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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일본 찬송가 <찬미가21> 둘러보기


   최근에 일본 여행 중 북오프에서 기적적으로 찬미가21을 싸게 구하는 데 성공해 여러 번 재독하고 있다. 일단 전체를 둘러보는 작업은 끝났고, 개인적으로는 이제 좀 더 자세히 찬송들을 깊이 살펴보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찬미가21을 보면서 느꼈던 감상들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일단 가장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한국에서 쓰는 곡이 반이고, 한국에서 쓰지 않는 곡이 반 이상이며, 그중 10%는 제네바 찬송가, 40%는 일본인 찬송가, 5%는 떼제 성가, 나머지는 다른 찬송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것은 개신교 찬송가입니다(?)

   찬미가21을 처음 보는 사람은 찬미가21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내용을 분간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찬미가21의 진가는 맨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찬송가를 읽어나가면 금세 깨닫게 된다.

   특히 찬미가21을 앞에서부터 살펴보니 내가 지금 개신교 찬송가를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종파의 찬송가를 보고 있는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예를 들어서 입례송 이후 참회와 감사, 송영 분류가 끝나고 나면 곧바로 아멘, 자비송(Kyrie), 대영광송(Gloria), 응답송(층계성가, 성찬기도 초입(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마라나타, 기념송(그리스도는 죽으셨고…), 말씀 찬가, 신앙고백, 주기도문, 봉헌송, 세례성가, 성찬성가, 거룩하시도다, 하나님의 어린양, 파송성가까지 전부 나온다. 아무래도 일본기독교단은 각 교파가 통합된 교단으로서, 보수 교회에서부터 다소 자유로운 분위기의 교회까지 모두 함께 참여하는지라 특히 국내에서는 욕을 먹는 리마예식까지의 대응까지 감안해서 지원한 듯한데(Kyrie 1(31)의 리마예식문 삽입에서 그런 느낌이 느껴진다), 대한민국의 경우 찬송가에서는 이런 순서들 중에 입례송, 송영, 봉헌, 파송성가, 기도송, 주기도문 정도가 포함되었을 정도고, 통상문 부분에 있어서는 21세기 찬송가 중에서 대개 애매하게 자비송이 도입되었을 뿐이다(632장 : ‘주여 주여’). 

   다음으로 우리 21세기 찬송가에는 상당히 부족한 시편가 부분이 가장 많다(113~172). 특히 [ 우리나라에서 최근 번역되었으나 ] 아직까지 개교회 찬송에는 도입되지 않은 제네바 시편가를 이쪽은 당당히 도입하고 있다.(1편-113, 5편-115, 24편-122 등) 물론 다른 시편가 곡도 있다(62편-136, 130편-160:Auf tiefer not) 또한 가톨릭 화답송 방식도 도입되어 있으며(19편-118, 23편-121, 42편-131, 145편-167~8 등), 찬송가 형태의 곡이나(23편-120 : 통일 437에 CRIMOND; 가톨릭 51번, 33편-126(1995년 682장), 42편-132, 121편-155~6(73장) 등), 해외 민요를 도입한 경우도 있다(22편-119, 24편-123).

   다음으로 성경에 기반한 찬송도 충실하다. 특히 원 제네바 시편가에도 포함되었던 찬송이자, 현재 한국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가 예배와 전례에서 부르고 있는 마리아의 노래(눅 1:46-55, 174~179), 시므온의 노래(눅 2:29-32, 180-181), 사가랴의 노래(눅 2, 182)도 우리나라 찬송가에는 없으나 찬미가 21에는 여러 버전으로 포함됐다(심지어 181은 성공회 시편낭독 방식이다). 그 이후에도 아침과 저녁 시점의 찬송가, (예수님의 생애가 아닌) 교회력 시절에 따른 다양한 찬송들 식으로 노래를 배열해 나간다. 그 이후에 다양한 주제에 따르는 찬송가들이 따른다.

   더 놀라운 점은 그레고리안 송가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Veni creator spiritus(339, 가톨릭 146번)의 경우가 그런데, 곡조를 르네상스 시기의 다듬어진 버전으로 채택한 점은 약간 아쉽다. 그 이외에 거세된 신학자로 유명한 아벨라르의 찬송도 있고(202-O quanta qualia, 324-Solus ad victimam procedis, Domine) 거룩하신 하나님(정교회 삼성송)도 있다(84).

