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9 08:24

말씀이 있는 진보 정치인, 말씀이 없는 보수 정치인



   오늘(9일) 중앙일보 18면에 오랜만에 말씀이 떴다. 그것도 자세하게 설명까지 곁들어서 떴다.

A4 용지엔 ‘야훼여, 나를 고발하는 자를 고발하시고, 나를 치는 자들을 쳐주소서’라고 쓰여 있다.

   이 설명을 보고 사진을 보면 몇몇 사람들은 가톨릭 교인이 아직 가톨릭 성경을 안 쓰고 한국 개신교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공동번역을 왜 인용했는지 뭐라고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옆으로 제껴두고, 일단 해당하는 성경본문으로 추정되는 말씀부터 살펴보자. 원본 공동번역, 가톨릭, 개개로 인용해 본다.

야훼여, 나를 고발하는 자들을 고발하시고, 나를 치는 자들을 쳐 주소서. 2 큰 방패, 작은 방패 잡고 나서시어 이 몸을 도와 주소서. 3 창과 도끼를 들고 나서시어 쫓아 오는 자를 맞받아 쳐 주소서. "나 너를 살리리라" 다짐해 주소서. 4 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부끄러워 무색케 하시고 나를 해치려는 자들을 창피해서 도망치게 하소서. (시편 35.1~4, 공동번역)

주님, 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2 둥근 방패 긴 방패 잡으시고 저를 도우러 일어나소서. 3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맞서시어 창을 빼들고 길을 막으소서. “나는 너의 구원이다.” 제 영혼에게 말씀하소서. 4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부끄러워하리라. 내 불행을 꾸미는 자들은 뒤로 물러나 창피를 느끼리라. (가톨릭)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4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시 35:1~4, 개역개정)

   다윗의 이 노래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결연한 의지이다. 어떻게 곽노현 교육감님께서 이 말씀을 보게 될지는 몰랐겠지만 저런 구절은 최소 말씀을 어느 정도 붙들지 않았더라면 알 수도 없고 고백할 수도 없는 말씀이다(가톨릭, 개신교 어디서도 저 시편을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만큼 믿음이 깊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믿음의 고백이다. 물론, 그냥 들고 검색했을 가능성은 배제해주지 않겠다. 하지만 저건 쉽게 검색되지 않는다는 점도 같이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다만 내 생각으로는 성령님께서 곽노현 교육감님에게 저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기도를 삼게 하신듯 하고,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어쨌든, 고소당했을 때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모습. 그런데 이 모습이 처음으로 나온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몇 년전에도 이와 동일한 모습이 벌어졌었다.

한 전 총리는 오후 9시30분쯤 지지자들의 구호 속에 귀가했다. 한 전 총리는 곧바로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조사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임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은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 [ 檢,한명숙 前총리 체포 스케치·수사 전망… 총리 출신 첫 강제구인 불구속 기소 가능성 ], 쿠키뉴스. 2009. 12. 19.

조 변호사는 “한 전 총리는 성경을 손에 들고 조사나 대질신문 때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도 “준비된 질문들을 했지만, (한 전 총리가)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 한 전 총리, 성경 손에 든 채 시종 묵비권 ], 한겨례, 2009. 12. 18.

   2년 전, 한명숙 전 총리가 의지했던 것도 하나님뿐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일했고, 따라서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명숙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자, 뭔가 정치공작이었는지 금품수수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중수부에서 옳다구나 하고 그를 고소했고, 그의 편에 선 자들은 민주시민세력들. 일부의 개신교인들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한명숙 총리는 하나님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를 높이사 서울시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지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찍도록 하셨고, 결국 오세훈 시장을 다시 교체하도록 이끌어 내셨다.

   그러면, 이제 한명숙 전 총리님과 곽노현 교육감님의 모습과, 지금 기독교의 지지를 대폭 받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한명숙 총리님이나 곽노현 교육감님이나 가장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삶이 최소한 거짓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인들은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님? CTS로 위성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리고 각종 예배에 모습을 내미는 것은 보았어도, 그분의 정책이 하나님 나라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4대강 밀어붙이고, 인권 탄압과 정치적 보복을 서슴없이 하는 등의 모습은 하나도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없다시피 하다. 말씀을 사랑하고 믿음이 들어가 있다면, 그 믿음은 결국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약 1)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그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신지 궁금해진다. 다른 믿으시는 정치인들도 얼마나 말씀을 챙겨보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이 믿음으로 행한 결과인지 또한 미지수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반대된다는 종북좌파들의 괴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 무상급식과 인권조례로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반면에, 하나님을 끔찍히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억누르고 그들을 착취하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친다는 기막힌 아이러니에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유일한 불편한 진실이다.

   p.s.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결국 사전구속영장으로 체포되어 서울구치소로 들어가신 곽노현 교육감님, 이 사건을 통해 풀무불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분의 믿음이 증명되기를, 그리고 결백함이 증명되어, 나를 욕보이고자 하는 원수들 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이(시 23:5)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아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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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1 00:06

이명박 대통령의 제 56차 라디오, 인터넷 연설에 대한 논평



  1. 우선 라디오 연설의 주제를 청년들에게 돌려 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차피 청년에게는 관심도 안 기울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최근 두 정부보다 상대적으로 청소년 및 청년에 대한 관심이 없었음은 만인이 다 아는 사실이다. 앞으로는 자주 청소년과 청년을 향한 관심을 지금보다 더 많이 기울여 주시기를 바란다.

  2.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실망을 감출 수 없다. 바깥으로 나가라! 도전하라는 내용은 좋은데 그 내용의 실체가 고작 1인기업을 통한 '기업활동 증진'뿐이다. 또한 우리 청소년들과 청년들, 나아가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도 않은 G20을 극찬하면서 'G20세대'라는 신조어를 낙인 찍는 행위 또한 2002년의 조선일보가 촛불시위 이전 주창했다가 여중생 사건으로 인한 '가설의 기각'으로 결국 있으나마나한 주장이 되었던 R세대라는 호명 행위마냥 진부한 행동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칭찬하는 청년들의 행동 부류가 '생산적, 국제적'이라는 두 카데고리에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왠지 그렇지 않은 청년들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청년들의 대부분은 중 고등학교에서 대학이라는 삶만 보고 달려왔고, 결국 대학에 들어와서는 스펙 쌓기를 통한 대기업 취직을 위해 달려가도록 강요받고 있다. 결국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교육 시스템이 대부분의 청년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길로 달려나가게 했고 그 책임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무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원하는 건 '우리 젊은이들의 창의와 도전 정신'을 통해 '마크 주커버그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나 볼 수 있는 이중적 트랙이 우리나라 교육정책에서는 이미 만연하다. 창의성을 말살하고서 창의성을 발휘하라는 식의 이중플레이의 문제점, 그리고 그 대안이 사교육 중단과 대학 입시 개선임은 이미 다수가 알고 있을테니 넘어가도록 하자.

  3. 물론 젊은이들이 1인기업을 통해 국운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좋다. 이를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젊은이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 혹시나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혹시나 청와대 관계자 여러분들께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래 글을 반드시 필독하시고 놀라주시기를 바란다. 그만큼 현재 청년들이 개척하고자 하는 환경이 닫혀 있으니 말이다.


  게임 개발을 해야 하는데 또는 만들고 싶은데 아마추어 게임이라도 수십만원, 90만원의 돈을 들여서 게임 심의를 해야 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가 되고 있는데도 이명박 정권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마음껏 도전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이란다. 이러면 진의를 믿고 싶어도 믿음직하지 않다. [ 모바일 게임 심의를 위해서 들인 돈 만큼 심의료를 내야 하는 ] 상황에 대해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할까? 게임을 개발하는 1인기업은 1인기업이 아닌가? 정말로 진의를 들어보고 싶다.

