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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소리들

〈옥선 찬송가〉, 투박하지만 힘 있는

 

〈쫓겨나는 이들과 함께하는 현장예배〉(’19.5)

 

옥바라지선교센터(2019), 〈옥선 찬송가〉.

 

1.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옥선 찬송가〉가 왜, 어떻게 생겨났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옥바라지 선교센터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옥바라지 선교센터는 옥바라지 철거 사태 중에 개신교 신학생들에 의해 생겨났다. 예장통합부터 감리회, 성결회까지, 폭이 넓은 스펙트럼의 '선지동산'에 있는 청년들이 2016년 5월,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구본장 여관에서 강제철거를 막기 위해 모였고, 그 때부터 기도회를 드리기 시작하며 모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은 현재도 계속해서 매달 현장예배 등을 드리며, 지금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 궁중족발 사건 ]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의 기도회에서 사용하는 찬송을 발전시기키 위해 그동안 부르던 노래와 함께 새로 창작한 곡들을 모은 찬양이 이번의 옥선 찬송가다.

 

2. 옥선 찬송가가 우선 내용상에서 가지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우선 그동안의 소위 '민중찬양'과의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연속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를 나타내는 방식은 기존의 민중찬양과 단절적이다. 이러한 단절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찬양들이 〈허공〉과 〈승리의 종〉인데, 이 '찬양들'의 가사들은 기존의 민중찬양들이 철저히 복음주의적인 단어만을 사용했던 것들에서 더 나아가, '운동권'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음의 가사가 그렇다.

새노래를 지어서 함께 부르자 구원의 쟁취
멈추지 않고 복음의 길 걸어가자
제왕은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자 올리신다
부한 사람은 빈 손으로 이곳을 떠나 보낸다
힘껏 싸워 온 친구와 함께 누리자 평화의 점거
꿈꿔 왔던 뒤집힌 세상 다가왔다
영원한 문들아 이제 활짝 열려라 고개를 들고
민중의 용사 영광의 왕 들어가신다 - 〈승리의 종〉 2절 중

 

이 찬양을 처음 접한 헌신된 그리스도인은 이런 가사들에 100% 당혹할 것이다. '진리'와 '비진리'가 믹스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노래의 경우 '새 노래로 노래하라'(시 33:3)나 마리아의 노래 일부(눅 1:52-53), '문들아 머리들어라'(시 24:7~) 등의 성경 말씀을 그대로 사용하면서도, 그 사이 사이에 '쟁취'나 '점거', '뒤집힌 세상', '민중의 용사' 등의 '운동권'에서나 쓰일법한 '불경한'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섞여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민중찬양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보다 '투쟁적'인 단어를 '찬양' 속에 넣어 부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변화'의 원인은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민주화와 촛불혁명으로 인한 재민주화를 통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의 범위가 확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독재정권'에 비해, 보다 더 가까이에서 맛보는, 그들이 투쟁들에서 마주친 '권력'과의 관계일 것이다. 이러한 수십년 동안의 변화를 그리스도인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담아낸 새로운 찬양들을 - 우선 내용이 교회 공동체에 끼칠 영향을 차치하고서라도 - 맛볼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일지 모르겠다.

 

3. 그러나 가사의 내용을 넘어서는 찬양 전반적인 내용으로 들어서면 〈옥선 찬송가〉에 내가 내리고 싶은 평가는 달라진다. 우선 〈옥선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이, 제목이 지향하고 있는 '찬송가' - 다시 말해 '회중찬송'과 부합하는지에 대한 지적을 하고 싶다. 다시 말해, 〈옥선 찬송가〉에 담긴 상당수의 찬송들이 다수가 부르기 위한 곡이 아니라, 개인 한 명의 체험을 위해 나누기 위한 것에 좀 더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하나님을 위한 수직적 찬양만을 찬송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 KJVism 등의 근본 침례회 ] 내지 개혁주의 세력의 주장을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곡들이 불리고 싶다면, 일상적인 찬양이나 찬송가와 연결될 수 있는 찬양들이 좀 더 들어갔었으면 하는 바람이 남아 있다(동시에 이것이 ○○○교회 찬양들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둘째로, 전례 송가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다. 전례에 기반한 찬송을 현대에 맞춰서 작곡한다고 했는데 21세기 632장과 같이 제대로 구현이 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아래 부분은 상처가 되실까봐 숨겨놨으니 마음이 약하신 분은 그냥 넘어가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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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키리에 1번은 처음에 들었을 때부터 Kyrie, Christe, Kyrie eleison으로 부르는 것 뿐만이 아니라 [크-리스-테]로 부르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했던 노래다(구체적인 대안은 [ 여기 ] 에 올려놨다). 이쪽 부분에서 내가 예배 찬송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찬양은 〈키리에〉 3번, 〈알렐루야〉 2번, 〈성찬〉 1번 정도 인것 같다. 참고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경우에는 원래 의미를 담은 가사 또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옥선 찬송가〉가 가지고 있는 그 투박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특히 〈옥선 찬송가〉가 옥바라지 선교센터라는 지난 3년의 '예배공동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던 찬양이라는 점이 던지는 점은 한국교회 찬양운동에 끼치는 바가 적지 않다. 최근 한국의 찬양사역들이 십자가 이론에 몰입해 극도로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극우화된 교단들 눈치에 주제도, 쓸 수 있는 범위도 제한 된 채 '그 찬양이 그 찬양' 같은, 표현만 다른 새 찬양들만 쏟아져 나오는 추세다.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온 이 새로운 노래들은, 늘 언급되되, 실현되기는 힘들던 신앙적 야성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아울러 옥바라지 선교센터 홈페이지에 올라온 [ 김영명 목사님의 '편집 후기' ] 에서와 같이, 이 찬양들이 그동안 우리 고백에 포함되었어야 했으나, 쉬이 입에 오르기 힘들던 '흩어져 있는 찬양'들의 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미 하나님께서 옥선이나 ○○○교회를 포함해 새로운 찬양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찬양들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에 맞닿아 있을 터이다. 더 나아가, 그런 찬양들을 통해 한국교회가 마주쳐야 할 미래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이 끊이지 않기를 소망한다.

 

5. 아울러, '포크송 가수 황푸하'의 팬들도 이 '앨범'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190509 완료)

 

[ 옥선 찬송가 듣기/다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