   또한 찬미가21에서 가장 특이했던 것 중 하나는 예배에의 부름(93-1), 대영광송(93-2), 십계명(93-3), 사도신경·니케아신경(93-4), 주기도문(93-5), 축도문 예시(93-6)를 찬송가 번호에 포함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아멘(239)이나 할렐루야 같이 같은 가사 내용이지만 곡이 다른 경우 같은 번호로 묶고 그 안에 대시로 묶는다(39-1~39-7, 40-1~40-7) 하지만 키리에와 같이 같은 내용의 재번역이거나 심지어 일부 가사가 같은 경우에도 다른 번호로 묶어(30 ~ 35)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다음번에는 비슷한 내용의 경우에는 한 번호로 묶던지, 아니면 대한민국 찬송가처럼 대시 개념을 폐지하던지 했으면 한다. 또한 소영광송의 정확한 번역이 없어서 같은 텍스트임에도 불구하고 25, 28(3장), 29, 181장의 번역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안타까운 점이다.

   물론 이 찬송가책이 개신교 찬송가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가 있다. 바로 어디처럼 마리아를 찬양하는 노래들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개신교 찬송가에 있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또한 떼제 성가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 가장 큰 포인트 중 하나이다. 국내 찬양집에도 있는 Magnificat(177)을 포함해 Jesus remember me, Kyrie 1, Veni Sancte Spiritus, Gloria…Patri et filio, Gloria 3, Alleluia 2, Alleluia 7, Confitemino Domino 등 상당한 곡이 앞의 예배용 곡에 들어가 있다.

우리도 모르는 한국찬송, 한국인이 도입한 일본 찬송

   찬미가21은 1998년에 만들어진 비교적 연령이 오래된 찬송가이다. 따라서 2007년에 발매된 21세기 찬송가가 1998년에 만들어진 찬송가를 참조한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찬미가21도 1995년에 시범적으로 출판되었으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통일찬송가 증보판의 곡과 어린이 찬송가의 곡을 도입하고 있다. 찬송가 도입에 있어서 이러한 상호교류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국인 개신교 신자가 모르는 곡이 일본 찬송가에 추가되는 결과가 생겼다.

   물론 인류는 하나되게(369:475(252)장)는 우리 찬송가에 있지만, 주 안에 기쁨 있네(196:431장)는 [ 오소운 목사님의 곡을 빼 버리고 전혀 새로운 곡으로 대체해 ] 같은 곡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이다. 또한 나머지 곡들(기쁜소식 전파되며(397), 빛나는 아침에(398), 새 노래로 하나님께(126), 우리의 이웃은(421))은 전부 현재 21세기 찬송가에 없는 것들이다. 물론 여기에는 1995년도 찬송가가 장로교 교파 총대들에 의해 보이콧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참고로 '우리의 이웃은'은 어린이 찬송가에 있는 곡을 채택한 것인데, 한국어 독음을 우선으로 두어 한국어로 찬양하도록 해 실제 제목도 '隣人は'가 아니라 'ウリエイウッソン'이다(한국어 독음은 ウリエイウスン이 맞겠다만).

   반면 찬미가21에서 한국 찬송가로 들어온 곡들도 있는데, 특히 21세기 찬송가에 최초로 들어온 그레고리안 성가 기반의 곡들은 전부 찬미가21에서 채택된 것이며(599장[우리의 기도 들어주시옵소서]-100, 133장[하나님의 말씀으로]-245). 성탄 찬송 중 그 고요하고 쓸쓸한(254:21 127장), 주님앞에 떨며 서서(255:21 99장) 모두 찬미가 21에서 채택된 것이다.

옛날 곡조 살리기, 곡조 체계 파괴하기?

