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28 01:40

삼일교회를 떠난, 떠날 형제 자매 여러분들에게


   1. 따지고 보면 저는 이러한 글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 삼일교회의 교회 문 안으로 제 발을 들이기는 커녕, 그 근처 100m 안으로도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아마 제가 반드시 가봐야 할 수 밖에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삼일교회가 저에게 맞는 교회라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삼일교회를 갈 시간에 백주년기념교회에 여러 번 손을 내밀었고, 앞으로도 제가 혹시나 교회에서 쫓겨나더라도 전 삼일교회를 마지막 가능성 중 하나로 고려할 것입니다. 즉 삼일교회와는 연관이 없는 사람이죠. 단지 동일한 것은 그리스도인이고 십자가와 성령으로 '거듭난' 청년층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글을 쓰냐고요? 그건 어쩌다 알게 된 형제 한 명 때문입니다.

   몇 진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그 형제는 삼일교회 사건이 터진 이후로도 상당히 고민하면서 교회를 지켰습니다. 최근에도 목포 사역을 위해 팀장으로 수고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것도 다 헌신하고 지금도 목포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형제와 최근 짧게 채팅을 하다가 그 형제가 '많은 사람들이 나갔다는 것을 요즘 더욱 느끼고 체감중이라'고 한 말이 매우 제 맘에 남았습니다. 그 때 저는 마침 교회에서 저녁 청년예배를 마치고 잠깐 바깥에 나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오신 담임목사님께서 '지금은 상황이 안 되어 보이지만, 한 때 9000명까지 모였던 교회다. 그런 삼일교회를 본받아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맘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2. 삼일교회가 2000년대 한국 청년 사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고, 여러분들이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많은 교회가 삼일교회를 주목했고, 앞으로도 주목할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삼일교회 사역의 중심에 사실상 전병욱 목사님이 계셨고, 그 목사님의 카리스마 때문에 교회가 사실상 유지되어 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사탄이 쥐락펴락해서 그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결과가 성추행 사건이었죠. '안타깝게도', 저는 이 사건을 지은 전병욱 목사님에 대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악에 대해서 싸웠어야 할 목사님이 쓰러졌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이 그렇게 했듯이 좋은 평가를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병욱목사님의 사역이 귀하고, 지금까지 한 사역이 하나님께서 온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제 맘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들어 쓰신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또 영적인 차원에서 인정치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목사님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고, 사안에 따라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삼일교회의 사역은, 특히 새벽기도의 중심 사역, 그리고 청년 동원 사역 모두가 거짓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역자인(물론 미래에도 쓰임받으리라 믿습니다만, 현재는 그렇지 않으시니 이렇게 표현합시다) 전병욱 목사님을 통해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전부 거짓인가요? 그 분이 하신 사역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한국 청년을 일으키신 방법이 맞습니다. 전병욱 목사님이 쓰러졌다고 해서 그것이 거짓이 아닙니다. 다만 지금 그 사건을 통해 사역의 문이 중단되고 막혔을 뿐입니다. 삼일교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원하는 부분을 듣고 그를 통해 돌이키도록 하시도록 베푸시는 기회가 주어졌을 뿐입니다.

   3. 자, 이제 돌아가서, 그럼 여러분들의 교회'였던' 삼일교회와 그 교회에 소속된 '여러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은 그 교회에 왜 가셨습니까? 그 교회에서 왜 신앙생활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저라면 누가 권유하더라도 절대 안 갈 그 교회에, 여러분들은 왜 갔다가 목사님이 쓰러지니까 옳다구나 하고 다른 갈 길로 가시나요? 단순히 교회 사역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그럭저럭 버텨오다가 아, 목사님이 빠지셨으니까 이제 이 쯤에서 교회를 바꾸면 되겠구나고 생각해서? 아니면 '우리 교회'에의 부르심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이지 않아서? 단언해서 말하되, 이건 분명히 아닙니다.

   일반 목사님들이 '교회를 쉽게 옮기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는 이유에는 영적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헌금을 뜯어내어 돈을 더 벌기 위한 주장이라는 안티개독교식의 리딩이 아닙니다. 그 교회의 사역자들을 통해서 오랫동안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 목회자가 바라는 신도상에 다가갈 수 있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지역교회 또한 예수님의 몸의 큰 지체중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한 부분이 강해지고 보다 더 성숙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성숙하고 헌신된 성도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서,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일교회에 문제가 생겼으니 곧바로 삼일교회를 떠나야 한다는 반응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재고할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 생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온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보십시오. 이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옮기시기를 원한다면 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옮기기를 이 시간을 통해서 원하실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앞서서 갈 때가 많습니다.

   4. 하지만 저는 괜히 하나님의 명령을 운운해서, 또는 일반적인 기독교회 목사님들의 생각에 근거해서 삼일교회에 남아있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삼일교회에 남아있기를 추천하는 이유는 그와는 다른 이유입니다.

