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4 18:35

〈너의 이름은.〉 - 가만히 있기를 거부함으로, 세카이계를 떠나다 ②

(ⓒ2016 『君の名は。』製作委員会)


오픈 엔딩, 그리고 재생산

다음으로 신경쓰이는 부분은 한국에서 진행한 GV에서 '엔딩에 대해 pixiv를 참조하라'고 발언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발언이다. 마침 [ 해당 메가토크를 촬영한 영상 ]이 있으니, 공식적으로 발언을 인용하고자 한다.

Q. (38:06) 어, 정말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제가 그, 개봉날 국내 인사에 있었던 그 영화, 그 때 봤었는데요, 사실 그 날 봤을 때 아무 마음의 준비[가] 없어서, 딱 보고나서 대개 해피엔딩이 있지만, 뭔가 마음이 대개 씁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봤을 때, 마음의 준비가 있어서, 그 해피엔딩[이] 조금 더, 조금 더 해피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전에 그 무대인사하셨을 때, 그 아마도 나중에 3년 후에 다른 작품 하실 때, 어 '미츠하[하]고 타키, 어 한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울먹거리며) 제가 정말 그 지금, 대개, 그 두 사람의 미래가 너무 궁금해서, 조금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 지 … 감사하겠습니다.

A. (39:01) いや、そうですね。 二人の未来は、その、日本の同人誌、とか書いて******ますね。(관객 웃음) (同人誌とですね、二次ソースで,その、ファンが書いて*みたく漫画です。) あの、pixivでいう、サイトがありますね、pixiv。 その日本のサイトなんですけど、pixivに行けば、その漫画を*楽しめます。(폭소) あの、『君の名は。』のラストシーンで、二人が普通の本当***,普通の男性と女性として出会ったシーンなんです。 え、超能力もないし。え、お互いのこと、なんとなく知っている気がするけど、でも初対面のはわけですね。ですから、一回では、あれは、みなさん自身のわけです。あそこから先を見ていたたき、観客の方々が其々の物語りだと思います。あの、ですのでね。あの、面倒くさいんじゃないんですけれど、(웃음) みなさんが其々にイメージじていたたけば、と思います。

이야, 그렇네요. 두 사람의 미래는, 그, 일본어 동인지 등에 써져 **** 있습니다. (동인지라는 건, 이차 소스로 팬들이 그려서 보여주는 만화입니다.) 그, 픽시브라고 하는, 사이트가 있어요, 픽시브. 그런 일본 사이트가 있습니다만, 픽시브에 가면 그런 만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 
〈너의 이름은.〉의 마지막 신에서, 두 사람은 평범한 ***, 평범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만났다는 [상황의] 신입니다. 초능력도 없고요. 서로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알고 있는 느낌이 들지만, 그렇지만 첫 대면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역할입니다. 저쪽(pixiv)에서 먼저 본 것이고요, 관객 여러분들이 각자의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찮은 것은 아니긴 합니다만, 여러분들이 각각의 이미지를 만들어주셨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과 답변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의외로 생각보다 깊다. 그냥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여기서 질의자와 답변자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입장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질의자는 이 질문에서 신카이 마코토를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에 대한 유일한 권한을 소유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질의자는 신카이 감독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드러내줌으로서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감성적으로 해소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신카이 감독은 그 권한을 갑작스럽게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넘긴다. 여기까지는 일단 괜찮아 보인다. '이야기 이후의 해석은 관객의 자유입니다'라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를 요청하는 것은 다른 창작자들도 종종 보이는 행동이다. 그러나 신카이 감독이 픽시브를 지정하는 상황에서부터 기존의 관행은 완전히 깨진다.

   이 대화에서 신카이 감독이 지정한 pixiv는 다양한 동인 창작 사이트 중에서 가장 생각하기 쉬운 대표명사 역할을 한다. 그리고 동인이나 코스어 등의 만화-애니메이션 동호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텍스트를 깨뜨리고, 텍스트의 벽에서 캐릭터를 구해와 자신이 가진 미디어를 통해 새롭게 배치하는데 익숙한 사람들, 다시 말해 디지털 리터러시에 능숙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신카이 감독은 이렇게 선언하는 셈이다. "이제 이 이야기의 전개를 그들에게 맡길 수 있다. 그들이 만들어주는 각각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세계관을 넓게 만들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현상은, 저작물의 해체다. 즉 다시 말해 상상을 통해 생겨나는 새로운 이미지는 기존 이미지가 구축해 온 동일적인 세계관을 파괴해 나간다. 기존의 의미가 새로운 의미와 결합하면서 기존 텍스트가 전혀 의도한 적이 없던 부수효과(side effect)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의 창작물을 보도록 하자.

    이 그림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너의 이름은.〉의 미래를 상상한 그림이긴 하다. 그러나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함축은 신카이 감독이 구축해온 〈너의 이름은.〉 세계관과 차이가 많다. 우선 미츠하와 동생 요츠바는 한국어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 미츠하와 요츠바는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으며, ○스타그램에 한국식 태그를 능숙하게 붙이기도 한다. 당연히 세계관과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 스트로베리 블라썸 푸라푸치노는 정확하게 한국 스타벅스를 시점으로 2016년에 도입된 것으로, 일본 내 정식 명칭은 '사쿠라 블라썸 & 스트로베리 프라푸치노'다. 일단 오리지널 기간 상으로는 시점이 맞기는 하다. 그러나 세계관 상으로 해당 시점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우선 그림의 내재된 이야기를 통해 판단해 볼 때, 이 창작물에서 암시하는 (아마도 타키와의) 재회가 이뤄지는 것은 2021년의 시점이다. 해당 시점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엄밀히 말해 2021년 일본 스타벅스 사쿠라 프로모션 기간에 해당 프라푸치노가 발매될 지 알 수 없다. 더군다나 이 그림을 창작한 창작자가 만든 재생산물들과 같이 놓고 판단하면 사정이 더 복잡해진다. 해당 창작자는 해당 인스타그램이 미츠하가 아직 고등학생으로 있던 2013년에 토쿄에서 해당 사진을 저작한 것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미츠하는 작품 속에서 2013년경 타키와 스쳐 만난적이 있을 뿐, 구체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만난 사실은 없다. 결국 이 재생산된 그림은 〈너의 이름은.〉의 세계관과 들어맞지 않거나, 세계관을 파괴하는 작품에 속한다.

   이외에도 그림러들에 의해 생산된 다양한 〈너의 이름은.〉의 재생산물들이 신카이 감독이 언급한 픽시브 이외의 다양한 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그런데 해당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에는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 대화하는 것을 통해 이토모리 유성 사건 이후 벌어진 일을 깨닫고 다시 기억을 되찾는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들이 꽤 많다. 즉 타키와 미츠하가 첫 대면일 뿐이고,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되찾을 가능성이 적다고 암시하는 신카이 감독의 해석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해석이다.

   그런데 신카이 감독은 이러한 시도들을 긍정한다. 자신이 미래를 정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찾고 탐색할 것을 권한다. 저자는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신카이 감독이 소위 디지털 리터러시를 포함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재해석,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작품의 세계관이나 저작권 질서를 벗어난 2차창작 또한 긍정가능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동인 전통, 즉 작품 바깥의 이야기를 만화나 글, 코스프레 연기 등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콘텐츠 수용자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일본은 최근 TPP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저작권 규정을 도입하는데 동의하면서도, 동인지 등의 2차창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 단속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치를 취하게 됐다. 물론 현재 동인지와 코스옷 시장 규모가 한 해에 1300억 엔이 넘고 있는(야노경제연구소, 2017) 문화 시장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재생산 문화 또한 문화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활동이고, 이 또한 일본의 국부 증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신카이 감독은 자신의 창작이 완료된 이후 자신을 다른 해석자와 다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바르트가 이야기하듯이 '저자의 죽음'이나 창작자의 무기력함을 의미하는 행동은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해서, 그는 그가 마친 이야기를 굳이 이어가려고 하지 않고, 끝난 이야기는 끝난 이야기대로 관객의 보다 더 적극적인 해석에 맡기고, 자신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나간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든 작가를 쥐어짜서라도 이야기를 늘리는 일본 만가-라노베-아니메 업계의 통상적인 전법은 쓸모가 없어진다. 이것이 신카이 감독이 아니메계에서 스튜디오 지브리의 후예로 오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물론 두 창작자 사이에 직접적인 연계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설명이다). 

  정리해보자. 신카이 감독은 오픈 엔딩을 만들고 관객들에게 재생산을 권장한다. 그가 저작권자의 입장이 아닌 창작자의 입장 속에 강하게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던 간에, 〈너의 이름은.〉을 통한 신카이 감독의 인식은 일본 저작권 산업 관계자의 입장 변화 또한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일본 저작권 관계자, 특히 회사들의 2차저작권 인식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으며, 자유로운 사용자의 재생산을 막는 쪽에 치중해 있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시점으로 일본의 문화콘텐츠 회사들도 인식개선을 통해 2차창작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기를 기대해 본다.

정리 : 신카이 감독이 세카이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너의 이름은.〉에서 신카이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세카이계와의 분리를 확실히 선언했다고 볼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고, 이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해보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세카이계에 대해 정리한 〈세카이계란 무엇인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마에지마(2016:115)는 세카이계를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을 받아 1990년대 후반부터 제로연대에 만들어진, … 오타쿠 문화와 친화성이 높은 요소나 장르 코드를 작품 내에 도입한, 젊은이(특히 남성)의 자의식을 묘사한 작품군'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니시오 이신의 작품이나 최종병기 그녀〈너의 목소리〉가 해당 계열의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관점들을 비판해 나가며 마에지마씨는 어떻게 세카이계라는 '하나의 거대한 유령'이 일본 아니메계 전체를 뒤집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해 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신카이 감독의 처녀작인 〈너의 목소리〉가 세카이계의 주요 작품으로 인지되는 데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어쨌던 이러한 분석 틀을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지적이 있다. 첫째로 에바 이후 세카이계의 형성과정에 대한 언급이다. 마에지마는 에반게리온 이후의 아니메, 더 나아가 아니메 수용자층으로 여겨졌던 '오타쿠'의 변화가 코베 대지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마에지마는 1994년 당시를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으로] …대도시가 괴멸적으로 파괴되었고, 토쿄가 큰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그 날이나 그 다음 날에도 일상은 계속되었다.'고 회상하면서, 설명하고 있던 최종병기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정치적, 군사적 리얼리티를 완전히 배제함으로서 오히려 10대, 20대가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획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ibid.,:76). 즉 비현실과 현실이 공존하던 한신 아와지 대지진 당시의 사회를 1년 후 에바가 포착해 애니메이션 형태로 내보내 당시 일본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의 자아적 문제와 공명하면서 사회적 기반을 바탕으로 히트를 치는 데 성공했고(Ibid.,:79), 이후 그 포착의 결과가 다른 작품들로 퍼져나갔다는 설명이다.

   둘째로 사실 이 당시 전개되고 있던 남성향의 주요 장르인 '모에'와 '세카이계'가 사실은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ibid.,:101-102). 여기에서 마에지마는 1994년 대변혁과 에바 이후로 '애니메이션 이야기 바깥'에 몰입해 있던 과거의 오타쿠들과 달리, '작품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당기'는(ibid.,) 다시 말해, 콘텐츠 속으로 들어가 콘텐츠의 등장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대한 흐름이 생겼다는 점을 상기한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동떨어지는 경험을 그 당시의 사람들이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을 어떻게라도 이겨나가고 있었고, 그 중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작품의 서사를 통해 현실을 이겨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가 〈너의 이름은.〉을 만들게 된 동기는 세카이계에서 만연하고 있던 자의식적인 서술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신카이 마코토가 한국에서 했던 또다른 발언을 재조명하고 싶다.

(11:46)今回の映画は、 その日本の東宝と、大きな映画会社と一生にあったので、「商業的な要請からハッピーエンド作なさった」んじゃないか、という心配されることがありますね。あの、でも、実際はそうではないんです。あの脚本は何度も何度も書き直して生きましたが、そこに悲しいエンディングは一度もありませんでした。そうですね。2011年に日本で大きな地震が起きた、ですね。あの時から、日本社会、僕を含めて、あの日本人は少し変わってしまったと思います。東京を含めて、え、自分の街が、もしかしたら明日、いつか、なくなっ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そういう気持ちを常に、その気持が常に、心の中にあり得るなったんですね。そういう時に、映画を作るのであれば、そのときに映画を見てもらうものであれば、諦めずに、何かを諦める、何かをお消える話がなくて、いつまでも諦めずに、何かを元に戻す、強く、生きることをつかむような映画が必要なんじゃないかと思いました。(13:21)

