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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문화 - 상품 - 소비, 그리고 유교


본 글은 ignition님의 아래의 트윗을 보고 제 의견을 적은 것으로서, 내용이 상당히 깁니다. 또한 이 글은 3개월 가량 만에 제대로 쓰는 첫 글로서, 이 글부터는 올포스트에 송고되고 있지 않음 또한 알려드립니다.

대중들이 상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매체의 흐름에 편승해서 '오타쿠' 라는 사회의 일부 문화를 부정적 대상으로 치부하는것과, 소프트웨어든 음악이든 책이든 죄다 불법으로 내려받아 보는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대중의식과는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애정을 가지고 물건에 돈을 써본적도 없고, 무형의 음원은 그저 MP3 라는 컴퓨터상의 파일일뿐이고, 보고서 울고 웃을 수 있는 책은 그저 JPEG의 형태를 지닌 것이기에 이해를 못하는것이리라.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책한권, 음반 한장, 하다못해 게임소프트웨어 하나라도 사보지 않은자가 과연 누구를 욕하려하는가.
막말로 오타쿠 문화가 '더럽고 추잡스러운 행위'라고 한다면, 그러한 오타쿠들로 인해서 돌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들로 인해서 그림그리는 자들이 입에 풀칠하고, 제본소가 활발히 돌아가며, 디스크 정제소가 철야를 하고...

-  @ignitionDK 님 (86789980118192129 이하)

   1. 이 글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내용이 전반적으로 공감이 간다. 아무리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콘텐츠의 희귀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콘텐츠를 다운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그 행동이 분명히 콘텐츠를 그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있어서 필요한 대가지불을 유보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대가지불이 없는 행동은 결국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범법자로 우리가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건 기독교적인 논리에서나, 유교적인 입장에서나, 자본주의적 입장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사람들의 행동을 완벽히 단속할 수 없고, 단속할 경우 국익을 지나치게 해치게 되어 생산 차질이 발생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일단 원칙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이러한 생산을 그나마 실제로 돈을 주면서 구매하는 오타쿠가 사실은 대가지불을 완전히 하지 않는 일반인보다 낫다- 라는 것이 본 트윗들의 주장이고, 그 주장을 실제 검토했을 때도 이는 사실임이 드러날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말이다.

   2. 그러나 단순히 이 글을 간단하게 수긍하고 넘어갈 수 없게 하는 문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주류 문화 바깥의 만화-애니메이션 계 팬들, 또는 마니아들을 단순히 '오타쿠'라고 부르면서, 그러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모든 행동에 (심지어 주류 대중문화 안에 있는 아이돌 팬들에게도, 자조적이든, 아니면 외부 강압적이든 간에) 비정상이라는 인식을 심고 이를 언술과 헤게모니-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무심코'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사회의 대중들, 그리고 둘째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는 유교-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 : 또는 상류층의 이데올로기이다.
   과연 '모든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우리나라-일본의 특이한 현상은 어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일본의 매일 출근에 야근이라는 독특한 회사문화도, 우리나라의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야근 - 회식 현상도, 자신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놀리는 - 그리고 왕따/은따 하는 모습도, 사실은 두 가지 근원에서 그 근원이 유래한다.
   하나는 공동체 안에 있어야 편안하다는 -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부과되는 규칙과 제약들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은 사실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보수-수구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향약이 아닐까. 공동체가 필요하니 사람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향약이 구성되고 이러한 향약 바깥에서 마을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향약이 확장되면서 사실은 유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상 단점인 문제가 여기에서 도래되는데, 바로 그것은 소수 몇몇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다른 사람이 통제를 받는, 독재-또는 과두정 형태이다. 사실 통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평화는 - 모두에 의해 완전히 합의되어 질 때 - 제일 좋다. 하지만 그 결과에서 보듯이 이러한 독재 과두정 형태는 결국 우리 조선을 망쳤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망쳤으며, 지금도 애국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려고 하고 있다.
    둘째로는 이익을 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또는 모더니즘으로 인해 불거진, 목표를 성취하고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이름 하의 비가시적인 폭력이다.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부품처럼 사용당해도 되고, 그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그리고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해도 되며, 이러한 결과로 인해 얻을 긍정적인 결과는 공동체의 후손들 개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이것이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엄청난 영향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폭력에 대한 대안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에서의 탈출을 말하면서 동일한 죄악을 지었고, 역시 서민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덕수용소와 같은 북한의 인민에 대한 분류와 학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죄악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똥이 덜 묻었다고 더 묻은 사람을 비난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를 가장한 한국의 자본주의 중심의 사회 체계는 분명히 수정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오타쿠 문제'의 중심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만화-애니메이션계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유저들 또한 이 두가지 기준에 의해 판단을 당한다. 기존의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과 주장을 하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출판해서 생산하기까지 하니 기존의 사회 문화규범을 파괴하므로 이상하고, 생산을 위하여 소비할 시간을 자신의 취미를 위해 덧없이 사용하고, 재화를 헛된 곳에 사용하니 비생산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사회 규범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 자체가 당연하다.

