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2 01:11

문화 - 상품 - 소비, 그리고 유교


본 글은 ignition님의 아래의 트윗을 보고 제 의견을 적은 것으로서, 내용이 상당히 깁니다. 또한 이 글은 3개월 가량 만에 제대로 쓰는 첫 글로서, 이 글부터는 올포스트에 송고되고 있지 않음 또한 알려드립니다.

대중들이 상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매체의 흐름에 편승해서 '오타쿠' 라는 사회의 일부 문화를 부정적 대상으로 치부하는것과, 소프트웨어든 음악이든 책이든 죄다 불법으로 내려받아 보는게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대중의식과는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그들에게는 애정을 가지고 물건에 돈을 써본적도 없고, 무형의 음원은 그저 MP3 라는 컴퓨터상의 파일일뿐이고, 보고서 울고 웃을 수 있는 책은 그저 JPEG의 형태를 지닌 것이기에 이해를 못하는것이리라.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책한권, 음반 한장, 하다못해 게임소프트웨어 하나라도 사보지 않은자가 과연 누구를 욕하려하는가.
막말로 오타쿠 문화가 '더럽고 추잡스러운 행위'라고 한다면, 그러한 오타쿠들로 인해서 돌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들로 인해서 그림그리는 자들이 입에 풀칠하고, 제본소가 활발히 돌아가며, 디스크 정제소가 철야를 하고...

-  @ignitionDK 님 (86789980118192129 이하)

   1. 이 글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내용이 전반적으로 공감이 간다. 아무리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콘텐츠의 희귀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콘텐츠를 다운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그 행동이 분명히 콘텐츠를 그대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위에 있어서 필요한 대가지불을 유보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대가지불이 없는 행동은 결국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범법자로 우리가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건 기독교적인 논리에서나, 유교적인 입장에서나, 자본주의적 입장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단지 사람들의 행동을 완벽히 단속할 수 없고, 단속할 경우 국익을 지나치게 해치게 되어 생산 차질이 발생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국가에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일단 원칙상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이러한 생산을 그나마 실제로 돈을 주면서 구매하는 오타쿠가 사실은 대가지불을 완전히 하지 않는 일반인보다 낫다- 라는 것이 본 트윗들의 주장이고, 그 주장을 실제 검토했을 때도 이는 사실임이 드러날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말이다.

   2. 그러나 단순히 이 글을 간단하게 수긍하고 넘어갈 수 없게 하는 문제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주류 문화 바깥의 만화-애니메이션 계 팬들, 또는 마니아들을 단순히 '오타쿠'라고 부르면서, 그러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모든 행동에 (심지어 주류 대중문화 안에 있는 아이돌 팬들에게도, 자조적이든, 아니면 외부 강압적이든 간에) 비정상이라는 인식을 심고 이를 언술과 헤게모니-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무심코'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사회의 대중들, 그리고 둘째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는 유교-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 : 또는 상류층의 이데올로기이다.
   과연 '모든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이라는 우리나라-일본의 특이한 현상은 어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일본의 매일 출근에 야근이라는 독특한 회사문화도, 우리나라의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하는 야근 - 회식 현상도, 자신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놀리는 - 그리고 왕따/은따 하는 모습도, 사실은 두 가지 근원에서 그 근원이 유래한다.
   하나는 공동체 안에 있어야 편안하다는 - 그리고 그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부과되는 규칙과 제약들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은 사실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보수-수구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 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향약이 아닐까. 공동체가 필요하니 사람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향약이 구성되고 이러한 향약 바깥에서 마을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향약이 확장되면서 사실은 유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상 단점인 문제가 여기에서 도래되는데, 바로 그것은 소수 몇몇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다른 사람이 통제를 받는, 독재-또는 과두정 형태이다. 사실 통치에 의해 이루어지는 평화는 - 모두에 의해 완전히 합의되어 질 때 - 제일 좋다. 하지만 그 결과에서 보듯이 이러한 독재 과두정 형태는 결국 우리 조선을 망쳤고,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망쳤으며, 지금도 애국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려고 하고 있다.
    둘째로는 이익을 내야 한다는 자본주의 또는 모더니즘으로 인해 불거진, 목표를 성취하고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이름 하의 비가시적인 폭력이다.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체의 구성원이 부품처럼 사용당해도 되고, 그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그리고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해도 되며, 이러한 결과로 인해 얻을 긍정적인 결과는 공동체의 후손들 개개인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이것이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엄청난 영향이다. 물론, 나는 이러한 폭력에 대한 대안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도 자본주의에서의 탈출을 말하면서 동일한 죄악을 지었고, 역시 서민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덕수용소와 같은 북한의 인민에 대한 분류와 학대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죄악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똥이 덜 묻었다고 더 묻은 사람을 비난할 수 없듯이, 민주주의를 가장한 한국의 자본주의 중심의 사회 체계는 분명히 수정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오타쿠 문제'의 중심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만화-애니메이션계 문화와 그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유저들 또한 이 두가지 기준에 의해 판단을 당한다. 기존의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행동과 주장을 하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출판해서 생산하기까지 하니 기존의 사회 문화규범을 파괴하므로 이상하고, 생산을 위하여 소비할 시간을 자신의 취미를 위해 덧없이 사용하고, 재화를 헛된 곳에 사용하니 비생산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사회 규범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 자체가 당연하다.

   3.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을 뒤집어주는 한가지 명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문화콘텐츠의 발전'이라는 명목이다. 문화콘텐츠의 중심에는 사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영화(중에서 실험적이지 않은 것)를 제외하고는 모두 100% 그 기존의 문화를 뒤집고 흔들어야 성립할 수 있다는 이상한 명제가 성립한다. 요즈음 뜨는 성공한 애니메이션 치고 비생산적이지 않고 소비적이지 않고서는 성공하지 못한다. 이성적인 문화콘텐츠는 이제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 따라서 감성을 자극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점차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문화콘텐츠 생산자들의 논리가 기존의 유교-모더니즘적 이데올로기에 합산되면서, 미래의 국가 성장을 위해서 비합리적인 소비를 촉진시키고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성립된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각 개인들은 생산적 기계인간과 소비적 유저라는 쉽게 조화될 수 없는 선상에서 방황하거나 갈등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고민을 갈등시키는 이유중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생산적 기계인간으로서 사람이 살면서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젊은 세대들이 보고 자라나면서 절대로 '나는 생산적 기계인간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돈이라는 우리의 '천적'을 제외하면, 소비적 유저가 되기가 더 쉽고 편리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지금의 아노미 상태는 사실 과거와 미래의 교차 - 과거의 사람들이 원했던 미래가 가져오는 '부작용'을 수용하는 상태일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실 매니아들은 자신들이 소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문화를 즐김으로서 자신들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킴과 함께 그들이 쓰는 소비를 통해 그 문화가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일본 문화를 소비하기는 하지만  일본에게 돈을 주면서 문화를 소비할 수 없다'는 민족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는 애니메이션 소비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국산 만화나 애니메이션 - 그리고 동인지에 대해서는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매니아들의 선택을 일반인들은 이상하게 여길 수 있으면서도, 앞으로는 쉽게 비판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급한 문화자본의 구축을 위한) 문화 소비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비생산성에 대한 비판은 앞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현재의 세대가 나이가 높아질 수록 더욱 감소할 것이며, 보다 더 수용적이 될 것이다. 물론 심리적인 장벽이 계속해서 허물어지지 않을 가능성은 일본에서 보듯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성이 문화 소비의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대의 흐름 - 그리고 그에 따라 이루어질 국가의 사상적-사회적 변화 때문에 분명해 보인다.

