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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컬처/생각+

서브컬처의 종말


(ⓒ2000, earpile, 이 사진의 허가 없는 사용을 금지함.)


한국의 서브컬처는 서브컬처가 아니다

최근 서브컬처가 언론의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하위문화로 익히 알려져 있고, 서브컬쳐라는 철자를 사용하기도 하는 서브컬처(subculture)는 본디 햅디지(D. Hebdige)나 스튜어트(J. Stuart)를 비롯한 영국 문화연구자들에 의해 제안된 개념으로, 한 국가의 소수 민족이나, 특정 젊은이 집단들이 일반 대중문화가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의상, 단어, 라이프스타일, 가치를 가지고 삶을 살아 나가는 방식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 단어의 사용은 2000년대부터는 분위기가 바뀌어, 일본 문화콘텐츠에서 비롯된 만화-애니메이션계 문화나 그와 비슷한 분위기의 문화를 전적으로 의미하는 단어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그 이유는 국내 ‘하위문화 연구’들의 경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도한 주입식 교육과 야간타율학습 등에 의해 청소년들의 자율성과 자유시간이 적고, 청소년들이 벌 수 있는 돈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야간 시간대에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들의 조직적인 문화를 형성하기는 어려워진 반면, 동인지나 코스프레 등의 문화들이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 문화로 등장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판단은 대안문화들로 구성된 새로운 문화향유 방식을 하위문화로 호칭하는 것을 대세로 만들었고, 결국은 문화의 향유자들이 이 단어를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메타문화 전반을 ‘서브컬처’로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서브컬처’라는 개념은 원래 영국 문화연구가 형성한 하위문화의 개념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헵디지의 저서인 <하위문화>(헵디지, 1998)는 하위문화의 역사를 1976년의 무더웠던 영국의 여름, 그리고 그 여름 끝자락에 있었던 흑인과 경찰의 싸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41-42). 헵디지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받침이 되었기 때문에 뿌리가 불분명한 펑크 문화가 ‘묵시록적인 여름 기간’에 음반시장에 데뷔할 수 있었다(:42). 이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온 아프리카의 자손들, 특히 자메이카에서 온 이민자들은 성경과 에티오피아의 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에 대한 신앙을 결합한 라스타파리rastafari 신앙에 기반해 아프리카적인 ‘사악한 게릴라 스타일’(:66-67)을 드러냈다.

마찬가지로 백인들, 특히 노동자 계층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식과 정숙함을 가르치는 학교에 대해서는 반항하는 모습을 공공연히 드러냈고(윌리스, 2004), 테드족teds, 힙스터족hipsters, 트래드족trads, 모드족mods 등의 패거리(헵디지, 1998:70-81)를 통해서 집단적인 소속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하위집단들에는 애초에 집단 구성원들과 다른 나이나 민족, 배경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했고, 가능하더라도 주변의 같은 나이대의 여성과 같은 예외적인 사례만이 보고되었을 뿐이다.


새로운 ‘서브컬처’의 특징

이러한 하위문화와 달리, 현재의 ‘서브컬처’에는 몇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로, ‘서브컬처’의 구성원을 구별하는 기준이 기존 하위문화의 기준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지역이나 젠더, 소속 계층 등 로컬리티에 기반한 하위문화의 입문 기준은 콘텐츠나 특정 대상에 대한 선호와 공감, 그리고 참여 정도라는 비가시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서브컬처’는 더 이상 청소년의 전유물이나, 남성과 여성만의 문화가 아니다. 심지어 같은 ‘서브컬처’의 구성 콘텐츠 등에 공감하고 모임이나 인터넷 공간에서 열심히 활동한다면, 40대 아저씨도, 80대 어르신도 그 문화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서브컬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비슷한 사례로 아이돌 문화의 사례도 참조할만하다. 2015년 MBC가 방영한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별바라기>에는 90년대 활동을 시작한 스타를 십여 년 넘게 계속해서 쫓아다니는 팬들이 다수 등장했으며, 심지어 일본 유수 대학교의 교수도 한 가수의 팬클럽을 만들어 활동하는 대학교수도 이 방송에 출연한 바가 있다.

  둘째로, 하위문화를 구별하던 기존의 구성요소들(예를 들어 의상, 언어, 가치관의 차이, 그리고 반항도)가 ‘서브컬처’를 설명하는 변별 요소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한다. 물론 ‘서브컬처’ 중에서 하위문화의 구성요소로 보이는 문화적 특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특성들을 기반으로 ‘서브컬처’가 하위문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이들 ‘서브컬처’ 구성원들이 왜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새로운 의상을 입지 않거나, 일상적인 삶을 벗어난 일탈 행위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지, ‘서브컬처’ 구성원의 연령대가 갈수록 넓어져 가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서브컬처’는 근대사회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존 하위문화와 달리 근대 사회의 종말을 증언하는 증거이다. 인류 문화의 초기에는 가족, 친족, 이웃 관계에 의해 구성된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가 주로 사회와 문화의 기반이 되었고, 산업시대에 들어서 회사나 정당 같이 이익이나 정치 가치에 의해 구성된 게젤샤프트(이익사회)가 지역간의 교류를 확산시켰다면, 이제 우리는 문화콘텐츠나 인터넷 등의 새로운 가치가 지역을 넘은 새로운 교류와 함께 문화산업과 정책 전반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16년 6월 발표된 ‘포켓몬 고’를 가장 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포켓몬 고’는 대한민국에서 원래 실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속초에서 ‘포켓몬 고’의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속초시는 아직 휴가철이 되지 않았는데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 결과, ‘포켓몬 고’를 플레이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속초시로 몰리면서 속초로 가는 버스표가 전부 동나고, 당일치기로 속초로 향하는 전세관광버스 상품이 생겼다. 포켓몬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폰을 이동시켜주는 아르바이트도 등장했다.