이번 영화에는, 일본의 토-호-라고, 큰 영화회사와 함께 한 것이어서, '상업적으로 요구를 받아 해피엔딩을 만들게 됐다'는 것은 아닐까, 라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네요. 그래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각본은 여러 번 계속해서 다시 쓰여져 왔습니다만, 그 [변화과정]에 슬픈 엔딩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렇네요. 2011년에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네요. 그 때부터, 일본사회[와] -저를 포함한- 일본인은 조금씩 변할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포함해, 자신의 마을이, 어쩌면 내일, 언제라도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 항상, 마음 속에 남게 됐다는 것이네요. 이런 때에,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이런 때에 영화를 봐주신다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포기하[거나], 무엇인가를 지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포기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원래대로 돌려서, 강하게, 살아나가는 것을 감싸나가는 듯한 영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위의 서술, 그리고 세월호 관련 서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신카이 감독이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붙잡은 것은 동일본 대지진과 세월호 참사라는, 있을 수는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참사였다. 다시 말해,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두려운 현실에 대한 공감과 대처의지를, 그리고 세월호에서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에 대한 도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편, 앞서 마에지마씨가 세카이계의 형성에 코-베 대지진이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서술한 바 있다. 그런데 코-베 대지진의 충격이 그것을 겪은 일본 국민들의 내면을 담고, 그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작품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면,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면서 피해를 겪은 일본인들이 내면 세계 바깥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교감하는 결과를 일으켰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다시 말해 코-베 대지진의 충격으로 세카이계가 시작됐다면, 동일본대지진의 충격은 세카이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도들을 불러일으켰다고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신카이 감독이 밝힌 동일본대지진에 의한 관점의 변경은, 사실은 세카이계라는 세계관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찾아나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 또한 가져볼 수 있다. 초기작으로 호평을 받은 〈너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빠져 있지 않고 등장하는 장소가 바로 정부기관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이 남성향 SF계 아니메에서 포괄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기도 하다. 지브리라는 가시적인 반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일본의 남성향 아니메는 오랫동안 정부와 군이라는 '나와 먼 곳'에 대한 이야기를 펴내며 정부에 대한 환상이나 비판을 담아왔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 기관 자체는 보통의 '내'가 접근할 수 없는, '나'와 멀리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신카이 감독은 정부 기관이라는 것에서 눈을 돌려 일상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을 시점으로 신카이 마코토의 시선은 지방정부라는, '내'가 접근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존재로 초점이 옮겨진다. 다시 말해, 지방정부가 나의 삶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대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두 가지 관점을 같이 종합해 보면, 신카이 감독의 작품들은 멀리 있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곳으로 초점이 옮겨왔다고 볼 수 있다. 시선이 멀리 있기에 보지 못하는 주변의 사례가 시간이 지나옴에 따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로 변화한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중앙의 계서적(hierarchic) 움직임에서 내가 닿을 수 있는 로컬리티의 움직임 속으로. 이런 변화가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신카이 감독이 2000년대 이후 형성된 치유계-일상계 애니메이션의 흐름과 접촉, 집중하면서 자신의 서사에 변화를 일으켰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 같다(물론 개인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으므로 가설에 불과하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근본에 위험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이 영화의 메인 이벤트가 되고 있는 운성충돌이라는 재앙은 동일본 대지진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라는 재앙의 변주에 가깝다.신카이 감독이 위에서 말했듯이, 언제라도 생명을 잃는 자연재해가 나타날 수 있고, 그 자연재해의 적절한 대처가 국가(세월호)와 자본(토쿄전력)에 의해 저지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이러한 심리적인 변화에 근본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 자체는 세계관의 변화의 방아쇠가 되었을 뿐, 그 변화의 명확한 동력인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결론 :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야기를 맺을 때가 왔다. 지금까지 〈너의 이름은.〉을 명확하게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여러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분석해 봤다. 이외에도 〈너의 이름은.〉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 방법론이 있고, 실제로 해당 방법론들을 사용해 적용한 연구들이 2017년 한해 국내에서 다수 발표 된 바가 있다(전윤경, 2017; 양원석 외, 2017 등). 그러나 〈너의 이름은.〉를 기존의 세카이계 논의틀로 읽을 수 없으며, 오히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감독의 의 탈세카이계 움직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를 영화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너의 이름은.〉은 그동안의 애니메이션이 현실과 떨어져 수용자를 작품 안으로 파고들도록 만들어온 현상을 벗어나고자 한 일상계 아니메와 콘텐츠관광이라는 영향을 받아들인, 현실을 반영하는 애니메이션이자, 현실참여적인 의사를 나타낸 작품이다. 물론 이러한 의사의 표현에는 일본 정부나 제작자 등의 다양한 권력을 통한 간섭이 있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간섭을 잘 묶어내 제작자가 여러 통로를 통해 현실반영적 의견을 나타낼 수 있을 정도로 수용자, 미디어 환경이 변해준 것이 〈너의 이름은.〉의 성공 비결이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해 본다.

   아울러 한국사회가 〈너의 이름은.〉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인 이유도 한국사회가 신카이 감독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너의 이름은.〉이 2017년 촛불혁명 시기에 굳이 한국 사회에서 30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히트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기에 〈너의 이름은.〉의 성공은 단순한 '히트'가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바라고 있던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것에서 가능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피조물의 해방을 바라는(롬 8:21) 갈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계 22:20) (170203 시작, 180214 완료)


참고문헌
마에지마 사토시(2016), 세카이계란 무엇인가 - 에반게리온 이후 오타쿠문화의 역사, 워크라이프. 원전: 前島賢(2014), セカイ系とは何か, 星海社.
윤민석(2016), 이게 나라냐ㅅㅂ. 디지탈레코드, 2016. 11. 24. 
이케가미 아키라(2001), 일본어를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디자인하우스. 원전: 池上彰(2000), 日本語の'大疑問', 講談社.
야노경제연구소(2017), '오타쿠' 시장에 관한 조사를 실시(2017년), 2017. 12. 15. 
양원석, 권희주(2017), 신카이 마코토의 ‘세카이계' 연구 『너의 이름은』을 중심으로, 일본연구(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28호. p. 238-258.
전윤경(2017), 질 들뢰즈의 ‘되기’의 사유로 본 <너의 이름은> -‘몸 바꾸기’의 의미를 중심으로-, 문화콘텐츠연구(건국대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11호. p. 7-44.


Trackback : 0 Comment : 0
2018.01.29 03:17

〈너의 이름은.〉 - 가만히 있기를 거부함으로, 세카이계를 떠나다 ①


(ⓒ2016 『君の名は。』製作委員会)


국내 일본 아니메 상영기록 경신. 예스24 주간 베스트셀러 1위 차지. 최근 몇년 동안 상영된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성적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끼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며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 영화의 내부적인 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다른 관객들과 달리, 영화를 보면서 인상에 남은 두가지 점이 있었다. 첫째로, 〈너의 이름은.〉과 가장 비슷한 엔딩이 나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둘째로 엔딩 크레딧에서 유난히도 크게 표시된 일본 문부과학성 예술문화진흥기금 마크. 이외에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한국에서 '엔딩에 대해서는 pixiv에서 찾아보라'고 한 말 또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를 소재로 지금부터의 이야기를 풀어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일러의 존재를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으므로, 이 글에서는 영화 안이나 다른 작품에서의 이야기를 직접 언급하고 있음에 유의하기 바란다. 

<운명에의 거부> -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

   첫째로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세계를 멸망하고자 하는 스즈미야 하루히의 움직임을 쿈이 막음으로서 현실을 존속시킨다는 애니메이션 엔딩은, 〈너의 이름은.〉과 참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극중에서 일어난 움직임은 다르다. 쿈의 '구원'은 철저히 다른 사람들에 의한 도움을 받아서 이루어진다. 미래에서 온 미쿠루가 힌트를 주고, 유키가 접속해서 상기시켜줘서야 쿈은 스즈미야 하루히에 의한 세계파괴라는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는 그러한 찾기가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타키는 이토모리가 사라져 미츠하가 사라진 '1차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 이토모리를 연구하고, 미츠하의 모습으로 있을 때 방문했던 '저승'으로 이동해 다시 미츠하가 되어 현실을 바꾸는, 과거로의 자격시련을 차례차례로 통과한다. 행동자의 적극성이 부여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토모리(糸森)에 대형 유성이 충돌하고, 그 와중에 더 많은 분들이 희생될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더 많은 분들이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유성이 떨어지지 않는 지점인 이토모리고등학교로 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츠하와 친구들이 일으킨 사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위치한 일련의 변전소 폭파를 통한 '저항'이다. 미츠하는 이를 통해 미래에서의 요청에 응답하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타츠키와 미츠하라는 관계를 대가로 치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전소 폭파와 가짜 방송 그 자체는 범죄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달리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미츠하의 아버지인 정장과 정의 직원들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이러한 범죄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미츠하 패거리를 한 명씩 한 명씩 잡아간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토모리의 주민들이 살아나는가, 살아나지 않는가'를 생각하면 이들의 '작은' 범죄행위는 오히려 큰 재앙을 막기 위한 구출활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미츠하는 저항하고,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했기기에 마을을 살렸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친것 같아 보이더라도 저항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을, 신카이 감독은 아마 그런 사실을 거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참고할만한 언급이 있다. 신카이 감독은 그의 2차 방한 중 이뤄진 SBS 나이트라인(SBS, 2017)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세월호와의 연계성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2014년, 마침 그 영화를 만들고 있을 때, 제가 크게 인상을 받았던 것이, 세월호 사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때에, 제가, 그 보도를 보고,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 침몰하는 배 안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 장소에서, 대기해 주세요"라는 안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아팠네요. '그 방송을 듣고 그 앞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있었다, 실제다'라는 것이어서, '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만 걸까'라고 [반응했습니다]. 역시 그 일은, 그렇게 될수 밖에 없었다고 제 안에서 남아 있어서… (저자 번역)

韓国といえば、2014年、ちょうどこの映画を作っているときに、僕がすごく印象ーに残っているのは、セウォル号の事故があったと思うんですね。あのときに、僕が、あの報道見ていって、とっても大きいなショックを受けているのは、沈む船の中で、『動かずにその場で、待機してぐださい』というアナウンスがあったと聞いたんですね。それが、とっても痛ましいこと、だしい、「その放送聞いてその前にとどまった人たちがいった、実際だ」ということなので、「え、どうしてこのことが起きてしまうんだろう」と、あの、やっぱりそのことは、そのできことはずと自分の中で残っていって…

(ⓒ2017 SBS)


   많은 분들이 아시겠다시피, 세월호 참사는 촛불혁명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정부의 정책을 인지하는 방식을 뒤흔들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가장 이슈가 되었던 키워드가 '가만히 있으라'다. '가만히 있으라'는 분명히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도 정부나 권력자가 명령했을 때 그것을 지키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손해가 올 수 있다는, 오래된 두려움을 구체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건 이후 용혜원씨에 의해 '가만히 있으라' 행진이 발생한 것이나, 신카이 감독이 이코모리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을 담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들에 의해 부당하게 살해된 세월호에서 희생된 304명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이 작품은 한국의 지난 몇년동안 '혼이 비정상'이었던 역사와, 그리고 그 역사를 바꿔낸 저항과 맞물려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과연 저항은 어디까지 합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활동까지 처벌하는 법률은 항상 올바르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우리는(그리고 최소한 나는) 한비자의 법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법률로 정해진 일이더라도 법률이 잘못됐다면 저항해 해당 법률을 폐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덕과 사상들을 읽으며 롤스가 이야기한 기회의 균형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로크의 저항권에 동감을 느낀다.

   우리는 국사를 읽으면서도 분노를 느낀다. 임진왜란 이후 세법이 흐트러지면서 나타난 결과인 무거운 세금은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고, 수많은 양민이 고통받았지만 교정된 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학 혁명에 대해, 아암도 소작항쟁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4·19 / 5·18 민주항쟁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리고 그 저항의 결과물 중 하나로서 나타난 것이 이번 촛불혁명이다. 신카이 감독의 이번 작품이 한국에서 큰 영향을 불러일으킨 동력에는, 이러한 저항에 대한 정당성을 이 영화가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나라냐〉에 맞춰 추운 한겨울에 광화문 길을 걸었던 우리의 기억은, 〈너의 이름은.〉과 함께 조화돼 그 당시 일어나고 있던 카이로스적 변화를 순응하고 긍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과 일본 법률 체계는 선의의 의도를 가지고 있고, 자신을 지켜야 해 어떤 행동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타이트한 법률의 조항을 위반했다면 그 사람을 교도소에 들어가도록 만든다. 실제로 엔딩에서 미츠하가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는 일은 제대로 따져보면 현대 일본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을법한 일이다. 일본의 정상적 시스템 아래서라면 미츠하와 동료들의 법률 위반은 이미 법률에 의해 처벌받아, 미츠하와 동료들은 교도소 생활을 거치고 나와서 정상적인 회사 채용이 거절받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신카이 감독이 나타낸 이야기의 반대선상에는 노조 혐오와 기업 자유 옹호, 그리고 법치를 통한 국격상승(?)을 강조한 한국의 극우정당들이 있다. 이들이 옹호하는 구 체계는 기업의 극대 이득 창출, 탈법적 노조 파괴, 최저임금 인상 반대, 친기업적 용어 왜곡 등 '개·돼지'들을 육성하고 가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들로 가득차 있었으며, 외부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표면적 변화만을 부르짖으며 대기업만을 위한 성장을 꾀했다. 그들은 그 결과로 그들이 위한다고 주장하는 국민들의 삶이 철저히 망가지든, 원전이 터져서 사람이 죽든, 급격한 원수 유입으로 지진이 나 수많은 사람이 다치든지에 대해서는 상관해오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의 저항을 좌빨·용공·공산주의로 몰아가 분쇄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일본도 많은 부분 비슷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이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한국과 일본의 많은 관객이 적극적으로 수신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 모순적인 망국병에 대해 사람들이 더이상 '쇼하지 마라, 속지 않는다'(윤민석, 2016)라는 반응을 내보낼 수 있는 일련의 공통적인 문화자본을 수신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문화자본이 발출(發出)되었느냐, 그렇지 않냐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언령신앙'과 '무스비' 

그런데, 왜 이런 위험한(?) 작품을 일본 정부는 굳이 문제삼지 않는걸까? 게다가 유난히 까다로운 법률 및 규칙 파악에 빠른 일본 행정부가 단순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네임 밸류나,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작품을 그냥 긍정적으로 파악할 리가 없다. 앞서 소개했듯이 이 작품은 '문부과학성 예술문화진흥기금'을 받아 제작됐다. 정부가 봤을 때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근거에는 정부 정책, 특히 일본 문화를 발산하는데 긍정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 요소가 이 작품에 강하게 투영되어 있는 일본의 전통 문화라고 본다.

   첫번째 요소는 언령(言靈)신앙이다. 말에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도 신앙에서 유래된 이 신앙은 사람이 내뱉는 말을 통해 미래의 일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나태나고 있다(이케가미 아키라, 2001). 또한 동시에, 그 속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나타난 바가 있듯이, 이름을 바꾸는 행동이 사람의 존재나 의미 등을 바꾼다는 - 한국에서와 동일한 - 믿음 또한 깃들어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이름의 존재가 결과적으로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이름을 안다는 것을 전제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나, 두번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이름을 잊는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이름값'이 재앙의 결과를 바꾸는 대가로서 지불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둘러싼 인식 변화의 근거는 분명히 일본 전통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번째 요소는 애초의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신사의 신화다. 이번 이야기에서 극중의 바탕이 된 것은 이토모리 산의 성역에 보존되어 있던 한 가지 옛 기록, 즉 과거에 운석이 도달했던 이토모리에 다시 동일하게 운석이 도달한다는 신화였고, 그 신화는 분명히 애니메이션에서 두번에 걸쳐서 재현되었다. 그리고 이야기 진행에 도움이 되었던 입으로 만든 술도, 해당 신사의 전통에 따라 미츠하의 몸으로 타키가 술을 만들고, 죽은 미츠하에게 돌아가기 위해 타키가 금기를 깨고 신사에 들어가 술을 마신다는 이야기 요소로 이어진다. 