  4. 그리고 청년들의 행동이 기업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매우 문제가 있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나는 현재의 기업환경이 세계인들에게 보여줄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기업 노동 환경이 일본과 함께 최악인 사실을 알고 계실지 모르겠다. 최근에 근무시간 단축을 하시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이루어질지도 의심쩍어 하는 분들도 많은 판에, 그리고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된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최고 기업을 복제하고 그대로 살아가면 대한민국은 이대로 행복할 수 있을까.

  5. 결론적으로, 이번 연설은 수사는 많은데 진정성이 없는 연설이었다고 생각하며, 정말 이 연설 그대로 청년들이 살기를 원한다면, 연설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그 간극을 해소하는데 정부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게 청년들이 이명박 대통력을 그렇게 지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이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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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08:48

모두를 받아들이는 교회를 위하여



  아직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기 전, 오래전의 일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던 어느 흑인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고, 그래서 매주 주일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교회는 백인들을 위한 교회들과 흑인들을 위한 교회가 따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매는, 집을 떠나 도시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이 되어 교회에 가고 싶은데, 그 곳은 백인들이 사는 곳이라 백인 교회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러한 구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가서 백인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죠.
  그런데 역시나, 백인 교회에 흑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주위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여기서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 여기서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부했죠. 그럼 어디에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말일까?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 주위에 예배당은 이 곳 한 곳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백인교회 사람들은 완강했습니다. 백인교회 사람들은 결국은 그녀를 끌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당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자매는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왜 제게는 예배를 드릴 자리가 없느냐고 물었죠. 그 때 예수님이 그 자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거기 들어가서 있을 자리가 없구나."

(이 이야기를 정확하게 들은 적이 없어서 다시 paraphrase해서 이야기를 다시 적었습니다.)


1. 우리가 가끔씩 설교에서 듣게 되는 이 예화는 우리가 얼마나 사람들을 배척하는지, 또는 배척하지 않노라 하면서도 그러한 마음이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지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미 성경을 통하여 지적되어 있습니다. 멀리는 모세오경에서부터 계속해서 가난한 자를 경시하지 말라고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이러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곳은 바로 야고보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2장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습니다.

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 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아예 2절부터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의 예를 들어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예 9절에는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차별하고, 구분하고,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잘 보여줍니다. (물론 거룩하게 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불리는 교회는 어떨까요? 우리야 말로 사람들을 배척하는데는 가장 큰 죄를 지운 단체가 아닌가 합니다. 십자군전쟁만 해도 그렇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당시 가톨릭이 이슬람교와 유대인들, 그리고 정교회 사람들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성지를 재건하고,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겠다는 강한 의지에 의해 일어난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결국은 기독교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강한 상처를 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져, 결국은 기독교 Vs. 이슬람의 싸움이 되었습니다. 이걸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모습을, 그리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게 됩니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의 문제를 넘어서서, 당장 교계 신문을 둘러봐도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옵니다. 때로는 잘못된 것을 자기 편이라고 감싸주고, 때로는 옳은 것도 자기 편이 아니라고 배척하는 이 모습,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모양이나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일례를 들어보려고 해도 너무 많습니다. 최근 감리교 감독회장 사태, (예장 ○○에 의한) 이재철 목사님과 양화진 100주년기념교회 논란, 이단시비, 큰믿음교회 관련 문제, 신사도주의 정죄 문제, 용산사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상반된 평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예를 들어볼 수 있곘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러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이야기하려는 글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를 최대한 줄이려는 글이기 때문에(그리고 나중에도 얼마든지 논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를 피하는 방향으로 가는것이 옳을 듯 합니다.

 3. 몇 개월 전 교회 카페에서 인터넷을 보다, 이명박 정부가 내린 결정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그 글을 읽고 나서 곧바로 어떤 분이 (직분은 잘 모르겠습니만) 저에게 '어떻게 그런 말씀을 교회 카페에 올리십니까?' 라면서 조심하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고 어이가 없었고, 그 때 사과는 드렸지만 할 말은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남깁니다.

 물론 교회는 정부를 이유없이 비방하거나 공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틀렸다고 누가 말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사람 1단원 3과 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의 사랑을 정말 경험한 사람은 누구도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이며 체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욕심을 마음에 담은 채 남의 욕심을 비난합니다. 우리는 거짓을 품은 채 남의 거짓을 참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도 이기적이면서, 이기적인 사람을 정죄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으로 거듭나게 되면 가장 먼저 이것부터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남에 대하여 할 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남을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남의 죄악과 허물이 보이는 것이 문제라면, 그 전에 내가 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죄를 저지르는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우리의 죄를 돌이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 7: 1 ~ 5)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비판하는 것을 꺼려야 함과 동시에, 남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있어서 큰 과제 중 하나 입니다. 아마 이 조건이 우리의 믿음 - 불신앙과도 연계되어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잠깐 생각해봐야 할 것 중 하나로, 그런데 사회 정의는 어떻게 봐야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면, 사회의 잘못에도 눈을 감아야 하는 것일까요? 교회를 누군가가 해하고자 하는데도 그대로 받아줘야 하는 것일까요? 또는, 666이 그리스도인을 탄압해도 봐 줘야 하는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이 부분들이 (즉 판단과 정의 사이가) 우리가 잘 판별해야 할 문제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것은 우리가 사회 정의에 대해서 합의된 우리의 담론들이나 믿음을 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감리교 사회 신경등의 형태로 우리의 믿음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믿어야 할지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상황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그 믿음대로 행동하지 못합니다. 실례로 감리교 본부에서는 대운하 사업과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동일한 김리교 교회들에서는 이를 찬성하고 지지하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위기의 때가 닥쳐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믿는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5. 돌아가서,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까는 것을 교회에서 금기시하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을 신뢰하는 믿음이 마치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같이 되어가는 듯 하는듯 해서 입니다. 사회 통념이 다르다고 새신자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린다면, 우리가 누구를 그리스도깨로 불러올 수 있겠습니까. 하나 안 맞는다고 그걸 주입시키고 그들에게서 우리를 단절시킨다면, 우리가 얻을 열매 또한 '사회에서의 단절' 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할 시간에, 교회에서 사람을 내치고 있습니다. 말로는 청소년을 다음세대를 위하여 사역해야 한다고 하지만, '시간 없는' 그들을 이해해주기는 커녕 마치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밖에 없는 것처럼 '협박'합니다. 물론 예배도 중요하고, 헌금도 중요하고, 새벽기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더욱 본질보다 비본질이 중요한 것처럼 호도될 수는 없습니다.

 6. 그렇다면, 우리 교회들이 회개할 때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요 17:16)로 세상에 존재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존재할 곳은 어느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이전에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요 17:11). 부정한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복음과 진리 앞에 앞서, 우리가 바리새인들이 되어서 천국 문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마 23:13),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우리를 개혁합시다. 그래서 모두에게 교회 문을 열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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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00:16

"나는 전체주의가 싫어요!"


 1. 최근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억하게 되었다. 한국 내에서는 반공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는 어린이. 실제 공비에 의해 잡혀서 죽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되나, 어쨌든 처참한 죽음으로 우리에게 지금도 '반공'의 사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듯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를 죽게 만든 공산당이 왜 나쁜가? '김일성이, 김정일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김일성과 김정일이 무슨 짓을 했길래 나쁜가? 고난의 행군 시절에 사람들은 굶어 죽이면서 자신들은 사치품을 사들이고 호의호식하고, 군대에만 투자하고, 그래서 한국 침략을 노리고 있어서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북한을 비난하고, 기도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산당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당이 나쁘다'는 것 만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도 나쁘다는 것에 있다.