   4. 문제는 문화 산업-소비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근본성인 소유성, 그리고 박탈성에 있다. 이러한 문화적 소비가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자신이 그 물품을 가져야 한다는 욕망과 함께 희소 물품을 자신이 쟁취해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명품적 마케팅이 있다. 이 명품적 마케팅은 상품을 팔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돈을 쓰고서라도 제품을 구매하게 하고, 그 제품을 간발의 차로 구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그러한 구매 능력이 없어서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결국 다른 차선의 것이라도 구하려고 노력 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시에 문화 상품이라는 주류이탈적인 문화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 소유성에 대한 아이러니 또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러한 문화 산업-소비를 완전히 폐하는 것. 또 하나는 이러한 문화 산업-소비의 공동 소비를 촉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정부에서 완전히 문화 산업 소비를 공공재로 전환하거나, 시민의 세금을 재배분해 보조금을 주어 문화산업 소비에 따르는 상대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셋 다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적다. 첫번째의 경우는 오히려 금지의 결과가 그러하듯이 음성적인 재소비를 촉진시킬 것이고, 두번째의 경우는 공동의 소유 또는 순환적 사용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할 것이라는 한계, 그리고 이러한 소유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문화 상품 자체의 특성, 그리고 문화 생산 기업의 반항이 움직임을 어렵게 할 것이다. 마지막의 경우는 시민들의 가시적 부담을 줄여주고 합법적인 대가 지불을 통한 문화 소비 확대를 불러일으키며, 기업들도 어느정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동시에 세금이 늘어날 것이고, 따라서 조삼모사적 대안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결국, 문화적 소비에 대한 완벽한 대안은 없다. 그렇다면 차선적 대안이 나와야 할 것인데,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고, '주류적 시선'과 더불어 문화적 소비를 방해하는 요소는 상존하여 소비자들을 줄이고자 할 것이다. 결국 문화산업의 발전은, 그리고 다양한 하위문화의 발전은, 이 모순들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에 달렸다.

LiH 110702. ear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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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02:16

<코스어부터의 기도> 프로젝트가 씁쓸해지는 이유


 1. "코스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을 하는 것은 어렵다. 물론 정의도 내릴 수 있고(나도 이미 내린 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상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며, 또한 여기에 대한 글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하는 사실에서 '코스가 정확하게 이것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코스도 지금 어느 순간에도 계속해서 확장되거나 변용, 또는 외부 영향에 의하여 변질, 축소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스가 무엇인지, 그 구성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 자체도 사실은 완벽히 불가능한 일이다.

  2.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WCF를 통해 접한 [ <코스어부터의 기도> ] (Prayers from cosplayers  : 이후 PFC로 표기) 프로젝트를 접하면서 상당한 아쉬움과 함께 씁쓸함을 금치 못한다. 이 프로젝트는 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일본인들이 코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가지 큰 편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3월 19일 현재 <코스어부터의 기도> 메인페이지. 초상권 보호를 위해 코스어의 얼굴은 삭제 처리했다.
 
   3. 그 중 첫번째 인식의 편견은 코스 문화의 유일한 향유자가 코스어뿐이라는 데에 있다. 물론 '코스를 하는 사람이 코스의 향유자'라고 여겨지는 세계 보편적인 상황[각주:1](?)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코스는 코스어뿐만이 아니라 일련의 사진사들과 함께 발전하고 있다. 물론 사진사들의 일부는 실제로 돈을 받고 코스어들에게 사진을 제공하고 있으며, 또 일련의 사진사들은 코스어들을 일종의 모델뿐으로 볼 뿐이지, 코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나, 그래서 코스 문화에 끼어들고 싶다는 등의 직접적인 행동을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은 잘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코스 문화와 동떨어져 있으므로, 그들은 단지 사진을 찍을 뿐이지 코스인[각주:2]이라는 하나의 내부 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는 절대적 근거가 있는가?  또한 그들이 코스어들과 같이 동화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결과를 지지하는 근거가 존재하는가?

   물론 이런 질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반론이 날라온다. 사진사도 곧바로 코스를 할 수 있지 않느냐. 곧 사진사도 코스를 하면 코스어이므로 코스인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올바르지 못한 반론이다. 사진사가 코스어를 찍는 행위 또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요소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사진사가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 주니까 코스프레에 대해서 그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은데, 한국의 사정은 또 다르다. 한국에서의 사진사들은 코스어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난 다음에 이를 자체적으로 보정하여 코스어에게 제공하는 작업을 맡는다. 한가지 더 주의할 점은 이러한 행동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부분 무보수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코스 문화에 기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사진사들이 코스인이라는 하나의 서클 안의 멤버로 여겨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의 코스 문화의 특수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 한국 코스문화에서 코스어의 외모가 중시되고, 또한 Output을 통한 평가가 몇몇 기제를 통해 강조되면서 (물론 이를 통한 한국 코스문화의 왜곡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코스어들의 진입과, 또한 장기적인 코스판 내에서의 정착이 어려운 면이 분명히 존재하고, 따라서 '평범한' 코스를 하는 코스어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러한 상태에서 코스판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빠른 시일 내로 모두 코스를 하라는 암시적인 주장 내지 강요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요즘 코스옷이 10만원, 20만원 한다는 것과 사이즈가 큰 코스옷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같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Deviantart의 외국 사례를 살펴봐도 조금씩 사진사 개념이 생기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서서히 한국의 코스판에서 보는 것과 같은 사진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물론 한국 같은 '전문성'은 없지만 말이다).

   (물론 이러한 질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실 분이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이 '당신이 사진사이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삐뽀. 어느 면에 있어서는 정답이다. 하지만 과연 사진사가 코스인이 될 수 있는가의 질문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질문이다는 점과, 나같은 경우 코스어들과 맨날 채팅을 하면서 하도 코스어들과 친해지고 코스어의 내부 문화에 어느 정도 동화되었을 때 일반적인 '사진사'들 간의 거리가 분명히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지금도 내가 사진사 커뮤니티에 가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그 반론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물론 '사진사는 코스인이 아니'라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면 아무런 말도 안 통하겠지만.)

    결론적으로 다시 정리하자면, 코스어가 코스프레 문화를 구성하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코스어는 아니지만 '민간인', 또한 '사진사'들로서 코스프레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 즉 그 커뮤니티 활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들도 코스 커뮤니티 내에 존재한다. 문제는 그들에 대한 코스어들의 인식인데, PFC를 기획한 사람들은 어쨌든 '전통적인(?)' 입장에서 코스어들만을 참가 대상으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참가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4. 둘째로 발생하는 편견은 코스가 만화-애니메이션만을 소재로 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왠지 맞는것 같은 이야기 같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두가지 문제점이 들어있다. 첫째로, 이를 일본이라는 지역적 한계 안에서 한정하여 다시 고찰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각주:3] 즉, PFC 첫 페이지에 게제된 '재해를 입은 사람들 중에는 많은 애니메이션·만화·게임 팬등이 있습니다'라는 발화를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이라는 맥락과 결합한다면, 망가まんが와 아니메アニメ로 대표되는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무래도 '일본 게임'을 좋아하는 '피해를 입은 일본인'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정을'같은 취미를 지닌 동료同じ趣味の仲間'라는 발화가 정박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냐고? 즉 코스어를 같은 취미를 지닌 동료로 호명하면서, 그 취미의 대상을 '일본 아니메, 망가, 게임 팬', 또는 그것을 따라하고 있는 '[세계의] 코스어'로 한정한다는 소리다. 즉 이 이야기를 과격하게 재정리하자면(물론 그러한 의도가 없었으리라고 믿는다), 일본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코스를 하고 있는 사람만 코스어라는 이야기다.

  물론 한국에서의 사정만을 가지고 하는 이야기지만, 예를 들어서 <언더프린> 같은 웹툰을 바탕으로 한 코스라던가 한국 게임을 바탕으로 한 코스가 상당량 존재하고 있고, 한국이나 기타 로컬 지역에서의 문화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코스가(<고스트 메신저> 같은 경우가) 앞으로 계속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유래한 코스는 코스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을 다른 코스어들에게 한다면, 모두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둘째로, 코스의 대상이 문화콘텐츠 안으로 제한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지금의 코스계에서 같은 흐름 안에 속하는 코스가 두개나 된다. 그 중 하나인 1990년대 말부터 유행했던 팬코스를 고찰해 보자. 그들도 코스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들이 코스를 했던 대상은 만화-애니메이션이 아닌 스타-아이돌들이었다. 그래서 '애니 코스'어들은 이들을 자신들과 다른 대상으로 보고 코스인으로, 또는 코스판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지금의 팬코스는 소수의 존재가 되었다. 물론 2000년대 중반에는 베리즈공방Berryz工房이나 모닝구무스메モーニング娘。등의 일본 팬코가 유명했고, 최근에는 소녀시대의 코스가 코스어들 사이에서 다시 등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코스는 코스가 아닌가? 예를 들어서 해외에서는 한국 가수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코스어라고 부를 수 없는가? 

