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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 퍼플 스위트 ]의 음반을 약간의 비판을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했던 슬픈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그와 달리 많은 내공을 갖추신(!) 로지피피의 음반을 듣게 되었다.
로지피피라는 이름은 솔직히 중앙일보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중앙일보의 문화면은 <현문우답> 시리즈로 유명한 백성호 기자의 글쓰는 스타일을 보면 한번에 알 수 있듯이 개신교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가 많은지라 거의 개신교에 대해서 다루거나 칭찬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이기도 한 지면이다(지금까지 기억나는 게 옥한흠 목사님, 방지일 목사님, 김도현님 정도 뿐인 곳이다). 더군다나 이 문화면에는 아무 사람이나 싣지도 않으며, 대중문화 이야기는 가끔가다 한 번씩 기사가 나오는 곳이다.
그 지면에 [ 상당한 지면을 들여 로지피피가 나왔다. ] 거기다가 그녀가 '개신교 신학'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건 중앙일보가 이런 내용의 기사를 평소에 싣지 않는다는 면에서 대박인거다. 그만큼 깐깐한 중앙일보가 로지피피를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내가 로지피피를 눈여겨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성장한 스토리가 어쩌고 신학과 음악을 같이 하는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런 이야기는 내려놓고 생각해보자. 일단 음악 면에 있어서도 여러 번의 다양한 싱글과 EP를 통해 많은 준비를 하고 나서 첫 정규앨범을 낸다는 점에서도 일단 누군가를 데뷔시키기 위해서 정규 1집부터 지르고 보는 우리나라의 그 구태한 모습과도 크게 달라보인다. 또한 그만큼 준비된 노래들이기 때문에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는 점이 음반을 들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이기도 하다.
또한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도 보통의 음반보다도 매우 만족스러운 면이 있다. 물론 로지피피의 음반에 있어서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음악을 싫어하게 된 절대적인 계기인 '사랑'이 노래 전반에 나오는 모습이나, 절가 형태를 이 음반의 곡들도 크게 답습하고 있다는 문제도 이 곡들에 내가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되는 일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메인 트랙인 <고양이와의 대화>는 이러한 단순한 내용을 고양이라는 새로운 화자의 도입을 통해 일부 해소하고 있고, 듣고 있다 보면 사랑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삶을 고양이와 나누고 있는 행복한 곡이다. 이런 식으로 노래하는 곡은 대중음악, 인디음악에서도 보기 힘든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떤 분이 혹평을 하신 1번 트랙 <Hello>도 나는 좋게 평가한다. 특히 Hello는 이 곡중에서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곡이라는 점이라는 면에서 큰 평가를 주고 싶다. 요즘 노래는 [ 같이 부르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와 혼자 보여주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 (나중에 쓸 글 링크) 로 나뉘는 것 같은데, Hello를 캠퍼스 워십 같은데서 사람들 불러놓고 부르게 시켜도 쉽게 배울 수 있고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다. 다만 전자 신호가 많이 쓰였다는 점이 자연성을 해치는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새로운 반주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번 트랙 <어른아이>는 다른 곡들과는 달리 개인의 심리와 감성의 표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 4번 트랙인 <Falling in Love>는 가장 편하게 듣기 좋은 곡이랄까, 앞쪽의 다른 트랙들과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 신선한 분위기다. 특히 열애를 이렇게 조용하게, 느릿느릿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보통은 후렴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비해 브릿지(후렴과 후렴 사이를 이어주는 부분)가 아웃트로(곡을 종료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흐름은 이후의 <튤립>, <별과 당신>, <꽃잎>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특히 5-7번의 경우는 그냥 쉬고 싶을 때 4-7번 트랙만 무한반복하면서 들어도 괜찮을 듯 하다.
8번 트랙 <Love fixer>는 다시 전자음악 분위기로 돌아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 기타가 적극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그 점이 어느정도 묻힌다는 점 또한 로지피피만의 차별 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9번 트랙 <subiaco>는 로지피피의 1분짜리 사운드 믹싱이고, 마지막 곡인 <Goodbye>는 Hello부터 시작된 사랑이야기의 스토리텔링이 베드 앤딩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의외로 밝게 알려주면서, 동시에 음반의 종료를 알려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다만 영어가사라서 신경 안쓰고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전반적으로 평가하자면 로지피피의 전체적인 음반이 사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비교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음반 구성에 있어서 일련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알맞는 노래들을 모아서 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접근 또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음반 제작 현실(메인곡을 한 두개 만들고 나머지 곡들은 멤버가 만든 곡을 피쳐로 소개한다던가, 전혀 생뚱맞은 곡을 붙여 넣는다던가 등)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나아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또한 음악 반주에 있어서 VSTi도 상당수 들어가 있지만, 동시에 어쿠스틱 사운드의 사용이 잦다는 점도 크게 주목할 점이다. 특히 국내 음반의 제작에 있어서 이러한 하이브리드형 음반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심지어 인디음악의 1인자인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유명 인디들도 최근에는 어쿠스틱의 사용이 거의 전무한 편이다. 이런 점은 로지피피가 앞으로도 장기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가수라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된다.
또한 가사집도 일반 가사와는 달리 그녀의 손글씨로 작성되었다는 점부터 마음에 든다. 뭐 당장 표지커버부터가 그녀의 작품이고, 위에 올린 사진에도 있는 <Hello>의 가사는 아예 포스트잇 한 장에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다. 이런 모습으로 음반을 꾸며놓는 것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인 것을 보면, 그녀의 개성이 얼마나 자유분방한지 깨달을 수 있다. 다만, 가사집에 있는 사진들의 컨셉은 보통의 인디밴드들과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긴 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에는 약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렇게 음반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 놨으니, 마지막으로 내가 로지피피가 앞으로의 음반이나 음악 활동에서 바라는 점을 간단히 서술하고 마치자.
첫째. 그냥 보여주기 좋은 음악보다 같이 부르기 좋은 음악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특히 사랑 이야기보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파고 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1970~80년대 싱어롱 음반이 한 때 유행했을 때 올라온 노래들이 다들 그러한 노래들이었는데, 그런 노래들의 파급력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가수가 필요해지기 시작할 시점인 듯 하다. 그 포인트를 해 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와는 별개의 문제지만.
둘째. 앞으로의 음악 활동에서 현재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 주었으면 한다. 현재의 모습에서 크게 변화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을듯하다. 적어도 아이돌 식의 모습은 피해야 로지피피라는 이 음악세계가 잘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적인 음반까지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건 내 작은 소원이다. 분명히 신학과까지 나왔으면 작곡한 찬양,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p.s. 이 음반에는 개신교 코드가 세 곳 들어가 있다. 첫번째는 <Hello>의 'I wanna show the Truth'(물론 가사집에서는 이걸 thruth(?)로 표기했지만)', 두번째는 <Love Fixer>의 '너는 뼈중의 뼈, 너는 살중의 살'(창 2:23), 마지막은 <subiaco> 맨 마지막에 나오는 <놀라운 놀라운 날이었네>의 '하늘 영광 내 안에 넘치네~'. 따라서(?) 가사집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빠지지 않는다. 참고로 알아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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