 2. 10월 7일 우리집에 도착한 뉴스위크(2009년 10월 12일자)의 맨 앞 칼럼의 제목은 'Europe's central disappointment'이다. 이 기사를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일부를 번역해서 올려본다.

 프랑스의 National Front나 벨기에의 Vlaams Blok 같이 서유럽에도 불쾌한(unsavory)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유럽에도, 이런 종류의 정당이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 사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힘을 발휘해오고 있다. 헝가리의 Fidesz,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LJP),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국가당(National party)등이 그들의 극우 성향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직책들을 점거하고 있다. ~
 이런 정당들과 움직임들이 최근 두드러질 정도로 대중의 의견을 두드리면서(tapping)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는 사회 이슈의 배열에 높은 문제성을 남기고 있다. 예를 들어, 월드 밸류 리서치는 슬로바키아인과, 폴란드인들, 그리고 루마니아인들이 영국인이나 스페인인들 정도로 다른 색인종이거나 동성애자들이 옆에서 사는 것을 증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권 감시(Human Right Watch)나 기타 단체에 의하면, 반셈주의도 중유럽에 방해가 될정도로 남아있다는 것과, 국영 미디어에서까지 이러한 생각이 홍보되고 있다 - 이 지역에는 거의 유대인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몇몇 조사들은 요즘의 중유럽인들이 민주주의나, 주류 정치를, 서구에 대항하는 것들 만큼이나 믿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 때때로, 이런 감정은 실제 폭력으로 부풀려지기까지 한다.

 그렇다. 극좌성향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은 극우쪽에서 더 심하다. 특히 유럽의 극우파의 경우, 자신들과 다른 인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싫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더욱 심한데(독일의 신나치주의나, 러시아의 스킨헤드족, 그리고 미국의 KKK단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3. 그러한 의미에서, 북한도 나쁘지만, 친미가 옳다는 주장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이 땅의 우파들은 미국을 하나님 보듯이 했고, 미국의 자본주의가 마치 하나님의 정의를 불러올 수 있을듯이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아마 우파 지식인들에게 물어도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의 부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적인(Humanistic), 인권적인 것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로 많은 불행한 사건들이 이 땅에서 있어왔다. 가령 김구 살해, 함양 산청 살인사건, 북한의 많은 숙청 사건들, 보도연맹, 빨치산 전쟁, 장준하의 의문사, 제주 43사건, 지금도 수용되어 있는 많은 북한의 수용소 사람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419, 광주, 6월 항쟁. 그러나 이 모든 행동 대부분이 우파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과, 그 사건들을 대부분 덮으려고 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시점이다. 43사건도 이를 고발하는 '순이 삼촌'이 나오자 그걸 막기 위해 난리를 쳤다는 것과, 보도연맹이 겨우 40년이 지나서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국가 사과를 받았다는 것, 광주도, 6월 항쟁도, 계속 덮으려고 했었고, 결국은 불가항력에 밀려 이 땅에 민주주의화가 찾아왔다는 것 모두가 잔인한 일들을 우파가 많이 행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주의 빨갱이가 문제라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좌파만 무섭고, 잔인하고, 그래서 멀리해야할 존재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실들의 잘잘못을 가리는데 있지 않다.

4. 유기성 목사님이 쓰신 책인 제자훈련 교제인 '예수님의 사람'의 첫과에는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보다 더 악질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다면, 책에 의하면 오답을 제출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중의 괴수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본 사람은 누구도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동시에 남을 정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을 다르다고 정죄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에게 욕하고, 상처를 입히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다. 아니, 정말 내가 바르게 사려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라도 노력할 것이다. 김선주의 '한국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에 의하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는 '비판하지 말라'의 '비판'의 원어는 xpivete(크리네테)인데, 이 말의 어원인 xpivw(크리노)는 단순히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시 '판단하다, 결정하다'라는 의미는 법정의 판결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유죄로 판정된 자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되어야 할 악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크리노'라는 말은 그러한 의미에서, 서로에 대해서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pp. 37~8)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 아픈 점은, 우리가 그 분리를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까지 한다는 데 있다.

 5.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있는 자들을 돌보시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자'들에게만 갔다. 세리와 병든자, 눈 먼자, 중풍병 환자, 나병 환자, 죄인, 사마리아 여인 등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 곁에 있었다. 예수님이 관심을 두셨던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 나라는 세상의 먹을 것과 유명함, 권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승천하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성령 하나님을 처음으로 받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했던 것도 과부들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론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교회가 권력화되고, 하나님이 서로간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수도원운동 등의 개혁 운동에도 불구하고, 1054년 동서교회간의 대분열이 일어났고, 11-2세기 십자군전쟁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치욕적인 과거로 남는다. 14세기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또 하나의 변혁을 불러일으켰고, 이 세 개의 큰 지류는 또 서로 나뉘어지며 큰 싸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의 이야기(20세기 대한민국의 장로교 분열등)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6.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성도가 같은 성도를 저주하고 분리시키며, 자신의 삶에서 분리하도록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백주년기념교회를 생각해보자. 이 것에 대해 최근 [ 예장통합이 보여주는 일 ] 이 이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하나의 유형교회와 목사를 그들의 삶에서 망하게 만들려고 하는 속셈이, 시편의 악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각주:1]

 또한 기감의 최근 행동은 내가 감리교인인것을 부끄럽게 만드는데, 이는 아직도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감리교를 억제하면 자신들의 뜻대로 감리교가 흘러갈것이라는 특정 목사의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분들간의 말싸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계속해서 사람들을 물어뜯는 모습은 참 안타까울 뿐이다.

 이 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반응이 갈라져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한쪽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다, 잘하게 하소서, 이명박 안찍으면 지옥간다, 빨갱이다, 뭐다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칭찬하고 밀어주는데, 한 쪽은 이명박과 싸워서 '우리 승리하리'를 찬송으로 부르지, 네큰가람이나 용산 관련된 문제를 반대하며 미사다 예배다 드리지.. 하나님이 참 슬퍼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한국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7.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내가 입장을 밝힌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천국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상당히 많은 책망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난한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의를 알리는' 행동을 하라고 하셨고, 의인이 아닌 죄인을 찾으셨고, 약한자를 도우셨다는 것과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정책들이 자신들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억눌러서 억울한 자를 만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가는 지원을 끊어서 오히려 가난한 자를 양성하고, 미디어와 여론을 통제시켜서 빛이 없는 자들을 만드는 이 세태의 중심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지금까지 '반 이명박 진영'은 계속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 되었다, 하야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으로 그가 변하지 않을 것임은 이미 우리가 2년동안 열심히 체험한 바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4~7)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8.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분리하고, 저주하는 일을 금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경향에서 쉽게 멀어지게 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가지의 '전체주의'로서의 존재가 있다.