   3.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뒤집어주는 한가지 명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문화콘텐츠의 발전'이라는 명목이다. 문화콘텐츠의 중심에는 사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영화(중에서 실험적이지 않은 것)를 제외하고는 모두 100% 그 기존의 문화를 뒤집고 흔들어야 성립할 수 있다는 이상한 명제가 성립한다. 요즈음 뜨는 성공한 애니메이션 치고 비생산적이지 않고 소비적이지 않고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성적인 문화콘텐츠는 이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 따라서 감성을 자극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점차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의 논리가 기존의 유교-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에 합산되면서, 미래의 국가 성장을 위해서 비합리적인 소비를 촉진시키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성립된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생산적 기계인간과 소비적 유저라는 쉽게 조화될 수 없는 선상에서 방황하거나 갈등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고민을 갈등시키는 이유중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생산적 기계인간으로서 사람이 살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젊은 세대들이 보고 자라나면서 절대로 '나는 생산적 기계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돈이라는 우리의 '천적'을 제외하면, 소비적 유저가 되기가 더 쉽고 편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지금의 아노미 상태는 사실 과거와 미래의 교차 - 과거의 사람들이 원했던 미래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수용하는 상태일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실 매니아들은 자신들이 소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문화를 즐김으로서 자신들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킴과 함께 그들이 쓰는 소비를 통해 그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본 문화를 소비하기는 하지만  일본에게 돈을 주면서 문화를 소비할 수 없다'는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는 애니메이션 소비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국산 만화나 애니메이션 - 그리고 동인지에 대해서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매니아들의 선택을 일반인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 있으면서도, 앞으로는 쉽게 비판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급한 문화자본의 구축을 위한) 문화 소비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비생산성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현재의 세대가 나이가 높아질 수록 더욱 감소할 것이며, 보다 더 수용적이 될 것이다. 물론 심리적인 장벽이 계속해서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일본에서 보듯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성이 문화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대의 흐름 - 그리고 그에 따라 이루어질 국가의 사상적-사회적 변화 때문에 분명해 보인다.

   4. 문제는 문화 산업-소비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근본성인 소유성, 그리고 박탈성에 있다. 이러한 문화적 소비가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자신이 그 물품을 가져야 한다는 욕망과 함께 희소 물품을 자신이 쟁취해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명품적 마케팅이 있다. 이 명품적 마케팅은 상품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돈을 쓰고서라도 제품을 구매하게 하고, 그 제품을 간발의 차로 구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그러한 구매 능력이 없어서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결국 다른 차선의 것이라도 구하려고 노력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시에 문화 상품이라는 주류이탈적인 문화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소유성에 대한 아이러니 또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러한 문화 산업-소비를 완전히 폐하는 것. 또 하나는 이러한 문화 산업-소비의 공동 소비를 촉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부에서 완전히 문화 산업 소비를 공공재로 전환하거나, 시민의 세금을 재배분해 보조금을 주어 문화산업 소비에 따르는 상대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셋 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적다. 첫번째의 경우는 오히려 금지의 결과가 그러하듯이 음성적인 재소비를 촉진시킬 것이고, 두번째의 경우는 공동의 소유 또는 순환적 사용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할 것이라는 한계, 그리고 이러한 소유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문화 상품 자체의 특성, 그리고 문화 생산 기업의 반항이 움직임을 어렵게 할 것이다. 마지막의 경우는 시민들의 가시적 부담을 줄여주고 합법적인 대가 지불을 통한 문화 소비 확대를 불러일으키며, 기업들도 어느정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동시에 세금이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조삼모사적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문화적 소비에 대한 완벽한 대안은 없다. 그렇다면 차선적 대안이 나와야 할 것인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고, '주류적 시선'과 더불어 문화적 소비를 방해하는 요소는 상존하여 소비자들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결국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리고 다양한 하위문화의 발전은, 이 모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에 달렸다.

