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03 01:58

<설국열차>, 담론의 부재에 던진 하나의 외침




이건 제가 이 영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글로 쓰겠습니다.

   1. 한국 사회는 그동안 담론 부재의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까 29만원 부릉부릉 전땅크의 독재가 '소중히 가꿉시다~ 다시 찾은 우리의 젖줄~'이라고 뻥치면서[콘크리트로 강을 죽여놓고 '다시 찾았다'니, 참 할 말이 없다] 한편으로 조장한 국풍81, 3S 정책이라는 사회 문화의 풍기 문란화,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을 통하여 이루어진 사회 담론으로서의 경제의 중심화를 거치면서 사회는 경제, 아니면 살아남기라는 극단적인 하나의 담론에만 빠져들었다. IMF가 터졌을 때는 하물며 대중음악도 <오락실>이나 <아빠 힘내세요>와 같이 IMF로 경제활동 가능성을 손상한 사람들을 다독이기 위해서만 존재했었고, 그 이후에는 '부자 되세요'등의 부를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심해졌다. 그리고 <경제 대통령>을 바라는 마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뽑힌 우리의 가카께서 5년 동안 역사를 퇴보시키고 나서야 이제야 그 잘못된 담론의 설정에 일정 부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 그런 의미에서 <설국열차>는 한국 영화계에 존재할 수 없었던, 기적에 가깝다. 지난 순간동안 한국 영화의 주류에 있었던 것은 이른바 멜로나 코미디, 액션 등의 일정 선의 재미를 찾기 위한 - 맑스적 관점에서의 문화산업의 전형적인 생산물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김기덕 감독이나 임권택 감독 등은 새로운 '감동의' 영화를 보여주셨지만 - 그 것이 한국 영화에서 예상가능한 영화의 스펙트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한계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갑자기 관객들에게 나와 외친다. "네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3. <설국열차>는 재미를 위해서 쓰여진 스토리가 아니다. 물론 사회적 좌파 분위기에다가 작가주의 내지 철학적 사고 기반이 짙은 프랑스 만화 원작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참고로 원작 만화가 그려졌을 당시 아마 작가는 조지오웰의 <1948>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참조했던 것 같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당연하는듯이 이 작품을 자신의 다음 작품으로 선택했다. 엄숙하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작품을 통해서 한국 영화에,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결정이었을 것이다.

   4.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까지 거의 전부 동의해왔던 고재열 기자의 관점에 처음으로 비동의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5. 재미를 위해서 보는 기존 한국 영화들을 깨부시는 봉준호 감독의 행동은, 성전 앞에 있던 상인들의 상을 엎으신 예수님을 기억나게 한다. 영화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영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 오히려 영화를 통해 생각하고 사람들을 대화하게 하는 어떤 매개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기존에는 인디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 또는 실험 영화에서나 존재할 수 있었던 셈법이었다. 이제 그 셈법을 상업영화에서도 적용해도 무리가 없다. 또한 영화 공급자들은 그러한 영화를 공급할 필요가 있다. 이 것이 봉준호 감독이 영화 제작에 이르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6. 그런 의미에서 고재열 기자님이 [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 테러 라이브에 질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 것에 대해서 상당히 문제가 있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고재열 기자님은 이건 <관광열차> 수준이다라고까지 깎아내리시기까지 했는데, 실제로 한국철도공사의 V-Train이나 O-Train에서 객실간의 이동을 차단하지는 않는다. 이건 일본의 JR큐슈나 JR동일본 등의 관광열차도 마찬가지다. 또한 왜 사람들이 '양갱 같은 것을 먹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신듯 한데, 거기에 대해서는 열차에서 몇 칸만 더 가보면 답이 나온다.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평을 하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7. 고재열 기자의 주장이 틀렸음은 또한 현재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의 결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더 테러 라이브>가 8월 2일 현재 누적 관객수 97만명을 기록했음에 비해 <설국열차>는 동일한 시간 내에 166만명이라는 흥행을 이루어 냈다. 같은 기간 내에 비슷한 노출 결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두 배나 더 많이 설국열차를 선택한 것이다. 고재열 기자의 주장과 달리 <더 테러 라이브>가 설국열차에 대하여 완승하기는 이제 글러먹었다. 신승도? 지금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당장 [ 개봉 이후 3일간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거의 정확하게 2:1의 관객수를 기록했다 ].

   8. 물론 사람들이 설국열차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씨 (그리고 박찬경 감독도 여기에 추가하자) 의 이름 값을 보고 선택한 것도 그 '성공'에 있어서 큰 요인이 되었겠지만, 나는 설국열차가 비로소 열어준 새로운 문화담론의 형성에서 그 성공의 요인을 찾아보고 싶다. 물론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오히려 진지해서 영화를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그리고 이번 계기로, 앞으로 상업영화에서 똑같은 영화만 봐야할 필요는 사라졌다 - 그 대가지불을, 당연히 봉준호 감독은 감당했고, 그만큼의 수익도 얻었으니 앞으로 이런 영화들이 상업영화들로 나올 계기는 많아질 것이다. 이제 다음 봉준호 감독의 선택은 오리지널하고, 동시에 심각한 것이 될 것 같다. 최소한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으니-

   9. 이러한 상황을 영화 관계자들이 쉽게 오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뻔한 결과일 것이다. 자신들에게 있어서 영화는 감성을 자극해야 성공한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감성보다는 이성을 자극하는 영화가 나왔으니, 당연히 혼란에 빠질 수 밖에.

   10. 봉준호 감독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고찰을 통한 상업영화의 성공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이제 그 제시에 호응할 많은 영화 감독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만, 그럴 능력이 있는 관객이 얼마나 있을지, 그리고 이제 막 생긴 이 시장에 기꺼이 뛰어들, 다른 감독들은 또 얼마나 있을지, 솔직히 나는 걱정이 된다. 하지만 이 기분 좋은 새로운 담론의 시작을 초를 치면서까지 방해해야 할 이유는 확실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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