 첫번째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려는 시도이다. '김일성이 김정일이'에게 나라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들이 한 말과 한 생각을 외우고, 공부하고,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것처럼 속이고, 교육시키면 그들에게서 나오는 정신력은 세계 최강으로 성장해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지 않다는 것은,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알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정치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종교 관련된 부분에 심한데, 특히 개신교에서 사이비와 이단이라고 부르는 집단들에게서 특별히 드러난다. 특히 최근 심각하게 문제성을 보이고 있는 새로운 sky와 ground가 이 땅에서 이미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하는 종교집단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들의 믿음의 고백이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이 교주에게 있다, 생명도 교주에게 있다는 식의 주장이 그들에게는 사실이자 진실인 것이다.) 또 다른 종교집단의 경우, 특정 인물이 하나ㅏ님 아버ㅓ지이고, 또 다른 특정인물은 하나ㅏ님 어머ㅓ니라고 고백하는 어이없는 경우를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예수님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 또는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미안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스타나 탤런트, 방송인, 정치인들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는 행동일 수 있다. 최근 G-용씨 표자르기를 통해 드러난 팬클럽 여러분들의 행동 등이 20년 후에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의문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팬클럽 모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둘째로, 하나의 주의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이다. 이런 모습의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공산주의인것 같다. 물론 PD파니 NL파니 해서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NL파가 주로 권력을 잡아서 문제지만 (....)[각주:2],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천국을, 그리고 같이 생산에서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세상 - 즉 '다른 세계'를 위해 생각하고 학습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가 실패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큰 케이스가 소비에트 연방일 것이다.

 소비에트는 민중들에게 노동자세상이라는 하나의 관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은 전 러시아를 잡고 있던 차르와의 투쟁을 통해 결국은 러시아 전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소비에트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민주화를 멈추고 공산화되었고, 많은 러시아의 변방 국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소비에트와 사회주의가 그 피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어떤 사람이 아닌, 하나의 주의 그 자체였다. 물론 많은 주의가 사람과 결부되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그 주의가 집중되기 쉽고, 그 부작용때문에 망한 것이 소비에트였지만[각주:3], 생각해보면 그 반발작용으로 생겼던 프라하의 봄이나, 체첸이나, 광주의 슬픔도 생각해보면 어떤 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주의 자체에도 구속되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감시해야 한다. 심지어 민주주의 자체도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것 이상으로 최악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오류가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심지어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으며 경험했기 때문이다.

 9. 결론적으로 주의가 없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아니 아닐 수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주의가 나와야 했던 상황에 있어서 그 주의는 당연한 것이었고 내가 생각해도 당연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19세기 노동자들을 부려먹던 자본주의 상황에서, 공산주의는 필요했고 따라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사회주의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공산주의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 도구인지 지켜보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프랑크부르크 학파나 공산주의가 동시에 증명해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도 민주주의가 어떻게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가의 좋은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주의를 만들기 위하여, 그 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은 어떠한 주의가 사람을 불행하기 위하여 오늘도 눈을 번쩍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경계하고 그런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하고, 싸우고, 막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결국 한 사람, 그리고 한 생각으로 전체를 몰아가는데서 출발한다. 그것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 하나 때문에 사람이 무시당해도 신경 안쓰고, 사람을 비난하고, 사람에게서 빼앗고, 사람을 비난한다면, 아니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외처야만 한다. "나는 전체주의가 싫어요!"

- 2009, earpile


  1. 이런 이야기가 내가 최근 아예 총회를 세우고 나간 큰믿음교회쪽 분들에게 면회부른 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해 마시길. [본문으로]
  2. 굳이 나를 좌파로 규정하고 사회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우기 원한다면, 나는 NL을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에 더 가까운 PD에 서 있겠다. [본문으로]
  3. 동시에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 소비에트가 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거기까지 논하고 싶지 않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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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2 01:01

사진숙제 #21(α) - 기다리는 사람들




그것은 2008년 12월 31일, 종각에서의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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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새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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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종각 앞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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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제일은행에서 주는 귀여븐 소 모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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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반디앤 루니스 앞에 삼삼오오 앉아 풍선을 들며 기다리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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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보신각 앞에 2중으로 쳐진 전경들의 앞에서
길을 열어달라고 외치며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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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촛불을 들고 시위하기 위해 보신각 앞에 모여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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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방송용 카메라를 들고 그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은 컬러TV + 진중권 교수님)




이윽고, 12시가 되었고, 그때 집에 거의 다 도착했으나, 도착하지 않은 저는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종각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부모님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종 소리만 들린다고.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이상한 소리 들리지 않느냐고.
전혀 아니라고 하더군요.

결국 정부는 수천명의 시위대 앞에서 그들을 무시하고 자신들끼리의 판을 벌린 셈이 되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렇게 종각 앞에서 사람 통제한거 보는거 처음입니다.
보신각 저렇게 막아둔건 처음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만 볼수 있는, 최악의 극치입니다.

생각건대, 이명박은 그렇게라도
침묵의 나선을 완성시키고 싶은 모양입니다.
그렇게라도 하면 정말 자신의 정책을 원없이, 탈없이 실현시킬 수 있겠죠.
하지만 모두가 찬성하지 않고 있고, 덕분에 그분은 첫해부터 빡세게 보내고 계십니다.

실망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 기독교계 세번째 대통령이신 이명박 대통령님.

earpile, depressed, seoul, 2008~9 (series of pictures & sentences)



이제, 진짜, 정말로, 마지막 사진숙제입니다.
이번 숙제는 마지막 사진숙제이니만큼, 시간외 제출이니 만큼, 다르게 꾸며보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후회는 없습니다. 이 사진들까지 올릴 수 있었다는 것까지 모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p.s 이 글에서 저는, 관찰자로 남아있고 싶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나중에 하겠습니다.

p.s.2 이 글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사진만 채택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저는 마지막 사진숙제를 또다시 출제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이 없게' 올렸을 뿐입니다.

p.s.3 사진숙제 지속적인 과제가 추가 부여되고 있고 숙제 2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였기에
        이 글을 21번으로 재명명하고 시즌 2는 22번부터 시작합니다. (1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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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8 09:18

이젠 나도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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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담화 발표하는 한승수 총리 모습


 어제 한승수 총리 담화문을 Live로 서산 다녀오면서 들었는데, 그 순간 내 안에서 화가 또다시 흘러오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기가 대한민국인 것을' 다시한 번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아랫 글이 잘 설명해주고 있으니 링크해보고, 저는 여기에서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① 대한민국은 그와 한승수 국무총리가 다스리고 있지만, 그들의 소유는 아니다. 분명히 국민에게서 '주권'이 나오는 것이 사실인데, 이들은 이 사실에 대해서 이번 고시를 통해 거부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 정도까지 되었다면 이 사람들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② 분명히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저 담화를 보거나 듣는다면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몇달간 촛불 때문에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프리카나 오마이뉴스를 들쳐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 말이 사실이 아닌 것을 너무나 똑똑히 알 수 있을 것이다. 50일동안 계속되었던 민주적인 요구와 이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탄압들을 "민주"와 "국민"이라는 미명 하에 묵살하고 있는 정부의 발언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수용될 수 없는 심각한 발언이다.

   덧붙여서, 이번 대국민 담화에서 가장 나에게 있어 어이가 없는 말은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습니다." 라는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청소년 인권이 선진국중 최악임이 사실이고(여기서 재론할 것도 없이 소지품 검색과 압수, 복장 준수 규정 및 정치 가담 금지, 기타 특정 학원의 전행들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짓거리다), 많은 네티즌들이 인정하듯이 인권과 거리가 먼 나라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12%라는 지지도를 보여주며 그에게 불신임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달도 안되어서 30%라는 지지도가 나왔다면서 저런식으로 말 바꾸기를 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현 정부는 북한에서 저런 소리를 배웠나보다. 실례를 살펴보자.