   찬미가21의 찬송가와 곡조를 보고 있다보면 한국 개신교 신자가 가장 큰 위화감을 가지고 있을 내용이라면 아무래도 역시 4/4박자가 쓰이지 않는 곡이 많다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제네바 시편가의 곡들은 한 마디에 들어가는 박자가 일정하지 않아 앞에 박자표시가 아예 없다. 특히 그레고리안 성가나 중세 성가의 경우(212, 422 등)는 가톨릭처럼 아예 음표 대가리가 없다. 이러한 경우는 국내의 경우 성공회성가(1991)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원곡의 표기를 존중한다는 찬미가21의 원칙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더군다나 옛날에 있던 곡들은 원래 곡조를 취한다는 입장이 커서, 주님께 귀한 것 드려(515:575(302)장)는 Eb에 6/8로 복원했으며(우리는 6/4에 D이고, 복원 부분에 늘임표가 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477:85장)는 아예 중세 당시에 불리던 그레고리안 곡으로 바꾸었으며, 역시 곧 오소서 임마누엘(231:104장)도 원본 그대로 대가리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할렐루야 할렐루야(320:163(150)장)는 원본대로가 아니라 다듬어진 대로 두어서 약간의 위화감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주님 앞에(543:220(278)장)와 같이 [ 여태까지 일본인이 작곡한 가사에 사용했던 곡을 갈아치워 버린 경우도 있다 ]. 또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참 목자 우리 주(359:통일 103)는 HIMMAN이라는 현존 작곡가의 곡조로 바꾸어 버렸다. 

다른 번역을 버려두지 않고

   국내 찬송가에서 한 가사에 두 곡을 붙이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주 예수 이름 높이어(36-7장) , 전능하신 여호와여(376-377(422, 451)장), 한 곡에 한 가사에 대한 두 번역을 붙이는 경우는 영광송(Gloria Patri)을 제외하고 없다. 하지만 찬미가21은 그와 전혀 다르다. 특히 시편에서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시편 121편의 155-156(73장)은 옛날 일본 문어체 번역을 먼저 실어두고, 다음페이지에 제작위원회가 개정한 곡을 실어두었다. 또한 시편 145편의 167과 168은 아예 같은 사람이 두 번 번역한 것을 둘 다 실어두었다. 예수 사랑하심은(484)은 조금 특이한데, 별도의 곡으로 분리하지 않고 원 번역(主イエスを愛す)를 그대로 곡으로 두고, 옆에 구어역(愛の主イエスは)을 추가해 두었다.

   제네바 시편가도 동일한 사례가 있는데, 제네바 시편가 124편 곡조는 세례/임직식용 곡인 96(우리들에게 은혜있으라)과 시편 124편 157에 공동으로 쓰였다.(참고로 548장이 124편 곡조라고 하는데, 세번째 마디가 삭제되어 동일한 곡이라고 보기 힘들다.) 또한 역시 제네바 시편가 100편 곡조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만복의 근원 하나님(24:1장)과 온 땅아 주 여호와께(148)에 동시에 사용되었다. 제네바 36편도(36편 곡은 제네바 64편에서도 사용되었지만) 128(시편 36편)과 294(사람아, 너가 죄의)에 쓰였다(다만 294는 독일버전이어서 끊는 흐름이 다르고 몇몇 음이 다르며, 맨 마지막 단락은 ♩.♪을 쓰고 있다).

   기도문의 경우도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의 경우 구어체 번역과 새 번역을 다 소개해두었다. 사도신경 A는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분위기라면 B번역은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의 예장통합 번역 그대로의 분위기다. 심지어 주기도문은 A, B, C 버전까지 있다. 하나는 1880년도의 문어체 번역, 또 하나는 NCCJ 번역, 나머지 하나는 일본기독교단 교회음악위원회 번역이다.

   이 정도 다양한 번역을 소개하는 점은 우리나라의 최근 21세기 찬송가에서 다양성을 줄여버리고 강제로 가사를 개정해 동질성을 제해 버린 것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일본쪽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다음 찬송가를 개발한다면 21세기 찬송가와 통일찬송가 가사가 공히 사용될 수 있도록 배려되어야 하며, 불필요한 개정은 복원되어야 한다.