LiH 110702. earpile


  • Favicon of https://blog.yuptogun.com BlogIcon 엽토군 2011.07.12 07:52 신고

    전반평: 어린이가 읽으면 요약하지 못해 울상을 짓고, 어른이 읽으면 아는 체하는 글로만 보일 것이다.

    1. 못 읽겠다. 용어의 역사적 윤곽은 전혀 무시되고, 개념이 사용되는 맥락은 중간 과정을 어마어마하게 비약하면서 난삽하게 응용되어 있어 '어느 갤러리에 투척해야 할지' 알 길이 없다. 랄까 그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가 아닐텐데(...)
    2. 요컨대 '섣불리 수긍하기 쉬운 한 주장에 대하여 다른 논조로 제대로 된 지적을 해보겠다는 취지'의 글인데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 다른 논조로 이끌기 위한 세부사항 점검은 무시되고, 기존 주장과 무관해 보이는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사고 전개에만 치중하여 기존 주장의 과부족과 불균형은 해소하지 못한 채 논란의 여지가 가득한 말잔치만 벌어진다.

    본문평: 뭐가 어디로 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인가?

    1. 대가지불을 하는 '오타쿠'가 일반인에게 왜 욕을 먹어야 되느냐는 주장에 간단히 수긍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문화적 취향과 '구별짓기'에 대해 논하게 될 이 글을 보며 독자들은 "취향은 곧 계급이고 자본"이라 말한 부르디외 정도의 논지 전개를 기대하지, 그 이상―향약이라든가 모더니즘이라든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장황한 문제의 확장은 오히려 핵심 사안의 초점을 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본디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제시하자면 "자기 돈 주고 동인지 사서 보는 동인 짓이 왜 욕을 먹느냐면요"가 되는데, 이렇게 읽으면 퍽 간단할 수 있는 사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버린 바람에 불필요한 부분(공산주의와의 차별 운운하는 요덕수용소 부분: 바로 이런 부분이 아는 체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예상되는 논란의 규모에 비해 너무 사소하게 언급되고 지나가는 부분(주류 대중문화 안에 있는 아이돌 팬 부분: 만일 핑클 골수팬이 나타나 취향의 절대값 측정 가부 및 문화현상의 역사적 사명 운운하면 이 글은 그 팬과 어떤 접점을 찾고 토론하는 게 가능하겠는가?)등이 범람한다. 결과는, 그대로 핵심 사안의 파악 실패로 이어진다.
    2. 실제 문제는 빈대인데 문제의식을 초가삼간으로 지어올려 불을 당겼다. 좀더 단순한 수준에서 논하면 딱 좋았을 문제에 대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부과되는 규칙과 제약", "자본주의 또는 모더니즘" 등등을 탓하며 이 문제에 직면한 이들이 "생산적 기계인간과 소비적 유저라는 쉽게 조화될 수 없는 선상에서 방황하거나 갈등"한다는 등의 터무니없이 장황한 표현과 서술 그리고 의견 개진을 하고 있다. 실제적인 이야기로, 이 문제의 핵심 주체들은 그렇게 거창한 문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껏해야 일요일 아침에 교회 안 가고 코믹 마켓인지 뭔지에 왜 가느냐는 말에 변명하기 힘들어하는 정도가 아니겠는가. 물론 이것은 지나친 말이지만, 이렇게 반대 극단을 들이대고 싶어질 만큼 이 글은 사회와 역사, 민족성, 국가정책 등등 너무 거대한 담론들을 오남용하고 있다. 감기 환자에게 수술을 시키는 격이다.
    3. 용어의 의미를 오해하게 할 여지가 충만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아노미' 상태로 단정하였는데, 그 의미하는 바가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규범 실종 상태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앞에서 먼저 말한 바 '오타쿠들'을 옭죈다던 상류층의 유교-모더니즘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우리(와 일본―도대체 이 타이밍에 일본을 굳이 언급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지만)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오타쿠질 해먹기 어렵다는 말 아니었던가? '유교', '모더니즘', '자본주의'의 문제도 그렇다. 