   물론 작중의 이야기는 전부 픽션이지만, 신화의 재현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정신을 떠받들고 있는 신도의 신뢰성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물론 최근의 전형적인 TVA들에서 새해맞이 신사참배(初詣)가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히 신사나 신도가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벗어나 일상생활의 일부분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신사와 신도가 미디어를 통해 신뢰할만한 지혜로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여러번 노출될 때, 일본국민 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해외의 사람들에게도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게) 일본문화를 친숙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물론 이로 인해 이어지는 역사왜곡의 가능성은 언제나 대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요소로는 무스비(結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무스비 또한 이 애니에서 의외로 여러번 나오는 서사장치 중 하나다. 특히 신카이 감독은 結び가 '이어짐'과 '매듭', '끝맺음'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활용해 극중에서의 타키와 미츠하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애니메이션 중간에 나오는 타키와 미츠하의 첫 만남은, 미츠하가 타키에게 긴 머리줄을 전달해주는 장면으로 상징된다. 타키가 받은 매듭은, 미츠하와 타키와의 상호신체교환이 일어나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또한 해당 매듭은 타키가 미트하를 발견하고 이동해, 타키와 미츠하의 재회를 이끌어주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일본 전통의 '머리 묶는 줄'을 통해 신카이 감독은 타키와 미츠하 사이의 '매듭'을 시각화해 설명한다. 신카이 감독은 이를 통해 일본어-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일본 전통문화는 이 작품을 이끄는 중요지점마다 나온다. 애니메이션 속에 딱 한번 나오는 수업 시간에, 굳이 '다소가레'(たそがれ)의 용법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 일본한자로는 '황혼'(黃昏)으로 전사되고, '저녁놀'로 번역되는 이 단어가 (만엽집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지만) 원래부터 '誰そ彼(너는 누구여)'에서 나온 말이라는 수업은 예상 그대로 떡밥이 되어 타키와 미츠하가 바뀐 몸을 가지고 만나는 지점에서 활용된다. 이 만남은 미츠하와 타키가 변화된 세계로 돌아가는 기회가 됨과 동시에, 변화된 세계를 고정하는 기회가 된다.

   이와 같이, 〈너의 이름은.〉은 이전 작품과 달리 일본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용 결과는 문부과학성 예술문화지원기금의 수령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결과가 신카이 감독의 네임 밸류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신카이 감독이 지원을 받기 위해 이야기 속에 의도적으로 붙인 것일 수도 있고, 일본국 정부의 쿨재팬 정책에 맞춰 이야기를 조정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외의 추측 중에서 신카이 감독이 가지고 있는 본심(本音)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와 관련된 정황적 판단은 뒷부분에 일부나마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70203 작성 시작, 180129 1부 공개) (계속)


Trackback : 0 Comment : 0
2018.01.06 17:21

2018년 엘리프 신년사


신   년   사


하나님 나라와 민주주의 국가 : 이뤄졌으나 이뤄지지 않은
2017년 한 해동안 하나님께서는 어둡던 이 나라에 구원을 베푸사 9년동안의 이명박근혜 폭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폐하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또한 문재인 대통령을 세워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국가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아직까지 위험속에 처해 있습니다. 북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고,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을 결사옹위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조합 세력 등을 매일 저주하는 세력이 일어나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하는 은혜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2017년의 자유와 해방감에 만족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늘 깨어 기도하고 싸울 때가 왔습니다.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한 대한민국의 도전은 지금도 구축해 가지고 완성해 나가시는 하나님 나라의 도전과 그 궤도가 겹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진정으로 살리는 방법이 소위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가짜 민주주의가 아닌 참여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앞으로도 시민들의 교육과, 극우 이데올로기를 뽑아내고자 하는 각자의 노력을 통해서야 완성해 나갈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 또한 이 땅에 이뤄졌으나,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들의 높은 벽을 낮추고, 맹목적으로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벗어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도록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 건설에 부르심을 받은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등지지 말고, 세상에서 구별되되 세상을 변화시키며 하느님 나라를 인지하며 살아 나갑시다. (끝)


Trackback : 0 Comment : 0
2018.01.02 19:33

2017년 사진 결산 ② : 051-100



…그럼 지난번에 이어 나머지 사진들을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SM-G930L | 1/6048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6:22 16:27:23


51 | e6012 번 버스 @ 주안역

어느 날 511 탑승구가 바뀌며 원래 511 자리에 갑자기 나타났다 어느새 사라진 신규 버스입니다. 왜 이 버스가 생겨나고 사라져야 했는지에 대해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알아서 넣고 알아서 빼고… 현재의 인천 행정의 실태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Canon EOS 650D | 1/250sec | F/10.0 | 0.00 EV | 45.0mm | ISO-100 | 2017:06:23 14:35:14


52 | 진부역 (6.23)

6월에 진부역을 한국철도공사 홍보문화실의 도움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글을 제가 아닌 다른 기자 분이 써주시다보니 주요 사진 컷들이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이 자리를 빌어 한국철도공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사진들은 정리해 공개해 보는 것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8.0mm | 2017:06:23 15:41:20


53 | 알펜시아 전경

같은 취재의 스키점프대에서 촬영한 알펜시아 전경입니다. 아직까지 봅슬레이 경기장 등이 건설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번 기회를 통해 봅슬레이 등의 동계 스포츠 훈련 + 생활체육화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160sec | F/14.0 | 0.00 EV | 18.0mm | ISO-400 | 2017:06:24 10:42:30


54 | 레일스타 @ 삼양목장

한편 해당 취재에는 당시 코레일 명예기자분들 이외에도 홍순만 전 사장이 출범하신 레일스타(코레일 사내 홍보 모델) 직원 분들이 함께 취재에 동행해 주셨습니다! 함께 와 주신 레일스타 직원 여러분들, 감사했습니다. 혹시 원본이 필요하시면 연락해 주시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160sec | F/8.0 | 0.00 EV | 20.0mm | ISO-100 | 2017:06:27 17:08:27


55 | 자유당사 앞

촬영 관련해서 만들 컷이 있어서 찍은 자유당사 앞입니다. 아직도 콜트 콜텍 천막이 철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천지당이 국민을 무엇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는건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참고로 이 사진 찍기 전에 국민의당 당사 앞을 사진 촬영했다고 주변 경찰들이 서로 연락하면서 저를 경계하더군요(웃음) 


Canon EOS 650D | 1/250sec | F/10.0 | 0.00 EV | 39.0mm | ISO-100 | 2017:06:29 16:29:13


56 | 코스촬 @ 경복궁

경복궁 내에서 일카 촬영을 해달라는 의뢰를 지인의 지인으로부터 받아 촬영해 드렸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다행이었습니다만, 해당 일카가 예상과 달리 모집에 실패하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은 말씀해 주시면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55.0mm | ISO-320 | 2017:07:07 18:09:24


57 | 용특·동특 첫날 (7.7)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갑작스럽게 발표된 결정에 의해 경인선에 NH시간대에 한해 특급이 도입된 첫날 촬영한 마지막 특급열차입니다. 특급의 경우 처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것 같아 보였으나, 결국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이 특급열차를 RH에도 어떻게 도입하느냐가 앞으로의 주요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Canon EOS 650D | 1/200sec | F/10.0 | 0.00 EV | 30.0mm | ISO-100 | 2017:07:13 11:00:54


58 | 구 서도역

2010년 즈음 통표가 남아있던 전라선이 개량되면서 남은 공간을 보존하고 개량한 구 서도역. 남은 통표걸이에는 오래된 통표주머니가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해당 주머니를 다시 제 자리에 걸어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000 | 2017:07:15 18:12:55


59 | 에베레스트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있던 곳으로, 저번에 로-리엔 누님에게서 얻어먹은 곳이기도 합니다. 가볼까 가볼까 하다가 드디어 한 번 기회를 잡아 아는 이들에게 사줬습니다. 그대신 4인분이 5만원이 넘었습니다. ㅠㅠ


Canon EOS 650D | 1/60sec | F/4.5 | 0.00 EV | 37.0mm | ISO-1600 | 2017:07:15 22:40:22


60 | 〈공범자들〉 BIFAN 상영

공범자들 BIFAN 상영 이후 GV. 이제는 사장이 되신 최승호 감독님과 복직노동자 한 분, <김장겸은 물러나라>의 그 분… 믿기 힘든 일들로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4.0 | 0.00 EV | 18.0mm | ISO-200 | 2017:07:19 17:16:55


61 | 교수님들 @ BICOF

BICOF #21의 개막식에 참여하신 윤갑용 교수=BIAF 조직위원회장=만화애니메이션학회장님과 서채환 교수=BIAF 집행위원장님. 21회부터 BIAF가 국내 최초 오스카 인증영화제가 되면서 올해 정체되었던 BIAF의 발전이 예견되는 가운데, 저도 올해 BIAF의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노력을 기울여보도록 하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200sec | F/8.0 | 0.00 EV | 53.0mm | ISO-100 | 2017:07:22 15:24:18


62 | BICOF #21

그래도 이렇게 찍어보니 참가자가 많은 축제였네요(?) 15일 전후로 축제가 복원된 올해는 축제 정상화(?)가 이뤄지길 바라며, 그 대신 코스어들을 굴려먹을 생각만 하지말고 좀 배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사무국측이 바라지 않더라도 올해도 갑니다.


Canon EOS 650D | 1/6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250 | 2017:07:22 20:09:53


63 | GICF #1

그리고 할 말 많은 GICF. 1차 예선에서 공연무대가 전부 떨어지며 연기무대만 남아 불공정한 결과가 발생한 바가 있어 해당 페스티벌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라는 점을 축제 사무국이 좀 깨달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좀 무대행사 멀쩡히 행사 진행했을 때 어땠는지 역사도 뒤져보시고요.


Canon EOS 650D | 1/160sec | F/8.0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8:02 16:13:09


64 | 김천철도문화체험전 #1

이쪽도 취재 요청을 받아 다녀오게 됐습니다. 문화체험전에서 레이저 기반 보수시설을 체험해 보고 있는 초등학생입니다. 이렇게 철도 꿈나무가 무럭무럭 자라서 한국철도를 발전시킬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Canon EOS 650D | 1/100sec | F/6.3 | 0.00 EV | 23.0mm | ISO-100 | 2017:08:02 17:22:15


65 | 7236 @ 김천기관차승무사업소

행사 마무리쯤에 몇년 만에 1호선에서 마지막으로 맞이했던 7236호 기관차를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한국철도 도색이 남은채로 사라지기보다는, 뭔가 이 차량을 보존할만한 방법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가를 받아 촬영됐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4.0 | 0.00 EV | 18.0mm | ISO-400 | 2017:08:04 13:29:53


66 | 파라오 @ 서울 코믹콘 #1

서울 코믹콘 1회가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예상보다 참가자가 많아 깜짝 놀랐고, 코스를 굳이 '코스플레이'로 의도적으로 오기하며 한국 코스판과 교류하지 않는 사무국의 패기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한국 코스어가 스무 명 조금 넘는, 잔인한 행사였죠.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640 | 2017:08:05 12:59:06


67 | 코스 공개 강연 @ 서울 코믹콘 #1

한국 코스 사상 최초로 진행된 코스 소품 공개 강연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코스 역사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만들어 주신 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SM-G930L | 1/10sec | F/1.7 | 0.00 EV | 4.2mm | ISO-200 | 2017:08:06 20:27:47


68 | 〈모두의 낮, 야학의 밤〉

주일 행사인데다 주일 저녁예배까지 드려야 했던지라 시간이 전혀 없어서 예배 끝나고 딱 한 강의만 들었습니다. 선생님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600 | 2017:08:18 18:25:26


69 | 서울 철도문화체험전 #2

이 전시만으로도 5년만에 체험전을 방문할 가치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역시 본사에서 행선판을 모으면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옵니다.


SM-G930L | 1/120sec | F/1.7 | 0.00 EV | 4.2mm | ISO-100 | 2017:09:01 17:36:38


70 | 짐을 빼다

8월 어느 날, 10년 넘게 있던 연구실에서 짐을 빼서 이사했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이사했다고 생각해야죠.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100 | 2017:09:18 16:10:39


71 | 〈KTX 승무원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위하여〉

국회 토론회치고 상당히 열기가 높았지만,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힘겹게 만든 토론회였습니다. 새 사장님이 빨리 임명되어야 할텐데.


Canon EOS 650D | 1/40sec | F/4.5 | 0.00 EV | 30.0mm | ISO-1000 | 2017:09:23 21:18:10


72 | 은화·다은이 이별식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집에 가자> 피아노와 함꼐 이뤄진 이별식을 보며 다시 많은 것을 생각해 봅니다.


Canon EOS 650D | 1/60sec | F/5.6 | 0.00 EV | 48.0mm | ISO-400 | 2017:09:26 10:59:18


73 | 유튜브 크리에이터와의 대화 - 연예인편

사진의 내용이 모든 것을 설명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그만 둡니다. 다만 아랫쪽에 구 CI 센슼ㅋㅋㅋ


Canon EOS 650D | 1/40sec | F/4.0 | 0.00 EV | 24.0mm | ISO-100 | 2017:09:26 12:06:52


74 | 하츠네 미쿠 10주년 기념 전광판

유동인구가 장난 아닌 삼성역에 이뤄진 프로젝트는 럽라 게임 광고 등장 이후 가장 큰 웹컬처 콘텐츠의 나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특정 언론이 이를 까내리는 기사를 올리는 바람에 그 의미가 매우 크게 손상되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100 | 2017:10:17 16:41:54


75 | 케모노 프랜즈 기사 작성

그레이프의 소식을 인터넷 판에 올렸었는데, 마침 상황이 잘 돌아가 지면으로도 올라가게 됐습니다. 사진은 교정고입니다.