나가며 : 우리나라는 언제나 일본 수준을 따라가려나

   일단 좀 더 짚고 공부해야겠지만, 일단 찬미가21을 보면서 한국의 찬송가보다 상당히 뛰어난 수준의 찬송가가 되어 있구나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찬송가는 [ 나운영 목사님을 찬불가 논란으로 싸잡아 내리거나, 당연히 챙겨야 할 저작권 부분을 지불하는 것이 문제라느니, ] [ 살아있는 사람의 찬송가는 넣어서는 안되고, ] [ 한 가사에 여러 곡이 붙어서는 안된다는 ] 기상천외, 불편부당한 장로교인들의 주장 하에 훼손되고 발전되어 오지 못했다. 심지어 현재 찬송가에는 시편가도 제대로 없어 결국 최근에는 장로교인들이 제네바 시편가를 번역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이젠 찬양집이 일반 찬송가보다 너무나 발전해 찬송가는 자막으로 전면 대체되어, 조만간 찬송가가 없어질 시대까지 이르렀다 (물론 나도 찬양집을 선호하지만).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현재 찬송가에 시편가가 대폭 확장되고, 개신교 전체, 나아가서 모든 기독교가 활용할 수 있도록 미사통상문이라던가 전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감리교 새예식서(2004)의 성찬례 정도까지는 지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음 찬송가에서는 다양한 부분들을 확장해 1000곡 정도로 확대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물론 내가 만들고 싶은 찬양집은 한 1500곡, 찬송가 분야를 추가한다면 2000곡 정도로 기획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찬송가 가사를 상당히 심각하게 다듬어, 원래 가사와 <찬미가 21>의 가사가 딴판인 경우가 있어 주의를 요한다.

   한편 일본기독교단이 찬미가 21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 반대편 일본복음동맹에는 신성가新聖歌가 있고, 2012년에는 새로 [ 교회복음찬미가教会福音賛美歌 ]가 출시되었으나 상당히 곡수가 506곡으로 삭제된데다가 시편가는 21곡으로 줄어들고, 신곡 추가에 전념해 있으나 마나 한 찬송가가 되었다. 일단 지금까지 검토해본 바로는 한일의 찬송가 중에서는 찬미가 21을 뛰어넘는 찬송가는 없는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2015년 기독교 신체제에 한국 개신교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함께, 아직 검토해 보지 못한 신성가와 교회복음찬미가, 그리고 일본성결교단의 찬양 등등을 검토해보고 싶다는 아쉬움으로 글을 마친다.



부록 :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찬송

왕이신 나의 하나님(시편 145: 167-168장)
은 곡조가 상당히 잘 된 경우에 속한다. 위에 밝혀두었듯이 1절에 "왕이신 나의 하나님/우리가 다 함께//주의 이름을 높이고/송축하나이다"(개개 기준)라고 같이 번역한 것 이후부터는 나머지 부분이 전혀 다르다가 맨 마지막에 '영광이 성부 성자와/성령 하나님께~' 식으로 영광송으로 마무리한다. 8.6.8.6 곡에 활용하는 것도 좋다.근데 구주를 생각만 해도는 좀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208:59(68)장)
SweetS의 [[:ja:Earthship 〜宇宙船地球号〜]]에 소개되어 당시 한국어 찬송가로 알게 된 곡이다. 물론 찬미가21에서는 1958년 찬미가 찬양을 개역해 SweetS의 버전과는 달라졌지만 이쪽 개역도 상당히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주 예수님(335)
일본인들의 창작곡인데, 의외로 후렴 부분이 좋다. <산 마다 불이 탄다>와 비견할 수 있을 정도의 곡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발차벨로 써도 될지도 참고로 이 곡을 발견한 이후로 현재까지 내 찬송가책의 책갈피는 이곳에 계속 꽂혀져 있다.
일단 1절은 '1. 우리들의 주 예수님 / 죽음을 이기시고 // 진정으로 그 생명이 / 다시 살아나셨네 (후렴)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주 이름 찬양하라'라고 번역할 수 있을 듯하다.

나팔을 불어라(431)
찰스 웨슬리의 곡인데, 이런 강렬한 곡이 있는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런 곡이 왜 21세기 찬송가에 채택이 되어 있지 않은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원본의 번역이 삭제된 부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