   나머지 하나인 밀리터리 코스도 그렇다. 물론 팬코스에 비하면 밀리터리 코스가 가지고 있는 유사성은 떨어진다.하지만 밀리터리 코스는 코믹월드등의 행사에서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며 이미 한국 코스계에서 친밀한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 또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코스어가 아닌 것일까?

   5. 상기의 문제와 연관하여 PFC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크면서. 논쟁점이 많은 편견은 코스가 일본에 의해 시작되었고 발전되었다는 주장이다. 물론 일본과,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코스 문화가 이만침 확산되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일본에서 시작된 것인가? 라는 것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코스는 카이와Caillois 가 분류한 놀이의 4가지 형태 중 모방, 즉 미미크리mimicry 에 해당한다. 그리고 모방 자체는 수천년 전부터 밀교의 비밀 형식(예를 들어 오시리스 의식이나 테메테르 입교 의식 같은)이나 죽은 사람의 데드마스크를 쓴다는 등의 행동에서 이미 존재해 왔다. 현대에도 지속되는 (리오) 카니발이나 할로윈 데이 같은 행사도 특정 기간과 공간 이내로 코스 행동이 제한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코스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또한 현대의 코스 움직임 또한 일본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1939년에 있었던 제 1회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World Science Fiction Convention 에서 지금은 작고한 포레스트 J. 애커맨Forrest J Ackerman 이 Mrttle R. Douglas이 디자인하고 만든 미래인의상Futuristicostume 을 코스한 것을 직접적인 현대 코스의 시초라고 볼수 있으며, 그 이후 이러한 코스 형태는 남북전쟁재현, 또는 스타트랙, 스타워즈 코스 등의 모방놀이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최초 코스인 1978년 제 17회 일본 SF 대회에서 판타지 서클 ‘로레리어스’에 의해 이루어진 에드거 라이스 바로즈의 <화성의 비밀 병기>의 표지 일러스트 코스 또한 SF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즉, 1960~70년대에 데츠코 오사무, 토에이 등의 많은 만화 제작자들에 의한 일본의 만화-애니 부흥기에 코스는존재하지 않았다. 코스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정착된 것은 맞지만, 그것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짧은 시간 이내 이루어진 것이다.[각주:4] 심지어 '코스프레'라는 단어 조차 1984년 세계 과학소설 컨벤션(애커맨 선생이 처음 코스를 하신 그 모임) 의 코스 모습을 보고 일본 SF 작가인 타카하시 노부高橋のぶ[각주:5] 가 명명한게 굳어진거다.

   그리고 현재의 무대행사 퍼포먼스도 일본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여부가 불명확하며, 오히려 이러한 무대행사는 한국이 좀 더 발전한 분야중 하나였다. 물론 2000년대 초의 한국 '팀플'의 전성기에 비하면 현재의 '무대'는 많이임펙트나 그 내용의 밀도가 옅어진 것은 사실이나, WCS[각주:6]에서 다른 참가팀에 비해 뛰어난 퍼포먼스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등 한국의 무대는 지원에 따른 발전 가능성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일본이 코스프레라는 개념의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순히 코스라는 이름을 명명하고, 제시해 왔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 코스프레가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고 발전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중간에 일본 국기를 그리도록 한 것 또한 우려를 표시할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6.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즉, 코스는 일본에서 시작한 문화가 아니며, 그 개념 또한 미국 SF 문화의 전적인 수입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코스는 단순히 코스어로 구성되는 것만이 아닌 사진사, 일반인을 포함한 하나의 큰 문화적 공간이자 판이다. 이러한 사실을 제외하고 단순히 '코스어들의 일본인을 향한 응원'을 수집한다는 것은, 코스에 대한 깊은 사고와 고찰이 없는 단순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쓰면서 PFC 프로젝트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를 경멸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코스인들이 일본의 코스인들 - 아울러 애니/만화 팬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전하는 것 또한 중요하고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퍼포먼스 자체에 대해서는 지지함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하지만 코스는 단순한 만화, 애니, 게임 등을 모방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모방하는 행위 자체를 통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 코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함께, 함의 도출을 위해 앞으로 중립적인 관점을 위해, 본 논고가, 코스의 일본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만한 시도가 되기를 바란다.

110319-23. earpile de arsle.

 
  1. 가령 cute의 경우 사진사 개념을 배제하면서 코스어의 등록만 인정한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사이트인 cosplaylab도 마찬가지. [본문으로]
  2. '코스인'이라는 개념과 코스판 - 또는 코스 공간 - 에서의 역할에 대해서는 나중에 글을 써야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여기서의 코스인은 코스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사진사나 '민간인'도 코스인이다. [본문으로]
  3. 여기서부터 기호학 방법론을 이용한 내용 분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간다면 복잡한 기호학 이론을 설명하고 더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표를 그려야 할 필요까지 있어서 더 설명을 하지는 않겠다. [본문으로]
  4. 1970년대의 SF 내지 판타지계 흐름에 대해서는 히카와 레이코, 도쿄에서 판타지를 읽다, 청어람미디어, 2004 (ひかわ玲子のファンタジー私説, 東京書籍, 1997)을 참조. 여기에서 SF-코스에 대한 내용 서술은 제한되어 있다. [본문으로]
  5. 일본어 위키백과 - [ <a href="http://ja.wikipedia.org/wiki/%E9%AB%98%E6%A9%8B%E3%81%AE%E3%81%B6" target="_blank" >다카하시 노부 항목</a> ] 참조 [본문으로]
  6. World cosplay summit라고 일본 문부성과 아이치현이 매년마다 다양한 나라에서 2명씩을 국가대표로 불러와서 치루는 무대행사 콘테스트. 이 WCS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나중에 글로 써야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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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02:14

ARIA, 그 인생의 애니메이션은…


  인생의 애니를 한편만 꼽아서 추천을 하라는 위드블로그의 공감 캠페인을 봤다. 어쩌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 전체의 삶을 돌이켜 놓은 터닝 포인트와 같은 애니메이션, 그리고 나의 삶을 바꾸어 놓은 애니메이션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곧바로 떠오르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그것이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애니메이션인 ARIA이다.

 ARIA [아리아] 는 아마노 코즈에 (天野こずえ)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한국 어린이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한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ケロロ軍曹)의 감독인 사토 준이치 감독이 케로로의 감독직을 사퇴하고 뛰어든 애니메이션으로서, 23세기말 ~ 24세기 초 화성을 개조하여 만든 네오 베네치아의 3대 곤돌라 관광 안내 그룹 중 하나인 아리아 컴퍼니의 운디네(곤돌라 수상안내인)에 미즈나시 아카리가 지원하여 지구에서 건너오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처음에는 1기 13화의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총 3기 52화, 즉 1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되어 방영되었다.
 

<ARIA>의 주인공인 미즈나시 아카리. (만화 1권 표지)


 라운 것 중 하나는 이 애니메이션에는 대립 구조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적도 없고, 라이벌 그룹의 친구들끼리 오히려 협력도 한다. 사장은 사람이 아닌 지각이 뛰어난 화성의 고양이가 차지하고, 돈이 부족해 언제나 돈을 썩힐 필요가 없다. 심지어 아리아 컴퍼니는 한명의 선임 운디네(프리) 와 한명의 보조 운디네(싱글)만으로 운영되는데도 잘 돌아간다.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애니메이션을 '내 인생의 애니메이션'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일까?