Canon EOS 650D | 1/60sec | F/5.0 | 0.00 EV | 33.0mm | ISO-100 | 2017:10:20 08:56:44


76 | 한국철도공사·KR 등 국정감사

아침에 대전역 광장에서 철도노조에서 항의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21.0mm | ISO-500 | 2017:10:22 18:23:16


77 | 가이낙스 마스터클래스 @ BIAF 20

2년만에 야마토 히로유키 사장님을 (얼굴만) 뵈었습니다. 워낙이 잘 설명해주셔서 본토 일본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콘텐츠가 많은 마스터클래스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SM-G930L | 1/4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10:23 16:28:42


78 | 장경재S @ BIAF AAF 2017

그리고 AAF에서는 이 강의를 놓칠 수 없었죠, 장경재 박사의  러브라이브 연구 논문! 논문 안에서는 저도 한번 다뤄 대박을 냈었던 우미산이나, 야자와 니코 판낼에 대한 장시간 참여관찰(...)을 선보여 주셨습니다. 역시 본토에서 콘텐츠관광을 배워 오신분의 논문이라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Canon EOS 650D | 1/125sec | F/7.1 | 0.00 EV | 18.0mm | ISO-100 | 2017:10:28 10:36:35


79 | 한국피플퍼스트(장지공) 대회 #6

이번 한국피플퍼스트대회는 사전 정보전달과 조직간 연락이 매우 느려 두번째 날에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하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됩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4000 | 2017:10:28 20:54:21


80 | 촛불집회 1주년 기념 여의도 집회

촛불집회 1주년을 여의도에서 치르자는 제안에 저도 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자한당은 해체하라"라는 울부짖음과 함께 "다스는 누구껍니까?" "이명박!"이라는 문답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물론 당사자는 자유당은 이게 국민의 본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국민을 무시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4.0 | 0.00 EV | 25.0mm | ISO-125 | 2017:10:29 16:40:01


81 | 100주년 기념예배

의 날에 1세대 교회예배 이야기를 끄집어 와 봤습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64 | 2017:11:04 17:12:19


82 | 비마니마스터코리아(BMK) 2017

그냥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리듬게임판 5종철인경기더군요. 리허설도 좀 빡세게 시켰다고 하네요.이 경기를 본토 일본인 경기자들이 돈다면 어떤 점수결과가 나올지 우려되는 행사였습니다. 레밀리아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Canon EOS 650D | 1/40sec | F/4.0 | 0.00 EV | 28.0mm | ISO-320 | 2017:11:10 14:47:42


83 | 서울카페쇼 2017 + WBC

올해 카페쇼에서는 기존 업체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WBC 유치 등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건 WBC의 카페바에서 받은 카페라뗀데, 너무 달아서 한컵을 다 마셨습니다. 진짜 카페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 한수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Canon EOS 800D | 1/160sec | F/5.6 | 0.00 EV | 42.0mm | ISO-640 | 2017:11:25 15:40:52


84 | 긴키하 방한

모펀 관련해서 촬영했었는데, 한국 팬들 반응이 너무 좋아 놀랐습니다. 정확하게 이름의 유래가 銀+キハ(키하***계에 쓰이는 그 키하)라고 하더라고요. 뭐 사진은 보도용으로 찍은거였고 공식 승인을 받지 않아 이걸로 대체했습니다. 관계자 여러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요즘 많이 피곤해졌어요.


Canon EOS 800D | 1/100sec | F/5.0 | 0.00 EV | 18.0mm | ISO-100 | 2017:11:29 11:00:27


85 | 자동기상기계 of JREM @ 토쿄철도기술전

미디어 촬영 다녀온 것 중에서 가장 귀여운 사진이어서 채택했습니다. 역시 스이카 펭귄이 한귀여움 하죠(는 한국은 왜 이모티콘 안풀어주냐며)


Canon EOS 800D | 1/100sec | F/5.0 | 0.00 EV | 18.0mm | ISO-100 | 2017:11:29 11:21:23


86 | 아이텍한신한큐 @ 토쿄철도기술전

철도 유루캐릭을 저는 철도무스메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판에 상당히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기술전에서 알게 됐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철도무스메가 개런티가 상당히 세서 [ 로코모션(路娘MOTION) ]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생겼다고 합니다. 철도회사의 기술개발사가 진행한다는 점에서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논문 진행에도 참고로 삼겠습니다.


SM-G930L | 1/33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11:29 14:47:41


87 | '동해도신칸센의 기술 발전' @ 토쿄철도기술전

첫날 사전신청을 통해 좋은 강연을 들었습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이 사진만 찍을 수 있었습니다(는 언론 취재도 허가된것 같은데 이건 으음…). 강의 내용은 매우 충실해서 정말 일본 철도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Canon EOS 800D | 1/100sec | F/5.6 | 0.00 EV | 53.0mm | ISO-6400 | 2017:11:30 16:30:08


88 | Grain Bread & Brew

일이 있어 굳이 찾아간 커피샵. 정말 맛있는 커피를 팔았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관련 콘텐츠는 별개 글로 올리겠습니다.


Canon EOS 800D | 1/80sec | F/4.5 | 0.00 EV | 21.0mm | ISO-320 | 2017:11:30 20:26:13


89 | 에반게리온 샵

아마 신칸센 프로모션이 끝난 이후에는(현재는 하카타, 고쿠라역 등에도 샵이 있으니까) 일본의 유일한 에바샵이 되겠죠? 다음번에도 한번 꼭 들르고 싶습니다. 


Canon EOS 800D | 1/100sec | F/5.0 | 0.00 EV | 32.0mm | ISO-2000 | 2017:11:30 20:33:38


90 | 메이플 이케부쿠로점

이번 여행이 동반여행이었던지라 절대 가볼 수 없던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번에는 꼭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Canon EOS 800D | 1/125sec | F/5.6 | 0.00 EV | 18.0mm | ISO-100 | 2017:12:01 15:16:19


91 | 카마쿠라고교앞역앞 건널목

드디어 5년 만에, 이 건널목 앞에 섰습니다. 역시나 사진을 찍고자 하는 일반인으로 가득찼더라고요.


Canon EOS 800D | 1/320sec | F/7.1 | 0.00 EV | 52.0mm | ISO-100 | 2017:12:01 15:25:13


92 | 카마쿠라고교앞역 전경

그리고 이렇게 느긋하게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요. 


Canon EOS 800D | 1/200sec | F/6.3 | 0.00 EV | 55.0mm | ISO-1000 | 2017:12:02 10:39:56


93 | E235계 @야마노테선

이번에 제대로 타는데 실패한 것 중에 또 하나가 E235계입니다. 귀국길에서  사진만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다음번에는 열차를 제대로 촬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Canon EOS 800D | 1/500sec | F/10.0 | 0.00 EV | 44.0mm | ISO-100 | 2017:12:02 14:28:01


94 | 후지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에 돌아오는 귀국길에 찍을 수 있었던 것이 후지산입니다. 저걸 걸어서 등산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할 수도 있을까요?


Canon EOS 800D | 1/125sec | F/5.0 | 0.00 EV | 35.0mm | ISO-4000 | 2017:12:07 20:41:36


95 | M&H Books

돌아오고 나서,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음반을 처음 사서 뜯어보는 장면을 목격했읍니다.


Canon EOS 800D | 1/200sec | F/6.3 | 0.00 EV | 55.0mm | ISO-6400 | 2017:12:10 14:46:12


96 | 청년예배

올해(2018년)의 청년국 표어가 발표되고 있는 설교 현장입니다.


SM-G930L | 1/120sec | F/1.7 | 0.00 EV | 4.2mm | ISO-80 | 2017:12:13 20:24:59


97 | KTX 해고승무원 기도회

올해도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추운 바깥 용산역 바깥에서 하던것에 비하면 문재인 대통령님이 취임하신 덕인지 서울역 안으로 들어왔고, 참가자수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빨리 좋은 새 사장님이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Canon EOS 800D | 1/60sec | F/4.5 | 0.00 EV | 18.0mm | ISO-160 | 2017:12:21 14:35:55


98 | 경강고속선 개통식

드디어 주요간선이 오랜만에 개통했습니다. 다만 헬 상태의 경원중앙선 상태가 앞으로도 한국철도 발전에 방해가 될 것 같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ㅠㅠㅠㅠ


Canon EOS 800D | 1/125sec | F/5.6 | 0.00 EV | 46.0mm | ISO-6400 | 2017:12:28 20:53:11


99 | 단편선과 선원들, 마지막 콘서트

이것도 시간이 거의 없어 짧게만 다녀온 콘서트입니다. 취재해서 기사화하리라! 하고 생각했으나 사진이 좋지 않아서 그냥 이렇게 올립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SM-G930L | 1/3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12:31 21:11:14


00 | 12.31, 마지막 스타벅스

서울에 재고가 없다고 했던 특정 음료를 인천에서 마시는데 성공해 간신히 세이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렇게 올해도 크리스마스 7개, 일반 27개를 따며 스타벅스 다이어리 두개 획득에 성공하였읍니다.


이렇게 한해를 사진으로 정리해 봤습니다. 이제야 2018년에 된듯한 느낌이네요. 올해도 좋은 사진과 좋은 논문으로 좋은 사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


Trackback : 0 Comment : 0
2018.01.01 19:06

2017년 사진 결산 ① : 001-050


2017년이 지났습니다. 2017년에도 한 해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총 100장의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물론 정리는 31일 이전에 했습니다만, 역시 사진을 작게 만드는 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작업이 늦어진 점에 대해 죄송하다고 할 필요(...)는 없겠죠? 그럼 설명 들어갑니다.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55.0mm | ISO-1600 | 2017:01:01 11:56:33


01 | 신년소원예배 (1.1)

다행히 감독님은 올해('18년)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계십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감리사님이 되셨고(...)


SM-G930L | 1/12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01:01 13:47:20


02 | TV조선 화면 촬영 (1.1)

어… 논평해 보자면,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님의 일성은 결국 UN 관련 떡밥 등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나라와 세계를 위해 쓰인 분인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 분이 대통령이 되셨으면 현재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Canon EOS 650D | 1/50sec | F/4.0 | 0.00 EV | 21.0mm | ISO-100 | 2017:01:07 15:55:30


03 | 볼빨간사춘기

번역을 하다가 유튜브에 뭔 이상한 라이브가 갑자기 떠서 들어봤더니만 볼빨간사춘기가 공연을 하고 있었네요. 아 이런 그룹도 있구나 하고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유튜브에서 연주중이었던 곡은 You(=I)였습니다.


SM-G930L | 1/4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01:08 18:35:03


04 | 작은 소녀상을 맞이하다

텀블벅 후원을 자주하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일본 언론은 이 작은 소녀상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굳이 보도하지 않았던가(웃음)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35.0mm | ISO-100 | 2017:01:11 17:02:55


05 | 광주셔틀

광주역으로 KTX 도입이 억울하게 중단되면서 호구지책으로 만들어진 광주셔틀. 하지만 일단 호구지책인지라 아직까지 활용이 안되고 있습니다. 역시 KR이 정신을 안차리니 코레일도 적자고 지역도 마이너스가 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올해도 운영을 이어가게 되었으니 호남학연구원 HK 10주년을 맞아 관련 취재를 다시 가볼까 생각중입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25 | 2017:01:11 17:57:58


06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검열 전후를 기록한 사료입니다. 이것만 봐도 북괴 위협을 빙자해 전두환 독재정권이 얼마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거를 저질렀는지 알 수 있는 사료죠. 이외에도 귀중한 자료가 기록관에 많이 남아있으니 민주애국시민 여러분들은 한 번씩 가서 보도록 합시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125 | 2017:01:11 20:20:18


07 | jTBC 뉴스룸 @ 나소리

기록관 구경을 마치고 전대에서부터 신세진 형 한분의 도움으로 그날 비싼 곳에서(!)잠자리를 청했습니다. 경남이 형에게는 다시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JTBC 이외에는 진실을 전하는 곳을 찾기 힘들던 그 당시 시절의 모습입니다.


SM-G930L | 1/438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1:12 12:42:47


08 | 전남대 후문가

이튿날 교수님이 점심을 사주셔서 먹고 발견한 가격탄핵/옷값하야(…) 이런 말을 버젓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따뜻해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돌아와서 아는 애 만났다가 정말 큰일 날뻔 했었네요.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25 | 2017:01:14 16:32:05


09 | estas

2016년부터 관여하고 있는 자조모임의 평소 모임 모습입니다.


Canon EOS 650D | 1/80sec | F/6.3 | 0.00 EV | 55.0mm | ISO-1000 | 2017:01:17 07:56:29


10 | 황우여 전 부총리 @ 빛과 소금 포럼

황 전 부총리님이 요즘 깊이 추진하고자 하시는 업무중 하나가 인천 내 연합신학교 건설입니다. 이건 필요성을 공감하고,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인천에 음대도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Canon EOS 650D | 1/200sec | F/9.0 | 0.00 EV | 47.0mm | ISO-100 | 2017:01:20 11:38:08


11 | 철도공사 검수차 + E-train @ 예미역 

정선선 개통이 50주년이 되는 날에 예미역에 취재하러 갔다가 건진 사진입니다. 좀 더 사진기가 이때 좋았으면 좋겠지만 평소에도 철도 촬영을 안 다니는지라(…) 달만 돌아오면서 탄 열차가 들어오는 풍경이 또 장관이었습니다.


SM-G930L | 1/4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01:21 23:20:12


12 | 스타벅스 부평로데오점

저는 이와 같이 눈이 오는 날에도 여전히 스타벅스를 들렀습니다.