리○○이 그 무슨 《인권문제》를 거들고있는것도 우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것인 동시에 동족사이에 적대감과 불신을 고취하고 북남관계를 대결에로 몰아가기 위한 고의적인 정치적도발이다. / 주체사상이 전면적으로 구현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에서는 《인권문제》란 애당초 있을수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인권이자 국권이다.
- 남조선당국이 반북대결로 얻을것은 파멸뿐이다 (로동신문 논평원 칼럼, 4월 1일)

 ③ 그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던 "국민"이라는 그들만의 고유명사가 또 나왔다. ㄷㄷㄷ 그런식으로 국민들이 이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우겨대는건 솔직히 일본이나 JMS, 마é니교에서나 볼 수 있는 노릇 아닌가? 저건 분명히 성추행을 했고, 성추행 때문에 민사소송에서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소환되어서는 그 행위가 '거짓말'이라고 변명하는 정물개 메시야 뺨치는 수준이라 할 수 밖에 없다. 기타 사항은 첫번째 링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여기서는 지면상 생략.

 ④ '잘하면 내탓, 안되면 조상탓'인가? 아주 이젠 '국민'과 '서민'이 불우한 존재로 설정되면서 이들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구제될 수 있는 존재로 격하되었다. 그리고 그 국민들 중 상당수가 소속된 시위대는 매우 폄하하면서 깎아내리고 있다. 그럼 우리가 이위일체를 이루고 있는 존재인가? 아, 말 그대로라면 우리는 이 수령님을 존경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반발심'을 깎아내리고 없애버려야 하는 이상한 사회적 존재가 되었다. 왠지 토야마 고이치가 생각난다.

 ⑤ 결론적으로 이번 담화는 국민 통합이 아닌, 국민 분열을 일으키기 위하여 준비한 것 같다. 물론 말 그대로는 국민 통합을 외치고, 국민이 하나가 되어서 나라를 다시 살려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겉으로는 국민을 위하는 것 같으면서 결국은 국민의 분열을 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과 청소년들의 주축인 '민주 세력' (그들에게 있어서는 불순세력이겠지만)을 '배후세력'을 운운하여 제거하고, 침묵의 나선을 구축하고자 하려는 것 같다.

구드렌이 이제부터 해야 할 말들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마법의 주문을 외는 것처럼 미묘하고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누군가에겐 굉장히 거슬리는 말이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 아즈하리 특송상회, 1권 179p.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 8:41)

 지난 두달동안 누가 지켜보지 말라고 해도 시위대가 어떻게 했는지, 화통 터지면서 보아서 나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지겹게 알고 있다. 물론 사람들이 조용한 걸 원할 수는 있고, 그리고 이 때다 싶어서 이제 '나라를 살리려는' 보수세력도 그동안 '무력하게' 공세 당했던 시간들을 접고 이제 날개를 펴보려고 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공안정국화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무색케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지금이 시험기간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는 것이다. 7월 넘어서 방학이 되면 과연 이들의 계략이 그대로 성공해 있을지 의문이 가는 점이다.

 이미 초, 중, 고, 대학생, 그리고 청년 모두의 마음은 그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보았자 이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전혀 업ㅂ다고 본다. 아마 이 촛불은 방학이 끝나는 8월 말에서 9월이 되어야 진짜로 '진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수가 모두 간과하는 건지, 아니면 무시하는건지 모르겠는데 제발 지금이 시험기간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시작이다. 그 땐 정말 왜 재헙상 안했는지 후회하게 될거다.

 결론적으로,
 이젠 그 사람에 대해서 이 블로그에서 말하는게 지겹다.
 나도 이젠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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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0 18:56

기독교 성도 여러분들께 호소드립니다

  사랑하는 기독교 성도 여러분! 감히 젋은 청년으로서 한 말씀 드립니다.

 저는 보수 개신교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저도 그 '믿음의 기반'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도하시고 기대하는 다음 세대는 이미 '진보 기독교인'이지, 결코 여러분들이 원하는 '보수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전쟁을 경험하는 것 이전에, 많은 개신교 청년들은 '복음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들의 행동에 대한 것이라는 걸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들은 이미 당신들의 생각에서 그 손을 돌렸습니다. 이에 대해 앞으로도 '어른이 옳다'라는 말로 그 생각을 무시하실 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히 알고 넘어가십시오. 앞으로 대한민국의 하나님의 나라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향해 돌아설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그들의 사상이 '역설적으로'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걱정할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소망이자 하나님의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로 여러분들을 이끄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다' 라고 속이는 사단에 의해 생겨진 두려움의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도전이요, 여러분의 자아에 대한 도전입니다.

다윗과 골리앗


 요즘 제가 매일성경을 따라 사무엘상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 지나간 부분 중에 골리앗에 대한 부분이 나옵니다. 골리앗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라고 외쳤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이 그런 일을 해야 했을까요? 당시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이 골리앗을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상 17장 16절에 보면 골리앗이 나와서 40일 동안이나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0일동안이나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섬기자, 내가 오늘 이스라엘 군대를 위협하였다(17:9~10)'라고 말을 들었던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나 진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셨고, '죄를 짓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살피시고 도와주신다라는 사실을 왜 하필 이스라엘 군대가 모르고 있었을까요? 그건 자신들의 두려움의 영역 떄문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시위모습

하나님과 사람 중 무엇을 두려워 하십니까? <출처:뉴스앤조이>


 똑같은 경우입니다. 왜 북한에 대해 두려워 하십니까? 북핵 어짜피 폐기 단곈데 왜 북한에 대해 북핵폐기하라고 난리치십니까? 이미 선교사들이 북한 안까지 돌아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고, 성경이 전국으로 퍼진 마당에 왜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이를 두려워하십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랬죠. '저들은 내 밥이다!' 그럼 우리는 왜 '북한은 내 밥이다!'라면서 북핵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두려워합니까?

 그건 여러분들이 그동안 배워왔던 '반공주의' 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진리입니까?

 왜 북한 김정일이가 기뻐하는걸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의 큰 숲은 보지 못하면서, 왜 작은걸 보고 두려워 합니까? 그러니까 성경에는 '두려워 말라'라는 말이 365번이나 나와 있지 않나요? 삶의 문제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왜 그런건 두려워합니까? 덕분에 여러분들의 모습은 현재 하나님이 아닌, '김정일이와 김일성이'라는 마귀와 사단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이게 바른 신앙의 모습입니까?

 저야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저도 죄인이고, 주님 앞에 부끄러운거 많고, 거룩하지 못합니다. 근데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때문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하나님 앞을 떠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자아를 지키다가 남이 어려운 꼴 당해서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그건 아니잖습니까? 바울 선배가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으면 우상의 고기는 먹지 말아라'라고 했듯이, 예수님께서 '영혼을 잃게 하는자는 지옥에 들어간다' 라고 했듯이, 거기에 대해서 더 두려워해야 하는게 아닙니까?

 존경하는 기독교인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시위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회개의 영이 필요합니다. 그가 '다음 세대'가 원하는 것인지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고 순종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를 곧바로 내리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원하지 않지만, 여러분들이 그렇게 항의함으로서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왜 이렇게 못 깨닫고 계시는 것인지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여러분이 기독교 대한 감리회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지금 여러분들의 그 시위는 교회의 뜻에 맞추어서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지해 드립니다. 지난 6월 5일. 감리교회는 그렇게도 여러분들이 반대하시는 '쇠고기 수입 중단과 한반도 대운하 철폐'를 찬성하는 입장을 고지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읽어가시면서 느끼시는 바가 있기를 원합니다.

&lt;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감리교회의 입장&gt;


 끝으로,
 "극우보수로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면, 저는 그 길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떠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Let We joy "Cosplay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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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6 03:27

HID 수행자회, 한국의 야스쿠니 신사

  솔직히, 저는 6월 10일 광화문에 나가보기 전까지는, 아무런 정치적인 언급도 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은 매우 화가 납니다. 그리고 짜증이 날 수준입니다. 제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은 촛불시위를 보고 나면 곧바로 깨져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밤을 지새게 됩니다. 요즘 취침시간이 매우 뒤로 물러났고, 리포트를 여러개 제출해야 할 텐데,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참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보수세력 여러분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마음으로는 현재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꼴통'이라고만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50 ~ 70년대는 아시다시피 '반공정책'이 나라의 중심사상이 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때 태어나 학교에 다녔습니다. 당연히 공산주의를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싫어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저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입을 호국 영령을 추모하는 날인 현충일을 맞아서 열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인류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오마이뉴스의 글을 일부 인용합니다.