 째로, ARIA가 가지고 있는 탄탄한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구조를 들고 싶다. 스토리 구조에 갈등과 대결이 없다 뿐이지 모든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스토리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캐릭터의 개성과 구조도 대단하다. 아리시아, 아카리, 아키라, 아이카, 아테나, 아리스로 구성된 세 그룹의 대표 운디네들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서로를 보조해가며 성장해 간다. 그리고 시간이 다 지났을 때 아리시아의 은퇴를 기점으로 한 세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한 시대가 지나는 것을 지켜보다보면 정말 이 애니메이션을 본 것이 감격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될 정도이다. 하지만 감격과 함께 동시에 스토리라인에 개그 요소 (가령, 일반적인 모습과 개그용 모습이 다르다), 또는 고정적인 개그 대사를 배치하여 재미성도 고려했다. 한 화 한 화가 지나가면서 재미를 느끼고, 동시에 감성을 자극받고, 감동을 받을 수 있다면 이만큼 좋은 애니메이션은 없다.
 

몇년전에 재구성해 본 ARIA의 인물관계도 (를 재작업)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이와 그랜마는 별도의 그룹으로 분리해야 하지 싶다; 


이것이 바로, 코믹 캐릭터의 진수다!


 째로는, 모든 연령층이 마음을 놓고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 대립이 없다는 것은 일면 그만큼 매화마다 탄탄한 스토리를 배경으로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언제나 사건이 발생하고 적과 싸우며,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재미를 불러 일으킨다. 또한 이는 기존의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뛰어나다는 애니메이션들을 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마루치 아라치>, <로보트 태권V>부터 시작해서 일본의 자존심이라는 <마징가 Z>, <기동전사 건담> 등 대부분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대립 대상('우리'와 '적')을 정하고 그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승리를 이루는 근간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ARIA는 싸움이 아닌 협동, 그리고 일상을 그 근본 스토리에 두었다. 따라서 총칼이 난무한 기존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아름다운 네오 베네치아, 그리고 자연,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모험이 강조되며, 따라서 모든 연령이 보기에 적당한, 그리고 서정적인 스토리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론 그러한 스토리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애니메이션을 볼 때 무기가 나오고, 싸우고, 피를 흘리고, 사람이 죽어나가고, 무언가 계속해서 잃어버리는 스토리 또한 재미있을까? 아니 무섭지 않을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대립 노선을 따른 탓에 199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왜색' 논란이 불러일으켜져, 현재까지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폐해가 인류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 또한 분명히 있다는 점에서 ARIA는 이러한 전형적 애니메이션을 넘어서고, 새로운 애니메이션 스토리의 기준을 제시하며, 이를 확산시키는 작용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이후에 코에이의 <금색의 코르다>,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그리고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5센치미터>등의 작품이 이를 따랐다)


ARIA는 기존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공존, 성장해 나가는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을 추구한다.


 지막으로 ARIA를 '내 인생의 애니메이션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 애니메이션이 내 대학생활을 표상해주는 단 하나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대학 4년을 마치는 2008년에 [ ARIA를 다 보고 나서 썼던 글 ]은 그때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 말해주고 있다.

아카리가 페어로 아리아 컴퍼니에 들어왔던 것도 어느새였던지.. 이제 아카리가 아리시아를 대신하여 아리아 컴퍼니의 사장이 되어... 그 이후로 아이를 맞게되어 (눈치채지 못했어요!) 이야기가 끝나니 놀랐었고.. 그리고 아리시아가 은퇴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약간 눈물을 흘렸었더랍니다. 2기에 보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이후로의 눈물.. 그리고 다시는 흘리지 못할 눈물이군요.

   다른 글을 보니 많은 분이 이 마지막 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으신 느낌이더라고요. 저도 2006년 ARIA를 처음 보기 시작해서,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 그리고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동시에 저도 참으로 많은 일들을 벌였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하는 이 시점 앞에서, 한숨에 열 두화를 보며 비로소 오늘의 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이제 써야하는 논문과, 앞으로 4차 학기동안 계속될 대학원에의 길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ARIA의 끝을 보니, 저도 그 시점의 아카리와 동일한 시점에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 아니 뭔가 그렇습니다.


  짧다면 짧은 애니메이션 하나를 가지고, 지금의 지도교수님에게 학부때 받은 처음의 수업(2006년, 그러니까 4년 전이다)에서 아는 형과 함께 (무려) ARIA를 바탕으로 해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OSMU 차원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지금 와서 보니 부끄러운 발표다), 그리고 같은 학기에 오신 한 중견 작가(지금은 어느 대학교에도 출강을 안하고 계신다)의 소설 창작 수업에서도 (내용을 비꼬기는 했지만) ARIA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아키라의 말을 보다가 하나님 앞에 회개(?)의 눈물까지 흘린 적이 있다. 이 정도라면 내가 ARIA를 왜 강력 추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 정도로 뛰어난 애니메이션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안 믿을 것 같아서 인증샷 업로드:)


 금까지 ARIA를 '내 인생의 애니메이션'으로 추천하는 세가지 이유를 적어보았다. 그 외에도 들 수 있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글을 읽으신 분들 중 애니메이션을 보지 못하신 여러분들이라면 ARIA를 직접 보고 그 감동을 경험해 보실 것을 추천드린다. 분명히 공감하실 수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원작자 아마노 코즈에님과 애니메이션 제작팀 (한국에서 작업하신 분들을 포함해서) 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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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1:40

코스프레 : 애니 옷 입기

다음의 내용은 로렌스 브레너(Laurance Brenner)가 2009년 7월 14일에 http://staticmultimedia.com/print/features/cosplay~_anime_dress-up 에 올린 글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cosplay는 엄격한 사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스'로 번역했으며, 모든 주는 역주입니다. 그리고 게시된 많은 링크는 원본 표시와 달리 링크 처리했습니다.

코스프레 : 애니 옷 입기 (Cosplay: Anime Dress-Up)

할로윈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코스프레란 무엇인가? 코스프레는 엄격히 말하자면 '코스튬 플레이'의 줄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코스는, 꽤 절대적으로는 많은 애니 컨벤션이나 다른 코스 이벤트들[각주:1]에서 코스옷(costume)을 입고 옷을 입는 동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코스를 정의내릴 것인가? 인터넷 시대에, 당신은 구글로 'cosplay'를 검색하고나서 위키백과[1]와 도시사전[2]에서의 정의를 얻을 수 있다. 이들 모두에는 코스에 대해 적힌 많은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는데, 이들의 말을 되풀이하는 대신, 나는 짧은 역사와, 코스의 세계적인 매력, 행사들, 그리고 가능성과 미래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코스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고 믿고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몇 년동안 코스가 일본의 미디어를 중심으로, 즉 아니메나 망가, 또는 주로 일본에서 만들어진 비디오 게임들의 코스옷을 입어오긴 하지만, 코스는 일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코스는 실제적으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코스는, 비록 코스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이미 사람들이 의상을 입고 행사들에 가는 것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 아니메가 미국을 강하게 히트하기 전, 이미 미국에는 코스가 있었다. 사실, 첫 코스는 포레스트 J. 애커만[각주:2][3]에 의해 이루졌는데, 그는 1939년에 제 1회 세계 과학 소설 컨벤션(World Science Fiction Convention)에서 "미래인의상"(Futuristcostume : Myrtle R.Douglas에 의해 디자인되고 제작된)을 입었다. 이후 스타워즈나 스타트랙의 옷을 입는 사람이 생겨났으며, 또한 르네상스 전시회에서도 나타났으며, 심지어 남북전쟁의 재현자(re-enactors)들도 등장했다. 게다가, 이들 모두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스타워즈와 (특히) 스타트랙의 옷을 입는 것이 관찰되머, 그들은 이 코스에 매혹되어 있었다. 이것이 일본에서 코스가 시작된 장소이다 : 즉 그들은 미국인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은 이러한 점을 스타워즈와 스타트랙 팬들과 전세계에 있는 코스어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코스 자체는 단지 미국이나 일본의 현상이 아니라, 이제 전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제 이 매력은 전 세계의 아니메, 망가, 그리고 만화들을 관통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자유국가나 그렇지 않은 몇 나라에서 당신은 최소한 하나의 애니 컨벤션이나 이벤트, 또는 코스어들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다. http://www.animecons.com/events/map.shtml 에 있는 지도는 전세계의 컨벤션들의 완전한 숫자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는데, 완성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이 목록에는 브라질의 것([4], [5])이나, 월드 코스프레 서미트[각주:3][6]에 참가하는 다른 몇몇 나라들의 정보도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애니 컨벤션이나 코스 모임이 있는 이스라엘 같은 다른 나라의 정보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Cosplay.com과 ACP/ACE/ACS[7](미국 내 2대 주요 코스 사이트)는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코스어가 있는지에 대한 표본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모든 코스어가 이 두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cosplayers.net이나 영국의 코스섬[8] 같이 더 많은 지역 수요를 공급하는 국가 특정의 코스 사이트도 있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 사이트인 Cure[9]에도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각주:4]



