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영광송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소영광송이 격하된 상황을 비판적으로 여겼기에, 영광송을 배경으로 한 삼위일체론이 나온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졌다. 많은 공부를 하신 목사님이 쓰신 책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기대도 잠시, 책을 받아 읽어보며 그 기대가 실망감으로 다가온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2. 실망감 중의 가장 큰 이유는 해당 논의가 철저히 장로회 신학적 차원에서만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정론을 거부하는 알미니안 신학을 우리 믿음의 근간으로 삼는 감리회인으로서, 칼뱅으로 시작해서 근본주의자들만의 논의로만 구성된 삼위일체론을 살펴보는 것은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가 감사하게도 교회들을 포괄한 차원에서 전개됨으로서 균형을 갖추고자 노력했음에는 감사한 말씀을 드린다.
3. 책에서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목사님이 13장에서 쓰신 삼위일체론이 보편교회들의 기존 신앙고백과도 충돌할 소지가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조는 성자 예수님을 다루는 부분에서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며, / 빛에서 나신 빛이시요, / 성부와 같은 분으로, / 낳음과 지음 받은 분이 아닙니다."(WCC 총회 번역, 2013)라고 증언하고 있다. 다른 번역들도 이 부분을 "참 하느님에게서 나신 참 하느님으로서 /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라고 번역하고 있다. 즉 니케아 신조에 따르면,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창세 전 한 번 나시어, 목사님의 주장과 달리(p. 193-194) 영원히 창조 받지 않으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창조받지 않으시는 것이 아닐까?
성령론에 대해서도 우리 서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filioque) 나오신다는 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지만 목사님의 삼위일체론은 동방교회 신학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성령의 발출을 성부에게만 돌리고' 있다(p.190). 분명히 이 책에서는 필리오꿰 논쟁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p. 241),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우리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있었으면 하는 지점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장~에필로그로 이어지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삼위일체의 역사하심(경륜적 삼위일체)를 통해 모든 만물이 다양한 속에서 하나가 되고(plena in unum),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나아가, 다시 하나님의 통치 안에 거하는 삶이 우리의 목표이고 그것을 사회 안에, 이 땅에도 구현되고자 노력하는 것 또한 우리의 목표에 속한다고 당연하게 고백할 수 있다.
5. 그러나 제목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을 법한 소영광송은 세번 언급되는데 불과했고, 가톨릭 버전(이제와 항상 영원히)으로 언급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기본적인 삼위일체론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논의인 만큼, 앞으로 어디에선가 우리의 고백들(주기도문, 사도신경, 소영광송, 대영광송,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바탕으로 삼위일체론에 접근하는 책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6.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송영의 삼위일체론 - 이동영 지음/새물결플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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