   첫째로, 현재 삼일교회에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향후 교회 운영체제의 재검토라고 봅니다. 그동안 삼일교회는 20대 중심으로 갔습니다. 새벽기도나 또 다른 모든 것이 20대라서 쉬웠고 가능했죠. 하지만 삼일교회 사역이 시작된지 최소한 10년은 지났고, 현재 처음 들어왔던 20대는 30대가 넘은 집사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진사역은 전적으로 20대 청년 우선적으로 나가 있죠. 여기서 뭔가 달라진 사역에 맞춘 교회사역 구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최소 20년 후면 여러분들이 장년이 되고 초기 멤버 중에서는 장로님들이 선임이 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20대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사역이 가능한 진 체제 사역에 분명히 한계가 올 날이 옵니다. 아무래도 지금이 교회의 체계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 것이 가능한 과도기적 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둘째로, 현재 삼일교회의 가장 약한 점은 평신도 사역보다 목회자에 의한 사역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과 몇몇 리더가 논의해서 사항을 결정하지만 실제로는 목회자 분들이 지시하시면 여러분들이 뛰었고, 그래서 지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21C에는 목회자보다 평신도 사역이 더욱 중요해 질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 자신이 사역의 중심으로 설 날이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목회자 카리스마 중심의 사역이 먹히지 않을 날이 곧 옵니다.(지금도 큰 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이 상당히 비난받고 있지 않습니까.) 늦어도 20년 안에는 옵니다. 그 때 쯤이면 많은 교회가 약해져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평신도 사역자들이 움직여야 할 때가 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먼저 삼일교회를 준비시키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이러한 과도기적 상황에서야 검토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위해 이루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삼일교회 사건이 일어난 것이 당신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상황이라면, 그리고 그 상황에 당신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사실이 심판날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삼일교회 사건이 교회를 위해 열어주신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일교회 성도 한 명, 한 명을 위해 열어주신 시간이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삼일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카이로스적 크로노스 안에서 더욱 깊게 설 수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삼일교회 사건을 보면서, 대조되는 상황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최근 일어난 목동제자교회 사건 말입니다. 똑같이 청년 목회 중심의 교회고 똑같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인데도 불구히고, 교회 리더십의 위기를 가지고 세우는 반응이 서로 다르더라고요. 삼일교회 청년들은 목사님의 상황을 보고 교회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행동할 자유가 있었지만, 목동제자교회는 달랐습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목사님이 교회 재정을 잘못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고 묵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교회가 잘 돌아가나보다 생각하고 지금 이 시간도 청년 목사님의 말씀이 좋으니까, 그리고 교회에서 청년 사역을 밀어주니까 그것만 보고 귀를 닫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삼일교회 사건을 통해 한국 교회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회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더더욱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위기는 교회의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삼일교회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또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붙어계셔야 합니다. 삼일교회가 지금 무너진다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원했던 목표와 사역들이 모두 중단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또 다른 교회와 사역을 찾아 헤메실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다른 교회로 나왔다면, 당신이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또는 가기 싫어 나온 삼일교회로 지금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 변화시켜서 삼일교회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교회가 되게 만드는주역이 되십시오. 이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마지막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 2011, ear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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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21:32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물었다가는 큰일나려나 - 고 옥한흠 목사님의 소천에 즈음하여



 1. 옥한흠 목사님이 오늘 아침 많은 성도들의 중보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는 제자훈련이라는 한국 교회의 성장동력 하나를 만들어 놓으시고 사랑의 교회를 큰 교회로 만들었던 하나님의 종(Servus Dei)이셨다. 그리고 좋은 목사님들을 양성하셨고 성도들도 양성하셨다. 옥한흠 목사님이 그의 후임인 오정현목사님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이끌어 오신 하나의 축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 그런데 나는 왜 옥한흠 목사님을 왜 지금 불러가셨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다. 문득 비슷한 나이대이신 하용조 목사님이 생각난다. 그분은 옥한흠목사님보다도 더 건강하지 못하시고, 아프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계시다. 그리고 다른 목사님들은 더 건강하게 살아계신다. 그런데 왜 지금이어야 했을까.

 이 시점에서 내 머리에 잡히는 생각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사랑의교회 재건축이다.

3. 사랑의 교회 재건축은 그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왜 강남에 있는 교회가, 그것보다 더 비싼 검찰 근처의 장소에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한 많은 논의를 불러왔고, 사람들은 한 교회 예산의 수십 배, 수백 배를 호가하는 2100억이라는 건축비에 놀랐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그 주위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되어서 움직였다. 그것도 불신자가 아닌 믿는 사람들, 특히 복음주의자들에 의한 반대다. 이 반대에 대해서 사랑의 교회가 보여준 움직임은 달랐다. 입을 막기에 바빴다. 오히려 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성도들의 감정을 이용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교회 안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교회 직임을 박탈했다. 교회 건축에 대한 반대 의견에 대해 사랑을 보여주기보다는 무정함으로 대응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 : 1~5, 개역개정)

 하나님께서 혹시 그 죄에 대해서 값을 물으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옥한흠 목사님을 통해 지금 자신들이 짓기 원하는 건물을 짓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를 원하신다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의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교 교회에 말씀하시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하신 그를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내가 너무 이상한건가?