5일 밤 10시께 '사단법인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 유족동지회(이하 유족동지회)' 소속 유가족 8명이 흥분한 모습으로 서울광장을 찾았다. 이들은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회(이하 수행자회)'가 북파됐다가 사망한 자신들의 아버지와 오빠의 위패를 허락도 없이 찬 땅바닥에 내놨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임봉녀(45)씨는 "수행자회가 지난 2002년 4월 동작동 현충원에서 우리 유족들을 폭행한 적이 있다"며 수행자회에 큰 불신을 나타냈다. 이어 임씨는 "지금 수행자회가 아버지 위령제를 지내준다고 하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하나도 없다"며 "아버지의 위패를 돌려달라"고 수행자회 관계자들에게 항의했다.
 
다행히 아버님 위패를 찾은 임윤옥(52) 유족동지회 회장은 시청 앞으로 나와 기자들에게 호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님 위패를 찾았지만 이름도 틀려 있었다. 그나마 다른 유족들은 밤이 어둡고 7700개의 위패 중에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돌아간다. 어떻게 위패를 유족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땅에 이런 식으로 박아둘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략) 이렇게 내 아버님을 밤이슬 맞혀두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의사를 물은 적이 한번도 없고 행사 안내를 받은 적도 없다. 추모행사는 공식적으로 매년 판교 금토동 충현탑에서 연다. 그 곳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우리도 내일 그곳에 가서 추모행사를 열 것이다. 오늘같은 이런 행사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수행자회는 관계자들은 임씨와 같은 유가족들을 밀어내고 이들에게 욕설 등 막말을 퍼부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고인이 된 자신들의 아버지와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 앉고 시민들에게 자신들 처지를 하소연했다.
 
이에 수행자회 관계자 박모씨는 "오늘 우리가 준비한 행사는 유족동지회처럼 가족의 사망을 확인한 분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며 "위패를 찾아주겠으니 광장 밖으로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현재 유가족들은 시청광장 밖으로 밀려나 있다.


  정말 어이가 없다고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일단 HID 수행자회 여러분들의 생각대로, 행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리고 집시법에 따라 이미 집회신고가 된 곳에 아무런 언급이나 사과 없이, 마치 특전사가 나서서 진압하듯이 집회판을 벌여놓은 것까지는 일단 괜찮다고 해드릴게요. 그런데요, 유가족 허락도 없이 틀린 이름으로 위패를 써놓고 그들을 위해 절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 아닙니까?

  유가족은 HID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가요? 그들과는 왜 연합하지 않습니까? 유가족은 내팽개치고 자기들끼리만 놀면 좋다? 거기다가, 그런식으로 치면 6월 6일 현충일에 단지 HID 관련 호국영령들만 기도합니까?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린 호국영령 모두가 현충일에 기념될 필요가 있는데, 왜 6월 6일의 서울광장에서는 호국영령들이 아닌 HID 희생자들만 기념되어야 할까요. 그럴라면 호국영령들을 위해 처음부터 자리를 마련하던가 하죠. 이게 시민들이 당신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거기다가 한 말씀 더하자면, 저는 이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단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한국에서는 '군국주의 일본'의 대명사로 알려진. 지금도 8월 15일이 되면 일본 군국주의자들과 거기에 맞서 싸우는 민주시민들이 싸우는,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야스쿠니 신사 본전

야스쿠니 신사 본전 (출처 : http://www.yasukuni.or.jp/precincts/honden.html)



  아시다시피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제 시절에 강제로 끌여나가서 일본군의 총받이로 끌려나가야 했던 우리의 조상들의 혼령들이, 단지 '일본 군으로 참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강제로 야스쿠니 신사의 '영새부봉안전'(
霊璽簿奉安殿)이라는 곳에 강제로 합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살아있는 사람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현재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생존해 있으면서 야스쿠니 신사에 봉안되어 있는 '생사람'의 수가 무려 13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중 9명이 합사된 자신의 이름을 빼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는 이에 대해 '생존 확인'은 해주지만 '영새부'는 신의 영역이므로 수정할 수 없다는 생 떼를 썼다고 합니다. ( 출처 : [ 동아일보 - 야스쿠니 신사, 전사 안한 60명 무단합사 ] )

  그렇다면, 이런 야스쿠니의 행태와, 오늘 HID 수행자회가 유가족들에게 보여준 행태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HID 수행자회에 물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HID에서 조국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하신 그 수고는 인정합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전사하신 여러분들은 국민 모두의 기념과 추모를 받기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은 저희가 인정합니다. 하지만 HID 모두가 당신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HID 가족들도 당신들과 같이 그런 '치사한 방식'으로 촛불집회를 방해하고 막아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생각에 모두 동의합니까? 그때 죽었던 HID 분들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들의 그 행태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실까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체면과 도리, 그리고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인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렇게 철야 농성으로 108배까지 하면서, 욕설하며 자신들의 동지의 가족까지 모멸하면서, 집시법으로 신고된 집회를 막으면서까지 당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명분이 무엇입니까? 아예 그 명분 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요?

  대한민국 모두가 이명박에 분노한 사실을 아실 겁니다. 지지율이 15%, 기껏해야 20%정도 밖에 안되니까 다시 계산하면 국민의 80%이 이명박 대통령에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 통계청 ] 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추정국민수는 4천7백80만 6천여명입니다. 여기의 80%라면? 3824만명입니다. 5천만 국민 중에서 3천 8백만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의 생각을 막고 반대를 할 당신들의 명분은 무엇입니까?

  이 역사적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이상, 당신들의 '뻘짓'은 그토록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조롱하고 우롱한 처사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여러분들이 몸을 바쳐 사랑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당신들을 이렇게 기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 2008년 5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소고기 수입 고시에 분노하여 거리로 나섰다. 시위는 3개월동안 계속됐고, '청소년의 시위'처럼 치부되었던 시위는 시간이 지나자 전 국민이 함께 하는 시위로 대폭 확대되었다. 당시 정부는 경찰들을 동원해 사상 처음으로 청와대 1km 앞까지 다가온 시위대에 물대포를 붓고, HID 공작원 동지회, 보수단체들은 이에 대해 서울광장을 점거하고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시위대의 시위는 계속 확장되었고, 시위는... "

p.s 내용 이해를 위한 링크들.

[ http://blog.daum.net/co2923/10502511 ]
[ 시청 앞 HID, 이명박 정부의 독재 명분 만들기? ]

p.s.2 검색하다가 이런 사실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
저 분들은 주로 군복무 북파간첩으로 형성된 (HID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회 고,
여기에 대해서 막고 계신 분들은 (사)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유족 동지회 법인이라고 하는군요.
현재 특임수행자들의 홈페이지는 [ http://www.khuman.org/ ]
(사) HID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유족동지회 홈페이지는 [ http://www.hidujd.com ] 입니다.

중요한 내용이라 내용 추가하고 발행시간 갱신합니다.

p.s.3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리고 싶은 몇가지 짤방들.. 더 올리고 싶은데 사진이 없네요.