최소한 미국에서 생긴 많은 주요 코스 사이트들에서, 영어를 쓸 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각주:5] ACP/ACE/ACS의 말을 인용한다: "이 사이트가 American Cosplay Paradise [American Cosplay Experience]라고 이름지어졌지만, 우리는 우리 영어(our English)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다른 나라의 코스어들도 가입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Cure에서는, 영어 버전을 오픈하는 순간 세계적인 큰 충돌이 발생했다. 왜냐하면 아니메가 세계적으로 퍼져있었기에 많은 일본 문화의 측면들은 받아들여져 있었지만, 일본어(Cure에서일본어 사용자의 수가 증가하고 있었던 반면에)는 (최소한 아직은) 세계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웹 인터페이스나 키보드 같은 주변은 영어권에 비해 익숙하지 않았다. (참조 : [10])

세계의 많은 코스 사이트들에서 코스어들이 코스(옷)를 보여주고 있는데, 나는 그 전체 리스트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그 숫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이트들의 경우, Japanator[11] 와 같이 코스나 코스어들을 어떤 방식으로나, 모양, 형태로 내세우면서(feature) 일본 문화를 커버하는 사이트들도 있다. 여기에다, 많은 코스어들은 자신의 사이트에 코스옷과 관련된 내용이 없을 때, 자신의 코스옷를 기반으로 한 자신의 웹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한다(이는 그들이 자신의 웹사이트를 단지 코스나 코스와 관련된 것들 이상의 용도로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이스페이스나 플리커, 라이브저널(LiveJournal), 데비안트아트,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코스옷과 장비들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자신의 코스옷을 뽐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또는 다른 사람이) 코스하는 모습이나, 팀코하는 장면, 장비들을 사용하는 장면들을 재미있게 보여주는데, 이는 코스의 요소중 하나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사람들이 코스프레에 연관(involve)되는가?



코스에 연관되는 것은 매우 쉽다. 당신이 해야할 일은, 기본적으로 아무 것에서든지 당신이 하고 싶은 캐릭터를 골라서, 코스옷을 구하고, 즐기면 된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코스옷을 스스로 만들기 만들고, 또는 수주를 맡기거나(commission), 또는 심지어 코스샵(가판 건물 상점에서나 온라인 소매상 모두)에서 구매하기도 한다. 또는 (일본어를 모른다면)서비스를 통하거나, (일본어를 안다면)일본 사이트에 방문해 직접 일본에서 코스옷을 구매하기도 한다. 코스어로서, 나 자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 방법을 섞어서 사용해보았다. 이는 코스어들이 일부분은 자신이 만들고, 다른 부분은 수주를 맡기고, 또 다른 부분은 상점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코스옷을 구하는 방법은 (코스옷에 따라서도) 다르다. 하지만 많은 코스어들은 스스로 자신의 코스옷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심지어 몇몇은 전체 코스옷이 아니더라도, 몇몇 부분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정보(tutorial)를 제공한다. 나는 분명한 경고를 하고자 한다: 코스는 매우 비싼 취미가 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나의 손님에게 "너나 친구들이 코스옷에 얼마나 돈을 쓰니?"라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대답했다: "작품이나 캐릭터에 따라 달라지지만, 우리는 어디에서나 하나의 코스옷에 200~400달러(2009년 7월 기준 25~50만원 : 역자)나 그 이상을 사용해요." 매우 저명하거나 잘 알려진 몇몇 코스어 친구들은, 하나의 코스옷에 1000달러(동 기준 120만원 : 역자) 이상을 사용한다. 그러나 당신이 이정도로 많이 돈을 쓸 필요는 없다. 내 대부분의 코스는 50달러(동 기준 6~7만원 : 역자) 아래의 의상들로 이루어진다. 내가 자주 하는 코스는 캐릭터의 캐주얼 버전들을 일반적으로 하는 "캐주얼 코스"인데, 이 경우에는 J.C.Penny나 월마트에서  살 수 있는 옷이나, 실제로 입는 옷들을 입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애니나 코스 행사들 바깥에서 나의 캐쥬얼 코스옷을 입어본 적이 있는데 (사이토 in 공각기동대, 루팡 3세 in 루팡 3세, 랏세 에이온 in 건담 더블오), 주위 사람들은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누군가는 캐주얼 코스를 하는 것이 코스를 하는 것보다 창조적이며 전략적(creatively resourceful)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다른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많은 시리즈들에는 작품(canon)에 분명히 있는 캐주얼 코스프레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코스프레는 창조적이며 전략적이 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는 말을 고려하자면) 당신이 코스하고 있는 캐릭로서 코스옷(costume)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그러하다. 이 중 가장 큰 예를 들자면 컨벤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데스노트의) 라이토 야가미와 엘일 것이다, 그리고 컨벤션에는 그렌라간의 라미나와 같이 자신의 주요 옷(main costume)을 잘 차려 입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만약에 어떤 중상모략자(detractor)가 (나는 가능한 한 유쾌하게 말하려고 하고 있다) 당신이 이것(특정 국적 같은)이 아니고, 이거나 저걸(특정 신체적 조건 등을) 가지지 않아서 당신은 저 캐릭을 코스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코스의 가장 큰 인상(aspect)이 무국적(mukokuseki, 無国籍)인 것으로 은폐되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무국적은 "국적이 없음"으로 번역되고, 애니를 보는 동안에, 당신은 이것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메에서, 특히 유명 작품 중에서, 일본인이나 아시아 사람, 또는 심지어 카프카스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얼마나 되는가? 거기에는 그들이 어떤 국적인지에 대해 외모 이외의 방식으로는 알 방법이 없다.[각주:6] 당신은 가끔씩 피부 색깔을 봐서는 아프리카인들이나 인디안 (또는 중동지방의 사람들)일듯한 캐릭터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이러한 점은 카우보이 비밥 같은 몇몇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탄다. 또한, 많은 애니에서 보듯이, 눈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이 현실세계의 표상(representation)과 완전히 다른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되어야 한다. 차라리 시나리오나, 이야기나, 이름들이 국적을 좀 더 함축해서 나타낸다. 최근 애니 중 가장 유명한 예는 인도인이긴 하지만, 긴 금발 머리를 지닌 락샤타 차우라[12]이다. 이제 이 사실이 코스를 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모든 인종이 코스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락샤타처럼 보이는 인도계 코스어를 본 적이 있는데, 아프리카계 코스어도 똑같이 놀랍게 보였다. 내 친구중 하나도 역시 아프리카계 사람인데, 앞으로 코드 기어스 팀코에서 락샤타를 코스할 예정인데, 그녀도 코스옷이 대단해 보였다(정보를 주자면, 나는 로이드 아스브룬트를 코스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코스를 할 때 생각하는(그리고 많은 다른 코스어들도 최소한 무의식적으로도 생각하는) 것은, 이 캐릭, 이 캐릭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지, 당신의 인종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많은 캐릭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캐릭의 옷이나, 스타일, 또는 중요한 표시들(mark)들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에 대해 설명하기는 복잡하겠지만, 시각적으로 생각해보기 위해서, 내가 했던 코스 중의 예로 히사기 슈헤이[각주:7][13]를 들어보자. 이제 슈헤이를 살펴보자, 그리고 당신이 부대장(lieutenant) 슈헤이를 코스하기 원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자신이 슈헤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슈헤이의 어떠한 점이 중요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정답은 그의 얼굴에 있는 상처와, 파란 타투, 그리고 69 표시다. 이것이 슈헤이를 만드는 주된 부분이며, 슈헤이를 코스하고기 시작하고자 하는 당신에게도 중요한 부분이다. 호정대 단복(Soul Reaper Uniform)이나, 심지어 그의 무기같은 나머지 부분은 단지 슈헤이와 비슷하게 보일 가능성만을 높일 뿐이다.: 하지만 주요 부분을 지니지 않고 있다면 당신은 슈헤이가 아닌 것이다. 즉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코스에는 당신이 가진 민족성(ethnicity)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으며, 단지 무엇이 슈헤이의 캐릭터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다른 많은 코스에도 적용된다. 이미 말했듯이, 당신이 캐릭터로서의 코스를 하고자 한다면, 캐릭터를 살펴보고, 그 캐릭터가 무엇에 의해 구성되는지 결정하라. 이 말이 누군가에게 무엇이 코스의 미래인지 살펴보도록 하지 않을까?