4. 어쨌든 하나님의 계획을 판단할 수 없다. 다른 이유로 부르셨을 가능성이 90% 이상이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곧바로 '이상한 사람'으로 판단을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지라, 그리고 [순종이라는 이유로] 너무 일직선적인 지시와 명령이 이상하게도 환영받는 상황인지라, 더 이상 더 많은 말을 했다가는 나도 그 바람에 휩쓸려 쓸려갈지도 모르니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5. 어쨌든 한번도 옥한흠 목사님을 볼 기회가 없었고, 어떠한 분인지 모르고, 사귀어 본 적도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목사님의 죽음을 마음으로 애도하고 싶다. 그리고 교계를 이끌어오신 하나의 큰 별이 떨어졌다는 것에 대해, 사랑의 교회에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모쪼록 하나님의 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인사드릴 기회가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그 때 즐거운 이야기들을 아주 실컷, 나누기를 원한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물어보려고 하지는 말자. 물었다가는 큰 코 다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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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08:48

모두를 받아들이는 교회를 위하여



  아직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기 전, 오래전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어느 흑인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래서 매주 주일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교회는 백인들을 위한 교회들과 흑인들을 위한 교회가 따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매는, 집을 떠나 도시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가고 싶은데, 그 곳은 백인들이 사는 곳이라 백인 교회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러한 구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가서 백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죠.
  그런데 역시나, 백인 교회에 흑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주위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여기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 여기서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부했죠. 그럼 어디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일까?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주위에 예배당은 이 곳 한 곳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백인교회 사람들은 완강했습니다. 백인교회 사람들은 결국은 그녀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자매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왜 제게는 예배를 드릴 자리가 없느냐고 물었죠. 그 때 예수님이 그 자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거기 들어가서 있을 자리가 없구나."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은 적이 없어서 다시 paraphrase해서 이야기를 다시 적었습니다.)


1. 우리가 가끔씩 설교에서 듣게 되는 이 예화는 우리가 얼마나 사람들을 배척하는지, 또는 배척하지 않노라 하면서도 그러한 마음이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성경을 통하여 지적되어 있습니다. 멀리는 모세오경에서부터 계속해서 가난한 자를 경시하지 말라고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이러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곳은 바로 야고보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장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아예 2절부터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의 예를 들어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9절에는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잘 보여줍니다. (물론 거룩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야 말로 사람들을 배척하는데는 가장 큰 죄를 지운 단체가 아닌가 합니다. 십자군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당시 가톨릭이 이슬람교와 유대인들, 그리고 정교회 사람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성지를 재건하고,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에 의해 일어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결국은 기독교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강한 상처를 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져, 결국은 기독교 Vs. 이슬람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이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모습을, 그리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의 문제를 넘어서서, 당장 교계 신문을 둘러봐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옵니다. 때로는 잘못된 것을 자기 편이라고 감싸주고, 때로는 옳은 것도 자기 편이 아니라고 배척하는 이 모습,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모양이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일례를 들어보려고 해도 너무 많습니다. 최근 감리교 감독회장 사태, (예장 ○○에 의한) 이재철 목사님과 양화진 100주년기념교회 논란, 이단시비, 큰믿음교회 관련 문제, 신사도주의 정죄 문제, 용산사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상반된 평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예를 들어볼 수 있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러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야기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는 글이기 때문에(그리고 나중에도 얼마든지 논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를 피하는 방향으로 가는것이 옳을 듯 합니다.

 3. 몇 개월 전 교회 카페에서 인터넷을 보다, 이명박 정부가 내린 결정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글을 읽고 나서 곧바로 어떤 분이 (직분은 잘 모르겠습니만) 저에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교회 카페에 올리십니까?' 라면서 조심하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고 어이가 없었고, 그 때 사과는 드렸지만 할 말은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

 물론 교회는 정부를 이유없이 비방하거나 공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람 1단원 3과 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정말 경험한 사람은 누구도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이며 체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마음에 담은 채 남의 욕심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거짓을 품은 채 남의 거짓을 참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기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을 정죄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면 가장 먼저 이것부터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남에 대하여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을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의 죄악과 허물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면, 그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죄를 저지르는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우리의 죄를 돌이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 1 ~ 5)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것을 꺼려야 함과 동시에, 남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있어서 큰 과제 중 하나 입니다. 아마 이 조건이 우리의 믿음 - 불신앙과도 연계되어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잠깐 생각해봐야 할 것 중 하나로, 그런데 사회 정의는 어떻게 봐야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면, 사회의 잘못에도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를 누군가가 해하고자 하는데도 그대로 받아줘야 하는 것일까요? 또는, 666이 그리스도인을 탄압해도 봐 줘야 하는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부분들이 (즉 판단과 정의 사이가) 우리가 잘 판별해야 할 문제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것은 우리가 사회 정의에 대해서 합의된 우리의 담론들이나 믿음을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감리교 사회 신경등의 형태로 우리의 믿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상황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믿음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실례로 감리교 본부에서는 대운하 사업과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동일한 김리교 교회들에서는 이를 찬성하고 지지하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위기의 때가 닥쳐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는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5. 돌아가서,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까는 것을 교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을 신뢰하는 믿음이 마치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같이 되어가는 듯 하는듯 해서 입니다. 사회 통념이 다르다고 새신자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우리가 누구를 그리스도깨로 불러올 수 있겠습니까. 하나 안 맞는다고 그걸 주입시키고 그들에게서 우리를 단절시킨다면, 우리가 얻을 열매 또한 '사회에서의 단절'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할 시간에, 교회에서 사람을 내치고 있습니다. 말로는 청소년을 다음세대를 위하여 사역해야 한다고 하지만, '시간 없는' 그들을 이해해주기는 커녕 마치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밖에 없는 것처럼 '협박'합니다. 물론 예배도 중요하고, 헌금도 중요하고, 새벽기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더욱 본질보다 비본질이 중요한 것처럼 호도될 수는 없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 교회들이 회개할 때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요 17:16)로 세상에 존재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존재할 곳은 어느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전에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요 17:11). 부정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복음과 진리 앞에 앞서, 우리가 바리새인들이 되어서 천국 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마 23:13),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개혁합시다. 그래서 모두에게 교회 문을 열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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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03:11

'긍정적인 생각'과 고통받는 어린 양떼

#1.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창 1), 토요일이 되고 주일이 되었다.

