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여러가지 생각을 하다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이승복 '어린이'를 기억하게 되었다. 한국 내에서는 반공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는 어린이. 실제 공비에 의해 잡혀서 죽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되나, 어쨌든 처참한 죽음으로 우리에게 지금도 '반공'의 사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듯 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를 죽게 만든 공산당이 왜 나쁜가? '김일성이, 김정일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김일성과 김정일이 무슨 짓을 했길래 나쁜가? 고난의 행군 시절에 사람들은 굶어 죽이면서 자신들은 사치품을 사들이고 호의호식하고, 군대에만 투자하고, 그래서 한국 침략을 노리고 있어서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북한을 비난하고, 기도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산당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공산당이 나쁘다'는 것 만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도 나쁘다는 것에 있다.
2. 10월 7일 우리집에 도착한 뉴스위크(2009년 10월 12일자)의 맨 앞 칼럼의 제목은 'Europe's central disappointment'이다. 이 기사를 읽다가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는데, 일부를 번역해서 올려본다.
프랑스의 National Front나 벨기에의 Vlaams Blok 같이 서유럽에도 불쾌한(unsavory) 정당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중유럽에도, 이런 종류의 정당이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 사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힘을 발휘해오고 있다. 헝가리의 Fidesz,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LJP), 그리고 슬로바키아의 국가당(National party)등이 그들의 극우 성향에도 불구하고, 가장 높은 직책들을 점거하고 있다. ~
이런 정당들과 움직임들이 최근 두드러질 정도로 대중의 의견을 두드리면서(tapping)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는 사회 이슈의 배열에 높은 문제성을 남기고 있다. 예를 들어, 월드 밸류 리서치는 슬로바키아인과, 폴란드인들, 그리고 루마니아인들이 영국인이나 스페인인들 정도로 다른 색인종이거나 동성애자들이 옆에서 사는 것을 증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권 감시(Human Right Watch)나 기타 단체에 의하면, 반셈주의도 중유럽에 방해가 될정도로 남아있다는 것과, 국영 미디어에서까지 이러한 생각이 홍보되고 있다 - 이 지역에는 거의 유대인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몇몇 조사들은 요즘의 중유럽인들이 민주주의나, 주류 정치를, 서구에 대항하는 것들 만큼이나 믿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 때때로, 이런 감정은 실제 폭력으로 부풀려지기까지 한다.
그렇다. 극좌성향의 사람들만이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부분들은 극우쪽에서 더 심하다. 특히 유럽의 극우파의 경우, 자신들과 다른 인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싫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더욱 심한데(독일의 신나치주의나, 러시아의 스킨헤드족, 그리고 미국의 KKK단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3. 그러한 의미에서, 북한도 나쁘지만, 친미가 옳다는 주장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이 땅의 우파들은 미국을 하나님 보듯이 했고, 미국의 자본주의가 마치 하나님의 정의를 불러올 수 있을듯이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아마 우파 지식인들에게 물어도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의 부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인간적인(Humanistic), 인권적인 것을 반드시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알다시피, 대한민국이 세워진 이후로 많은 불행한 사건들이 이 땅에서 있어왔다. 가령 김구 살해, 함양 산청 살인사건, 북한의 많은 숙청 사건들, 보도연맹, 빨치산 전쟁, 장준하의 의문사, 제주 43사건, 지금도 수용되어 있는 많은 북한의 수용소 사람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419, 광주, 6월 항쟁. 그러나 이 모든 행동 대부분이 우파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과, 그 사건들을 대부분 덮으려고 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의 시점이다. 43사건도 이를 고발하는 '순이 삼촌'이 나오자 그걸 막기 위해 난리를 쳤다는 것과, 보도연맹이 겨우 40년이 지나서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국가 사과를 받았다는 것, 광주도, 6월 항쟁도, 계속 덮으려고 했었고, 결국은 불가항력에 밀려 이 땅에 민주주의화가 찾아왔다는 것 모두가 잔인한 일들을 우파가 많이 행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공산주의 빨갱이가 문제라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좌파만 무섭고, 잔인하고, 그래서 멀리해야할 존재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실들의 잘잘못을 가리는데 있지 않다.