SM-G930L | 1/2632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1:28 13:45:36


13 | 제천 의림지 놀이동산

이런 데 촬영가고 싶어요(웃음) 가족끼리 설날 때 놀러갔다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SM-G930L | 1/284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2:04 15:12:05


14 | ○수련회 끝나고

역시 인천에 돌아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한 때입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02:05 18:24:51


15 | 금요성령집회

는 이런식으로 외부 분이 오시는 회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꽤 오신 목사님들입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200 | 2017:02:09 16:15:39


16 | 특정 호텔

2월 모일 특정 호텔에서 교수님의 강연 등이 이어졌습니다. 하루동안 호텔에서 묵어서 좋기도 했고요. 다만 호텔에서 삼시 세끼는 연속으로 못 먹겠더라고요.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2500 | 2017:02:11 20:14:32


17 | 15차 박근혜 범국민퇴진운동

드디어 퇴진운동 시위에 참여한 이래 처음으로 청와대 앞까지 나가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위에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Canon EOS 650D | 1/40sec | F/4.0 | 0.00 EV | 27.0mm | ISO-640 | 2017:02:21 13:27:16


18 | 모 대학교

한편 모 대학교에서 있었던 다른 교수님의 강의입니다. 해당 강의에 다른 날에는 오츠카 에이지 교수님이 며칠동안 오신다고 들었으나, 아래 있었던 오키나와 여행 일정 때문에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죠.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60 | 2017:02:23 14:40:59


19 | 츄라우미수족관

그래서 위 사진을 찍고 돌아온 다음날부터 교수님 이하 범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연구실 차원의 첫 해외여행으로 오키나와에 다녀왔습니다(저는 두번째입니다). 만좌모에 들른 다음에 방문한 츄라우미수족관에서 가장 유명한 돔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돌아올 때는 나고 파인애플 파크를 방문.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29.0mm | ISO-100 | 2017:02:24 11:20:09


20 | 슈리성

이튿날에는 슈리성을 방문했습니다. 슈리성은 2014년에 입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으로 입장해 방문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사진은 오키나와 옷을 입은 분들이 갑자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셔서 찍어드린 다음에 찍어도 되냐고 제가 역으로 제안을 드려서 허락을 받아 찍은 사진입니다. (もしこの写真の原本が必要するとゲストブックの方にお願いします。)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2:24 15:42:09


21 | 무인양품 팔렛트 쿠모지

자유시간이 되어 오랜만에 들른 본토의 무인양품. 한국에서는 살 수 없는 전자기기 관련 용품이 가득이네요. 이곳에서 저는 노리던 흰색 스니커즈를 구매했습니다. 전자용품은 나중에 노려보는 거스로(...)


Canon EOS 650D | 1/40sec | F/4.5 | 0.00 EV | 30.0mm | ISO-320 | 2017:02:24 19:00:38


22 | FM나하

저녁밥을 알려진 곳에서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방문한 커뮤니티라디오 FM나하. 신기해서 한 장 찍었습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Canon EOS 650D | 1/60sec | F/4.0 | 0.00 EV | 18.0mm | ISO-400 | 2017:02:24 22:35:30


23 | 만가창고 나하점

저녁밥을 먹고 국제거리를 돈 다음에 방문한 북오프 아카미네점이랑 처음으로 방문한 만가창고 나하점. 일본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는 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뭔가 사고 싶은 걸로 가득차 있긴 했지만 나중에 돈과 시간이 제대로 되면 구매전을 진행하는 것으로 해 보아요~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160 | 2017:02:24 23:33:45


24 | 카와이- 카페 캔디

그리고 나서 2년 만에 방문한 엔터테인먼트 카페 캔디. 갔다가 갑자기 부르라고 하셔서 부른 곡입니다(...) 이 곳이 최근에 '카와이-카페 캔디'로 이름을 변경한 모양이네요. 사정이 어떻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잘 되리라 믿고 있겠습니다. 


Canon EOS 650D | 1/160sec | F/8.0 | 0.00 EV | 45.0mm | ISO-100 | 2017:02:25 09:53:24


25 | 슈리역 모노레일 건설 현장 (이시미네역 방면)

현재 슈리역 이북으로는 유이레일의 연장공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철도 계획도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노선을 수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내년(2019년)에 테다코우라니시역까지 열차가 연장되면 그 때 제대로 다시 오키나와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250 | 2017:03:04 15:03:11


26 | 앰퍼샌드 스튜디오

코스판에 들어온 지 6000일이 넘은 것을 기념해 스튜디오 촬영회를 했습니다. 좋은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계속해서 빠지는 분들이 많아지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번에는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4만원인가를 날려버렸습니다.


Canon EOS 650D | 18.0mm | 2017:03:04 19:22:23


27 | 19차 박근혜 범국민퇴진운동

탄핵 결정 직전의 뜨거운 새벽이었습니다. 태극기는 모이지 않아 결국 여러명이서 점거하며 버티는 신세였고요. 태극기 집회는 결국 촛불혁명을 축소시키기 위한 국정원 등의 어둠의 세력의 간계가 아니었나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3월 10일. 박근혜는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탄핵되었습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64 | 2017:03:19 17:04:44


28 | 청년음식대회

3개월 동안 분위기가 매우 좋았던, 셀모임의 결과물이었습니다.


Canon EOS 650D | 1/160sec | F/8.0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3:25 14:59:11


29 | 첫 코코페 (3.25)

아마 이 때가 첫 서울랜드 코스앤코믹 페스티벌이 시작된 시점으로 기억되네요. 아래 행사 때문에 길게 못 있었지만 이 첫 시도를 통해 한국 코스판에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일도 많았습니다만, 앞으로도 코스앤코믹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Canon EOS 650D | 1/40sec | F/4.0 | 0.00 EV | 27.0mm | ISO-800 | 2017:03:25 18:07:49


30 | 페미×위키 에디터톤(3.25)

좋은 행사였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날 행사를 위키미디어협회 회원 자격으로 왔고, 우선순위 관계 상 페미위키에 기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SM-G930L | 1/50sec | F/1.7 | 0.00 EV | 4.2mm | ISO-100 | 2017:03:28 19:54:27


31 | 소망의 날개 말씀콘서트

이렇게 콘서트 할 수 있는 성직자가 전국에 몇 명이나 될까요? 감사.


Canon EOS 650D | 1/125sec | F/6.3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3:29 17:03:01


32 | 서울패션위크

"아 이런 분들이 있구나" 하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저는 패션 피플이 아니므로 더이상의 입장 표명은 생략합니다.


Canon EOS 650D | 1/160sec | F/8.0 | 0.00 EV | 21.0mm | ISO-100 | 2017:04:01 16:56:54


33 | 오타쿠 뮤지션 만우절 파티 (4.1)

주변에서 사람들이 보자고 해서 볼 생각 없이 구경하러 왔다가 입장권을 부여받아 강제참석 크리. 하지만 그 당시 귀가 한창 아플 때라 + 제 음악 취향이 달라서 결국 모든 공연을 보고 오지는 못했습니다. 뭐 이쁘고 멋지신 클로에 로에님을 알게 됐으니 좋은건가(...)


SM-G930L | 1/10sec | F/1.7 | 0.00 EV | 4.2mm | ISO-1250 | 2017:04:07 20:34:23


34 | 〈집에 가자〉 콘서트 (4.7)

<집에 가자> 텀블벅 펀딩에 참여한 것에 대한 보상입니다. 원래 이날이 아닌 줄 알고 인하대에 가있다가 허겁지겁 돌아가게 돼서 많은 부분을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은 <봄맞이>.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4:15 18:42:33


35 | 세월호 3주기 기념 집회 (4.15)

작년과 달리 비를 맞지 않아도 돼서 감사한 집회였습니다.


Canon EOS 650D | 1/80sec | F/5.6 | 0.00 EV | 55.0mm | ISO-400 | 2017:04:17 18:24:40


36 | 문재인 대통령 후보 광화문 유세

대통령님과 더불어민주당의 대형 출동. 프롬프터도 제대로 보이고 왠만한 열기 못지 않았습니다. 사진기를 올려야겠다는 느낌을 팍팍 받은 시기입니다.


SM-G930L | 1/10sec | F/1.7 | 0.00 EV | 4.2mm | ISO-320 | 2017:04:20 21:17:01


37 | 인하대 후문

도대체 몇번째인지 모르겠는 문과대학의 또다른 구조조정 결과는 (후략)


SM-G930L | 1/956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4:25 16:31:04


38 | 이경호(베드로) 주교님 서품(안수)·승좌식

간석교회에 계시던 주교님이 떠나시게 되어 안타까웠지만 정말 필요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뤄진 주교 선출이었습니다. 세실극장 등 갑자기 복잡해진 외부 사정에 힘든 나날을 보내시겠지만 저는 주교님을 믿습니다. 올해도 승리하는 나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39 |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제가 다녔던 페어의 느낌과 많이 달라지고 이상해져서 내가 왜 굳이 펀딩을 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추락이죠 추락.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250 | 2017:05:08 22:27:16


40 | 심상정 마지막 거리 유세 (5.8)

이 마지막 거리 유세를 20분 정도 지켜보고, 그리고 심상정 후보의 마지막 마무리 발언을 듣고 나서야, 저는 이번 대선 투표자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250 | 2017:05:10 02:47:06


41 | 대통령선거 개표참관 (5.9~10)

올해 대통령선거의 경우 부정투표에 따른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했던 관계로, 지역구 시민의 눈에 참여해 정당참관인으로서 개표 참관을 진행했습니다. 한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더 플랜>이 주장하듯이 제가 본 선거 개표가 부정선거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앙선관위가 주장하듯이 투표분류기가 완전히 신뢰할만한 도구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제 눈으로 분류기에서 분류기를 지난 투표기에 오표가 분명히 발생하는 장면을 봤고, 또 다른 오표는 심지어 계수기를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물론 정당참관자는 개표 기구 등에 손댈 수 없기 때문에 멈춰 세워 확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이상했던 점은 사전투표함의 투표가 지역투표기보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투표함의 검표는 (주로) 1번 개표구에서만 이뤄졌습니다. 이것이 <더 플랜>이 지적한 맨 처음의 이상한 개표 결과가 발생한 이유입니다. 이래도 선관위의 투·개표 절차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민의 대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잘못된 중앙선관위의 선거 규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4.0 | 0.00 EV | 24.0mm | ISO-200 | 2017:05:17 18:14:28


42 |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초청 강연회(5.17) 

서울피플퍼스트 창립에 따른 최초의 강연회인 이번 강연회는 UN장애위원회 로버트 마틴 위원과 PF-NZ의 분들을 모시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로버트 마틴 위원이 ASC, ID, LD를 LD로 통합해야 한다는 근거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폐성 장애 소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가 되는 만큼 향후 다시 질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320 | 2017:05:25 14:53:46


43 | 국토교통기술대전 · 한국철도학회 학술대회 (5.25)

급행/특급 도입에 앞서 이뤄진 학술대회로서 의의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기술대전도 국토가 좀 더 강조되는 측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교통 내용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어느 규모로 이뤄질지 궁금하네요(웃음)


SM-G930L | 4.2mm | 2017:05:28 17:18:40


44 | 플레이엑스포 (5.27)

국토교통기술대전 옆에서 하고 있었던 행산데, 주일 예배가 일찍 이뤄진지라 우연히 아무 생각도 안하고 보고 가야하지 하고 갔다가 코사모를 만났네요. 사진기를 가져오지 하는 생각이 든 행사였습니다.


SM-G930L | 1/120sec | F/1.7 | 0.00 EV | 4.2mm | ISO-50 | 2017:05:30 19:40:55


45 | ○○ 총무님 별세

○○연회 총무와 본부 ○○국 총무를 역임하신 ○○○ 총무님이 돌아가셨다는 황망한 소식을 듣고 잠시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총무님과는 저희 교회 청년국이 선교사수련원과 함께 피지를 갔을 때 같이 간 적이 있어서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없고 교계의 내로라하는 분만 계셔서 돈만 내고 기도만 하고 곧바로 장례식장을 나왔습니다.


Canon EOS 650D | 1/250sec | F/10.0 | 0.00 EV | 34.0mm | ISO-100 | 2017:05:31 15:04:05


46 | 서울교통공사 출범 (5.31)

서울교통공사 출범식을 제대로 취재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3대노조 통합은 결국 결렬되었습니다만, 서울교통공사는 향후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Canon EOS 650D | 1/200sec | F/8.0 | 0.00 EV | 18.0mm | ISO-100 | 2017:06:10 18:10:16


47 | 경의선 공유지 축제

평소에 보기 힘든 분들이 많이 방문하셨으나, 단편선님의 공연은 늦게 도착한 관계로 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Canon EOS 650D | 1/30sec | F/3.5 | 0.00 EV | 18.0mm | ISO-500 | 2017:06:14 11:31:26


48 | 2017 부산국제철도기술전 (6.13)

부산국제철도기술전에는 회사 부스 직원으로 방문, 전일 일정을 다 취재했습니다. 좋은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날 행사는 문재인 출범 이후 강호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공개행사가 되었습니다. 강 장관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Canon EOS 650D | 1/40sec | F/5.0 | 0.00 EV | 30.0mm | ISO-800 | 2017:06:15 12:35:44


49 | 글로벌 스마트철도 컨퍼런스 

철도기술전과 같이 이뤄진 스마트철도 컨퍼런스입니다. 특정 문제로 이틀 동안의 행사를 다 보지 못했지만, HTT사의 더크 에어본 사장 등 다양한 고스펙 분들이 와주셔서 좋은 공부가 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후반기에 있었던 한-불 미래철도 컨퍼런스와 함께 철도 지식을 함유해 준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SM-G930L | 1/60sec | F/1.7 | 0.00 EV | 4.2mm | ISO-250 | 2017:06:15 17:21:16


50 | 해운대 오반장

가서 했던 저녁식사 중 하나입니다.


그럼 티스토리의 한계상 나머지 50개의 사진은 다음 포스팅에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51~ 100번 보기 ]







Trackback : 0 Comment : 0
2017.12.27 22:24

서브컬처의 종말


(ⓒ2000, earpile, 이 사진의 허가 없는 사용을 금지함.)