 라고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40년 넘게 교회 목사로 섬기시던 감독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일일부흥회를 리드하시고 그 다음날 은퇴하셨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목사님이 방금전에(?) 취임하셨다.

 사실 그것뿐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기대했던 교회 개선의 첫 발자욱을 떼는 것이니만큼, 이건 내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딱딱하고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멀어져 있었던 교회가 가까워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마지막 일일부흥회 설교는 나에게 또다시 어려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일단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주제로 예수님께서 감람나무를 저주하신 텍스트를 소재로 해서 하신 말씀인데, 감독님은 설교중에 대략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다. (정확한 Fact는 아니니 과장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명박 장로 대통령으로 세워 주셔서 감사하다. 지금 미국 쇠고기 논쟁하고 대운하 반대하는데, 실제로 미국 가서 미국 쇠고기 먹어보니까 맛있기만 하더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청계천도 그랬지 않았는가. 시간 지나면 모두가 이명박 대통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2.

 그리고 그 부흥회가 끝나고 난 몇 시간 후, 나는 오마이뉴스를 보았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실시간 시위 중계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한시인데도 시위 참가자들이 흩어지지 않는 모습을,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정상적인 접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끊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연속이었다. 결국엔 나중에는 접속을 포기해 버렸다. 오마이뉴스가 탭체계를 거부하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파폭은 확인 못해서 모르겠다)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6년 만에, 사람들이 청계천을 벗어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의해 청계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 다를까. 우리의 '도우미' 경찰은 '보호'를 명목한 '시위 진압'에 나섰고, 시민들은 그에 반대하면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결국에는 터지는구나.

#3.

 그리고 두시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토익을 보고 한시에 교회에 들어갔다.
 컴퓨터로 체크해보니 37명이나 잡혔다고 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했다.
 하지만 교회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일에 신경틀새도 없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저녁에 이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4.

 오늘 밤은 더 처참하다. 이젠 아예 세자리 숫자까지 그 숫자가 올라갈 기세다. 젊음의 지성이라 불리는 연세대 앞에서 시위가 마구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경찰청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말도 안되는 공권력으로,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수 같지 않은 소수들이 다수 같지 않은 다수들에 의해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특히 '귀족 노조'의 시위 때나 나오는 심각한 때려잡기가 '선량한 시민'들 앞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이정도면 뭐라고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빼고는 아무런 말도 없다. 계속된 집시법의 폐혜는 결국 조직없는 무리들에게까지 이르렀고, 그 피 삯은 예수님처럼 아무 죄 없는 시민들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살아가고 있는 의미 자체가 옅어지게 만든 이 대한민국이라는 존재. 사실 이명박이 당선되기도 전에, 선거날 18시에, 일은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한 사이트에 모여서 대한민국이 망했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 생각들 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이명박 취임 이후 계속해서 휘청대기 시작했다. 어린이와 젊은이의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역시 부자들보다 더 듣기 좋아하시나 보다. 하지만 그 피삯은, 절규하고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에게도 베풀어지고 있다.

#5.

  아무리 하나님의 어린양을 찾고 부르고, 주님,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래서 주님은 거룩하시다고 계속해서 찬양해도, 아마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모두에게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그것은, Again 1907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1-2년 뒤로 시점을 늦추심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Remodeling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다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으로 넘어가서 생각해 보자. 그럼 교회의 '긍정적인 생각'은 현재의 고통받는 어린 양떼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럼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 자체는 좋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것만은 좋지 않다고. 그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지 오웬의 동물농장이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가장 정확한 우화인 동물농장이, 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공감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구조에 있다.

#6.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CEO,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더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왜 이명박에게 있어서는, '어린 양떼'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이명박이 스데반을 핍박하고, 예수를 핍박한 바리새인들 같이, 그 피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 쓸지도 모르겠다.

 저번에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진성고등학교. 결국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에 대해서 더 글을 쓰신 분에 대해서 진성고등학교는 그 분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이 진성고등학교에 보응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사회 구조를 인정하고 오히려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가?

 10대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는건 다 이명박 때문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선진국에는 존재할 수 없는 두발 규제, 핸드폰 검사, 복장 규정, 소지품 검사 및 압수까지는 괜찮았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결국 '죽음의 트라이앵글'만 확인 시키고 끝난 89년생들까지도 아이들은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게 변한것이, 아시다시피 유명한 429 교육자율화 조치다. 결국 아이들을 때리고 굶주리게 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 '종합선물세트', 거기다가 쇠고기에 학교급식이 연계되자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명박은 여기에 대해서 "놀 공간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다"라면서 농담식으로 애들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몇주간 참혹하게 커져 나갔다.

