활용 조차 불가능한 쓰레기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건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1시간 가량을 눈물을 흘리며 우리 멤버들과 다른 어린 탑10 참가자들의 위로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통신기기 사용을 그토록 엄격하게 금지했나봅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저와 저희 밴드는 아무것도 모른채 오늘도 '악역'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겠지요..

숙소로 복귀한 저희는 더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악역이 필요한 예능방송이라고는 해도 이런 조작을 통해서 한 밴드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권리까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의 말들을 다시 분석해 보면, 그들이 K3의 방송 내용을 보게 되면서 느낀 감정상태는 자신들의 이미지가 '인간 말종', '거지같은 팀', '재활용조차 불가능한 쓰레기'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짐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평가가 결국 온전히 나빠졌다는 것이고, 이러한 감정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K3의 방송에 의해 편집되었고, 사람들에게 거부되도록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사실 한국에서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회 전반에 박힌 외모지상주의, 스펙주의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마저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는 완벽주의, 공동체주의는 이러한 사회적 감성의 상처를 더욱 크게 만들고 결국 예리밴드는 자신의 이미지가 앞으로 방영될 K3에 의해 더 이상 손상되는 것보다, '한 밴드와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방치하는 것보다 더욱 이익이 크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게 그들 입장에서는 가장 현실적인 정답이고, 그들은 다른 Top 10과 같이 그 안에서 '울음의 시간'을 가지고 그 장소를 뛰쳐 나오기로 선택했다.


   문제는 슈퍼스타K라는 시스템 자체다. 슈퍼스타K는 지금까지 수백만명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미지가 자신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숨긴채 우승시 얻을 수 있는 특전이 얼마나 큰지에 대한 미끼로 그들의 이미지를 팔아서 수많은 돈을 벌어왔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 처음에는 스포일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격리하는 것이 분명했고 마땅했지만, 이제는 내부 단속을 위해 - 하나의 연막을 쳐두고, 그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떨어져서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 - 한 쪽에게는 커다란 이익을, 한 쪽에게는 불합리한 이미지 하락을 불러올 - 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이러한 배포가 결국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힐 것을 알면서도 제작진이 아무런 고민 없이 그러한 일을 '저질러 버리'[각주:2]ㄹ 수 있는 데에는 애초부터 슈퍼스타K가 열정노동이라는 한국 사회의 신자본주의의 극단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대한의 고문을 그대로 TV에 옮겨 놓은 것이고,[각주:3] 그 모습을 사람들이 시청하는 것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전반적인 TV 매체 환경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는 데에 있다.

   더 안타까운건 이에 홀라당 넘어간 시청자들이다. 현재 예리밴드 사건을 접한 사람들이 K3 시청자 게시판에서 보인 반응은 세가지다. 첫째로는 예리밴드 사건을 규탄하는 반응. 하나는 예리밴드가 다시 돌아갈 것이다, 또는 돌아와야 한다, 왜 그런 짓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해쳤느냐는 식의 반응. 나머지 하나는 왜 예리밴드가 Top 10에 포함됐느냐는 반응이다.

   이 반응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첫번째 반응은 가장 정상적인 반응이며, 우리 국민들이 가져야 할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K3측은 이러한 반응을 꺼려하면서 이러한 유의 게시물을 지속적으로 삭제하고 있다.

   두번째 반응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박을 하고 싶다. 첫째로는 예리밴드가 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되어야 하느냐는 필요성에 대한 문제이다. 한 사람이 가장 필요하다고 내리는 결정은 그 사람에 의해서 내려지는 결정이 최선의 것일 경우가 있다. 물론 그것이 온전히 옳은지의 여부는 별개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비판을 받는다면, 그 사람의 판단이 옳을 경우가 많다. 둘째로는, 이러한 반응에 이르게 된 이유가 선험된 이미지에 의해 생성된 왜곡된 이미지일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슈퍼스타K의 이미지가 왜곡이 심하다는 점이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밝혀질 사실에 따라 확인된다면, 그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실제로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다음의 게시글은 예리밴드가 부정하고자 한 이미지가 그들의 결정을 비판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리밴드 한승오씨 편집으로 피해보셨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라도 인터넷상에

악플달리면 열받겠지요.. 근데 편집에도 문제는 충분히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없는 내용

만들어 낸거 아니잖아요..최소한  방송 비춰지는 상황에서는 예의나 행동들은 갖추는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한승오씨 말투나 행동하는거 보고 솔직히 인상찌푸리면서 방송시청 했음..

욱하는 성격이신거 같은데 나이40정도 드셨으면 나이에 맞게 행동하셨으면 좋겠네요..