앞으로, 나는 특히 코스가 중동이나 인도 사람 같은 인종 특성에 맞는 인기 작품의 캐릭이 늘어남에 따라 확장되리라고 본다. 과거에도 <오 나의 여신님>에 나오는 캐릭터(우르드[14] 같은)나 소녀혁명 우테나 (히메미야 안시 같은) 등의 많은 예들에서 캐릭터들이 아시아나 유럽식 모습을 넘어선 캐릭터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쇼들, 특히 인기쇼들에서 에서 완전한(sheer) 다민족 배역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를 미국에서 보듯이 다른 나라에서도 보면서, "나도 저걸 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이를 더 많은 코스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문화를 결합하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캐릭터를 코스하기 위한 시작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see). 나는 또한 전 세계에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코스에 참여함에 따라 솔직히 모두를 흥분하게 만들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매 컨밴션에 내가 갈때마다 찾아내는 어떤 것이며, 내가 컨벤션에 가는 것은 나를 놀랍게 만드는 것들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일한 것이 와우 소리를 내게 하는 코스옷을 볼 때 마다 온라인에서도 일어난다. 나는 나와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또한 내가 참가할 때마다 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본다(see). 코스는 참여적이며, 코스에 참여하는 숫자 또한 계속 증가하고 있다. 코스는 계속, 또 더욱 메인스트림이 되어가고 있으며, 동시에 사람들은 번개(meet up)라던지, 소풍이라던지, 또는 더 많은 자신들의 코스 이벤트를 창조해나가고 있다.

코스하는 것은 즐거움을 얻는 것이며, 코스를 하는 것은 즐겁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1. 애니 컨벤션은 한국의 코믹에, 코스 이벤트는 한국의 (물파스나 코사모가 주관하는) 촬영회에 비겨 보면 되겠다. [본문으로]
  2. 미국의 SF소설 작가(1916-2008). [본문으로]
  3. 일본 나고야에서 일본 문부성등의 주최로 열리는 이틀간의 행사. 한국에서도 에버렌드 협찬으로 참가하긴 하나 일본에서 한국의 팀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므로 한국에서는 이미 무시하는 모임. [본문으로]
  4. 2009년 7월 현재, 한국 최대의 코스 커뮤니티인 물파스닷컴에는 17만 6천명, 코사모에는 3만 8천명의 유저가 있다. 홈페이지식 사이트인 cospre.com 이나 환골탈태의 유저수는 전혀 예측 불가능. [본문으로]
  5. 한국어 커뮤니티에서는 예외. [본문으로]
  6. 물론 최근 금코나 데스노트, 또는 명탐정 코난 같은 것들이 일본 지명이나 상황을 가지고 들어오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화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슬램 덩크 같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분의 무국적론에는 나는 반대. [본문으로]
  7. 9번대 대장. 참고로 이후 원작자는 그의 성을 따라 Hisagi로 표기했으나, 역자는 우리나라의 통용표기에 따라 슈헤이로 표기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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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5 00:06

ARIA가 끝났다 - 그리고 나의 대학생활



   오늘 하루는, 종일을 쉬면서 지냈습니다. 솔직히 내일까지 논문제출이라는데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나도 좀 놀랍지만,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상당히 제 기억에 있어서도 상당한 분수령이 될 것 같네요. 드디어 대학교 2학년때부터 보기 시작한 아리아 (ARIA) 애니메이션의 전체 3부작 (이라고 하지만 4쿨이니 1년 분량이군요)를 다 보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2기의 20화 이후, 그리고 3기 1화, 2화 도 봤는지 안 봤는지 햇갈리기는 하지만, (아,OVA 하나도 아직 못봤네요) 나중에 보정할걸 다 날리고서라도 1년 분량의 애니를 본 기억이 이게 처음이지 싶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있어서 ARIA는 대학생활 4년을 대표하는 하나의 애니메이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카리가 페어로 아리아 컴퍼니에 들어왔던 것도 어느새였던지.. 이제 아카리가 아리시아를 대신하여 아리아 컴퍼니의 사장이 되어... 그 이후로 아이를 맞게되어 (눈치채지 못했어요!) 이야기가 끝나니 놀랐었고.. 그리고 아리시아가 은퇴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약간 눈물을 흘렸었더랍니다. 2기에 보면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 이후로의 눈물.. 그리고 다시는 흘리지 못할 눈물이군요.

   다른 글을 보니 많은 분이 이 마지막 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으신 느낌이더라고요. 저도 2006년 ARIA를 처음 보기 시작해서,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고물이 된 HP 노트북을 교체해서 현재의 쓰기 좋은 Xnote로 바꾸었고, 저희 집도 과거의 단층 좁은 공간을 벗어나 이제는 거실 넓은 (넓어서 별로 쓰이지 않는) 새로운 장막으로 이사했고, 우리 교회도 지루했던 감독님 시대에서 감격의 목사님 시대로 전환했고(정말 지금도 목사님 시대라는 것이 기쁩니다), 그 사이에 저도 ARIA the Animation을 이용해 코스와 연계해서 종민형과 함께 ppt 작업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ARIA를 보면서 느꼈던 점을 바탕으로 google earth(한글판도 없었던 때)로 프랑스 동부를 뒤져가기도 하면서 비꼬는 소설을 써서 (그렇다고 해서 ARIA 자체를 비꼰게 아니어요!) B+맞고(그것도 중견 소설가님의 평가로), 그리고 보니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동시에 저도 참으로 많은 일들을 벌였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하는 이 시점 앞에서, 한숨에 열 두화를 보며 비로소 오늘의 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이제 써야하는 논문과, 앞으로 4차 학기동안 계속될 대학원에의 길이 남아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ARIA의 끝을 보니, 저도 그 시점의 아카리와 동일한 시점에 서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뿌듯? 아니 뭔가 그렇습니다.

   그만큼 대학생활을 통해서 ARIA를 통해 얻은 느낌(?)은 제 삶에 있어서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제 '보아야 하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이미 본, '다시 볼 수 밖에 없는', 즉 아우라가 사라진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이 아우라를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 얼마나 안타까운 것일까요? 물론 어머니는 이 애니메이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애니메이션 열심히 보니 사람이 뭐 됐다'라고도 하셨기도 하지만, 저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게 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람의 일생을 통하여 이렇게 좋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 그리고 그 시간을 허락해 주신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부분입니다. 하나님 너무 멋져요.

   그리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주신 만화가 미즈나시 아카리님과, 사토 준이치 감독께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니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3탄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는 것. 작은 것을 놓쳤다는 것, 그리고 주변이 너무 빠졌다는 것..)