 결국 이리들에 의해. 약한 이삭들에 의해 어린 양들은 잡아 먹히려고 한다. 그래도 이 어린 양이 어느정도 능력은 있어서 대응이라도 가능한것 같다. 하지만 이리는 생각한다. 언제는 잡아먹히겠지.. 그럴까?

#7.

 혹시 이런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아니냐며 말하시려는 기독교인 분들. 이게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이다. 왜 진리를 위한 '부정적인 생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을 알리는> 사 60장의 말씀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서 이게 내가 가장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불우 이웃은 도울줄 알면서도,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에 대해서는 "좋은 대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라는 명목으로 밀어 붙인다. 이것이 이중적 생각이 아닌가? 아이들이야 말로 억우하고, 빛이 없는 자들이다. 더군다나 용돈도 없으니 가난한 자겠고. 그런데 그들을 삶아 먹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면, 하나님의 존재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언젠가 어디서 봤던 신명기의 <어미 젖으로 아기를 끓이지 말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 북한에 대해서라면 곧바로 정의를 드러내며 북한 애들을 돕던가, 북한을 선교해서 자유국을 이뤄야 한다는 두 파로 나뉜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 뭐 양쪽다 일리가 있으시고 모두가 그리스도의 계획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임을 인정한다. 노인복지도 또한 열심이다. 하지만 청소년 선교는? 그냥 집회 해서 애들 '회개'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채워지면 다 똑같이 변화되어서 '새 사람' 될줄 안다. 물론 대학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할 사람이 지금도 너무나 부족하고 필요하다 (내가 그 필요를 안다).  하. 지. 만.  오직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새 촛불을 들면 안되, 아니 촛불집회와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로 규정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세상에 부르심 받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부르심이 있다면 당당히 비느하스처럼 분을 품어 싸울 떄가 필요하다. 교회는 그런 인간 대신, 즉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그토록 기독교가 가톨릭에 대해 싫어하는 '교회를 통한 구원'을 강요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즉, 우리는 가톨릭의 교회를 통한 구원 (미사통상문의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로 대표되는)을 올바르게 바로 잡아 거부했지만, 정작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의해 자신의 믿음이 결정되는 삶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필요하고 교회에 헌신이 필요하고 교회 사업을 통해서. 심지어 건물 짓기 경쟁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 줄 모른다. 내가 이상한건가 라는 생각마저 할 뿐이다.

#8.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긴데, 왜 중고등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하는데 대학생이 참여 안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살펴봐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점은 중고등학생은 옹호하고 대학생은 관심을 잃었다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88만원세대가 이것 밖에 안돼냐고. (그래서) 이데올로기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발 깨달아주길. 대학생들은 못 나갈 뿐이다.

 그 실례가 우리 학교다. 우리 인하대학교에서는 지난주에 운동장에서 수천명이 모여서 등록금 및 광우병 반대 집회를 열었다. 나중에 오고 보니 30%가 인하대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고, 역시 주목적은 등록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하대 학우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정석 옆에는 총학에 의해 이런 프랭카드가 붙었다 : "광우병 반대 인하대생이 시작하자!" (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도 매일 저런식으로 시위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대학생들도 생각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넷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대학생들은 참여하지 않는 것일까. 당장 내 사정만 들려주면 이해가 간다.

 나는 지금 밀려있는 숙제가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마구 돌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의 대가로 나중에 처리해야 하는 과제들을 이야기해 보자.
 
 일단 내일 저녁에 팀 미팅에서 두세개의 이미지 시안을 더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기사 쓰는게 화요일까지. 그리고 내용은 수요일날 팀미팅에서 검토돼 목요일날 발표후 금요일날 최종 제출을 통해 그다음주 월요일 인하대학신문에 발표될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한 개론 과제에서는 IPTV 광고를 통한 영향력이 어떻게 되겠는지에 대한 논문을 이번주 금요일 밤까지 써서 제출해야 한다. 나는 전혀 여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참고자료들만을 우선 찾기 위해서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지금 논문 준비를 위해 논문들을 번역하고 있다. 이 논문들에는 일반 영어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수두룩하며, 번역도 잘 되지 않는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별도로 이 논문에 대한 확장 내용을 지난주까지 제출해야 했는데 진행이 안돼고 있어서 결국은 포기. 교수님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것도 수업진행은 없지만 학점이 부여되는 정식 수업이다. ㅠ.ㅠ;)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학교에서는 졸업 자격으로 <논문과 작품>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작품도 만들어야 한다. 이건 좀 Delay가 가능하지만, 이와 연계된 인터뷰를 수업의 일환으로 촬영, 제작해야 한다. 당장 녹화 대상이나 날짜, 그리고 장비 자체가 규정되지 않았는데, 몇주 안으로 끝나야 한다.

 그나마 지난주 안에 끝난 것들도 있지만, 거기에 기말고사까지 생각해 보라. 이정도라면 나는 이런 글도 안쓰고 지금 계속해서 학교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안하고 있는 이유는, 글 쓰는게 막혀서다. 그냥 풀리까 해서 쓴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디 미쳤다고 나가겠는가? (참고로 이정도는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로 힘든 것이지만,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토익까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면, 대학생은 '표면적인' 행동의 제약은 없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학점', '취업' 이라는 이유의 가장 큰, 그리고 필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못나갈 뿐이다. 제발 여러분들이 대학생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몇주간동안 지쳐 있고 힘들다. 이젠 좀 풀리려나.

