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책에 대해서 잔뜩 기대를 가지고 책 읽기에 들어갔는데, 우선 예상했던 것보다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서 놀라움을 느꼈다. 일반 출판 디자인이나 출판물 작성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기본적으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요소가 중요한가, 또 뭐가 중요한가 등을 다룬다. 다시 바꾸어 이야기하면 출판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잘 할수 있는지에 대한 프로세스를 설정하고 그 프로세스를 점진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본격적인 산업디자인, 특히 인쇄소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그러니까 실업형 디자이너(?)를 위해서 그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 무엇인가,그리고 자신의 업무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현실 업무를 어떤 과정을 통해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그걸 좀 더 잘하려면 어떤 디자인(?) 요소를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실제 업무의 예시는 어떤가의 다섯가지 단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반 디자인 서적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방식이다.
즉, 이 책은 일반적인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어떤 실험적인 출판이나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일상에서 계속해서 들어오는 책 디자인, 출판 업무를 의뢰 받으면 시안 만들어서 '우리의 갑'이신 클라이언트와의 대화과정을 통해 OK 사인을 받기까지 시안을 수정해서 그걸로 돈 벌어먹는 분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일반적인 책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 그렇지, 정말로 이 책의 주요 타깃인 그분들에게는 매우 도움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될 책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용도 자세히 보면 감탄이 나오는 부분이 많다. 일반 편집디자인 책의 경우 어떤식으로 레이아웃이나 그리드를 짤 것인지,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을 조작할 것인지 설명하는데 그치는 책이 많다. 물론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간 책은 실습을 주고 이런 디자인을 시도해보라는 정도의 과제를 주긴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인지라,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를 배워나가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책 이외의 다른 수단을 필요로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책은 한 발자욱 더 나아가서, 개인에게 연구과제를 주고, 어떻게 너가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준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얼마든지 해 나갈 수 있는 질문이자 제안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무엇보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위한 작품이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자청해서,지금도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고민하고 있을 후배 디자이너를 위해 저자인 김덕희씨가 주는 하나의 선물이자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가르침이 전시나 아트 계열에서 일하는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자, 이 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사악하지 않은' 좋은 책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악한 편집디자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 그리고 우리 모두가 - 이 책을 사악하게 만들었지만, 사악하지 않은 편집디자인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사악하지 않은 편집디자인을 가르쳐주는 책도 많이 나와야 우리 사회가 더욱 풍부해지게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도 한빛미디어의 더 좋은 출판/디자인/출판 관련 도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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