   누군가 이 좋은 만화를 실사로 옮겨주기를, 혹은 리메이크해주기를, 그리하여서 빠진 부분들을 다시 채워주기를,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기를 기대하면서, 영광을 다시 한번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도 요동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세상과 부딪혀 나아갈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p.s
 
#1. 다음 애니는 아마 <앨리슨과 리리아>를 보겠지만 (이미 1화를 봤습니다), 그만큼의 감동은 없을 겁니다. 이건 단언할 수 있습니다.

   p.s.2 오늘 애니를 보면서 느꼈던 거 한가지. 왜 아리아 사장은 노화하지 않는 걸까요.. 이미 죽었어야 마땅한데..

   p.s.3 마지막으로 이 블로그 답지 않게.. 캡쳐들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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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4 22:36

스토리보다 스토리텔링이 먼저? NO!

일단 이 기사부터 보고 시작하자.

 “스토리 보다 스토리텔링!” - CTNews ( http://ctnews.kocca.or.kr )

 매주 문콘진흥원의 CTnews를 보면서 이렇게 황당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이 아직 대한민국의 문화콘텐츠의 전부를 대변하는 말이 아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만큼 대한민국 정부가 문화콘텐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뭔가 삐뚤어져 있다는 거다. 젠장.

 일본에서는 알다시피 1년에 수백개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좋은 시청률을 얻어보고자 분투하고 있고, 그거 그리느라 돈도 예산도 딥다 줄여가면서 애니메이션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러한 작업들이 스토리없이 스토리텔링의 기법으로만 나온다고? 정말 웃기는 소리다. 한국 드라마라면 그럴 수는 있어도, 곧장 다른 장르 넘어가면 그런 소리는 전혀 못할꺼다.

 최소한 일본의 그 수백개의 영상콘텐츠는 (에바같은 예를 제외한다면) 거의 모두가 창작이 아니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의 콘텐츠가 스토리텔링적인 요소를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스토리의 검증이 이루어진 스토리를 스토리텔링화 시켜서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일본의 OSMU(One Source, Multi Use :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가지의 플랫폼으로 전환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콘텐츠 시스템)는 이미 구조화되어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많은 콘텐츠 제작자가 알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이러한 정책은 일본의 콘텐츠가 세계까지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당장 [ 니코니코동화 ]에 많은 한국인이 가입해 있다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이러한 것은 일본이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육성정책을 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전혀 정반대다. 반드시 창작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에서 이미 생산되어 있는 판타지 소설이나 기존 소설 등의 콘텐츠는 등안시하면서, 청소년들이나 성인의 애니메이션 수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아니, 우리나라 코믹월드 가보면 짐작도 못하냐? 만화랑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유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만 계속 유도하고 찍어내는 한국 문화진흥원의 정책이나 (DICON 2006, 2007 모두 가봤는데 제작부분에서 오시는 분들은 모두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제작사 분들 밖에 없었다, 제작트랙 강의내용도 노골적으로 그 부분이었다.) 회사들, 그리고 계속해서 쏟아지는 스토리들은 무시하고 괜히 일본 소설에서 가져와서 드라마를 만드는 근시안의 영상 콘텐츠 제작자들.

 그럴 시간 있으면 제발 스토리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달라. 일본도 저렇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만화 제작자들과 지망생이 만화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구상하고, 라이트노벨도 신인상 제도로 철저히 스토리를 걸러내는 과정을 통해 나은 스토리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저런 식으로 스토리보다 스토리텔링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하고, 스토리 제작 부분은 등안시 하면서 소설 쓰는 사람들은 그냥 문화예술 지원으로만 그치는 부분이다. 문화예술이 실제로 문화콘텐츠화 되는걸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는지...

 며칠전에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IWGP) 를 읽었다. 내용들에 맨날 음란한 것들이 나오는 일본의 소설은 보기 싫지만, 이 소설은 1996년 나온 이후에.. 그 후에 보고 놀랐던 것은 2000년에 테레비도쿄에 의해서 11부작 드라마가 되었고, 나중에는 만화가 나왔다. 이게 한국 소설계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소설가의 생각이 잘 다듬어져서 문화콘텐츠가 되는걸 보긴 아직 어렵다. 국산 라이트 노벨이나 판타지는 더더욱 어려운 실정이다. 하긴야 그런 내용들 보고 나서는 '저게 스토리냐'?라고 말하겠지.. 제작자들은.. 근데 스토리를 키우지 않으니까 결국은 이러한 상황이 생긴게 아니냔 말이다.

 한국 문화콘텐츠여, 제발 스토리텔링에 삽질할 시간에 이젠 스토리에 삽질좀 해줘라. 그래야 우리나라 문화콘텐츠가 살아날텐데... 왜 이런 간단한 사실을 문콘진흥원은 신경조차 안 쓰려고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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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14:18

금색의 코르다, 시청률을 분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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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에 학과 수업에서 애니메이션을 분석하여 발표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때  [ 금색의 코르다 ]를 보면서 다양한 내용을 조사했었는데, 오늘은 <금색의 코르다> 애니메이션의 시청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금색의 코르다는 아시는 분은 아시겠다시피, <삼국지>, <대항해시대>, 혹은 <신 쌈국무쌍>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제작사인 [ KOEI ]사에서 만든 게임을 만화화한 이후, 별도의 '코르다 제작위원회' (KOEI, ANIPLEX, 白泉社, TYO, ゆめ太カンパニ-의 5개사)를 구성하여 제작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면 KOEI에서 옆에 보이는 것과 같은 '아름다운 콘텐츠'를 만들어 낼수 있느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 안젤리크 스페셜 ] 이라는 게임을 해보신 분이 있다면, KOEI가 하는 작업들이 단순히 전략, 액션등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KOEI는 [ 네오 로망스 ]라는 장르 내지 게임 분류를 개발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금색의 코르다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내용, 구성, 스토리텔링 같은 내용은 나중에 자세하게 하기로 하고(저거에 대해서 제대로 쓰려면 정말 적어도 3주 정도는 날 새야 합니다. 애니메이션 보면서 작성한 내용 재확인하고 표를 작성하고 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저한테는 그런 힘은 없습니다.), 오늘은 시청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는데요, 일단 그 전에 한가지 계산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TV가 몇 대 있을까요? 그리고 몇명이 이를 보고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몇가지 자료를 근거로 계산한다면 나름대로의 계산은 가능할 것입니다.

㉠ [ The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Database ] 에 의하면, 2003년 현재 일본의 인구 천명당 수상기 보급률은 785대 입니다. 2000년은 725대, 2001년은 731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02년에도 785대로 공시되었습니다.) 따라서 2007년 현재 일본의 인구 천명당 수상기 보급률은 800대라고 가정합시다. 사실은 그보다 더 높을수 있겠습니다만, 실제 사용되는 수상기의 비율을 감안하면 그 정도면 충분할 것입니다.

㉡ [ CIA World Factbook ] 에 따르면 2007년 6월 일본의 총 인구는 127,433,494명입니다. 대충 일본의 인구는 이정도 자료라면 충분합니다.

㉢ 그렇다면 일본의 인구당 총 인구 (㉡)에 천명당 수상기 보급률 (㉠)를 곱한다면 일본의 수상기수를 잡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계산 결과 1,0194,6796.2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대략 1억 2백만대군요. 이 어림잡은 값을 계산의 편의를 위해 우리의 텔레비전 갯수 값으로 정하겠습니다.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청률은 이 텔레비전 갯수를 기준으로 합니다.

㉣ 그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을까요? 근데 요즘 일본에는 1인당 1텔레비젼을 쓰는 경우가 많고, 한 곳에 여러 텔레비젼을 쓰는 곳도 있을 것이니, 그 수치를 1.0~1.1명으로 어림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통계 (일본의 수상기 한 대당 시청자 수)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인구수 계산은 (확실한 사정을 모르므로) 1.0과 1.1로 두 번 합니다.