#9.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 구조를 따지려면 내가 그걸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나도 더이상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와 설명을 이제 마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체계의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제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이민나가는 사람들이 급증할 지도 모르겠고, 대불공단에서는 겨우 두개 뽑힌 전봇대 가지고 아직도 어려움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학교와 부모, 그리고 아이들 자신들에 지쳐서 아무리 "숏기! 패기!"를 외치는 "힘내라 청춘아" 광고를 봐도 실망하고, 성적 폭력을 행하고, 음란물을 좋아하며, 험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개선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제시한 것들은, 결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쁘게 살고 싶지만, 결국은 이명박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오는 꼴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명박이 잘한게 있다면 공무원 개혁과 의무보조금 폐지만일 정도로 (ㅇㅅㅇ)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교회나 수도원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말고 예배만 드리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라면?


#10.

 결국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하지만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우리는 진리를. 참을 선택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이 닥처도 말이다.



- 2008, ear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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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00:46

가톨릭 성가에 있는 엄연한 저작권 침해

하나의 저작물의 저작자를 밝히지 않고, 허락도 안 받고,
거기다가 저작자에게 연락도 없이 개변하는건 분명히 저작권법에 의해 범죄이다.
그렇다면, 지금 소개할 이 사례는 당연히 범죄일 수 밖에 없다.

일단 가톨릭 성가 449번, <부름받은 젊은이>.
작사, 작곡자는 없고, 그냥 내용이 써져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카톨릭 굿뉴스 - www.catholic.or.kr >

그리고 원본으로 추정되는 통일찬송가 304장, 새찬송가 574장의
반병섭 작사, 이동훈 작곡의 <가슴마다 파도친다>.곡조명은 우리들의 젊은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 그럼 이 곡의 차이는 얼마나 날까?

한 곡이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서는 곡조와 가사로 판단할 수 있겠다,
따라서 두 곡의 차이나 비슷한 면에 대해서 곡조와 가사의 차이를 판단하면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할 수 있다.

일단 가톨릭 쪽의 멜로디와 개신교 쪽의 멜로디를 마비노기 코드로 전환시켜 보자.

가톨릭
c8.d16e.e8eg8f8e2cc8.c16f.f8ab+g2.
g8.g16b.b8ag   b2aa8.a16b>cdd+e2.
e8.d16c.c8c<b b2aa8.a16>d.l8ddcbag2.
e.f16l4g.e8g>c  b2a>f8.e16dcc<bc2.

개신교
c8.d16e.e8eg8f8ec2c8.c16ffab+g2.
g8.g16bbag      ba2a8.a16b>cdd+e2.
e8.d16c.c8c<b  ba2a8.a16>d.l8ddcbag2.
e.f16l4g.e8g>c  ba2>f8.e16dcc<bc2.

거의 보기에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박자만 빼고 음표만 계산한다면?

가톨릭
cdeeegfecccffab+g / ggbbagbaaabcdd+e / edcccbbaaadddcbag / efgegcbafedccbc

개신교
cdeeegfecccffab+g / ggbbagbaaabcdd+e / edcccbbaaadddcbag / efgegcbafedccbc

한 글자도 차이 안나고 일치한다. 나머지도 대충 비교해보면 원본에서 ba2로 되어있는 부분을 b2a로 바꾸고, 몇 부분에 점 하나 찍은것, 그리고 화성 부여가 다르고, 개신교의 리듬은 4bit인데 비해 가톨릭의 그것은 8bit인 것 밖에 차이가 없다.

다음 가사.
 

1.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의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

주의 말씀 주의 행함 길과 진리 되시니

우리 평생 한결같이 주만 따라 살리라

 

2. 하늘같이 높푸르자 우리들은 젊은이

바다같이 넓고 깊자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 받은 한 형제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 뜻대로 살리라

 

3. 화산같이 타오르자 우리들의 젊은이

폭포같이 줄기차자 우리들의 붉은 피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 들고 앞장서서 충성되게 일 하자

 

4. 대지같이 광활하자 우리들의 젊은이

산과 같이 우람하자 우리들의 기상

십자가를 높이 들고 노래하며 나가자

하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1. 가슴마다 파도친다 우리들 젊은이

눈동자에 어리운다 우리들의 푸른 꿈

주의 말씀 주의 행함 길과 진리 되시니

우리 평생 한결같이 주만 따라 살리라

 

2. 하늘같이 높푸르 우리들 젊은이

바다같이 넓고 깊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은 주의 자녀 부름 받은 젊은이

몸과 마음 다 바쳐서 주님 뜻에 살리라

 

3. 화산같이 타오르자 우리들은 젊은이

폭포같이 줄기차자 우리들의 정열

할 일 많은 이 나라에 우리 태어났으니

복음 따라 앞장서서 충실하살리라

 

4. 대지같이 광활하자 우리들은 젊은이

산과 같이 우람하자 우리들의 기상

십자가를 높이 들고 노래하며 나가자

주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왼쪽이 개신교 가사고, 오른쪽이 가톨릭 가사다. 차이가 나는 부분에 빨간색을 했는데.. 거의 3절을 빼고는 한두자 수정한 수준이다. 가사도 비슷하다. 이런 노래가, 개신교  찬송가의 작곡 사항에 의하면 작곡년도가 67년이니까, 67년에서 50년을 잡아도 2017년에나 풀린다. 즉, 저작권이 마땅히 보호되고 있는 곡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사도 비슷하고, 음악도 똑같은 곡을 왜 가톨릭에서는 아무런 저작권자의 양해도 없이 갖다 썼을까? 저작권법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이건 당장 처벌대상이다.