글쓴이는 아마도 이런 개념어가 총칭하는 문화사조를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주 실패했다. 내가 읽은 게 맞다면 '유교'는 공동체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와 함께 이윤 추구를 최우선시하는 산업사회적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입때껏 필자가 배운 게 맞다면 모더니즘이란 전통/권위에 반하여 과학/문화에 기반한 자유/평등/개인주의적 세계관을, 자본주의란 경제의 핵심요소가 각종 자본으로 이루어지므로 자본을 중시하자는 경제체제다. 글에서 말하는 것과 내용도 아주 다르고 용어들 간에도 마찰이 크다. '모더니즘'을 '중상주의'로, '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로 바꾸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차라리 유교라는 용어와 어울리게 전근대라고 하면 옳겠다.
    4. 논지 전개의 '구조'도 몹시 불친절하고 엉성하다. 다시 읽어보니 순전히 '오타쿠' 문제뿐 아니라 외도는 사람들 전반이 겪는 일을 해명하려 했던 시도로 보이는데, 그것도 아니고 오타쿠 옹호문도 아니게 됐다. 맨 처음 말한 두 가지 문제 중 하나가 비일반을 비정상으로 부추기는 사회의 대중이라고 했는데 이들을 탓하는 내용은 없다시피하고 과두정이니 막연한 기대감이니 운운하며 상류층의 이데올로기를 이야기하는 데 무려 두 문단을 써 버린다. 그 뒤에 이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주는' '문화콘텐츠의 발전'을 '명목'이라고 말하면서 검토해야 할 제3의 문제인지 주어진 일종의 해결인지 혼란을 주고, '명품적 마케팅'의 문제를 논하는 전혀 부차적 설명이 되지 않는 부차 서술 문단이 이어진 뒤 "주류적 시선과 더불어 문화적 소비를 방해하는 요소는 상존"한다는 전혀 요약의 기능을 못 하는 총론으로 끝맺는다. 나보다 더 학력이 되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믿기가 정말 힘들다. 아마도 졸면서 혹은 충동에 못 이겨 쓴 것으로 생각한다.
    5. 주장 자체도 초보적이며 반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든 주류는 본디 비주류였다는 개념은 지식채널e 몇 편 보다 보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고 그러므로 상식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상한 명제가 성립한다'고 지나치게 새삼스러워한다. 비주류가 주류가 된다는 이상한 명제가 문제가 아니라 그 명제가 실상과 어떻게 연관되거나 문제를 일으키느냐는 등의 확대된 논의가 문제가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비합리적(비합리... 이젠 용어의 오남용과 몰맥락성에 대해 지적하기도 힘겹다) 소비가 진흥되는 원리로 바로 그 '유교-모더니즘' 이데올로기를 지적한다. 일단, 그 지긋지긋한 용어 '시장 논리'와 '권력층의 일방적 방침' 등의 쉬운 말로 전부 다 설명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고 '문화'시장(산업-소비라고 했는데, 소비는 산업의 일종이므로 따로 논하는 것은 이상하다)이 가지고 있는 본성으로서의 소유성과 박탈성을 논하는데, 도대체 이게 어째서 근본적인가?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예컨대 이런 것이어야 한다. 소수문화는 인간의 '좋은 의미로 남들과 달라지고 싶다'는 욕구를 직접 자극하므로 본질적으로 점차 많은 사람에게로 퍼져나가며 하향평준화하고 '대중화'되어 더 이상 소수문화가 되지 못한다는 근본적 딜레마가 있다 그리고 이 때 소수문화를 향유하던 처음의 소수들은 더 '얼터너티브/하드코어'한 것으로 이동하거나 완전히 손을 씻거나 '질 떨어진' 대중문화에 영합하는 세 가지 기본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하는 식으로. 구매 능력이라느니 문화 산업 소비를 공공재로 전환한다느니 하는 형이하학적인 이야기로 결론을 내려는 문단에서 무슨 '근본성' 운운하는가? 근본이란 말을 쓰고 싶었으면 진작 앞에서 철저하게 귀납과 연역을 동반한 심사숙고를 해서 제대로 못박고 넘어갈 때 썼어야지 않겠는가? 아니면, 글쓴이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실천적 논의 따위를 늘어놓으며 그것이 이 모든 사고의 저변에 일종의 전제로 기능한다는 '근본'으로 독해되리라고 기대한 것인가?