한국의 서브컬처는 서브컬처가 아니다

최근 서브컬처가 언론의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하위문화로 익히 알려져 있고, 서브컬쳐라는 철자를 사용하기도 하는 서브컬처(subculture)는 본디 햅디지(D. Hebdige)나 스튜어트(J. Stuart)를 비롯한 영국 문화연구자들에 의해 제안된 개념으로, 한 국가의 소수 민족이나, 특정 젊은이 집단들이 일반 대중문화가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의상, 단어, 라이프스타일,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 나가는 방식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 단어의 사용은 2000년대부터는 분위기가 바뀌어, 일본 문화콘텐츠에서 비롯된 만화-애니메이션계 문화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문화를 전적으로 의미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그 이유는 국내 ‘하위문화 연구’들의 경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도한 주입식 교육과 야간타율학습 등에 의해 청소년들의 자율성과 자유시간이 적고, 청소년들이 벌 수 있는 돈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야간 시간대에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조직적인 문화를 형성하기는 어려워진 반면, 동인지나 코스프레 등의 문화들이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 문화로 등장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판단은 대안문화들로 구성된 새로운 문화향유 방식을 하위문화로 호칭하는 것을 대세로 만들었고, 결국은 문화의 향유자들이 이 단어를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메타문화 전반을 ‘서브컬처’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서브컬처’라는 개념은 원래 영국 문화연구가 형성한 하위문화의 개념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헵디지의 저서인 <하위문화>(헵디지, 1998)는 하위문화의 역사를 1976년의 무더웠던 영국의 여름, 그리고 그 여름 끝자락에 있었던 흑인과 경찰의 싸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41-42). 헵디지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뿌리가 불분명한 펑크 문화가 ‘묵시록적인 여름 기간’에 음반시장에 데뷔할 수 있었다(:42). 이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온 아프리카의 자손들, 특히 자메이카에서 온 이민자들은 성경과 에티오피아의 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에 대한 신앙을 결합한 라스타파리rastafari 신앙에 기반해 아프리카적인 ‘사악한 게릴라 스타일’(:66-67)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백인들, 특히 노동자 계층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식과 정숙함을 가르치는 학교에 대해서는 반항하는 모습을 공공연히 드러냈고(윌리스, 2004), 테드족teds, 힙스터족hipsters, 트래드족trads, 모드족mods 등의 패거리(헵디지, 1998:70-81)를 통해서 집단적인 소속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하위집단들에는 애초에 집단 구성원들과 다른 나이나 민족, 배경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했고, 가능하더라도 주변의 같은 나이대의 여성과 같은 예외적인 사례만이 보고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서브컬처’의 특징

이러한 하위문화와 달리, 현재의 ‘서브컬처’에는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로, ‘서브컬처’의 구성원을 구별하는 기준이 기존 하위문화의 기준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역이나 젠더, 소속 계층 등 로컬리티에 기반한 하위문화의 입문 기준은 콘텐츠나 특정 대상에 대한 선호와 공감, 그리고 참여 정도라는 비가시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서브컬처’는 더 이상 청소년의 전유물이나, 남성과 여성만의 문화가 아니다. 심지어 같은 ‘서브컬처’의 구성 콘텐츠 등에 공감하고 모임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한다면, 40대 아저씨도, 80대 어르신도 그 문화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서브컬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비슷한 사례로 아이돌 문화의 사례도 참조할만하다. 2015년 MBC가 방영한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별바라기>에는 90년대 활동을 시작한 스타를 십여 년 넘게 계속해서 쫓아다니는 팬들이 다수 등장했으며, 심지어 일본 유수 대학교의 교수도 한 가수의 팬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는 대학교수도 이 방송에 출연한 바가 있다.

  둘째로, 하위문화를 구별하던 기존의 구성요소들(예를 들어 의상, 언어, 가치관의 차이, 그리고 반항도)가 ‘서브컬처’를 설명하는 변별 요소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한다. 물론 ‘서브컬처’ 중에서 하위문화의 구성요소로 보이는 문화적 특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특성들을 기반으로 ‘서브컬처’가 하위문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들 ‘서브컬처’ 구성원들이 왜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새로운 의상을 입지 않거나, 일상적인 삶을 벗어난 일탈 행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지, ‘서브컬처’ 구성원의 연령대가 갈수록 넓어져 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서브컬처’는 근대사회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존 하위문화와 달리 근대 사회의 종말을 증언하는 증거이다. 인류 문화의 초기에는 가족, 친족, 이웃 관계에 의해 구성된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가 주로 사회와 문화의 기반이 되었고, 산업시대에 들어서 회사나 정당 같이 이익이나 정치 가치에 의해 구성된 게젤샤프트(이익사회)가 지역간의 교류를 확산시켰다면, 이제 우리는 문화콘텐츠나 인터넷 등의 새로운 가치가 지역을 넘은 새로운 교류와 함께 문화산업과 정책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16년 6월 발표된 ‘포켓몬 고’를 가장 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포켓몬 고’는 대한민국에서 원래 실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속초에서 ‘포켓몬 고’의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속초시는 아직 휴가철이 되지 않았는데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결과, ‘포켓몬 고’를 플레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속초시로 몰리면서 속초로 가는 버스표가 전부 동나고, 당일치기로 속초로 향하는 전세관광버스 상품이 생겼다. 포켓몬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폰을 이동시켜주는 아르바이트도 등장했다.

  속초시 또한 핸드폰 충전소 및 무료 와이파이, 포켓몬 고 체육관을 소개하는 무료 지도를 인터넷으로 소개하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포켓몬 붐에 대응했다. 이러한 붐은 그 정도만 달라졌다 뿐이지 미디어의 관심에서 멀어진 2016년 10월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식 오픈도 되지 않은 게임 콘텐츠 하나가 지역활성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포켓몬 고’만이 이러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있기 전부터 ‘서브컬처’ 행사들은 ‘서브컬처’ 팬들의 이동과 결집을 촉진해 왔다. 다양한 콘텐츠를 좋아하기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심지어 남부 지방에서부터 한 장소에 모이는 많은 사람과,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작고 큰 ‘서브컬처’ 행사들은 문화예술 바깥에서 이뤄지는 문화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새로운 문화는 번성하고 있다

‘서브컬처’에서 쓰이는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이미 스며들어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브컬처 팬들을 부르는 명칭은 오타쿠(お宅)을 한국어화한 ‘오덕후’, ‘오덕’, ‘씹덕’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방영된 ‘오덕페이트’ 이진규님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미디어 노출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코스프레하다’는 단어를 정치인의 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성지순례’, 니코니코니, 일코, 덕질 등의 단어 또한 한국인의 일상에서 쉽게 회자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데프콘씨의 <에반게리온> 사랑은 이미 유명 TV 예능 <나 혼자 산다>을 통해 ‘덕밍아웃’된 상태고, 코스어 출신 서유리(로즈나비) 성우는 <세터데이 나잇 코리아>(SNL Korea)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활약하며 대중 연예인으로 자리잡았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약하는 씬님 또한 유명 코스어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시사iN에서는 잘못된 의미에 기반해 구성되기는 했지만 중림동 새우젓 팀을 구성해서 다양한 취미문화의 모습을 설명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고, 얼마전에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정용인 기자의 <언더그라운드.넷>또한 웹컬처 기반의 소문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이제 청소년 문화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 문화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는 ‘서브컬처’는 따라서 더 이상 하위문화라고 불려질 수 없다. 서브컬처나 하위문화, 오타쿠 문화 등 기존에 이 문화를 부르던 이름들이 문화향유자들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쓰여지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이 문화는 새로운 명명을 가지고 분류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이 문화의 새 이름으로 웹컬처를 제안한다.

  참고로, 국내 서브컬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웹컬처 이외에도 네오컬처(나 신문화), 동호문화 등의 새로운 제안이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브컬처’가 기존의 로컬리티를 벗어난 트랜스로컬리티에 기반한 문화라는 점에서, 웹컬처만큼 이 문화의 본질을 표현한 문화는 없다고 생각된다.

  한편, 최근 성우계와 웹툰계 등 통상적인 웹컬처 분야에서 젠더 대결이 남성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다시 언급2016년 김자연 성우 탄압 사건은 한국의 창조산업을 왜곡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 사태 와중에 ‘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제안된 적이 있었다. 이 협동조합은 새로운 웹툰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비상식적인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작가를 위한 정기적인 SNS 인성 및 홍보 교육 및 시사 교육’(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 2016)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며,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비합리적으로 제약하고자 하는 행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되새긴 바, 이들이 서브컬처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은, 서브컬처의 종말이 이미 이르렀으며, 서브컬처가 경계적 상황을 벗어나 과경계적(transborder) 상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웹컬처로 재편되고 있는 현상이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161124 공개, 171227 일부 개정)


참고문헌

윌리스(2004), 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이매진. 원전: Willis(1981), Learning to Labour : How working class kids get working class job, Columbia University Press.
헵디지(1998), 서브컬처: 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원전: Hebdige(1979),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 Routledge.
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2016), "협동조합 구조-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 2016. 11. 24. 확인. http://modakbul.net/koscop/coop


Trackback : 0 Comment : 0
2017.12.23 02:51

경강고속선 일반 시각표 (2017. 12. 22~2018. 1. 25, 2018. 3. 23~)


Canon EOS 800D | 1/125sec | F/5.0 | 0.00 EV | 18.0mm | ISO-200 | 2017:12:21 09:43:52


여러분 안녕하세요! 드디어 우리나라에 고속전용선과 준고속선을 이용한 네번째 고속철도, 일반 선로를 이용해서는 여섯번째 고속철도인 경강고속선이 22일 운행을 시작했습니다.


KTX-산천급의 열차 KTX-평창을 이용해 운용되는 경강고속선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노선인 만큼, 동계올림픽 기간 그 사용 숫자가 매우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시각표는 일단 3월 23일 시즌부터 사용될 열차 시각표가 공개 됐는데요, 크게 패턴이 4개로 나뉩니다.

A패턴 - 평상시 시각표 (2017. 12. 22~2018. 1. 25,  2018. 3. 23일 개정)
B패턴 - 준비기(1.26~1.31), 동계 패럴림픽 기간 (3.1~3.22)
C패턴 - 대회 준비-개막식 (2.1~2.9, C1패턴), 폐막식-사이기(2.25~2.28, C2 패턴) 
D패턴 - 대회 시기(2.10~2.24)

일단 불편하고 지나치게 넓은 공식 시각표를 바꿔, 여러분들이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A패턴의 시각표를 만들었습니다. A패턴의 시기에는 열차가 서울역에서 주로 출발하며, 특히 월-목에도 다니는 일반열차는 하행이 서울역에서 매시 정각 1분(청량리역에서 22분)에 출발한다는 특징이 있고요, 상행의 경우에는 모든 정규열차가 강릉에서 30분, 비정규열차는 강릉에서 정시에 출발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당히 알기 쉬운 패턴으로 되어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머지 패턴의 시각표를 입력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입력하는 대로 나머지 파일도 글을 올리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인천공항에서 경강선까지 직결하는 KTX는 1월 26일부터 3월 22일까지만 운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경강선KTX, KTX-평창은 앞으로 우리의 생활을 전면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특히 차가 없다면 강릉에 가기 힘든 상황을 바꾸고 강릉에 보다 더 가기 쉽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울역에서 상3선에 진입해 서울~용산간 단선으로 운행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앞으로 장기적으로 개선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답을 찾기는 힘들겠지만, 개량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될 서울~용산간 운행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또한 이미 건설이 완료되어 있는 정동진~강릉 사이도 빨리 정상화해 강릉역이 영동·동해선의 철도교통 허브로 거듭나기를 바라봅니다.


Trackback : 0 Comment : 0
2017.11.15 04:44

'울려라! 유포니엄' 극장판 - 유포늄은 나를 위해 운다



1. 우선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역시나 언어 관련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목인 '울려라! 유포니엄'에서 주인공이 연주하는 악기의 이름인 Euphonium 말인데, 역시나 이 단어의 표기가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국내악기에서 쓰이는 통용표기는 유포늄인 반면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유포니움, 그리고 공식 수입사인 애니플러스에서 공식적으로 들고나온 단어인 '유포니엄'까지… 개인적으로는 통용표기를 취해서 '유포늄' 쪽을 선호하지만,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이 글에 한해서 공식 제목에 들어가는 Euphonium의 표기로는 '유포니엄'을 선택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의 번역으로 <울려라! 유포늄>을 선택한다는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2. 만화나 애니를 원전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에는 두가지 테크가 있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정리해서 다시 극장용으로 엮어서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쪽, 나머지 하나는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새로운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만드는 쪽이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정리해서 하나의 극장판으로 만드는 쪽은 아무래도 원화나 작화를 다시 하지 않아도 되고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편집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제작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점이 장점이다, 애니메이션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내용을 다시 보는게 어떤 의미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를 접게 만드는 고역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개봉한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1차 극장판은 맨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애니메이션 팬들이 모두 본 내용의 반복에 지나지 않아 결과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케이온!〉이나 〈러브라이브!〉 극장판은 애니메이션과 독립된, 애니메이션의 연장선상에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제시해 결과적으로는 팬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노선의 경우 많은 팬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므로 재구매를 하지 않는 이상 애니메이션의 제작비용을 회수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역시나 제작인력이 충분한 경우에나 가능한 이야기라 여러 의미로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

3. 이런 시점에서 〈울려라! 유포니엄〉은 의외로 전자를 선택했다. ‘의외’로 느껴지지만, 제작에 이르게 된 콘텍스트까지 같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우선 극장판 제작을 고려할 시, TVA 2기의 제작이 결정됐다. 이 상태에서 극장판을 위한 신을 크게 추가하거나, 인력을 크게 확충할 여력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거나, 이야기를 빠르게 편집할 경우에는 역시나 이야기의 재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극장판은 1기 사이와 2기 사이에 들어가 애니메이션 팬덤들의 관심을 자극해 2기에서도 팬들의 높은 시청이나 구매를 자극하기 위한 예정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자원을 투자할 수 없었다. 또한 〈케이온!〉이나 〈러브라이브!〉같이 TVA 제작이 끝난 상태에서 이야기를 끌기 위한 작품도 아니다. 이러한 맥락들이 〈울려라! 유포니엄〉이 이러한 형태로 제작되게 된 이유이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4. 그렇다면 이러한 전략이 팬덤들이나, 아직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지에 대한 평가인데, TVA를 전혀 보지 않았던 내 입장에서 평가해보면, 재미있었다. 무엇이 재미있었냐면,

1) 편집 리듬감. 기존의 TVA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다. '총집편 형태의 TVA'는 분명히 이야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이라고 해야 하나, 문제라고 해야 하나 하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특히 기존 팬덤에게는 재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2) 그래서 TVA에서만 제공가능한 콘텐츠를 분명히 제공해 차별성을 두었다. 극중 등장한 '라이딘' 신은 애니메이션에서와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의 러닝타임을 배분했다. 마찬가지로 예선에서 연주하는 곡이 된 〈초승달의 춤〉이나 〈프로방스의 바람〉 또한 TVA보다 연주 시간을 길게 했다. TV에서 체험할 수 없는 내용을 극장판에서 새롭게 접할 수 있다는 감각이 주어진 것이 결국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3) 클래식이라는 소재. 특히 유포늄이라는 낯설지만, 중이병이니 양판소 세계급의 거리를 둔 장르와 다른 정상적인 현실 속 정상적인 악기를 가지고 온 것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쉬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직까지도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만, 클래식 악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문화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모에요소’에 의해 과장된 캐릭터들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일반 스포츠 만화에도 존재하는 주인공의 장기나 특기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애니메이션 장르에 낯선 이에게는 쉽게 접근하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5. 마지막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자기이입에 대한 측면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3자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현상이나, 주인공의 의지를 보여주는데 머문다. 이와 달리, 〈울려라! 유포니엄〉은 주인공 쿠미코의 내면 서술에 집중하고 있다. 북우지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왜 굳이 취주악부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는지, 더군다나 저음악기를 왜 불고 싶지 않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유포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타키 선생을 만나면서 유포늄을 ‘잘하게 되고 싶ㅇ’ㅓ졌는지, 왜 레이나를 다시 만나게 됐는지… 이 모든 것들을 납득시키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하는 애니메이션. 이것이 이 영화가 다른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게 만든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일본 내 취주악부 내에서 유포늄에 대한 평가가 급변해, ‘울면서 맡아야 할 정도’로 피하던 악기가 ‘동경하는 악기’로 바뀌었다는 보도가 나온 바가 있다(쿄토신문, 2017. 8. 18). 또한 이후 유포니엄을 주제로 한 콘서트가 팬덤에 의해서 이어지는 등의 사례도 보고돼,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성지순례 사례와 다른 매커니즘을 통해 개인의 감성에 다가가 움직임을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애니메이션 속에서 쿠미코가 울리는 유포늄은 타키 선생이나 레이나, 쿠미코, 취주악부만을 위해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위해 우는 것이다. (160901 작성 시작, 171115 완성)