1) 저작인격권 공포권 (저작권법 11조) 무시
2) 동일성유지권 (저작권법 13조) 무시
3) 출처 유지 (저작권법 37조) 불이행

저작권법이 바뀌었다. 이젠 3자가 신고해도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면 잡힌다. 모쪼록 가톨릭 교회 쪽에서 이 부분에 대해 잘 조치를 취해 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 21일.. 그러니까 '오늘' 나온 신문 기사.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5215&pt=nv

p.s 댓글을 보시면 가톨릭쪽에서의 반대가 있는데, 참고로 본 블로그의 내용을 다음 카페 전례음악의 모 게시판에서 무단 복제했다가 저의 지적을 보고 곧바로 그 글을 삭제한 사실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즉 본 내용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110301 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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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0 22:55

오랫만의 단상.


로봇생활관 -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주류의 것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들을 잘 집어내 준 글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교회에서 정리기간을 두고 진짜 교인들만 교회에다 올리면
'7만명' 되는 교회에서 과연 얼마로 줄어들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네자리 수, 많아도 다섯자리 초반으로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다른 교회로 가서 거기서 입교한 우리 동생도 어느새 울교회 속회원으로 들어가 있는데,
문제 있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냥 넘어가란다.
이제 곧 한번 철저히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짜피 '감리교회를 리드하는' 울 교회가 한번 이렇게 철저히 줄이면
아마 감리교.. 그리고 다른 교회로도 파도가 퍼지겠지?

"언론과 정부는 모든 책임을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 팽창주의 정책으로 몰아가려고 한 탓에 정작 그들이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한채 작금의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 좌향좌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계속 우향우 상황으로 있다가
기독교는... 침몰할 수 밖에 없다.

비꼬아서 이야기하자면..
몇년 전 보수세력에서 '극좌세력'과 대결할 키보드 워리어를 육성할 떄
미리 기독교에서 이런 상황을 알아채고 작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Just Crazy notion - 악플러 네티즌들을 향한 노래

정말 대박으로 동감한다. 얼마나 그 정도가 심했는지 알고 싶으면
댓글이 100개 이상 달려 있는 아랫 글들을 보도록.
그래도 안티가 색안경을 썼니 기독교인이 색안경을 썼으니 하며
색안경 논쟁이라도 했을 때가 나았다.

그러고 보니 바이블의 원어는 '책'. 그런식으로 강제 대입하면
바이블 19금은 사실 책 19금. 결국 바이블 19금 운동 서명하는 사람들은
책을 읽자는 정부의 지침에 반대하는 반역자들?

Rosy mind, Always! - 코믹월드는 썩었다!

여기에서 나와서 진행된 글이다.

코스어들을 공격하는 글을 보니 기분은 좋지 않다.
특히 길코에 대해서 글 쓴것도 약간은 '그렇다'.
일단 주장에 대해서 수용할 필요는 있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계속해서 크게만, 그리고 다른 행사들을 의도적으로 물리치면서
계속 인원수를 부풀려온 코믹월드가 어쩌면 이제 기울때가 된건
어쩌면 이미 기정사실화가 된것 같다.

또한 자신들의 입맞에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나
'사업체 동아리'등의 문제도.. 솔직히 꾸준히 문제가 되어왔었던 문제다.

하지만 코믹월드가 가장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코스어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와 배려 부족이다.
코스어들은 탈의실이 모자라서 '탈의실이 더 커야 한다'고 말하는 판에,
정작 setechno 쪽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는 '화장실에서 갈아입지 마세요.'
여기에 대해서 내가 뭐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코스어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문제가 있다.
작년에 조사했을 때도 '탈의실이 모자라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들을 생각이라도 했는가?

아예 기획 자체서부터 코믹은 코스프레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코믹월드 취지문부터 그 간극이 보인다.

"코믹월드는 만화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 행사를 통해 만화를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자신의 창작품을 소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며, 나아가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창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창작품판매 및 구매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취미활동을 공유하고 사회성을 향상시킴으로써 건전한 청소년 문화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

만화만 있지 코스프레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만화인에 대한 생각만 있지 코스인들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작년 815 사태도 그렇게 의도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괴로운 코스어'들을 몰아내서 어떻게 해보자..

적어도 지금 동인지 부스의 60%이상은 20+ 동인녀들에 의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코스어들이, 민간인들이 이를 꾸준히 구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들은 감사한다.
하지만 코스어들과 사진사들이 몰리는 현상은 그들에게는 어쩌면 괴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코믹월드는 코스어들과 동인 그룹을 조금씩 분리시켜 나가는 정책을
아마 꽤 오래전부터 써왔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스스로 분화된 것일 수 있는 가능성도 있겠지만 말이다..
(반론 있으면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코믹월드는 이렇게 하면서 자신들을 침몰시키고 있다.
이미 코믹월드의 문제성이 전 '''네티즌'''을 대상으로 알려져 가고 있다.
또한 코믹월드를 향한 원성이 퍼져나가고 있다.
나도 어느새 코믹월드 입장을 안하게 되었다.