예리밴드 나머지 3명의 여성분들은 먼죄라고 3명인생까지 망치세요.. 전적으로 나이값좀하세요..

(시청자 게시판 1980번, "어이 예리밴드 한승오씨...")

   그러나 가장 무서운 반응은 마지막 반응이다. 예리밴드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예리밴드가 슈퍼스타K 안에서 어떻게 되는지가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일제시대의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감정과 상관 없이, 자신들의 통치에 의해 조선이 개화되고 있다라는 이미지를 심으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가 전 한국에 흘러 넘쳤던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이쪽 분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논의를 하지 않겠다.


   그러면 이번 예리밴드 사건을 슈퍼스타K측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려고 할까? 마침 비슷한 사건이 최근 우리 한국에서 버젓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바로 '트루맛쇼' 말이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지난 5월 방송사들의 맛집소개 프로그램 제작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감독 김재환)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취지에서 “영화에 담긴 허위사실 때문에 공영방송으로서 거대 권력에 맞서 약자를 보호해온 문화방송의 신뢰도가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다.

이에 앞서 문화방송 관계자는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도 “본사와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외부 제작사를 상대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맛집 소개를 빌미로 한 금전적 거래 등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영화를 이대로 상영한다면 대중에게 문화방송은 물론 문화방송의 <찾아라! 맛있는 티브이> 프로그램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가처분신청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성지용)가 지난 5월30일 문화방송의 가처분신청은 이유없다고 기각한데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4일 전체회의를 열어 문화방송과 <찾아라 맛있는 티브이>와 에스비에스의 <생방송 투데이>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의 객관성(14조)을 위배했다며 각각 경고조처를 내렸다. 경고는 방송사 재허가 때 감점요인으로 작용하는 법정제재 조처이다.

이에 따라 문화방송의 무고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공영방송의 도덕적 책임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게 됐다.

한겨례, [ "김재철, ‘트루맛쇼’ 거짓이라고 주장하더니…" ], 2011. 8. 5. (일부 인용)

   트루맛쇼가 나오자 내놓은 방송사들의 행동은 다음과 같았다. 1)그러한 사실이 없었다고 소극적으로 말하기.(KBS와 SBS가 그런 입장을 취했다) 2)트루맛쇼가 나오지 못하게 하기(MBC가 이 부분을 도맡았다) 3) 문제되는 부분을 잠시동안 내려놓기. 그리고 나중에 나아지면 다시 올리기(지금도 실천중이다) 4)꼬리 자르기(트루맛쇼가 지적한 사항을 일부의 문제로 떠넘기기), 그리고 5)트루맛쇼의 행태를 문제삼기(함정보도는 3사만 할수 있는거다는 식으로 트루맛쇼 제작진에게 문제를 떠넘김).

   지금 K3는 1번과 2번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으니 실행하지 못하고, 3번은 프로그램 특성상 할 수 없고, 그래서 4-5번으로 가고 있다. 이미 예리밴드 기사가 뜬 이후에 입장을 통해 '예리밴드가 지적한 사항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예리밴드를 내치려는 준비를 착착 수행하고 있고(물론 신뢰할 수 있는 '원본'이 나올리는 만무하다), 앞으로도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는 실드 치기에 돌입할 것이다. 근데 한 가지만 질문하자. 왜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말은 할 생각이 없는걸까. 그러면 자신들의 입장이 뭐가 되니까? 양심이 있다면 K3 제작진은 국민 앞에 분명히 사과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아직 많으나, 어차피 시간이 지나봐야 더 정확한 글을 쓸 수 있을 테니 이 쯤에서 결론을 정리하자. 예리밴드는 앞으로 슈스케가 터트릴 또 다른 문제들의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예리밴드 이외에도 슈스케의 전반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계속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그 문제를 시청자가 외면하고 그냥 그대로 동조하느냐, 아니면 지켜보느냐의 문제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탈출한 이후에 위험이 닥쳤을 때,
그래서 현실에서 외계인에 투항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외계인에 의해서 지배되는 가상 세계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와 같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중이 절을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리밴드 사건이 터진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p.s 참고로 이 사건으로 수요일까지 세미나에 논문을 쓸 예정입니다. 좋은 논문거리를 마련해주신 K3 제작진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1. 세계 인류 역사까지는 아니더라고 하더라도, 하여튼 한국 문화사에는 반드시 남게 되니 걱정마시라. [본문으로]
  2. "저질러 버렸다, 데헷~☆" [본문으로]
  3. 열정노동의 개념에 대해서는 한윤형 외,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1을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