4. 유기성 목사님이 쓰신 책인 제자훈련 교제인 '예수님의 사람'의 첫과에는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보다 더 악질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한다면, 책에 의하면 오답을 제출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내가 죄인중의 괴수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본 사람은 누구도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할 수 없으며, 동시에 남을 정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을 다르다고 정죄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에게 욕하고, 상처를 입히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가 될 것이다. 아니, 정말 내가 바르게 사려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라도 노력할 것이다. 김선주의 '한국교회의 일곱가지 죄악'에 의하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는 '비판하지 말라'의 '비판'의 원어는 xpivete(크리네테)인데, 이 말의 어원인 xpivw(크리노)는 단순히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분리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다시 '판단하다, 결정하다'라는 의미는 법정의 판결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유죄로 판정된 자가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되어야 할 악이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크리노'라는 말은 그러한 의미에서, 서로에 대해서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한다. (pp. 37~8)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 아픈 점은, 우리가 그 분리를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까지 한다는 데 있다.
5.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있는 자들을 돌보시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자'들에게만 갔다. 세리와 병든자, 눈 먼자, 중풍병 환자, 나병 환자, 죄인, 사마리아 여인 등 '가난한 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 곁에 있었다. 예수님이 관심을 두셨던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고, 그 나라는 세상의 먹을 것과 유명함, 권력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하여 스스로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 승천하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천하셨다. 그리고 이 땅에 오신 성령 하나님을 처음으로 받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했던 것도 과부들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 공론화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교회가 권력화되고, 하나님이 서로간의 이익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수도원운동 등의 개혁 운동에도 불구하고, 1054년 동서교회간의 대분열이 일어났고, 11-2세기 십자군전쟁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치욕적인 과거로 남는다. 14세기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또 하나의 변혁을 불러일으켰고, 이 세 개의 큰 지류는 또 서로 나뉘어지며 큰 싸움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의 이야기(20세기 대한민국의 장로교 분열등)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6.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성도가 같은 성도를 저주하고 분리시키며, 자신의 삶에서 분리하도록 한다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백주년기념교회를 생각해보자. 이 것에 대해 최근 [ 예장통합이 보여주는 일 ] 이 이들이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하나의 유형교회와 목사를 그들의 삶에서 망하게 만들려고 하는 속셈이, 시편의 악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1
또한 기감의 최근 행동은 내가 감리교인인것을 부끄럽게 만드는데, 이는 아직도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감리교를 억제하면 자신들의 뜻대로 감리교가 흘러갈것이라는 특정 목사의 세력들과 이를 막으려는 분들간의 말싸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계속해서 사람들을 물어뜯는 모습은 참 안타까울 뿐이다.
이 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반응이 갈라져 있다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한쪽은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다, 잘하게 하소서, 이명박 안찍으면 지옥간다, 빨갱이다, 뭐다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칭찬하고 밀어주는데, 한 쪽은 이명박과 싸워서 '우리 승리하리'를 찬송으로 부르지, 네큰가람이나 용산 관련된 문제를 반대하며 미사다 예배다 드리지.. 하나님이 참 슬퍼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한국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7.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내가 입장을 밝힌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천국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상당히 많은 책망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난한자, 억울한 자, 빛이 없는 자들에게 구원의 의를 알리는' 행동을 하라고 하셨고, 의인이 아닌 죄인을 찾으셨고, 약한자를 도우셨다는 것과는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정책들이 자신들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억눌러서 억울한 자를 만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가는 지원을 끊어서 오히려 가난한 자를 양성하고, 미디어와 여론을 통제시켜서 빛이 없는 자들을 만드는 이 세태의 중심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지금까지 '반 이명박 진영'은 계속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 되었다, 하야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으로 그가 변하지 않을 것임은 이미 우리가 2년동안 열심히 체험한 바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그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4~7)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 12:20)
8.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분리하고, 저주하는 일을 금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배려하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경향에서 쉽게 멀어지게 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가지의 '전체주의'로서의 존재가 있다.