    만약 나라면:
    좀더 문제를 노골화해서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도대체 무엇에 이토록 분노해 있는 건가, 맨 처음 느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냐는 질문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언어만 엄정하게 골라서 짧고 굵게 쓰는 뱡향으로 하여, 그야말로 말잔치가 된 이 횡설수설을 대폭 손보고 싶다.



    반말로 써서 죄송합니다. 근데 이렇게 해야 좀 객관에 서겠더라고요. 대단히 실망스럽네요. 그냥 골치 썩을 일 없이 생각나는 대로 가볍게 쭉 쓰신 거 맞죠?

    • Favicon of https://ellif.tistory.com BlogIcon Ellif 2011.07.11 23:04 신고

      1. 우선, 주장에 대한 지적, 또는 분석이 아니라는 점부터 헛짚으셨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결론을 내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고려해야 할 사항을 생각하고 그럼 어떻게 가야 하나? 라는 질문까지 써 놓은 글이다. 이런 수준의 글에 너무 많은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감사하다. 그리고 일단 ‘담론’을 거대담론을 통해 너무 심각하게 살핀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그럼 왜 기호학이 있냐는 질문으로 대답해 주고 싶다. 왜 심층구조 서사구조 표층구조해서 기호를 살피나? 그냥 기호가 이런 거다 정도에서 멈추지. 그걸 깊게 살피지 않아도 되긴 하지만, 그렇게 깊게 살피는 게 당연시되는 학문적 전통에서 생각하고 자라고 있으니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이해해주기 바란다.
      2. 여기에서 기본적으로 까고자 했던 건 [‘오타쿠’의 대가지불이 일반인들의 저작물 공유에 우선하고, 그것만이 오타쿠 문화를 넓힐 수 있다고 보는 시야]였고, 그래서 기본적으로 오타쿠 소비가 일어나는 생산이 어떤식으로 발생하게 되는지를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한국 사회의 문제(2단락)와 엇물려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렇게 글이 틀어진 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애초에 부르디외나 하버마스는 생각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하나도 공부하지 않았고) 또한 그쪽의 논리를 두고 해석하기에는 애초에 하위문화는 그 대상으로 적당하지 않다. 물론 문화연구적 분석이 정공법이지만 그걸 하기에는 짧은 시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취지에 맞지도 않았고 이 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엽토군님의 예상대로 쓰는 시간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잠을 앞에 두고 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3. 다음으로 용어 문제. 나에게서는 모더니즘이 사실상의 비인간주의로 읽힌다. 뒤샹도 그렇고 ‘모던 타임즈’도 그렇고, 그리고 구조주의 또한 이전의 실존주의≒인간주의를 파괴하는 하나의 단초였을 뿐이지, 모더니즘이 인간의 인간성을 살리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했거나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히틀러의 유대인 살인, 스탈린의 대숙청 또한 모더니즘의 극치가 도출된 결과였다. 결국 모더니즘은 그것을 깨자는 6~70년대의 동인과 함께 문화연구와 함께 엇물려(특히 리비스주의 때문에라도) 포스트모더니즘을 도출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이유에는 모더니즘이 초래한 일종의 인간의 ‘부품화’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의 포맷이나 사회주의의 포맷이나를 포함하여 발생한 것이었고.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모더니즘은 20C 초반의 분위기를 밝히는 것이므로 19C 초 전에 일어난 기존의 중상주의라는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고,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21C 초반의 특수 상황으로도 환원시킬 수 없다. 물론 18C 말의 산업혁명 노동자 학대와 현재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점을 통해 모더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를 쓰는게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알맞은 새로운 단어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여기에서 굳이 ‘모더니즘’과 ‘자본주의’를 쓴 이유에는 20C초적인 역사에 대한 고찰이 그 동인이 되었다는 점은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분명히 국내에서는 유교 공동체주의에 의해 이상하게 틀어졌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4. 아노미 상태를 굳이 ‘사회적’ 규범 상태라고 읽기보다 ‘사회적 방향일치’적인 문제로 읽어서 그런 차이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데, 한국과 일본을 엮어서 생각하게 된 동기는 데루오카 이츠코의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을 읽은데 기인한데다 최근 <시사기획 10>에 나온 ‘야근 권하는 사회’ 탓도 있고. 이 두 미디어는 언제 한번 읽어보시는 걸 권한다.
      5. 내가 동인들을 싫어하므로, 따라서 오타쿠 문화의 문화산업에서의 ‘탈퇴’를 외치겠지 오타쿠 문화 산업 강화를 통한 표준문화에서의 인정을 외쳤을 리는 없겠으므로(애초에 카피레프트적인 입장이니까) 저런 글에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입장을 표하는 이유를 모르는 것이겠으리라 생각해본다.
      6. 결론적으로 이 글은 ‘하위문화’(로 정의되는 문화영역) 자체를 깊이 짚어보려고 한 생각이 난 것을 정리해서 펼쳐본 글에 가깝다. 이러한 글을 제대로 쓰려면 글이 3시간만에 끝났겠는가. 고민하면서 교수님들이나 형들이나 다른 누나 동생들하고 이야기하고 밤새우면서 썼겠지. 이런 글을 가지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개인 신상정보까지 털어주시면서 비평이 아닌 ‘공격’을 해주시니 언제나 글을 자세히 읽어주시는 수고에는 감사하지만도서리 솔직히 감정은 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댓글은 반말로 쓴다.