백악관 앞

백악관 앞 시위장면 (출처 :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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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31 02:33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무엇보다 최근의 시위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한 두 블로그를 링크한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04497&table=seoprise_11&start=110#pre
  - 광주 시민들이 시위 안하고 놀고 있는 이유와 미래 분석 ㄷㄷ

http://ladywitch.egloos.com/1762752
  - 서울, 광주, 부산 시위현장 정리. 특히 예비군들 모임에 주목할 것.

우리 학교에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며칠 전에는 시위 참가를 위해 학생회에서 버스 한대를 빌리지 않나,
아예 학생회에서 대자보 붙여서 6월 3일, 6월 10일날 가자고 설득전 나섰다.
기말 국면이라 그래서 그렇지,
끝나면 아마 우리학교에서도 맨날 반이명박 집회를 벌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610항쟁과 오버랩 된다는 것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충격이다.

정작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보수진영과 보수진영 목사님들,
그리고 눈과 귀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대한민국 대통령 2MB 님.
그리고 그를 보좌하고자 노력하는 한나라당. 그리고
[ 사람을 사람이 아닌것처럼 표현하는 ] 여러분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 [ 댓글늬우스 18 ])


덕분에 흘러오기 시작하는 반기독교 국면때매 걱정이지만
그건 하나님이 어련히 하실테니 그것보다 우선,


당선된 순간부터 '다음 세대'들이 그 소식에 좌절했는지,

고소영에 강부자로, 많은 사람들이 사퇴해야 했는지,
 입을 열지 못하던 10대들이 당당히 거리로 나섰는지,
 PD수첩의 '어리석은 말'에 사람들이 난리치기 시작했는지,
 백골단 동영상이 나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는지,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 밤을 새며 연행도 불사하는지,
 연행된 것도 기쁨으로 여기는지,
 시위가 10대를 넘어 전 세대 계층으로 확장되는지,
 목사님들이 청계천 앞 감리교빌딩 마당에서 금요철야를 하는지 (감동해 버렸다),
 예비군들이 모여서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난리치기 시작했는지,

 조중동 폐간운동이 활개를 치는지,
현직기자가 술을 연신 마셔댈 수 밖에 없는지,
전직기자마저 자기 신문 구독을 거부했는지,
 모두가 정부의 말을 무시하기 시작했는지,
 국민이 국민의 경찰을 거부하는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쳐대기 시작했는지,
 대한민국의 시계가 꺼꾸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는지,

 한달 동안 시위가 사그라들긴 커녕 더 커져가는지,
 탄핵, 하야라는 말이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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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03:11

'긍정적인 생각'과 고통받는 어린 양떼

#1.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창 1), 토요일이 되고 주일이 되었다.

 라고는 하지만 교회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40년 넘게 교회 목사로 섬기시던 감독님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일일부흥회를 리드하시고 그 다음날 은퇴하셨다. 그리고 우리 사랑하는 목사님이 방금전에(?) 취임하셨다.

 사실 그것뿐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는 기쁜 일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기대했던 교회 개선의 첫 발자욱을 떼는 것이니만큼, 이건 내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일이다. 딱딱하고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멀어져 있었던 교회가 가까워 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감독님의 마지막 일일부흥회 설교는 나에게 또다시 어려운 마음을 안겨주었다. 일단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라는 주제로 예수님께서 감람나무를 저주하신 텍스트를 소재로 해서 하신 말씀인데, 감독님은 설교중에 대략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다. (정확한 Fact는 아니니 과장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명박 장로 대통령으로 세워 주셔서 감사하다. 지금 미국 쇠고기 논쟁하고 대운하 반대하는데, 실제로 미국 가서 미국 쇠고기 먹어보니까 맛있기만 하더라.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고, 청계천도 그랬지 않았는가. 시간 지나면 모두가 이명박 대통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2.

 그리고 그 부흥회가 끝나고 난 몇 시간 후, 나는 오마이뉴스를 보았다.
 
 오마이뉴스에서는 실시간 시위 중계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한시인데도 시위 참가자들이 흩어지지 않는 모습을,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정상적인 접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즉, 끊어지고, 이어지고, 끊어지는 연속이었다. 결국엔 나중에는 접속을 포기해 버렸다. 오마이뉴스가 탭체계를 거부하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파폭은 확인 못해서 모르겠다)

 내용은 좀 충격적이었다. 6년 만에, 사람들이 청계천을 벗어나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하기 의해 청계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역시나 다를까. 우리의 '도우미' 경찰은 '보호'를 명목한 '시위 진압'에 나섰고, 시민들은 그에 반대하면서 "폭력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결국에는 터지는구나.

#3.

 그리고 두시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토익을 보고 한시에 교회에 들어갔다.
 컴퓨터로 체크해보니 37명이나 잡혔다고 했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했다.
 하지만 교회는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런 일에 신경틀새도 없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저녁에 이취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4.

 오늘 밤은 더 처참하다. 이젠 아예 세자리 숫자까지 그 숫자가 올라갈 기세다. 젊음의 지성이라 불리는 연세대 앞에서 시위가 마구 벌어졌다는 것 자체가 경찰청에게는 충격이었겠지만, 말도 안되는 공권력으로, 결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소수 같지 않은 소수들이 다수 같지 않은 다수들에 의해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특히 '귀족 노조'의 시위 때나 나오는 심각한 때려잡기가 '선량한 시민'들 앞에서 베풀어지고 있다. 이정도면 뭐라고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빼고는 아무런 말도 없다. 계속된 집시법의 폐혜는 결국 조직없는 무리들에게까지 이르렀고, 그 피 삯은 예수님처럼 아무 죄 없는 시민들에게 베풀어지고 있는 셈이다.

 요즘 살아가고 있는 의미 자체가 옅어지게 만든 이 대한민국이라는 존재. 사실 이명박이 당선되기도 전에, 선거날 18시에, 일은 시작됐다. 젊은이들은 한 사이트에 모여서 대한민국이 망했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놓기 시작했고, 그 생각들 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이명박 취임 이후 계속해서 휘청대기 시작했다. 어린이와 젊은이의 생각을 하나님께서는 역시 부자들보다 더 듣기 좋아하시나 보다. 하지만 그 피삯은, 절규하고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에게도 베풀어지고 있다.

#5.

  아무리 하나님의 어린양을 찾고 부르고, 주님,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래서 주님은 거룩하시다고 계속해서 찬양해도, 아마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대한민국 모두에게 펼쳐질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 그것은, Again 1907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1-2년 뒤로 시점을 늦추심으로서,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Remodeling을 계획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다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본문으로 넘어가서 생각해 보자. 그럼 교회의 '긍정적인 생각'은 현재의 고통받는 어린 양떼에 도움이 되겠는가? 그럼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 자체는 좋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것만은 좋지 않다고. 그 진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지 오웬의 동물농장이다.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가장 정확한 우화인 동물농장이, 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공감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구조에 있다.

#6.

 이명박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CEO, 불도저로 마구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서 무엇이 문제인지, 더 엎드려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왜 이명박에게 있어서는, '어린 양떼'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이명박이 스데반을 핍박하고, 예수를 핍박한 바리새인들 같이, 그 피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 쓸지도 모르겠다.

 저번에 이 블로그에서 다루었던 진성고등학교. 결국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기에 대해서 더 글을 쓰신 분에 대해서 진성고등학교는 그 분을 고소하기까지 했다. 하나님이 진성고등학교에 보응하실 것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사회 구조를 인정하고 오히려 '확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가?