Trackback : 0 Comment : 0
2017.10.31 23:07

95개 조항 500주년 기념문



95개 조항 500주년 기념문


전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를 믿는 이에게 “회개하라!”, 즉 “전향하라!” 하신 것은, 믿는 이들의 삶을 온전히 바꿔 하나님 나라를 하늘과 땅에서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소망이다(마 4:17).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어주셨으므로 나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마 28:19)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엡 4:23) 성령님 안에서 주님의 제자가 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한다는 진리를 믿는 가운데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는 이 진리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지, 이 진리에 무엇을 더하여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들은 복음에 우파 이데올로기를 더해 사회적 개혁 성향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가르치고, 그런 이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있다.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문제가 아닌 교회 내부의 정치적 이슈로 가나안 성도가 되어 교회를 떠날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현재의 상황이 그리스도를 믿은 데서 발생하는 당연한 ‘고난’인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더욱 위기에 올리고 있는 한국교회를 돌아보며, 개인의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함이 마땅한 줄로 알아, 이와 같이 기념문을 기록해 둔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세벨의 영 : 보수 이데올로기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유일한 구속자이자 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회가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믿는 것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며, 이를 유도하는 공동체 또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보수 이데올로기를 믿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교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보수 이데올로기를 옹호해 왔으며, 때로는 일반인이 보기에도 비인륜적인 결정에도 거리낌 없이 지지해 왔다. 예를 들어 4‧3 제주항쟁에서 당시 한국교회 청년들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은 멸공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을 공산주의자로 조작하는 가해자의 최전선에 섰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교회의 죄를 사과하는 개교회나 교단 차원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더군다나 최근 10여 년 동안 교회 강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의 자유주의자들을 종북좌파로 호칭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뢰자계 집단과 함께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많은 교회 내 청장년들이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시험당해 교회를 떠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잃어버린 양들이 쉽게 전도만 하면 돌아오리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 이데올로기가 내재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교회 내 권위자가 목회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자신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을 막아준다는 데 있다. 성경적 근거로는 이미 출교되거나 치리되어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죄를 드러냈을 때 그 사람을 오히려 회중에서 쫓아내 자신의 자리를 모면하는 사례가 이미 한 두 번이 아니고, 이미 교회 치리체계와 사법체계마저도 이들을 자정하는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촛불혁명에서 한국교회의 대다수는 분명한 상황 속에 침묵하거나 도리어 분명한 잘못을 한 박근혜를 교회의 이름으로 변명함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다음 세대’의 절대다수가 진보‧중도 성향을 가지고 자유당에 반대하고 있지만,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극우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교회 구성원들만이 교회의 주축이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멀어진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개정)라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대다수 회중은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세상문화와 익숙한 사람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회중에 들어갈 수 없다는 보이지 않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말씀은 분명히 사도 바울의 다음 선언과 배치되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9, 개정)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마 23:13, 새번역) 우리는 바리새파를 지적하며 그들과 멀리 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늘나라의 문을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닫아두고자 하는 존재는 아닌지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우리의 이웃이라고 지적하신다(눅 10:36-37). 마찬가지로 내 공동체, 내 가족만이 아닌 나와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줄 알아야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다(마 5:9). 그러므로 교회에 들어오는 모든 이가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느낄 수 있도록 교회 공동체를 운영하고, 혹시라도 누구라도 소외시켜 하나님 앞에서 책받지 않도록(마 18:10) 한국교회는 지금부터라도 궁리해야 할 것이다.

이단과 반지성주의, 가스라이팅 : 질문의 금지
  한국교회에서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이성과 감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현재의 세태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은 당시의 세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과 억울한 자, 눌림 받는 빛이 없는 자들의 현실을 무시하고 향락과 낭비로 삶을 살아온 당시 지도자들의 부정의와 우상숭배를 고발했으며,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올바른 통치를 위한 회개를 부르짖었다. 예수님도 이러한 선지자들의 영성을 본받아 성전 앞 장사판을 두 번이나 뒤엎으시고, 그 당시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고 있던 바리새인들에게 매우 심각하게 화를 선포하시며 그들과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질문하지 못할 정도로(마 22:46)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갖춘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셨다.

  이런 예수님을 따라 교회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리스도인, 특히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성경과 성전, 이성을 하나님을 믿고 이해하는 주요 판단기준이라고 받아들인다(감리회 교리와 장정, 1편 2장 2절). 그러나 실제 한국교회에서 일정 ‘선’을 넘어가는 믿음과 교회에 대한 개인의 이성적 질문과 논의는 금단의 영역에 속하며, 교회 구성원들은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가 있더라도 선을 넘는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엄격한 선 안에서 살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반지성주의는 이단이 성행하는 현재 세태와 겹쳐 생각할 때 한국교회가 이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만든다.

  이단 사이비 종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교리에 대한 의문의 금지다. 신천지던, 하나님의 교회건, 여호와의 증인이건 사이비 이단 집단의 지도부는 자신들의 교리에 대한 자그마한 비판이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러한 비판과 의문이 어느 수준 이상에 이를 경우 지도부의 구성원이라도 아낌없이 내쫓는다. ‘판을 깨자는 거냐?’(이만희)라는 질문이 그 의미를 잘 설명해준다. 교리에 대한 의문과 문제점에 대해 하나라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교리는 한 순간에 멸망해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믿음이 그들보다 못한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현대 사회인들 뿐만이 아니라 믿는이들의 질문에 능히 대답하지 못함으로서 이단과의 차이점을 능히 설명해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기독교 변증은 교회 전도를 위해 필요한 특수한 기술이 되었을 뿐이며, 세상의 전문 지식은 교회의 체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배설물’(빌 3:8)내지 적그리스도의 무기로 취급당하며, 신학은 목회자를 양성하고 전도를 돕기 위한 일종의 기술이 되어 버렸다.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마땅히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갖는 질문은 교회 성도들끼리도 서로 들추어내기 어려운, 대나무숲의 메아리가 되었을 뿐이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매커니즘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가스라이팅이다. 위키백과에서는 가스라이팅을 ‘지속적 부정, 상황 조작, 모순화와 거짓말을 통해, 타인이나 특정 집단 구성원들에게 의심의 싹을 심어, 그들이 자신이 가진 기억, 감각, 신념, 그리고 분별력에 대해 의심하도록 해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조작 형태’라고 정의하고 있다(영어+한국어에서 정리). 

  문제는 한국교회 내 가스라이팅이 복음과 관계없는 비본질적인 영역에서 쓰인다는 데 있다. 한때 한국교회 내에서 컴퓨터 공학을 ‘사탄의 학문’으로 부르거나, 드럼을 ‘마귀의 악기’로 부르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밴드 형태의 경배와 찬양을 하나님과 동떨어진 것으로 주장하는 이단들이나 극우주의자들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최근에도 가치중립적인 도구들이 ‘문화’나 ‘사탄의 도구’라는 이름으로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으로 호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이는 해당 문화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믿음에서 끌어내리거나 이중 믿음을 가지도록 하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이러한 결과가 복음의 진리와 섞여 있는 데에서 발생한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가운데 사는 것이라’(개정)라고 고백한다. ‘예수와 함께 내가 죽고, 예수와 함께 내가 사는’ 자아의 죽음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자아의 죽음은 내 교회만, 내 공동체만, 내 교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고, 동시에 교회라는 몸 전체를 위해 부르심 받았다(엡 1:23).

  복음에 있어서 비본질을 분별하는 현재의 기준은 우리의 양심 속에 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고전 11:13)라고 분명히 말씀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그 본성을 통해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고,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어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알아 예배에서 미사포를 쓰지 않는다. 머리에 대한 판단이 본성이 아닌 문화와 사회 규범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회와 문화적 차이를 배려하신 말씀의 성육신을 통해 지금도 우리에게 일하고 계신다. 

  우리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추구한다(엡 4:13). 그러나 아는 것이 믿는 것에 분명히 배치되는데도 계속해서 아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비본질적인 믿음을 구실로 아는 것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 모두 올바르지 않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은 자아에 대한 가스라이팅이 아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웃과 세상, 그리고 교회를 섬길 때 이루어진다.

  한국교회에서 다양한 질문과 비판이 금지되는 현상은 참 선지자이시자 문제제기자의 삶을 살아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 이성과 감성을 결합해 지성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우리에게 학문과 문화를 발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이성적 판단과 편견을 언제라도 뛰어넘는 명령을 하실 수 있는 바람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헌신 : 세상과의 분리, 계량화, 사랑의 소멸
  한편, 이러한 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나 가스라이팅은, 과도한 헌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한국교회는 과도한 헌신을 요구하는 교회이다. 한국교회에서 믿음이 좋은 여부는 그 사람의 삶에서의 열매가 아닌 교회 예배 출석여부로 판가름난다. 한국교회에서 충성되이 헌신한다고 판단되는 성도는 주일 새벽 일찍이 일어나 주일 새벽 예배 이후 본예배를 드리며 봉사에 나서고, 오후에는 오후 예배 후 노방전도에 나서고, 저녁에는 저녁예배를 드리고 나서야 한숨 돌리며 집에 들어가 쉴 수 있다. 물론 교회에 따라 매일 새벽예배나 저녁예배, 수요예배나 금요예배가 기본인 교회가 많으며, 토요일에도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교회로 출근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이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세상 구성원들과 분리됨을 통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을 손상당한다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와 자주 볼수록 세상 사람들과의 접촉 기회는 줄어든다. 당연히 세상과 공감할 기회 또한 줄어든다. 따라서 여호와께 성결한다는 이유로 최종 명령인 영혼구원을 위한 접촉과 모색에는 소홀해진다. 이러한 세상과의 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영혼 구원과 다음세대 양성이라는 당면 과제와는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구원받아야 하는 성도들이 교회의 모습을 보고 교회와 거리를 두는 것은 당연해 재론할 것도 없다.

  또한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지 않은 빡빡한 스케줄을 따라갈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따라서 한국교회에서는 스케줄을 따라잡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능력자와 비능력자가 갈린다. 교회에 충성봉사하면서도 사회에서 많은 돈을 벌며 교회에 많은 재정을 버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 받은 성도로서 칭찬받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교회 구석에서 평신도이자 직분자로서 순종하기를 요구받는다. 이러한 교회 내 차이두기는 많은 지적에서 나타나듯이 사도 야고보의 간곡한 지적을 ‘씹어먹는’ 행동이기도 하다(약 2:2-).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교회에 참여하는 것이지, 교회에서의 인정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헌신은 출석부나 헌금 현황 등을 통해 너무나 쉽게 계량화된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교회에서 얻어지는 열매가 어느새 교회 출석 횟수나 헌금 액수, 십일조 여부로 치환되는 매우 슬픈 시대를 살고 있다. 성령의 열매는 분명히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 온유와 절제인데(갈 5:22-23), 교회의 열매는 전도수, 교회 봉사 직분의 수 등 계측 가능한 헌신의 양으로만 측정된다. 교회의 직분부터 시작해서 성전헌금, 목적헌금에 헌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자발적인 헌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지만, 가스라이팅과 분위기 조성을 통한 강제적인 헌신은 교회 구성원들의 삶을 파괴하고 상처만 남길 뿐이다.

  이러한 과도한 헌신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분리할 뿐만이 아니라, 분명히 동일한 구원받은 이를 나누어 차별하는 비성경적인 행동이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 한국교회에서 사랑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개인이 빡빡한 교회 스케줄 속을 따라가다 보니 영혼이 메말라가고, 공동체 속에서 사랑이 없어 셀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한국교회에서 많은 구성원들과 구도자들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얻지 못해 교회를 떠나가는 현상은 이제 가나안 성도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됐다. 길을 잃은 양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사이 교회는 변화의 요구를 분명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반 가톨릭주의와 반 은사주의
  한편 종교개혁 500주년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큰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교회는 가톨릭과 개신교, 성공회가 서로 대화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어떻게라도 회복해보고자 노력하는데, 한국교회는 이를 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지나친 반가톨릭주의를 가진 KJVism 등의 잘못된 교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반가톨릭주의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가톨릭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의 근본적인 이면에는 가톨릭에 대한 올바른 비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전례에 보다 더 기반한 예배를 드리는 성공회와 루터회는 분명한 개신교 분류에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주교가 있고, 성찬례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 개신교인들이 백안시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이러한 오해는 분명히 한국교회에 의해 지정된 이단(예를 들어 KJVism과 다락방)들에 의해 보다 더 강화되었고, 일부 목회자들과 신도들은 이런 오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한국교회의 결집을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2013년 있었던 WCC 총회에 보수 개신교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이단과 손을 잡은 행위로서, 분명히 지혜롭지 못한 한국교회의 수치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직후 예수님의 죽으시기 전 하신 기도에 근거되어 있다(요 17:21-22).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들이 자신의 다양성을 통해 함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노력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물론 가톨릭교회의 잘못에 대한 비판과 성전에 대한 비판적인 수용은 적극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와 같은 지도자들을 마귀의 수장으로 그리거나 그들을 구원받아야 할 존재로 여기는 행위는 시정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잘못과 오류를 인정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으로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아울러 이들 교회들의 지도자들 또한 이그러지기는 했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교회 공동체를 목회하는 목회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한편 은사주의에 대한 편견과 차별 또한 언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소위 신사도주의 교회 중에서 극우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교회가 적잖이 있으나, 교회에서 성령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 일부 장로교회들이 (큰믿음교회와 같은 분명한 예외를 제외하고) 무조건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이러한 공격들은 감리회나 하나님의 성회와 같이 그리스도의 온전한 교회를 이루어온 정상적 한국교회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으며, 성령 하나님의 분명한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다. 분명히 존재하는 신유와 방언 등의 은사는 한국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도구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과도한 권위와 이중잣대
  마지막으로 교회의 뿌리 깊은 이중잣대 문제도 짧게나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교회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하게 짚고 문제삼는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추문에 대해서는 ‘은혜스럽지 못하다’며 매우 낮은 치리를 삼고 오히려 그들을 교회 속으로 다시 들여 교회 공동체에 흠집을 더하는 것은 매우 흔한일이 됐다.

