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일) 중앙일보 18면에 오랜만에 말씀이 떴다. 그것도 자세하게 설명까지 곁들어서 떴다.
A4 용지엔 ‘야훼여, 나를 고발하는 자를 고발하시고, 나를 치는 자들을 쳐주소서’라고 쓰여 있다.
이 설명을 보고 사진을 보면 몇몇 사람들은 가톨릭 교인이 아직 가톨릭 성경을 안 쓰고 한국 개신교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공동번역을 왜 인용했는지 뭐라고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옆으로 제껴두고, 일단 해당하는 성경본문으로 추정되는 말씀부터 살펴보자. 원본 공동번역, 가톨릭, 개개로 인용해 본다.
야훼여, 나를 고발하는 자들을 고발하시고, 나를 치는 자들을 쳐 주소서. 2 큰 방패, 작은 방패 잡고 나서시어 이 몸을 도와 주소서. 3 창과 도끼를 들고 나서시어 쫓아 오는 자를 맞받아 쳐 주소서. "나 너를 살리리라" 다짐해 주소서. 4 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을 부끄러워 무색케 하시고 나를 해치려는 자들을 창피해서 도망치게 하소서. (시편 35.1~4, 공동번역)
주님, 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2 둥근 방패 긴 방패 잡으시고 저를 도우러 일어나소서. 3 저를 뒤쫓는 자들에게 맞서시어 창을 빼들고 길을 막으소서. “나는 너의 구원이다.” 제 영혼에게 말씀하소서. 4 내 목숨을 노리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부끄러워하리라. 내 불행을 꾸미는 자들은 뒤로 물러나 창피를 느끼리라. (가톨릭)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2 방패와 손 방패를 잡으시고 일어나 나를 도우소서 3 창을 빼사 나를 쫓는 자의 길을 막으시고 또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 4 내 생명을 찾는 자들이 부끄러워 수치를 당하게 하시며 나를 상해하려 하는 자들이 물러가 낭패를 당하게 하소서 (시 35:1~4, 개역개정)
다윗의 이 노래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결연한 의지이다. 어떻게 곽노현 교육감님께서 이 말씀을 보게 될지는 몰랐겠지만 저런 구절은 최소 말씀을 어느 정도 붙들지 않았더라면 알 수도 없고 고백할 수도 없는 말씀이다(가톨릭, 개신교 어디서도 저 시편을 깊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만큼 믿음이 깊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나올 수 없는 믿음의 고백이다. 물론, 그냥 들고 검색했을 가능성은 배제해주지 않겠다. 하지만 저건 쉽게 검색되지 않는다는 점도 같이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 듯 하다. 다만 내 생각으로는 성령님께서 곽노현 교육감님에게 저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그 말씀으로 기도를 삼게 하신듯 하고,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이다.
어쨌든, 고소당했을 때 말씀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모습. 그런데 이 모습이 처음으로 나온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몇 년전에도 이와 동일한 모습이 벌어졌었다.
한 전 총리는 오후 9시30분쯤 지지자들의 구호 속에 귀가했다. 한 전 총리는 곧바로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갖고 “오늘 조사에 당당하고 의연하게 임했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은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 [ 檢,한명숙 前총리 체포 스케치·수사 전망… 총리 출신 첫 강제구인 불구속 기소 가능성 ], 쿠키뉴스. 2009. 12. 19.
조 변호사는 “한 전 총리는 성경을 손에 들고 조사나 대질신문 때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검찰 관계자도 “준비된 질문들을 했지만, (한 전 총리가)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 한 전 총리, 성경 손에 든 채 시종 묵비권 ], 한겨례, 2009. 12. 18.
2년 전, 한명숙 전 총리가 의지했던 것도 하나님뿐이었다. 그는 애초부터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일했고, 따라서 하나님과 가까이 사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한명숙 총리가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하자, 뭔가 정치공작이었는지 금품수수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중수부에서 옳다구나 하고 그를 고소했고, 그의 편에 선 자들은 민주시민세력들. 일부의 개신교인들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 한명숙 총리는 하나님을 붙잡았고, 하나님은 그를 높이사 서울시장에서 아슬아슬하게 지긴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찍도록 하셨고, 결국 오세훈 시장을 다시 교체하도록 이끌어 내셨다.
그러면, 이제 한명숙 전 총리님과 곽노현 교육감님의 모습과, 지금 기독교의 지지를 대폭 받고 있는 보수 정치인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한명숙 총리님이나 곽노현 교육감님이나 가장 절박한 순간에 하나님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삶이 최소한 거짓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정치인들은 어떨까? 이명박 대통령님? CTS로 위성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그리고 각종 예배에 모습을 내미는 것은 보았어도, 그분의 정책이 하나님 나라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4대강 밀어붙이고, 인권 탄압과 정치적 보복을 서슴없이 하는 등의 모습은 하나도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없다시피 하다. 말씀을 사랑하고 믿음이 들어가 있다면, 그 믿음은 결국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약 1)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그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신지 궁금해진다. 다른 믿으시는 정치인들도 얼마나 말씀을 챙겨보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삶이 믿음으로 행한 결과인지 또한 미지수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과 반대된다는 종북좌파들의 괴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 무상급식과 인권조례로 그 말씀을 실천하려는 반면에, 하나님을 끔찍히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낮은 사람들을 억누르고 그들을 착취하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정책을 펼친다는 기막힌 아이러니에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마주칠 수 밖에 없는, 유일한 불편한 진실이다.
p.s. 이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결국 사전구속영장으로 체포되어 서울구치소로 들어가신 곽노현 교육감님, 이 사건을 통해 풀무불에 들어간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분의 믿음이 증명되기를, 그리고 결백함이 증명되어, 나를 욕보이고자 하는 원수들 앞에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이(시 23:5)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아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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