  • Favicon of https://blog.yuptogun.com BlogIcon 엽토군 2011.07.12 08:13 신고

    네 가지를 후회합니다.

    하나는 본격적인 논의를 해보는 분위기를 만들겠답시고 되도 않게 너무 길게 쓴 것을 후회하고, 둘째는 쓸모없이 격한 태도로 나온 것을 후회하고, 셋째는 아무리 그래도 단시간에 썼겠느니 뭐하는 누가 맞니 하는 소리를 굳이 한 것을 후회하고, 넷째는 그래서 이쯤 되면 욕을 먹을 것이 뻔한데도 굳이 그걸 저장해서 올려놓은 것을 후회합니다. 처음엔 '이 정도의 심도가 있는 글에 무플이 웬말이냐' 하는 순박한 의지에서 시작한 것이, 어디서 엄하게 좌담 몇 번 읽고 토론 몇 편 공부한 생색을 내 겠다는 뻘짓으로 탈선한 것이 분명합니다.
    신상 공개의 문제는, 설마 이 정도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을 텐데 문제없으려니 하고 조금 적은 것뿐인데 이게 신상 털기가 되었다 하시면 두말 않고 사죄드립니다. '취침 3시간 전'은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혹시나 하고 짚어본 게 너무 노골적으로 맞아떨어지고 보니 잘한 짓이 아니라는 걸 알겠습니다. 돌이켜 보니 댓글 다는 데 한 시간도 안 들였던 입장에서 할 말이 아니었는데.

    하여간 똑바로 서서 허리 숙이고 고개 숙여서 사과합니다. 제 혀랑 제 생각이랑 제 가방끈이 짧아서 그랬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해는 잘 안 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오타쿠 문화라 부르는 것들은 하위 문화가 아니라 '전위 문화' 혹은 (사회계층과 합치하지는 않을지언정) 소수 문화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는데, 적어도 몇 년 전에 인터넷 어디서 유행하던 것이 오늘에 와서 TV나 서점가에서 공공연해지는 과정을 몇 번 지켜보다 보면 그럽니다. 그걸 하위문화라고 불러 버리면, 영영 상위 문화보다 못하거나 막 나가겠다는 문화요소라는 식으로밖에 논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아랫것' 문화가 어떻게 위로 올라오느냐는 물음도 어렵게 남고요.
    뭐 그밖에도 궁금한 거 많습니다만 (생각해 보니 내가 아직 한창 닥치고 귀동냥할 짬밥인데 나흘 전에는 뭔짓을 한거지...) 앞으로 더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 Favicon of https://ellif.tistory.com BlogIcon Ellif 2011.09.19 11:24 신고

      이제 와서 댓글을 달긴 그렇지만 한마디 더 추가합니다.
      riss.kr 가셔서 '하위문화'로 검색하시면 관련 논문들이 주루륵 나오는데 어떤식으로 쓰이는지 보시고, 사실 90년대 후반부터 있었던 인터넷 팬덤이 하위문화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하위문화로 명명되었고, 나는 그걸 그대로 학문적으로 명명해도 큰 상관이 없겠다 싶으니까 그대로 끌어온거고.

      근데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오타쿠 문화'에 하위문화라는 딱지를 붙이는게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더라고요. 곧 한번 회의를 소집해서 이부분에 대해서 새로운 단어를 정하는게 옳을듯. 오실 생각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