첫번째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집중시키려는 시도이다. '김일성이 김정일이'에게 나라의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들이 한 말과 한 생각을 외우고, 공부하고, 집중하도록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것처럼 속이고, 교육시키면 그들에게서 나오는 정신력은 세계 최강으로 성장해 있다. 그러나 그 방향이 옳지 않다는 것은,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알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정치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종교 관련된 부분에 심한데, 특히 개신교에서 사이비와 이단이라고 부르는 집단들에게서 특별히 드러난다. 특히 최근 심각하게 문제성을 보이고 있는 새로운 sky와 ground가 이 땅에서 이미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하는 종교집단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들의 믿음의 고백이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원이 교주에게 있다, 생명도 교주에게 있다는 식의 주장이 그들에게는 사실이자 진실인 것이다.) 또 다른 종교집단의 경우, 특정 인물이 하나ㅏ님 아버ㅓ지이고, 또 다른 특정인물은 하나ㅏ님 어머ㅓ니라고 고백하는 어이없는 경우를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예수님을 제외한 어떤 사람도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말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경을 바탕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 또는 하나님과 비슷한 존재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미안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스타나 탤런트, 방송인, 정치인들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도 정상적이지 않는 행동일 수 있다. 최근 G-용씨 표자르기를 통해 드러난 팬클럽 여러분들의 행동 등이 20년 후에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의문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팬클럽 모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둘째로, 하나의 주의에 모든 것을 집중시키려는 의도이다. 이런 모습의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공산주의인것 같다. 물론 PD파니 NL파니 해서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NL파가 주로 권력을 잡아서 문제지만 (....), 사회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천국을, 그리고 같이 생산에서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세상 - 즉 '다른 세계'를 위해 생각하고 학습하고, 투쟁하고, 때로는 권력을 잡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가 실패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큰 케이스가 소비에트 연방일 것이다. 2
소비에트는 민중들에게 노동자세상이라는 하나의 관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은 전 러시아를 잡고 있던 차르와의 투쟁을 통해 결국은 러시아 전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소비에트라는 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하고야 만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민주화를 멈추고 공산화되었고, 많은 러시아의 변방 국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소비에트와 사회주의가 그 피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어떤 사람이 아닌, 하나의 주의 그 자체였다. 물론 많은 주의가 사람과 결부되기 때문에 한 사람으로 그 주의가 집중되기 쉽고, 그 부작용때문에 망한 것이 소비에트였지만, 생각해보면 그 반발작용으로 생겼던 프라하의 봄이나, 체첸이나, 광주의 슬픔도 생각해보면 어떤 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3
따라서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주의 자체에도 구속되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감시해야 한다. 심지어 민주주의 자체도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것 이상으로 최악이 될 수 있다. 다수의 오류가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심지어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으며 경험했기 때문이다.
9. 결론적으로 주의가 없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아니 아닐 수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주의가 나와야 했던 상황에 있어서 그 주의는 당연한 것이었고 내가 생각해도 당연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19세기 노동자들을 부려먹던 자본주의 상황에서, 공산주의는 필요했고 따라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사회주의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공산주의가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 도구인지 지켜보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있는 것은 프랑크부르크 학파나 공산주의가 동시에 증명해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도 민주주의가 어떻게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가의 좋은 사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주의를 만들기 위하여, 그 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은 어떠한 주의가 사람을 불행하기 위하여 오늘도 눈을 번쩍이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면 경계하고 그런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도록 경고하고, 싸우고, 막는 일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결국 한 사람, 그리고 한 생각으로 전체를 몰아가는데서 출발한다. 그것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 하나 때문에 사람이 무시당해도 신경 안쓰고, 사람을 비난하고, 사람에게서 빼앗고, 사람을 비난한다면, 아니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외처야만 한다. "나는 전체주의가 싫어요!"
- 2009, earp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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