  이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목회자에 대한 과도한 권위와 연관되어 있다. 굳이 만인제사장론이니 현대의 목회자에 대한 다수의 비판을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신도 또한 말씀을 해석할 수 있고, 그들 또한 교회를 위한 사역자로서 활동할 수 있을 가능성을 제약하는 현재의 한국교회 체계는 재고되어야 한다. 이미 장로권사호칭제 등의 대안이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부제’ 직분을 ‘집사’로 낮춰 평신도 직분자의 권위를 낮추고, 안수집사, 안수장로제도를 통해 교회에 여러개의 벽을 세우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

  한국교회에서 비판자들을 억누르는 주요 논리중 하나로 ‘대안 없는 비판’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이제 위의 문제점들만을 제기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대안을 제시함으로 한국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선교적 교회의 확대
  각 교회의 부르심이 있기에, 대형교회의 과도한 헌신이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 않고지 한다. 그러나 10년 이내 주류를 이룰 ‘다음세대’가 해당 교회에 들어가 쉽게 적응할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적어지고 있으며, 이미 교회를 갔다 떠나간 다수의 젊은이들은 교회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교회를 적대시하고 있다. 안티개독교 주의자들이나 적극적 무신론자, 또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신도들에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젊은이들과 가나안 성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막는 많은 헌신과 수치적 평가가 필요하지 않은, 쉼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전파할 수 있도록 돕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들이 많이 생겨날 필요가 있다. 이미 이를 위해 움직이는 사역자들을 위해 한국교회는 지지와 함께 새로운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례의 회복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는 말씀전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말씀의 중요성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19세기에나 생긴 매우 특수한 예배 양식을 현대에도 적용함으로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사실이 감안되어야 한다. 

  기존 전례양식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야 하며, 아울러 성찬례의 회복이 시급하다. 특히 그리스도가 친히 정하신 성찬이 예배시간에서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찬양예배에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개신교회는 말씀 시간의 최소 1/4이라도 성찬 시간에 투자해야 하며, 공동성서정과(RCL)의 사용 또한 촉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의 유산인 시간전례의 적용 또한 시도되어야 한다. 물론 시간전례가 QT 운동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고, 복잡한 면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현재 기감에서 공식 매일기도서를 출판했고, 성공회 또한 시간전례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QT와 시간전례를 결합한 새로운 교회 공동체적 접근 또한 바람직하다.

장애인 신자에 대한 차별 철폐
  최근 장애인 신자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교회 회중에 참여하는 장애인 신자는 많지 않으며, 감각장애인의 경우 청각장애인교회나 시각장애인교회 등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발달장애인신자 또한 대형교회의 경우 ‘사랑부’라는 명목으로 정식 예배에 대한 접근권을 제약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그들만의 교회 공동체로 몰아내는 행위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폭력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의사 없이 장애인들만으로 구성된 별도 교회나 회중을 만들어 같은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들은 시설 운영에 앞장서 장애인들을 사회에서 분리하고, 그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양심적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장애인들에게 폭력 피해를 주며, 자립성을 없애는 장애인 수용 시설과 복지관을 즉각 폐쇄하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는데 앞장서 그들도 하나님이 명하신 십일조와 선교, 구제, 감사헌금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죄의 차이를 두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모욕하는 죄가 아닌 죄 중에서 어떤 하나가 다른 것들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말하신 적이 없다(마 12:31-2, 눅 12:10). 또한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는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죄들이 간음한 죄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하셨다(요 8:1-).

  따라서 북한 인권과 이슬람 등에 대해 강조하면서, 그와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이단, 내부 비리와 성추행, 인권침해, 교회정치적 문제를 경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어떤 한 죄에 대해서 두둔하고, 다른 죄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말고, 모든 죄에 대해서 사랑으로 품고 회개를 촉진하던가,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정죄하던가 하라.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개정)이라고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다.

교회의 유익과 하나님의 뜻
  최근 들어 교회의 우파 이데올로기적 유익(?)을 위해서라면 이단이나 정치 세력과도 교회가 협력하는 모습이 다수 발견된다. 앞서 말한 2013년 반 WCC 캠페인에는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판정받은 KJV 교회들과 다락방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한국교회 구성원들이 그들과 함께 함으로 교회의 이단 판정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명령이 다른 유익에 우선할 수 없다. 벨리알과 예수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고후 6:15)을 아는 사람들이, 교회의 유익(?)을 위해 심지어 일간베스트와 함께 행동하는 것은 교회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총회 구조의 개편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든 제일 근원은 성직자와 장로만이 교회들을 다스리는 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총회구조이다. 한국교회는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의사를 처리하면서, 정작 민주주의적 원칙의 근본인 대의민주주의에는 귀를 막고 있다. 현재 교회들이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말씀을 듣지 않고 이것이 누구나 순종할 수 있도록 입증되지 않는 한, 총회나 시노드 등의 참여권이 젊은이, 여성, 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교회 구성원의 대표들에게 개방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를 입증하는 많은 성경의 사례가 있다. 욥기에서 하나님은 엘리후를 들어 욥과 세 친구들보다 나은 지혜를 드러내게 하셨다.(욥 32~37). 예수님은 안식일에 눈먼 이를 고치시고 나서, 눈먼 이를 바리새인들의 궤변을 논박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사도행전에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공의회에 참여해 의견을 제시했다.

  한국교회는 이제 총대원의 대상에 평신도 대표를 추가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성 총대(연회원)의 충분한 수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청년‧청소년 대표를 다수 총대로 선정해 그들이 총회 표결에 참여하게 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총회의 공정성 또한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교회 감독(주교)으로 일한 디모데나 어릴 때부터 쓰임받은 다윗과 다니엘의 이야기는 청소년 비전을 위해 자주 언급되면서, 왜 그들이 교회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가?

사회참여와 에큐메니컬 운동, 국제 교류의 회복
  마지막으로 한국교회는 그동안 사회참여와 교회의 진보 세력에 대한 홀대를 즉각 중단하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교회 공동체에 진보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다양한 장벽이 철거되어야 할 뿐만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잘못이었던 반에큐메니컬 흐름을 회개해야 한다.

  광복 후 한국교회는 수백 개의 교단으로 쪼개졌다. 이 사상 유례가 없는 교회 분리에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하는 세력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은 한국교회의 수치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과 반대되는 육체의 일로 ‘당지음과 분열’을 언급하고(갈 5:20), 육체의 일을 저지른 자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분열은 참된 복음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포장되어 왔다. 우리의 회칠한 무덤을 허물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앞서야 한다.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감리회의 잘못이 매우 크다. 지난 10년 동안 감리회는 신앙의 유산이자 신앙고백인 사회신경을 교인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교권 싸움에 앞장서며 사회와 거리를 두어 왔다. 존 웨슬리 신부(목사)는 당시 성공회가 방기하고 있던 사회적 책임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기에, 자신의 전도구를 벗어나 거리로 나가 그들을 위한 사역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감리회는 그동안 사회운동에 대한 장로‧성결‧침례교의 우파적 이해를 그대로 수용해 왔다. 결국 사회실천과 봉사는 사회복지 분야로 축소되고, 사회를 보다 더 나은 노력으로 바꾸려는 움직임들은 평가절하돼, 가톨릭의 사회교리보다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특히 기감은 광복이래 곧바로 에큐메니컬에 참여해,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 일부 본부급 평신도 단체들마저 WCC 탈퇴를 주창한 것은 감리회의 수치다. 이러한 억지춘향식 주장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오히려 감리회는 웨슬리안 전통과 알미니안 전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교회 내의 진보적 기독교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이 하나님 나라와 이 땅과 세계를 일해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교류가 보다 더 확장되어야 한다. 선교를 위한 교단간 교류나 특정 대형교단간의 뻔한 교류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세계의 교회와 선교단체를 위해 손을 뻗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선교는 이제 그 지역 주민들에게 상처를 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별 교단 선교부는 한국교회의 복사판을 전 세계에 만드는 것이 선교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각자의 문화와 사회에 맞는 성육신화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1984년 서약한 10만 선교사를 다 내보내지 못할 것이 뻔하다면 제대로 된 선교라도 하자.


마지막으로
오늘의 글이 금과옥조인 것이 아니며, 개인의 제안일 뿐이 아니고, 더군다나 다른 이들에게 밟힐 소금처럼 평가될 것이라는 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위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교회에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터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한국 교회는 이제 새로운 개혁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얻은 새 생명과 기쁨은 더 이상 더 많은 한국인에게 전달될 수 없고, 우리는 썩은 소금이 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차별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세대에게 그 책임을 더 이상 떠넘기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자. 우리가 돌이키지 않는 한,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더 이상 많지 않다. 하나님의 재림과 달란트를 낭비한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만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17. 10. 31.
종교개혁 제 500주년을 맞아 아픔과 감사를 안고


Trackback : 0 Comment : 0
2017.05.11 23:51

관서지방 여행을 위한 충실한 읽을거리, <리얼 오사카 교토 ( 쿄토 )>



1. 여행 안내서 시장은 포화상태다. 이미 엔조이나 Just Go, 심지어 같은 다양한 안내서들이 시장에 깔려 있다. 더군다나 여행 정보를 여행 안내서보다는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특히 일본 여행안내서는 나와 같은 중급 이상, 목적지향적 일본 여행자들은 어느 정도 일본어를 알고 있으니,  차라리 인터넷 자료를 찾는게 나을 지경이다.


2. 그런데 기대를 깨고 오랜만에 일본 여행을 제대로 다룬 여행서가 등장했다. 바로 <리얼 오사카 교토>다. 한빛출판네트워크가 고민 끝에 내놓은 이 책, 의외로 볼만하다.


  우선 페이지 수가 732페이지에 달한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2쇄부터는 분책을 했을 정도로 많은 정보다. 그런데 18,000원밖에 안 한다! 가성비가 최고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정도면 국내에서 지금까지 나온 여행서 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담고 있다. 보통 국내 여행 안내서는 300~400페이지, 많더라도 500페이지를 넘지 않고 있다. 짧은 페이지 안에서 일본 출국부터 입국까지를 다뤄야 하니 일반인들이 다니기에 중요한 내용만 담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리얼 오사카 쿄토>는 다르다. 키노사키 온천이나 아마노하시다테, 심지어 번외편으로 와카야마까지 내용을 다 담아낼수 있을 정도다.

   내용 또한 일본 여행경험이 다수 있는 본인으로서도 내용이 잘 만들어졌다고 보일 정도로 검수가 잘 되어 있고, 중요 내용만을 보고 싶은 사람부터 시작해서 자세한 정보를 찾고 싶은 사람들까지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좀 세부로 들어가면 더 제대로 다루어졌으면 하는 부분도 보이기도 한다(토롯코 사가역이 없다던가 쿄토철도박물관이 없다던가 애니메이트/멜론북스/나침반이 같이 들어가 있는 건물을 애니메이트만 적어뒀다던가, 라운드원이 없다던가 등등). 하지만 여행서적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곳에서, 굳이 경쟁 서적이 가장 많은 관서지방을 이렇게까지 다룰 정도로 자세하게 초중급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모두 적어두었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보통의 여행서보다도 두 배 두꺼운 내용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은 것이 한국 출판계의 재앙인 표준표기를 일부나마 벗어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가에서 정한 외래어표기법은 특히 일본어 표기에 있어서 최악인데, 칸사이(관서)가 간사이로 표기되고, 큐-슈-가 규슈로 잘못 표기된 것을 보고 있자면 (생각해보니 외래어 표기법을 제대로 따르자면 구수가 정확하지 않나?) 정말 마음이 답답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번에 <리얼 오사카 쿄토>는 텐노지나 카츠동, 심지어 항상 논란이 되는 금각사(킨가쿠지)나 은각사(긴가쿠지) 등의 표기까지 표준어 표기가 아닌 통용표기를 채택했다. 물론 간사이, 교토, 고베(모두 어두가 ㅋ인 것이 옳다)같이 줄곧 사용되던 표기까지 바꾸지 못한 점은 아쉽기는 하지만, 이들 표기는 현재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내용이니 만큼, 제대로 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3-4일 정도 단기 일정을 다녀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to-do list와 일정표를 여행서 표지에 올려 놨다. 이 또한 다른 여행사에서 다루지 않고 있는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행책의 내용은 의외로 3단계로 나뉘는 만큼, 책을 두 권이 아니라 세 권으로 분권하거나, 1부와 3부를 1권, 나머지 세부 내용을 2권으로 나눠 분권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리얼 오사카 토쿄>는 사실 한빛라이프가 새롭게 보여줄 시도의 1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리얼 상하이> 등의 후속작들이 차례차례 준비되고 있다. 일반적인 오사카 관광을 주로 다루고 있는 있는 책이라는 점이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가성비 최고, 그리고 깊게 살펴보기 위한 책이라는 점에는 손색이 없다. 현재 후속작들은 일본 이외의 지역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리얼 토쿄> <리얼 홋카이도> <리얼 큐슈>등의 후속작등도 나와서 일본 여행 전체를 개괄할 수 있는 여행서 시리즈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얼 오사카 교토 PLUS 고베 나라 (분리형 가이드북) - 10점
황성민.정현미 지음/한빛라이프

(이 글은 한빛출판네트워크 한빛리더스…가 아닌 한빛라이프 '나는 리뷰어다!' 2017년 3-4월 이벤트의 협력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리뷰 작성과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한빛리더스 오프모임을 열어주신 한빛미디어 송관 차장님 이하 한빛라이프의 직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Trackback : 0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