코미케는 1년에 2번 밖에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다.
물론 S.E.Techno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번 개최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건 setechno만의 관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매우 잦지 않다.

현재의 서코는 대략 1,2 했다 3이나 4에서 쉬고, 5, 6, 7, 8, 하고 9 쉬고
10, 11, 12 진행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1년에 10회로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왜 동인지 행사나 코믹 행사를 반드시! 왜! 코믹에서만 전담해야 하는지부터 모르겠다.

과연 코믹이 코스피에게, 코페에게 코믹의 일부를 내 주고 자리잡게 해 줄수 있었다면
코믹월드는 지금 이러한 상황에 있었을까?
코믹월드가 자숙해서 서울코믹의 회수를 줄여야 한다. 한 1년에 3-4번으로.
그리고 코스어들도 절제하고 줄일 줄 알아야 한다.

그것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중적인 포커페이스로 전전긍긍하는 청소년 정책이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나온것도 계속해서 코믹, 서울 중심의 수도권 코스 편향 사태의
피해를 막아보자라는 이야기가 나와서일지 모르겠는데.. '할 곳이 없다'라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기도 하고, 생각이다. 사람들이 놀 곳을 필요로 하는데, 놀 곳이 없다. 분출할 곳이 없다.
이건 아직도 '훈육, 교육' 정도로만 청소년 정책을 생각하는 정부의 탓이 크다.

일단 코스를 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그에 앞서서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기존의 문교부, 교육부,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있는 국가청소년위원회나 교육인적자원부,
그리고 '자신들의 길'만을 찾아나서고 있는 청소년단체들의 책임이 클 것이다.

최근에 폭주족들과의 '대화'를 경찰이 했다는 한 기사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폭주족은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좋아하는 걸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는 논리였다. 자신들을 단속했던 경찰 앞에서도 그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 또 다른 김모(17)군은 "경찰이 정해준 법규 내에서는 마음껏 달릴 수가 없다"며 "야구는 야구장, 축구는 축구장에서 하는데 우리는 어디서 하면 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 한 참석자는 "차라리 경찰이 에스코트를 해주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 `폭주족은 안 없어져요` [중앙일보, 070814] 에서

'어디서 하면 되느냐'라는 부분을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동시에 '코스는 어디서 하면 되나요?', '코스 여기서 해도 되나요?' '여기서 X보드 타도 되나요?' '여기서 동인지 행사 해줄 수 없나요?' 라는 질문들을 오버랩 시켜보자. 그렇다면 정답은 분명해진다.

문제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서 책임은 당연히 호기심이 많은 청년과 청소년에게 돌리는 한국 사회의 딜레마. 1930년도의 '술 권하는 사회'에서 겉으로는 변했지만 속 깊은 곳으로는 변하지 않은 이 나라. 이 강산.

그리고 아침 교복단속과 체벌, 강제 0교시, 78교시, 수도권에서는 그나마 10시, 지방에서는 12시까지 계속되는,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신념의 자유, 그리고 선택의 자유는 '미성년자'와 '학생다운 학생'이라는 미명에 사라진다. 고3 개신교인들은 주일까지 반납해야 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다보면 밤 언제까지 넘기는 다반사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TOEIC이나 국가시험을 주일에만 하기 때문에 교회 빠져야 하는 청년들(왜, 토익은 왠만해서 토요일날 보려 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궁금하다). 자신과 다른 신념이지만 무조건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삼성맨을 비롯한 회사원들(ex) 시사저널 사태 or 중학교때 글 읽은 것에서, 설문조사 잘 해서 좋은 책 이름이 나온게 상사의 지시로 무참히 plain하게 바뀐 사례가 있다는 것을 책 끝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일부 지식인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몸살을 앓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신해철을 좋아하지 않고, 신해철의 논조나 생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신해철씨가 잘 모든 자료들을 동원해서 체벌 전면 금지에 대해 잘 변호해 준 것에 대해 너무나도 찬성한다. 그리고 깊은 신념에까지 동조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수나로가 청소년들의 입을 대신해 잘 싸워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입을 여는 것? 정부는 대면할 자신이 없어 아직도 쥐어짜고만 있다. 대면하기 시작했을 때, 나라가 혼란해질 것을 아니까. 그래서 박정희가 이 나라를 잡아서 이 꼴 만들어 놓은거고..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야 이 깊은 상처와 쓴뿌리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외면하려고만 할까? 왜 굳이 W세대, M세대, L세대 이렇게 규정지어 놓아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 단체에서는 그 복잡한 규정들 좀 없애 줬으면 좋겠다. 청소년들이 접근하기보다 뭔가 청소년에게서 성역으로 남아있게 되는 공간이 현재의 소위 '청소년 공간'이다. 그나마 그거라도 있어야 청소년들이 쉴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거 이용하는 사람은 정말 몇몇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온라인에 몰려있는 청소년들이 오프라인에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다면 현재의 청소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정부에서는 해봤는지 모르겠다.

청소년은 항상 찾는데, 바리새인처럼 정부는 막아두고서, 책임은 청소년에게?
제발 돌이키는 것을 이 세대 안에서,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10~11)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암 9:11)

(참고 : 위의 성경구절의 의도는 교회의 해석과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단상이란 이름으로 짧게 쓰려던 글이 이렇게 길어졌는데..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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