 10대 학생들이 분노를 느끼는건 다 이명박 때문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토록 좋아하시는 선진국에는 존재할 수 없는 두발 규제, 핸드폰 검사, 복장 규정, 소지품 검사 및 압수까지는 괜찮았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가 실시한, 결국 '죽음의 트라이앵글'만 확인 시키고 끝난 89년생들까지도 아이들은 참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게 변한것이, 아시다시피 유명한 429 교육자율화 조치다. 결국 아이들을 때리고 굶주리게 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된 '종합선물세트', 거기다가 쇠고기에 학교급식이 연계되자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명박은 여기에 대해서 "놀 공간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다"라면서 농담식으로 애들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몇주간 참혹하게 커져 나갔다.

 결국 이리들에 의해. 약한 이삭들에 의해 어린 양들은 잡아 먹히려고 한다. 그래도 이 어린 양이 어느정도 능력은 있어서 대응이라도 가능한것 같다. 하지만 이리는 생각한다. 언제는 잡아먹히겠지.. 그럴까?

#7.

 혹시 이런 생각이 '부정적인 생각'아니냐며 말하시려는 기독교인 분들. 이게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이다. 왜 진리를 위한 '부정적인 생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을 알리는> 사 60장의 말씀은 어디로 갔는가? 그래서 이게 내가 가장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의 사람들은 언제나 이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한다.

 불우 이웃은 도울줄 알면서도, 아이들의 고민과 생각에 대해서는 "좋은 대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라는 명목으로 밀어 붙인다. 이것이 이중적 생각이 아닌가? 아이들이야 말로 억우하고, 빛이 없는 자들이다. 더군다나 용돈도 없으니 가난한 자겠고. 그런데 그들을 삶아 먹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면, 하나님의 존재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언젠가 어디서 봤던 신명기의 <어미 젖으로 아기를 끓이지 말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아마 북한에 대해서라면 곧바로 정의를 드러내며 북한 애들을 돕던가, 북한을 선교해서 자유국을 이뤄야 한다는 두 파로 나뉜 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 뭐 양쪽다 일리가 있으시고 모두가 그리스도의 계획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임을 인정한다. 노인복지도 또한 열심이다. 하지만 청소년 선교는? 그냥 집회 해서 애들 '회개'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채워지면 다 똑같이 변화되어서 '새 사람' 될줄 안다. 물론 대학가서 하나님을 섬기고 기도할 사람이 지금도 너무나 부족하고 필요하다 (내가 그 필요를 안다).  하. 지. 만.  오직 그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왜 그리스도인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새 촛불을 들면 안되, 아니 촛불집회와 어울리지 말아야 할 사람들로 규정되어가고 있는 것인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세상에 부르심 받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로 들이대지 말라.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인간이다. 부르심이 있다면 당당히 비느하스처럼 분을 품어 싸울 떄가 필요하다. 교회는 그런 인간 대신, 즉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 그토록 기독교가 가톨릭에 대해 싫어하는 '교회를 통한 구원'을 강요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즉, 우리는 가톨릭의 교회를 통한 구원 (미사통상문의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로 대표되는)을 올바르게 바로 잡아 거부했지만, 정작 우리는 '교회 공동체'에 의해 자신의 믿음이 결정되는 삶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필요하고 교회에 헌신이 필요하고 교회 사업을 통해서. 심지어 건물 짓기 경쟁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알 줄 모른다. 내가 이상한건가 라는 생각마저 할 뿐이다.

#8.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긴데, 왜 중고등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하는데 대학생이 참여 안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으로 살펴봐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관점은 중고등학생은 옹호하고 대학생은 관심을 잃었다라는 점을 주장한다. 그리고 88만원세대가 이것 밖에 안돼냐고. (그래서) 이데올로기로 다시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제발 깨달아주길. 대학생들은 못 나갈 뿐이다.

 그 실례가 우리 학교다. 우리 인하대학교에서는 지난주에 운동장에서 수천명이 모여서 등록금 및 광우병 반대 집회를 열었다. 나중에 오고 보니 30%가 인하대 외부에서 온 사람이었고, 역시 주목적은 등록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하대 학우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정석 옆에는 총학에 의해 이런 프랭카드가 붙었다 : "광우병 반대 인하대생이 시작하자!" (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도 매일 저런식으로 시위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다 )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대학생들도 생각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인터넷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대학생들은 참여하지 않는 것일까. 당장 내 사정만 들려주면 이해가 간다.

 나는 지금 밀려있는 숙제가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마구 돌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의 대가로 나중에 처리해야 하는 과제들을 이야기해 보자.
 
 일단 내일 저녁에 팀 미팅에서 두세개의 이미지 시안을 더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기사 쓰는게 화요일까지. 그리고 내용은 수요일날 팀미팅에서 검토돼 목요일날 발표후 금요일날 최종 제출을 통해 그다음주 월요일 인하대학신문에 발표될 절차를 거치고 있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한 개론 과제에서는 IPTV 광고를 통한 영향력이 어떻게 되겠는지에 대한 논문을 이번주 금요일 밤까지 써서 제출해야 한다. 나는 전혀 여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참고자료들만을 우선 찾기 위해서도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지금 논문 준비를 위해 논문들을 번역하고 있다. 이 논문들에는 일반 영어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이 수두룩하며, 번역도 잘 되지 않는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별도로 이 논문에 대한 확장 내용을 지난주까지 제출해야 했는데 진행이 안돼고 있어서 결국은 포기. 교수님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것도 수업진행은 없지만 학점이 부여되는 정식 수업이다. ㅠ.ㅠ;)

 이게 끝이라면 좋겠지만, 학교에서는 졸업 자격으로 <논문과 작품>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작품도 만들어야 한다. 이건 좀 Delay가 가능하지만, 이와 연계된 인터뷰를 수업의 일환으로 촬영, 제작해야 한다. 당장 녹화 대상이나 날짜, 그리고 장비 자체가 규정되지 않았는데, 몇주 안으로 끝나야 한다.

 그나마 지난주 안에 끝난 것들도 있지만, 거기에 기말고사까지 생각해 보라. 이정도라면 나는 이런 글도 안쓰고 지금 계속해서 학교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안하고 있는 이유는, 글 쓰는게 막혀서다. 그냥 풀리까 해서 쓴다. 그런데 학생들이 어디 미쳤다고 나가겠는가? (참고로 이정도는 나에게 있어서는 최대로 힘든 것이지만, 다른 대학생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토익까지 있다고 생각해 보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중고등학생들이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면, 대학생은 '표면적인' 행동의 제약은 없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학점', '취업' 이라는 이유의 가장 큰, 그리고 필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래서 못나갈 뿐이다. 제발 여러분들이 대학생을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몇주간동안 지쳐 있고 힘들다. 이젠 좀 풀리려나.

#9.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사회, 경제 구조를 따지려면 내가 그걸 공부한 것도 아니고, 나도 더이상 지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여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와 설명을 이제 마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명박 체계의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제 기러기 아빠가 아니라 이민나가는 사람들이 급증할 지도 모르겠고, 대불공단에서는 겨우 두개 뽑힌 전봇대 가지고 아직도 어려움들이 계속되고 있으며, 아이들은 학교와 부모, 그리고 아이들 자신들에 지쳐서 아무리 "숏기! 패기!"를 외치는 "힘내라 청춘아" 광고를 봐도 실망하고, 성적 폭력을 행하고, 음란물을 좋아하며, 험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국 사회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개선안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제시한 것들은, 결국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쁘게 살고 싶지만, 결국은 이명박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오는 꼴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명박이 잘한게 있다면 공무원 개혁과 의무보조금 폐지만일 정도로 (ㅇㅅㅇ)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럼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교회나 수도원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말고 예배만 드리면서 살아야 할까? 아니라면?


#10.

 결국 모든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하지만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우리는 진리를. 참을 선택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어려움>이 닥처도 말이다.



- 2008, ear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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