  속초시 또한 핸드폰 충전소 및 무료 와이파이, 포켓몬 고 체육관을 소개하는 무료 지도를 인터넷으로 소개하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포켓몬 붐에 대응했다. 이러한 붐은 그 정도만 달라졌다 뿐이지 미디어의 관심에서 멀어진 2016년 10월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식 오픈도 되지 않은 게임 콘텐츠 하나가 지역활성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포켓몬 고’만이 이러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이 있기 전부터 ‘서브컬처’ 행사들은 ‘서브컬처’ 팬들의 이동과 결집을 촉진해 왔다. 다양한 콘텐츠를 좋아하기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심지어 남부 지방에서부터 한 장소에 모이는 많은 사람과, 그러한 현상을 일으키는 작고 큰 ‘서브컬처’ 행사들은 문화예술 바깥에서 이뤄지는 문화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새로운 문화는 번성하고 있다

‘서브컬처’에서 쓰이는 단어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이미 스며들어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브컬처 팬들을 부르는 명칭은 오타쿠(お宅)을 한국어화한 ‘오덕후’, ‘오덕’, ‘씹덕’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tvN의 <화성인 바이러스>에 방영된 ‘오덕페이트’ 이진규님 같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미디어 노출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코스프레하다’는 단어를 정치인의 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으며, ‘성지순례’, 니코니코니, 일코, 덕질 등의 단어 또한 한국인의 일상에서 쉽게 회자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데프콘씨의 <에반게리온> 사랑은 이미 유명 TV 예능 <나 혼자 산다>을 통해 ‘덕밍아웃’된 상태고, 코스어 출신 서유리(로즈나비) 성우는 <세터데이 나잇 코리아>(SNL Korea)와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활약하며 대중 연예인으로 자리잡았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약하는 씬님 또한 유명 코스어로 이름을 날린 바 있다. 시사iN에서는 잘못된 의미에 기반해 구성되기는 했지만 중림동 새우젓 팀을 구성해서 다양한 취미문화의 모습을 설명하는 기획을 진행하고 있고, 얼마전에 연재가 중단되었지만, 정용인 기자의 <언더그라운드.넷>또한 웹컬처 기반의 소문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이제 청소년 문화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 문화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는 ‘서브컬처’는 따라서 더 이상 하위문화라고 불려질 수 없다. 서브컬처나 하위문화, 오타쿠 문화 등 기존에 이 문화를 부르던 이름들이 문화향유자들에 대한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쓰여지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이 문화는 새로운 명명을 가지고 분류되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이 문화의 새 이름으로 웹컬처를 제안한다.

  참고로, 국내 서브컬처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웹컬처 이외에도 네오컬처(나 신문화), 동호문화 등의 새로운 제안이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서브컬처’가 기존의 로컬리티를 벗어난 트랜스로컬리티에 기반한 문화라는 점에서, 웹컬처만큼 이 문화의 본질을 표현한 문화는 없다고 생각된다.

  한편, 최근 성우계와 웹툰계 등 통상적인 웹컬처 분야에서 젠더 대결이 남성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다시 언급2016년 김자연 성우 탄압 사건은 한국의 창조산업을 왜곡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 사태 와중에 ‘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이라는 단체가 제안된 적이 있었다. 이 협동조합은 새로운 웹툰 플랫폼을 제안하면서 ‘비상식적인 커뮤니티를 지지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작가를 위한 정기적인 SNS 인성 및 홍보 교육 및 시사 교육’(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 2016)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며, 작가의 창작의 자유를 비합리적으로 제약하고자 하는 행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되새긴 바, 이들이 서브컬처라는 단어를 썼다는 사실은, 서브컬처의 종말이 이미 이르렀으며, 서브컬처가 경계적 상황을 벗어나 과경계적(transborder) 상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웹컬처로 재편되고 있는 현상이 실현되고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161124 공개, 171227 일부 개정)


참고문헌

윌리스(2004), 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이매진. 원전: Willis(1981), Learning to Labour : How working class kids get working class job, Columbia University Press.
헵디지(1998), 서브컬처: 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원전: Hebdige(1979),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 Routledge.
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2016), "협동조합 구조-한국서브컬쳐협동조합", 2016. 11. 24. 확인. http://modakbul.net/koscop/coop