 그럼 대충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금색의 코르다>를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건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보통 '쿨'이라는 체계로 돌아갑니다. 1년은 52주입니다. 52주 내내 방송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방송사의 목표입니다. 따라서 시청자의 반응이나 시청률이 좋은 애니메이션은 오래 방송하고(즉, 좋은 애니메이션은 1년이 넘게 방영되기도 합니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 정보란의 화수를 보세요 ㄷㄷㄷ)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_-;), 나쁜 애니메이션은 빨리 퇴출시킬 수 있도록(이라기 보다는 기획적으로 1쿨로만 방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52주를 4개의 분기로 나누어 13주씩 나눈 것이라고 하고, 는 이 중 1쿨이나 2쿨, 길면 4쿨 분량으로 하나의 큰 이야기를 담아가는 틀인 셈입니다.

 <금색의 코르다>는 2006년 10월 신작으로 방영되기 시작해, 2007년 1/4분기까지 방영되었습니다. 총 화수는 25화였습니다만, 나중에 추가 스페셜 무비를 추가해 총 26화의 분량입니다. 다만 내용의 경계선이 분명해 다른 애니와는 달리 추가 기의 개발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 생긴다면 좋은 일이겠습니다만 >_< 하지만 분명히 시청률 분석의 대상은 정기적으로 월요일 새벽에 방영된 1화부터 25화까지입니다.

 다음의 표는 금색의 코르다의 방영기간중 10월 1일 (1화)를 제외한 (이 부분의 시청률에 대해서는 검색엔진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10월 8일 (2화)부터 3월 25일 (25화)까지의 시청률 자료입니다.

 라고는 합니다만, 실제 애니메이션은 그 다음날인 월요일 새벽 1시에 방영되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방영된 날짜는 이 날짜에 하루를 추가하셔서 생각하시면 편합니다만, 일본 애니메이션 집계 측에서는 편의성을 위해 이렇게 집계하고 있다는 사실도 감안하셨으면 합니다.

 자세한 비교를 위해 분기 대비(시청률/(44/14분기 평균 시청률) 및 전체 대비(시청률/전체 평균 시청률) 내용을 삽입했습니다. 자료의 출처로서는 [ 全てが台無し―雜記帳― ] 블로그에 있는 수치들을( [ 07/3월 ], [ 07/2월 ], [ 07/1월 ], [ 06/12월 ], [ 06/11월 ], [ 06/10월 ] )  참조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쪽의 자료도 조사했습니다만, 그 전부가 이 블로그의 내용을 번역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출처를 밝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분기 대비와 전체 대비는 제가 계산한 것입니다.

날짜 분기 대비 전체 대비 시청률
10월 8일 89.3% 77.7% 1.6%
10월 15일 89.3% 77.7% 1.6%
10월 22일 83.7% 72.9% 1.5%
10월 29일 78.1% 68.0% 1.4%
11월 5일 78.1% 68.0% 1.4%
11월 12일 145.1% 126.3% 2.6%
11월 19일 94.9% 82.6% 1.7%
11월 26일 94.9% 82.6% 1.7%
12월 3일 117.2% 102.0% 2.1%
12월 10일 111.6% 97.2% 2.0%
12월 17일 139.5% 121.5% 2.5%
12월 24일 78.1% 68.0% 1.4%
4분기 평균     1.8%
1월 7일 103.2% 116.6% 2.4%
1월 14일 103.2% 116.6% 2.4%
1월 21일 111.8% 126.3% 2.6%
1월 28일 90.3% 102.0% 2.1%
2월 4일 94.6% 106.9% 2.2%
2월 11일 103.2% 116.6% 2.4%
2월 18일 111.8% 126.3% 2.6%
2월 25일 81.7% 92.3% 1.9%
3월 4일 111.8% 126.3% 2.6%
3월 11일 68.8% 77.7% 1.6%
3월 18일 103.2% 116.6% 2.4%
3월 25일 116.1% 131.2% 2.7%
1분기 평균     2.3%
전체 평균     2.1%

 이를 챠트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울러, 보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3주간의 평균치를 나타내는 추세선도 추가했습니다. (클릭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와 같은 내용들을 통해 크게 두가지 사항을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번째로, 애니메이션의 진행에 따른 시청률이 어떠했는지부터 생각해보죠.

 초기 애니메이션의 시청비율은 2화가 1.6%로 최저는 면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대로 계속해서 감소세를 보여 마침내 6화에서는 최저 수치인 1.4%로 내려가는등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갑자기 [ 7화 ]에서 그 수치가 2.6% (참고로 최고 시청률은 최종화(25화)의 2.7%였습니다) 로 급등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다시 1% 중후반대로 잠시 내려간 시청률은 10화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2%대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13화에서는 잠시 1.4%라는 최저치로 떨어졌습니다만, 이는 [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방영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12월 31일은 1월 1일 새벽에 정상적인 프로그램 방영이 불가능하니까 완전히 휴방했고요, 이후 1월 이후부터는 안정적인 2%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게 됩니다. 실제로 3주 평균 추세선을 보시면, 1월 7일 이후로 평균선은 한번도 2%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회인 25화는 2.7%로 최대치를 기록하며 마감합니다.
 
 즉, 애니메이션이 초반에는 약간 시청자에게 어필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필되기 시작해 결국 실제적인 성공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콘텐츠의 어떤 부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이 포스팅이 다룰 범위를 넘어가기 때문에 나중에 포스트들을 올리면서 차근히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가능할까?)

 근데 잠깐. [ 일본 애니메이션의 순위 ]를 다룬 것을 보면, 높은 것은 20% 가까이 이르기도 하는 등 (작년만 해도 '사자에상'은 20% 이상을 기록했습니다.)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데 왜 고작 2%밖에 되지 않을까? 싶으시겠지만 저건 주간에 하는 거고, 심야대의 애니메이션도 동일하게 계산 되기 때문에 낮게 평가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심야끼리 붙으면 사정은 많이 달라집니다. [ 여기 ]를 보시면 2007년 1~3월 평균통계에서, 심야대에서 2위로 랭크되어 있는 금색의 코르다, <나나>를 제외하고 전체 평균치 2.1%로 2위입니다. 물론 코드기어스가 그 뒤를 바짝 쫓아오기는 했지만. -_-;

 그래도 아직 2%대라 뭔가 실망하실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두번째로는, 앞에서 올린 수치와 시청률을 바탕으로 도대체 얼마나 평균적, 그리고 최소, 최대로 얼마나 많은 인구가 <금색의 코르다>를 시청했는지 체크해 봅시다.

 몇가지 사실만 로딩하고 시작하겠습니다.
   ㉢ 현재 일본의 텔레비젼 수는 1억 2백만대로 추정됩니다.
   ㉣ 이 텔레비젼의 시청자 수는 1.0에서 1.1배로 가정적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아까 시청률에서, 최소치는 ⓐ1.4%, 최고치는 ⓑ2.7%, 그리고 44분기 평균치는 ⓒ1.8%, 14분기 평균치는 ⓓ2.3%, 그리고 전체평균치는 ㉤2.1% 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곱해볼까요?

㉢*ⓐ*㉣ = 142,8000대 : 142,8000명 ~ 157,0800명
㉢*ⓑ*㉣ = 275,4000대 : 275,4000명 ~ 302,9400명
㉢*ⓒ*㉣ = 183,6000대 : 183,6000명 ~ 201,9600명
㉢*ⓓ*㉣ = 234,6000대 : 234,6000명 ~ 258,0600명
㉢*㉤*㉣ = 214,2000대 : 214,2000명 ~ 235,6200명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최소 150만명, 최대는 거의 300만명의 시청자가 <금색의 코르다>를 시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평균적으로는 매 회당 210만명의 시청자(1회가 평균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감안할 때)가 이를 봤다는 이야기고요. 이렇게 많은 시청자가 지난 가을부터 초봄까지 월요일 밤에 <금색의 코르다>를 시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정도의 수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10%이상은 차지할 겁니다. (근거는 나중에.. 이젠 힘들어요.)

 .. 정말 대단하군요. 잠깐동안 추적한 내용입니다만, 결국은 대단한 결론을 우리에게 내려주고 있습니다. <정말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단하다.> (하긴야 23일 [ 애니메이션 자격증 시험 ]이 일본에서 펼쳐질 정도라면...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입니다.

- 2007/11/26 02:34, Ell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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